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기억의 그림자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도대체 왜 글을 읽는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지금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책을 한 번 더 읽는단 말인가?”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著) 김인숙 역(譯) 《깊이에의 강요》
(열린책들, 88-8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독서를 할 때,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책을 읽어도 금방 잊어 버리는데 읽으면 뭐하나?”
사실 그렇습니다. 읽긴 읽은 것 같은데, 그 내용이 가물가물합니다.
잊어먹지 않으려고 밑줄까지 긋고, 포스트잇까지 붙여 놓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요즘 읽은 책도 그런데, 옛날에 읽은 책을 말할 필요도 없
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책을 읽는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그
럼에도 불구하고 독서의 유익을 이렇게 말합니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일 수 있다. 의식 깊이 빨려들기는 하
지만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기 때문에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책의 내용을 잊어 버린 듯해도 독서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서서히
변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의 수면, 기억의 수면 위로 올라오
지는 않지만, 저 수면 아래에서 우리의 삶의 듬직한 힘, 또는 그 토대가
되어 준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릴 때 지금 당장은 은혜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잊혀지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삶의
든든한 밀알이 되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