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묵은 땅을 기경하라 (호세아 10:12-15)

鶴山 徐 仁 2020. 5. 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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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월 05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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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묵은 땅을 기경하라 (호세아 10:12-15)

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13.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14. 그러므로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지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라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도다

15. 너희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

본문 해석

인생은 농사와 같아서 심은 것만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씀합니다(갈6:7).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심고 땀 흘리느냐에 따라 그 열매와 수확량은 달라질 것입니다. 열매를 얻기 위해 농부는 농사의 어떤 과정도 소홀히 여기지 않듯, 우리도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씨앗과 땅이 모두 좋아야 합니다. 때문에 농부는 좋은 씨앗을 준비하고 씨뿌리기 전에 토양의 질을 점검합니다. 만약 토양이 좋지 않다면 옥토화 작업부터 해야 합니다. 옥토화 작업은 굳은 땅은 갈아엎어 부수고, 돌과 자갈이 있다면 캐어 골라내고, 가시와 엉겅퀴가 있다면 불에 태우고 그 뿌리는 뽑아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좋지 못한 땅이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선포합니다(12). 예레미야도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하십니다(렘4:3). 이는 마음을 고치라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점검해보고 단단한 묵은 땅과 같다면 갈아엎어서 옥토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마음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 미움, 시기, 염려, 불안, 우울 등 어두운 면이 많다면 옥토화 작업이 필요합니다. 무엇이든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감사와 기쁨과 은혜와 평안함을 누리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녀들을 양육하고 교육할 때도 아이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이것부터 챙겨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지식과 특기가 뛰어남도 중요하지만, 더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이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부모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점검함으로 성숙한 신앙인격자로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내 마음을 기경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며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만져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시51:10).  

  우리의 마음 밭을 기경하기 위해 두 가지 쟁기가 필요합니다. 먼저 ‘말씀’의 쟁기입니다. 성경은 여호와의 말씀이 불과 같고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다고 말합니다(렘23:29). 천지창조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도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받음으로, 믿음의 성장도 말씀이 마음에 들어와 두드릴 때 이루어집니다. 말씀의 능력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말씀의 쟁기가 불신, 외로움, 우울함 등을 갈아엎어 버립니다. 말씀의 불은 의심과 불신앙을 태워버리고, 말씀의 방망이는 불안 염려, 욕심을 모두 부스러뜨립니다.   두 번째 쟁기는 ‘고난’입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은 유익을 가져다주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시119:71). 그렇습니다. 고난은 축복의 전주곡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싸고 있는 검은 보자기와 같습니다. 겉보기에는 마주하기 싫지만 막상 풀어보고 통과하고 나면 그 고난은 참으로 유익이 됩니다. 어떤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기도와 찬송으로 고난을 이겨 내야합니다(약5:13). 예전에는 좋은 땅이었는데, 지금은 묵은 땅이 되었다면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13). 무조건 옥토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점검하고 회개하여 자기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그러면 회복케 하시고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12).  

결단과 적용

- 내 마음을 기경하기 위해 말씀을 대하고 받는 자세를 확인해 봅시다. 

- 두 가지 쟁기로 마음 밭을 옥토화하도록 결단하고 주님의 도움을 간구하십시다.

- 나는 가족들에게 본이 되고 있는지 생각하고 가족들의 마음을 위해 기도하십시다.

오늘의 기도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묵은 땅처럼 영적 감각을 잃어버리고 타성에 젖어 기쁨도 감격도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불처럼 역사하심으로 새 마음을 주시고 새로운 인생으로 살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인문학 나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비슷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버릇이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자기 비슷하게 만들려고 하는

노력을 사람들은 흔히 사랑 혹은 애정이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애정의 도(度)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착각의 도도 높아진다.”

 

황동규 저(著)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문학과지성사,

표지 뒷 글)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니체는 세 단계의 정신적 변화를 말합니다. ‘그대는 마땅히 해야만

한다(You should)’ 라는 낙타의 단계, ‘나는 하고자 한다(I will)’

의 사자 단계,  그리고 제일 성숙한 단계를 아이의 단계라고 하는데,  

이 단계는 ‘나는 있는 그대로 나이다(I am)’입니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요?  불가(佛家)에서는 만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을 여시

(如是)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사물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이미 해석된 현실

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방식으로 만물을 봅니다.  

“나는 한 알의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하리라.”

화가 폴 세잔의 유명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사과를 그려서

파리와 세상을 놀라게 하였을까요?  세잔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린

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습니다.  세잔이 그린 사

과는 세잔의 마음과 생각이 정교하게 해석한 사과입니다.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력할 때, 죄인 되었을 때, 심지어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원수 된 자리에 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기독 메시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

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그림 큐티더 보기
로마서 5:8
고린도전서 15:1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NIV)

도서 큐티더 보기
그 왕은 세상의 왕과 너무나 다르다

어떤 모임이나 단체도 한 나라의 분위기도

 리더의 성품과 통치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메시아가 도래하여 이루실 새 왕국은

 결코 무력과 억압으로 세워지는 공포의 왕국이 아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9장 6절에서

 예수님을 ‘평강의 왕’(사 9:6)이라고 부르고 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그 분을 믿고 따라갈 때, 

모든 자들에게 강력한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진정한 우리의 왕이시므로

-최성묵 목사의 ‘나귀를 타신 겸손의 왕’에서- 

 

겸손하신 왕, 평화의 왕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을 때 

세상은 고요했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우리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온 우주의 왕이 이 땅에 오시는데

 화려하고 거창한 퍼레이드가 펼쳐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 일까요? 우리를 위하여 오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왕을 보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 왕은 세상의 왕과 너무나 다릅니다. 

그래서 참으로 즐거이 노래하고 

기쁘게 찬송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