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님 여러분, 피고를 석방해 주십시오. 재판장님, 저를 포박해
주십시오. 당신이 찾고 있는 사람은 저 사람이 아니라 저입니다.
제가 장 발장입니다.”
빅토르 위고 저(著) 정기수 역(譯) 《레 미제라블1》 (민음사, 48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빅토르 위고의 명작 《레 미제라블》 완역판은 2,000페이지가 넘는 방
대한 분량의 책입니다. 그러나 스토리 전개가 빠르고 간결합니다. 그
런데 장 발장이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무려 100페이지가 넘게
나옵니다. 이 소설에서 그 어떤 이야기보다 긴 분량입니다.
장 발장은 미리엘 주교로부터 감화를 받아 시장(市長) 마들렌으로 변
신해 선행을 베풀며 존경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 발
장을 집요하게 쫓던 자베르 경위가 찾아와 자신을 파면해달라고 합니다.
마들렌 시장을 장 발장이라고 생각하고 은밀히 조사 중이었는데, 장 발
장이 다른 곳에서 잡혔다며 시장을 모욕한 죄를 달게 받겠다는 것입니
다. 장 발장이라고 잡힌 사람은 상마티외라는 사람인데 재판에 넘겨져
종신형을 받을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마들렌 시장으로 신분 세탁을 한
진짜 장 발장은 이 사실을 모른 체하고 계속 선행을 베풀며 살 것인가,
아니면 정체를 밝힐 것인가 자신과의 싸움을 합니다. 정체가 밝혀지면
이제껏 쌓아온 사회적 지위와 부뿐 아니라 선행의 기회도 없어지고,
종신범으로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합니다.
마침내 장 발장은 200리 먼 길을 달려 직접 법정으로 향하고,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그리고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립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