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안식일 (느 13:10-22) 외 1

鶴山 徐 仁 2018. 4. 1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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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소리 - 365일 하나님과 행복한 삶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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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1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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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안식일 (느 13:10-22)

10. 내가 또 알아 본즉 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을 주지 아니 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그 전리로 도망하였기로
11. 내가 모든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그 처소에 세웠더니
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13.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로 고지기를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으로 버금을 삼았나니 이는 저희가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14.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15.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16.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유다 자손에게 예루살렘에서도 팔기로
17. 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8.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 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하고
19.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에 내가 명하여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내 종자 두어 사람을 성문마다 세워서 안식일에 아무 짐도 들어 오지 못하게 하매
20. 장사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번 예루살렘성 밖에서 자므로
21. 내가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 후부터는 안식일에 저희가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을 명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옵시고 주의 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본문 해석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내가 경계하였고 ...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15-17절).

 

유다 백성들이 다시 안식일에 일하고 장사하며 율법을 범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렸으므로 느헤미야가 그들을 꾸짖으며 경계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왜 지켜야 하고 안식일 성수의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요? 

 

안식일은 하나님이 쉬셨기 때문에 우리도 따라서 쉬는 날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이 이레째 안식하신 것은 엿세 동안 일하셔서 피곤하셨기 때문에 

쉬신 게 아닙니다. 우선 하나님이 이레째 쉬신 것은 엿세 동안 창조하신 이 세계가 보시기에 심히 좋을 만큼 아름답고 완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는 창조하실 게 없었기 때문에 안식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이란 하나님이 이레 째 쉬셨기 때문에 우리도 맹목적으로 따라 쉬는 날이 아니라 우리도 모든 수고와 노동에서 손을 떼고 

쉼으로써 내 삶으로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천지의 완전함과 아름다움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더는 노동을 하거나 보완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을 만큼 이 우주를 완벽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대한 믿음을 실제 안식하며 온 몸으로 

고백하는 날입니다. 

 

지금 우리가 지키는 주일도 마찬가집니다. 주일은 무조건 쉬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누구도 더는 일하거나 수고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주님이 이룩하신 우리의 구원이 완전하고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약 시대 안식일 뿐 아니라 이 시대의 주일도 손에서 모든 일을 놓고 쉬며 삶으로, 몸으로 주님이 이루신 우리의 구원을 감사하며 

찬양하며 성수하는 게 지극히 옳다는 것입니다. 

만약 안식일이나 주일에 노동을 하면 그것은 곧&n bsp;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주님의 구원사역에 대한 불신앙의 고백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주님의 구원사역이 미흡하여 나의 추가적인 노동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고백하는 꼴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디 주일 성수에 최선을 다하셔서 늘 완전한 주님의 구원사역을 감사하며 찬양하며 사는 성도가 되시길 당부드립니다.

결단과 적용

-당신이 이해 한 안식일과 주일의 개념을 적어 보십시오.

-주일을 범하면 뜻하지 않게 어떤 결과가 발생한다고 했습니까?

-현재 당신의 주일 성수 수준을 점수로 표기한다면?

오늘의 기도

주님, 과거 유다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안식일 성수를 그토록 다짐하고도 오래지 않아 또 다시 범하며 안식일에 일하고 장사하고 음식을 팔았다고 

했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안식일의 의미, 주일의 뜻을 바르게 깨달아 평생 삶으로, 온 몸으로 주님 이룩하신 저희의 구원을 기리고 감사하고 

실천적으로 고백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상처받을 용기
인문학 나눔

“만약 당신이 새라면, 상처받지 않는 새장 속에서 사는 쪽을 택할 것인가? 상처를 감수하고 숲 속에서 사는 쪽을 택할 것인가?

 혹은, 상처받지 않으려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삶을 택할 것인가? 상처를 감수하고 다시 또 사랑하는 삶을 택할 것인가?”

김수현 저(著) 「180도」 (마음의 숲, 192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을 수 있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입니다.

아프지 않으려고 사랑하지 않고 마음도 주지 않는다면, 그 영혼은 부서지지도 깨지지도 않고 뚫고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그 사람과의 만남은 만남이 아니라 스침이 됩니다.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현실입니다. 사랑은 아프기로 결심하는 일입니다. 

기독 메시지

소설가 이외수 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이 아파서 안한다면, 배탈이 겁나서 밥을 안 먹겠다는 것이다.”

상처받지 않는 새장 속에서 사는 것보다 상처를 감수하고 숲 속에서 사는 것이 낫습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아5:8)

그림 큐티더 보기
요한1서 4:19
고린도전서 15:10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We love because he first loved us.

도서 큐티더 보기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1907년도와 2017년대 기독교의 차이가 많이 생긴 것은

구원은 믿음을 통한 ‘은혜’로 받고, 

‘행위’는 믿음을 따라 가야 되는데

행함은 별로 중요치 않다고 오해하는 교인이 많아지면서 부터다 

그렇게 성경 배우고 나니, 이것이 매우 ‘신나는 복음’이었다.  

행위 때문에 믿는 것이 힘들고 부담스럽던 사람들이

 이런 ‘신나는 복음’을 열렬히 환영했다. 

바리새인의 실수는 ‘믿음’을 ‘행위’보다 앞세우면서도

자기 행위의 의를 믿음보다 더 드러냈다.

믿음을 강조하다가 지나쳐서 행위를 무가치하다고 무시한 것이

오늘의 한국교회를 신뢰받지 못하는 종교로 만들고 말았다. 

-김동호 목사의 ′1907 년과 오늘날의 차이′에서-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믿음’에 행위가 따르지 않으면 ‘믿음’이 죽습니다. 

‘믿음’이 성립 안 됩니다

믿음과 행위는 한 짝의 신발과 같고,

 한 짝의 젓가락과 같습니다. 

한 개로 따로 떼면 불완전해집니다. . 

행함이 없는 믿음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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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12일 (목)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모세의 책 (느 13:1-9)

1. 그 날에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2. 이는 저희가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3.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몰수히 분리케 하였느니라
4.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5.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기명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6. 그 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었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 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7.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갖춘 악한 일을 안지라
8.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9. 명하여 그 방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전의 기명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 놓았느니라

본문 해석

느헤미야 12장과 13장은 약 1년 가량의 시차가 납니다. 

느헤미야가 감격적인 성벽 봉헌식까지 갖고 유다 총독 첫 임기 12년을 마무리한 뒤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고하기 위해 바벨론으로 돌아가 

궁궐에 머문 기간이 약 1년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그 후 느헤미야는 왕의 허락을 받아 다시 예루살렘으로 복귀합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백성들의 삶과 신앙은 이미 형편없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 개혁을 시도한 내용이 바로 이 13장 말씀입니다. 

 

바벨론 왕궁에서 돌아온 느헤미야는 땅을 치며 통탄했습니다. 

불과 1년 전 ➀ 이방인들과 잡혼을 하지 않겠다 ② 안식일을 범하지 않고 거룩하게 지키겠다 ③ 십일조와 헌물에 인색하지 않겠다며 맹세하고 

백성들의 대표들이 다 서명한 후 인봉까지 했는데 그 언약과 맹세가 모조리 파기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재 개혁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 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2절).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3절). 

 

느헤미야의 개혁은 이번에도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모세의 책>이란 모세 5경, 즉 율법서를 말합니다. 지난번에도 느헤미야는 학사 에스라를 초청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듣게 함으로써 개혁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는데 이번 재 개혁 역시도 <모세의 책>으로 시작했습니다. 역시 백성들이 당장 반응했습니다. 

<백성이 ...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느니라>(3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히 4:12) 합니다. 

따라서 신앙생활, 신앙 개혁에 성공하려면 반드시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돈이나 출세나 권력이나 명예를 좇거나 붙잡고 살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그 율법을 묵상하며 살아야 시들지 않고 

마르지 않고 늘 그 잎사귀가 청정하여 철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올해도 말씀으로 인해 당신의 삶이 더욱 새롭고 아름다워 지길 빕니다. 

결단과 적용

-불과 1년여 만에 다시 타락한 당시 유다 백성들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오늘 본문을 10장 말씀과 비교해 보십시오.

-당신의 신앙생활에서 말씀이 차지하는 비중을 간증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불과 1년 전만해도 회개하고 개혁하며 맹세하고 인봉까지 했던 백성들이 다시 완전히 무너져 느헤미야를 통탄하게 했습니다. 

이 시대 저희들의 모습도 마찬가집니다. 부디 느헤미야의 처방처럼 저희도 말씀을 가까이 하고 더욱 성실하게 듣게 하사 재 개혁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래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 앞에서 즉각 새롭게 결단했습니다. 저희의 삶과 믿음에도 변화와 참된 개혁이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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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꽃을 보았는가?
인문학 나눔

“꽃이란 아름다운 색도 있고, 풍겨나는 진한 향도 있으며, 그 안에 살고 있는 벌레도 있고, 그 안에 머금은 이슬도 있다. 

라이너 마리아릴케를 죽게 한 가시도 있고,  양귀비의 입술도 있으며 누군가의 첫 프로포즈도 있다.  

그 다양한 세계를 ‘꽃’ 이라 이름 짓는 것은 그것을 단면으로 자르는 것이요, 그것을 정지시키는 것이며 결국 그것을 죽음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이광수 저(著) 「사진 인문학」 (알렙, 31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페르시아에 내려오는 민담입니다.

네 아들을 둔 왕은 어느날 아들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했습니다. 

“첫째는 겨울, 둘째는 봄, 셋째는 여름, 넷째는 가을에 정원 뒤편의 망고나무를 관찰하라. 다른 계절에 망고나무를 보아서는 안 된다.” 

네 아들은 왕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했고, 1년 후 왕은 네 아들을 불러놓고 물었습니다.  “이제부터 너희가 본 망고나무를 설명해다오.” 

네 아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불에 타고 남은 폐허 같습니다.” “잎이 푸르고 싱그럽습니다.” 

“꽃은 장미처럼 아름답습니다.” “주렁주렁 열린 열매가 탐스럽습니다.” 왕은 네 아들의 손을 잡고 교훈을 주었습니다. 

“너희들의 대답은 모두 옳다.  망고나무는 계절마다 각각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한 가지 모습만 보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  이것이 너희들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다...” 

기독 메시지

꽃을 보았다고 그 꽃을 다 안 것인가?  우리들이 보고 듣는 것은 참으로 유한합니다.  부분을 보는 것입니다. 

똑같은 사건이라도 누구로부터 듣느냐에 따라 다르고, 어떤 상태에서 듣느냐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은 부분적이라고 여기는 것이 겸손입니다. 자신은 전체를 보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 교만입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고전13:9)

그림 큐티더 보기
마태복음 5:10
고린도전서 1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Blessed are those who are persecuted because of righteousness,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도서 큐티더 보기
자기중심으로 사는 삶에서 벗어나야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자기 핸드백 잃어 버렸다고 

당황하고 소리 지르고 정신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이성을 잃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찾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을 보며 그렇게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핸드폰 잃어버리고… 

시계 잃어버리고… 지갑… 돈 몇 푼…

여러분도 이웃을 아끼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이기심을 극복해야 한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임현수 목사의 ′내가 아끼노라′에서-

 

나’중심의 사람은 때때로 극단적인 행동을 합니다.

‘나’ 중심의 사람은 남에게는 무관심한 것이 특징입니다.

′나’ 중심의 사람은 남의 것은 천하게, 자기 것은 귀하게 여깁니다.

남의 것이라고 수십만의 생명을 천하게 여기고,

 자기의 것이라고 박넝쿨 하나도 귀하게 여깁니다.

 선교의 가장 큰 방해물은 바로 이기심입니다.

 이기심은 언제나 하나님의 생각과 반대입니다. 

니느웨로 가라 하시지만 항상 자기만의 다시스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한가지 밖에 모릅니다. 

 심히 기뻐하고, 심히 싫어하고,----

성품의 열매가 없는 미숙한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