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나라에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노나라 임금은 그 새를 너무 사랑해서,
마치 큰 나라에서 온 사신인 것처럼 응접했다.
술도 권하고,맛있는 고기도 주었고,음악도 들려주면서
그는 극진하게 자신의 애정을 아낌없이 그 새에게 쏟았다.
그러나 새는 슬퍼하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사흘 만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여기에서 재미 있는 사실은 노나라 임금이 새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새라는 타자를 자기의 고착된 자의식 또는 내면에 근거한
외면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강신주 저(著)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오월의 봄, 36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노나라 왕은 새를 사람처럼 보았습니다.
사람을 대접하는 방식으로 새를 대접하고자 했으니 새가 죽었습니다.
이청준 님은 그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서문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들의 천국》은 당시 우리의 묵시적 현실 상황과 인간의 기본적 존재 조건들에
상도한 역설적 우의성(寓意性)에 근거한 말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느 땐가 그것이 《우리들의 천국》으로 바뀌어 불려질 때가
오기를 소망했고, 필경은 그때가 오게 될 것을 확신했다.”
나의 천국이 있고, 당신들의 천국이 있고, 우리들의 천국이 있습니다.
이 중 최고는 ‘우리들의 천국’ 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되지 못했을 때,
혹은 ‘우리’가 될 수 없는 것에 나의 것을 당신에게 강요할 때, 새는 죽고 맙니다.
바울 사도는 카멜레온처럼 변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 같이 되었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자신도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보이게 하였고,
약한 자들에게는 자신도 약한 자처럼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어떻게 하든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가 되어 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