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아둘람의 노래 (삼상 22:1-10)

鶴山 徐 仁 2020. 10. 31. 10:53

아둘람의 노래 (삼상 22:1-10)

 

10월 31일 (토)

   

아둘람의 노래 (삼상 22:1-10)

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6.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그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7.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

9.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블레셋의 <가드>를 탈출한 다윗이 가까스로 찾은 곳이 바로 <아둘람> 굴이었습니다(1절). 

<아둘람>이란 <피난처>, <보호처>란 뜻의 지명입니다. 그 위치는 가드와 베들레헴의 중간으로 본래는 유다의 영토였으나 당시에는 블레셋의 지배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곳은 바위산으로 워낙 지세가 험해 사울의 군사들이 쉽게 추적하거나 접근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바위 동굴이 많아 도망자의 은신처로서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으나 다윗은 이제 사울에게 몰리고 몰려 막다른 골목에까지 다다른 딱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과거를 되씹어 보는 그로서는 지금까지의 삶이 모두 무의미한 것으로 변해버리는 것만 같은 칠흑 같은 좌절감을 느꼈을 겁니다. 이제 시간은 오직 사울 편이고, 자신은 히브리 역사의 대세에서 철저하게 뒤처지는 듯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가 몹시 어려웠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혜의 은신처에 몸을 숨기기는 했지만 사울의 군대가 언제 들이닥쳐 생명이 위태롭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장기 피신에 필요한 식량 또한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모든 조건이 그에게는 최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편 57편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부른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1절). 그러다 돌연 7절부터는 그의 어조가 급격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누가 보아도 새벽을 깨우기는커녕 도리어 밤의 어두움에 삼킴을 당할 것 같은 그가 어디에서 이런 힘이 솟아난 걸까요?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2절).

그래서 다윗이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보다 더 애통하고 환난 당해 고통하는 사람들이 그 아둘람의 굴을 찾아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둘람의 굴은 이제 탄식과 좌절의 자리가 아니라 생의 새로운 용기를 다지는 재기의 터로 바뀌어 갔던 것입니다. 

 

-시편 57편을 한 번 정독해 보십시오.

-옛 이스라엘 지도에서 <아둘람>을 특정해 보십시오.

-본문 5절에 나오는 선지자 <갓>에 대해 아는대로 적어 보십시오(삼하 24:11~, 대상 29:29).

 

주님, 다윗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아둘람 굴을 찾은 환난 당한 자들, 원통한 자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없었던들 그 곳은 그냥 산적이나 강도떼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속에 역사에 대한 빛나는 비전이 살아 움직였기에 그 어두운 굴속에서 새벽을 깨우는 노래와 기도의 함성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부디 낙심과 탄식으로 어둡고 음습한 저희의 삶의 자리도 은혜의 노래가 샘솟는 아둘람의 굴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체험과 상황이나 이론에 의지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그 말씀보다 

환경과 상황을 걱정하였고, 

가나안을 정탐한 후에도 그들의 강대함과 힘에 압도당했다. 

그래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함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간 방황했다.

우리는 여기서 체험중심이 아니라 

말씀 중심으로 나아가야 함을 본다. 

자기 느낌이나 감정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변한다. 

체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체험 위주가 되면 안정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

 사탄의 시험도 있고 내 생각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초신자에게, 또 위기나 절실한 순간에는

 체험도 주시지만 대부분 말씀 위주로 인도하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말씀에 견고히 서서

 그 말씀, 곧 성경에 기초하여 살아가시기 바란다.

-한성진 목사의 ‘요단강에서 본 참 믿음’에서-

 

성경은 하나님과 그의 뜻을 증거하는 말씀으로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으로 

구원 얻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의지해야지 

체험과 상황이나 이론에 의지하면 큰 시험에 빠집니다. 

요단강 너머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무궁한 복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는 갈 수 없고 

믿음 없이는 누릴 수 없는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하심을 믿는 담대한 믿음, 

하나님 중심의 믿음, 성경 중심의 믿음으로

 우리를 예수 안에서 천국의 복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찬송하며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천국의 복을 누리고

 또 누리는 참 믿음의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