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보면 인생의 소망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 무너졌을 때는 다시 힘을 내서 일어날 수 있지만, 그 소망마저 무너져 버리면 도저히 일어날 힘이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안 돼”, “이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난 이제 뭘 해도 안 될 거야.”
오늘 말씀의 에스겔은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고, 성전도 완전히 파괴된 이후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선지자입니다.
에스겔의 마음이 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던 성전마저 무너지고 돌아갈 땅도 없어진 상태에서, 에스겔은 남은 소망마저
무너졌을 것입니다.
이런 에스겔을 하나님이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로 인도하시면서,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인자”라고 부르십니다.
이 “인자”는 사람이란 뜻의 히브리어 “아담”인데, 이 단어는 흙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아다마”라는 단어와 같은 어원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이렇게 부르신 이유는 “흙으로 창조된 사람아! 지금까지 네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세상은 너희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이제는 나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라.”,“너의 한계를 기억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 에스겔이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은 마치 절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 맹세대로 살 수 있다고
자신했던 베드로가 결국 예수님을 부인할 후에 예수님이 그에게 찾아 갔을 때 했던 말과 같습니다.
이 말은 “주님, 내 의지로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일하셔야 합니다.”라는 고백이 담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능력”의 시작입니다. 내가 온전히 죽고, 주님만이 하실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에스겔에게 “너희가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대언하자, 마른 뼈가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입혀지고 가죽이 덮입니다.
하지만, “생기”가 들어가기 전에는 그것들이 살지 못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회복을 경험하려면, “생기”인 “성령”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무가 겉으로 힘이 있는 모습일지라도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여전히 죽은 모습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소망이 없어졌고 멸절되었다고 절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 환상”으로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시겠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할 때, 회복할 소망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도 회복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생각대로가 아닌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