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번제(스 3:1-7) 외 30

鶴山 徐 仁 2017. 11. 2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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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소리 - 365일 하나님과 행복한 삶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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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 (토)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번제(스 3:1-7)

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대로 번제를 그 위에 드리려 할쌔
3. 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여 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 조석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4.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5.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즐거이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6. 칠월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전 지대는 오히려 놓지 못한지라
7.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수운하게 하였더라

본문 해석

<... 제단을 그 터 위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3절).

<...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5절).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6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지에서 70년 만에 귀환한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고 훼파된 예루살렘 성벽을 복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전 재건이 급하다하여 당장 땅부터 파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단을 쌓고 제사부터 드렸습니다. 

오랜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그들의 최우선 과제는 역시 제사고 예배였습니다. 하나님께 기쁘게 예물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지난 70년간 이방 땅에서 포로생활을 하며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어도,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 이름을 높이고 싶어도 뜻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유다 땅으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으므로 해방의 자유와 더불어 하나님께 마음껏 예배드리며 그 기쁨과 감격을 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제단을 수축하고 규례에 따라 여호와께 번제를 올린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행위이자 왕 되신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올리는 의식입니다. 

특히 이들이 바친 번제는 이스라엘의 가장 오래된 형태의 희생제사로 번제에 바치는 제물로는 양, 염소, 소, 비둘기 등이 쓰였으며 제단 숯불에 온전히 

다 태워서 바쳤습니다. 봉헌하는 제물을 태워 바치는 것은 예배자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다 태운다는 의미와 함께 탄원과 감사, 헌신 등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따라서 예배란 하나님 앞에서 번제의 제물처럼 자기 자신이 죽는 시간이요, 제물의 각을 떠서 바치듯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결단이며, 번제물을 다 사루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듯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신앙행위라는 사실을 바르게 깨달읍시다. 

고국으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제일 먼저 번제를 드리며 감사하며 헌신을 다짐한 사실을 잊지 맙시다.

결단과 적용

-왜 모든 일에 앞서 <예배>일까요?

-<번제>란 어떤 제사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가장 힘써야 할 일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 과거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제일 먼저 한 일도 하나님께 번제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노아가 정결한 짐승 중에서 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70년 만에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께 번제부터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 삶의 제1순위는 언제나 예배입니다.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기도하므로 성령과 

교감하는 예배야말로 늘 저희가 살아가며 최우선으로 행해야 하는 가장 소중한 삶의 최우선 순위임을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사랑은 감정인가 의지인가
인문학 나눔

“우리는 생애의 중요한 요인 곧 ‘의지’라는 요인을 무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만일 사랑이 감정일 뿐이라면,

영원히 서로 사랑할 것을 약속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감정은 생겼다가 사라져버릴 수 있다.  

내 행위 속에 판단과 결단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내가 이 사랑이 영원하리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에릭 프롬 저(著) 황문수 역(譯) 「사랑의 기술(문예출판사, 8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세계적인 명저 「사랑의 기술」에는 기대했던(?) 에로틱한 사랑의 기술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대신에 ‘책임 있는 사랑’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사랑에 속는 것은 그 강렬한 감정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은 짧고 단순하고 순간적입니다.  물론 사랑함에 있어서 감정이라는 

요소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은 감정을 넘어서 사랑의 약속과 의지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사랑은 불완전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상대방이 나를 싫다고 

하면 언제든지 ‘남’이 될 수 있는 불안정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할만한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 원수가 된 그때에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롬5:10).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지금도 우리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흩날리고 있는 사랑의 시(詩)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의 시, 사랑의 약속이 여기 있습니다.  

“너와 나는 약혼한 사이, 우리 사이는 영원히 변할 수 없다. 

나의 약혼 선물은 정의와 공평, 한결같은 사랑과 뜨거운 애정이다. 

진실도 나의 약혼 선물이다.  이것을 받고 나 야훼의 마음을 알아 다오.” 

 

공동번역 호세아 2장 21,22절의 말씀입니다

그림 큐티더 보기
누가복음 18:7
고린도전서 15:10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And will not God bring about justice for his chosen ones,

who cry out to him day and night? Will he keep putting them off?

도서 큐티더 보기
언약적 사랑에는 반드시 질투가 따른다

우리는 어떻게 언약에 기초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조언들은 너무도 많다. 

한 가지 제안을 하면 그것은 ‘질투하라’는 것이다.

 질투는 덜 성숙한 사람이 ‘저게 나보다 예뻐?’하면서 갖게 되는 

그런 감정만 말하는 게 아니다.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아내를 바라보며 

남편은 질투를 느껴야 정상이다. 

그것은 아내와 남편이 배타적인 언약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소유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나 하고만 언약을 맺었기에 다른 사람에게는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아 4:12)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언약적 사랑에는 반드시 그것을 방해하고 

빼앗는 것에 대한 불같은 질투가 따른다. 

-이익환 목사의 ‘사랑을 기경하라’에서‘에서-

 

우리 하나님도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 34:14-16)

하나님의 질투는 세상 사람이 이기적으로 하는

 질투와 다른 것으로 그가 언약을 맺은 대상을 

보호하고 지켜내기 위한 것입니다.

 언약에 대해 질투하는 것은 언약을 맺은 상대에 대한

 최고의 존중을 의미합니다.

 세상 신에 마음을 빼앗기는 우리를 질투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중하고 지켜주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 언약으로 맺어진 사랑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 질투해야 합니다.

 그 사랑을 보호하고 지켜내고 충성스럽게 가꿔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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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금)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바르실래 자손(스 2:59-70)

59.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
60. 저희는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도합이 육백 오십 이명이요
61.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에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이름한 자라
62. 이 사람들이 보계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고로 저희를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
63.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64.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 삼백 육십명이요
65. 그 외에 노비가 칠천 삼백 삼십 칠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명이요
66. 말이 칠백 삼십 륙이요 노새가 이백 사십 오요
67. 약대가 사백 삼십 오요 나귀가 육천 칠백 이십이었더라
68.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69. 역량대로 역사하는 곳간에 드리니 금이 육만 일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이었더라
70.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그 본성들에 거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그 본성들에 거하였느니라

본문 해석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한 사람을 아내로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을 따른 자라>(61절). 총독 스룹바벨의 인도로 돌아온 제1차 귀환자들 중에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간주되기는 하나 그것을 입증한 만한 확실한 근거나 증거가 없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70년간의 긴 포로생활의 와중에 자신들이 속한 가문을 잊어버리거나 상실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과 그분을 섬기는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함께 귀국길에 나선 것은 매우 귀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그들 중에는 바르실래 자손이 있었습니다. 바르실래는 다윗을 도운 대단히 의롭고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요단강을 건너 마하나임에 도착했을 때 바르실래는 그 지역 주민들과 함께 다윗을 찾아와 정성을 다해 음식 대접을 하고 다양한 곡식과  간식까지도 챙겨왔습니다.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자들을 먹게 하였다>(삼하 17:28-29)고 했습니다. 또 그는 왕이 노숙할 것을 대비하여 침상과 씻을 수 있는 대야와 마실 물을 담을 수 있는 질그릇도 챙겨왔다고 했습니다. 정성이 가득 담긴 필수품들을 준비해 온 것입니다. 후에 압살롬의 쿠데타가 진압되고 상황이 종료되어 다윗이 환궁할 때도 80세 노구의 바르실래가 다시 요단강까지 나와 다윗의 귀환을 진심으로 축하하였습니다. 다윗이 <내가 어려울 때 당신이 나를 공궤했으니 이제는 내가 당신을 공궤하겠소 함께 왕궁으로 갑시다>하자 바르실래는 완곡하게 사양하며 <말씀은 고맙지만 내가 왕과 함께 왕궁으로 가면 짐만 될 뿐입니다. 저는 다만 부모님의 무덤이 있는 이 고향 땅에서 살다 부모님 곁에 묻히고 싶을 뿐이니 이를 허락해 달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본문의 바르실래란 바로 그런 바르실래를 존경하여 바르실래의 딸과 결혼한 후 아예 바르실래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자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의롭고 동정 심 많았던 바르실래처럼 그들도 그랬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남을 위하고 도우며 살다 다시 이름 없이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대열에 동참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이름 바르실래를 기억하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단과 적용

-삼하 17장에 나오는 바르실래 이야기를 정리하여 적어 보십시오.

-바르실래에게 감사하여 은혜를 갚고자 했던 다윗의 마음을 적어 보십시오.

-바벨론에서 1차로 귀환한 사람들은 모두 몇 명이었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바벨론에서 귀환한 자들 중 특히 바르실래 자손들을 생각해 봅니다. 바르실래는 참 의롭고 용기 있고, 의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압살롬의 후환이 두려워 감히 다윗을 돕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먹을 것 뿐 아니라 다윗의 침상과 대야와 물통까지도 제공하며 도왔습니다. 후에 다윗이 함께 왕궁으로 가자고 권했을 때도 자신은 고향에 죽고 싶다며 사양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르실래의 자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돕겠다며 귀환 길에 함께 했다고 합니다. 부디 저희도 저희 후손들에게 바르실래와 같은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계승하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사랑하지 않더라도 예의는 지키십시오
인문학 나눔

“모든 사랑은 편애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사랑하는 대상과 사랑하지 

않는 대상을 나누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의는 다르다. 예의는 모르는 이에게도,싫어하는 이에게도,

심지어 철천지 원수에게도 지켜야 할 무엇이다.”

 

정여울 저(著) 「마음의 서재(천년의 상상, 25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살다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나누어 질 때가 많습니다.  

죄성 가득하고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지켜야 할 것이 예의입니다.

예의는 사랑 여부와 상관없이 지켜야 할 기본 도리입니다. 

사랑할 때에도 예의가 필요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례함과 폭력이 가장 무섭습니다.

인생은 작고 큰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입니다.  헤어짐의 예의도 중요합니다.  

앞모습도 아름다워야 하고,  뒷모습에도 향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새도 될 수 있고 나뭇가지도 될 수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자신이 나뭇 가지일 때, 새가 얼마나 나를 흔들며 떠났는 가를 깊이 기억합니다.  

그러나 분명 자신이 새가 될 때도 있습니다.

새가 되어 떠날 때,  나는 나뭇가지를 얼마나 흔들었는지,  가지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는 지.  

헤어짐의 예의는 만남의 예의와 같은 무게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딤후4:10)

그림 큐티더 보기
마태복음 22:37
고린도전서 15:1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Jesus replied: "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도서 큐티더 보기
나를 보지 말고 내 등 뒤의 예수님을 보라,

영국의 양심으로 불리우는 ‘윌리암 윌버 포스’의 삶을 보라. 

그는 이 시대의 가장 젊은 28살에 영국의 하원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영국의 노예무역법 철폐를 위해 인생을 바쳤다. 

그는 150번이나 대국회논쟁을 벌이며 

56년간 노예무역법 폐지를 위한 신념을 일구었는데 

 1883년 마침내 영국의 노예제도를 영원히 폐지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었다. 

당시 노예무역은 영국 1년 전체 소득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영국이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 앞에서 

세운 뜻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바꾸었다.

 -김인용 목사의 ‘비전의 사람이 되자’에서  

 

구조적인 악의 뿌리가 견고해서 개인이 감당하기에 

벅차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무기력증후군에 빠집니다. 

그러나 나 한사람이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해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포기할 권리는 없는 것입니다.

작은 나 한사람을 보지 말고, 내 등 뒤에 서 계시는 예수님,

 내 가슴 속에 역사하시는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주님 안에서 비전을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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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 (목)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느디님 사람들(스 2:36-58)

36.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 칠십 삼명이요
37. 임멜 자손이 일천 오십 이명이요
38. 바스훌 자손이 일천 이백 사십 칠명이요
39. 하림 자손이 일천 십 칠명이었더라
40. 레위 사람은 호다위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 사명이요
41.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일백 이십 팔명이요
42. 문지기의 자손들은 살룸과 아델과 달문과 악굽과 하디다와 소배 자손이 모두 일백 삼십 구명이었더라
43. 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
44. 게로스 자손과 시아하 자손과 바돈 자손과
45. 르바나 자손과 하가바 자손과 악굽 자손과
46. 하갑 자손과 사믈래 자손과 하난 자손과
47. 깃델 자손과 가할 자손과 르아야 자손과
48. 르신 자손과 느고다 자손과 갓삼 자손과
49. 웃사 자손과 바세아 자손과 베새 자손과
50. 아스나 자손과 므우님 자손과 느부심 자손과
51. 박북 자손과 하그바 자손과 할훌 자손과
52. 바슬룻 자손과 므히다 자손과 하르사 자손과
53. 바르고스 자손과 시스라 자손과 데마 자손과
54. 느시야 자손과 하디바 자손이었더라
55.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은 소대 자손과 하소베렛 자손과 브루다 자손과
56. 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
57. 스바댜 자손과 하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미 자손이니
58.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이 삼백 구십 이명이었더라

본문 해석

2장에는 바사왕 고레스 왕의 조서에 따라 바벨론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온 사람들의 수효에 관한 기록인데 비교적 자세하게 나옵니다. 

2:1-25절까지는 지도자들과 일반 백성들의 명단이 나오고, 36-42절까지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43-58절까지는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 신하의 자손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59-63절까지는 계보가 불분명한 사람들의 명단이 나오고 

63-70절까지는 귀환자와 재산의 합산이 나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제사장, 레위인, 느디님 사람들의 명단인데 제사장이 아닌 레위 사람들은 크게 셋으로 구분하여 일반적인 레위인(40절), 

노래하는 레위인(41절), 성전 문지기 직책을 맡은 레위인(42절) 등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느디님 사람들>인데 이들은 성전의 수종자들로 

주로 나무패는 일과 물 긷는 일을 담당한 이방인들이었으며 제사장에게 노예로 주어진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람들은 가장 낮은 계급의 

성전 봉사자들로 특정한 성읍에 그들끼리만 모여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 길에 적극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유다로 복귀한 후에도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 일을 힘껏 도왔으며 하나님과의 새 언약을 세우는 데도 함께 동참하였습니다(느 10:28-29). 

그들은 비록 천한 신분일망정 하나님의 성전에 속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위해 봉사하며 수고하는 일에 대해 매우 영광스러워하고 

또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비록 미천한 대우를 받는 수종자였으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포로에서 귀환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는 핵심 구성원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느디님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의 반열에 동참하게 된 이방인들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이방인들 앞에 활짝 열어주신 복음의 문을 느디님 사람들이 앞서가며 먼저 경험한 셈입니다. 

그들은 종의 신분에 이방인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며 성직자인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함께 주님의 구원사역에 동참한 복된 

자손들이었습니다.

결단과 적용

-느디님 자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스룹바벨의 인솔하에 1차로 귀환한 제사장과 레위인은 각각 몇 명이었습니까?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하 자손들은 모두 몇 명이었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느디님 사람들이 저희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요 성전에서 일한 종의 신분이었지만 신실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잡혀가 포로생활을 한 후에도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이방인 구원의 선구자들이요 선각자들이었습니다. 언제나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가 누구든, 또 어디서 살며 무엇을 하든 느디님 족속들처럼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며 헌신하며 봉사하며 사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남한산성(김훈)
인문학 나눔

“최명길이 말했다.

- 제발 예판은 길,길 하지 마시오. 길이란 땅바닥에 있는 것이오. 

가면 길이고 가지 않으면 땅바닥인 것이오.

김상헌이 목청을 높였다.

- 내 말이 그 말이오. 갈 수 없는 길은 길이 아니란 말이오.”

 

김훈 저(著) 「남한산성(학고재, 26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병자호란!  청나라가 조선을 침법하여 남한산성을 포위하자 주화론(主和論)자인 

이조판서 최명길과 주전론(主戰論)자인 예조판서 김상헌이 나누는 대화 내용입니다.  

두 사람은 “길” 에 대해서 말합니다. 

길이라는 것이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 가면 길이요,  가지 않으면 땅바닥에 불과하니 

지금의 이익을 위해 청나라에 항복하자는 주화론자 최명길.

아무리 길이 많아도 갈 수 없는 길은 길이 아니니 죽기로 항전을 해야 한다는 주전론자 김상헌. 

명분론(가치론)과 실리론 중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이 눈 앞에 있습니다.  

우리 삶에는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이 똑 부러지게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포개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선택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작가 김훈은 이 갈림 길에서의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주화론이나 주전론이나  “논리적으로는”  모두 맞는 말입니다.

가치와 실리 중 어느 것이 옳은 것일까요?  

그것은  “때에 따라” 다릅니다.   실리가 필요할 때 ‘명분’을 내세워 실리를 막고, 

‘명분’을 지켜야 할 때 ‘실리’를 들어 발을 빼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결정적인 선택의 때에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시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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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21
고린도전서 15:10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Not everyone who says to me, 'Lord, Lord,' wi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but only he who does the will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도서 큐티더 보기
복음의 목적

복음의 목적 중 하나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우리 안에 순전한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이 변화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시작된다. 

그날부터 하나님이 빚어 놓으신 ‘나’라는 작품에 대해 배워 나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나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온전함으로 살아가야 한다.

-앤드류 팔리의 [복음에 더할 것은 없다] 중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변하여 새사람이 된다는 기본진리를 알기에, 

우리가 찾고 만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완벽을 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 스스로 완벽을 향해 달려갈 뿐, 주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통해 온전해지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변함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고 누리길 원하십니다. 

주님의 손길을 통해 온전해지는 것이 우리의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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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수)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하나님을 만나면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창21: 1-8)

1.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지 팔일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6.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본문 해석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기억하십니까?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으로 기억하십니까? 아니면, 사랑과 기쁨의 하나님으로 기억하십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 웃기보다는 심각해집니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고 책망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니까 하나님 앞에서 

경직됩니다. 이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흔히 ‘실없이 웃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리스도인은 ‘실없이 웃는 사람들’입니다. ‘실없이’라는 말은 ‘이유 없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유 없이 웃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창세기 21장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이후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장입니다. 사라는 하나님이 말씀은 하셨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그래서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웃음)”이라고 짓습니다. 사라는 잃어버렸던 웃음을 찾게 됩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진실로 만난 사람들은 웃게 됩니다. 진정한 웃음을 되찾게 됩니다. 

아이들은 하루에 평균 400번 이상 웃는 반면, 어른들은 하루에 15번 웃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것이 포함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때문에 그냥 ‘이유 없이’ 웃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또한 그런 우리를 보시며 웃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아직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라도 그 약속을 믿고 웃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이 기쁨이 우리에게 끝나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는 기쁨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으로 인하여 우리와 만나는 사람들이 웃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사라와 같은 고백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은혜가 내가 웃을 뿐만 아니라 

그 웃음을 통해 많은 사 람들이 잃어버렸던 웃음을 찾는 웃음의 통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 오늘 하루를 살면서 웃음을 선언해봅시다. 하나님의 주신 기쁨을 빼앗아가는 상황들과 환경 속에서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빼앗아갈 수 없다고 선언해 봅시다. 

 - 나의 웃음을 통해 나와 만나는 사람들이 잃어버렸던 웃음을 회복하게 될 것을 기대하며 우리를 사용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하루를 살아갑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또한 나의 웃음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질 수 있는 기쁨의 통로로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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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言)
인문학 나눔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너무 웃자라 불편하거나 쓸모없게 된 나무가 

있을 경우 톱으로 잘라버리는 게 아니라 온 부락민들이 모여 그 나무를 

향해 크게 소리 지른다고 합니다.

‘넌 살 가치가 없어!’  ‘난 널 사랑하지 않아!’

‘차라리 죽어버려!’

이렇게 상처 주는 말을 계속하면 정말 나무가 시들시들 말라 죽어버린

다는 겁니다.  과학적으로 얼마나 증명이 가능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말 한마디가 생명을 좌우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장영희 저(著)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샘터, 19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철학자 하이데거는 “말(언어)은 존재의 집” 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 에 ‘치유하는 생명’까지 심어 놓으셨습니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15:4)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16:24) 

이 두 구절에 나오는 ‘양약’과 ‘온순한’ 은 같은 히브리 단어로서 ‘마르페’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치료’란 의미의 ‘라파’ 입니다.  

우리에게는 ‘여호와 라파’, 곧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로 잘 알려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말’ 에 치료하는 힘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이것이 말의 힘입니다.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믿음의 말,  소망의 말,  사랑의 말부터 시작하십시오. 

이웃을 사랑할 때도 축복의 말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 믿음, 네 말대로 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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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33
고린도전서 15:10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I have told you these things, so that in me you may have peace.

In this world you will have trouble. But take heart! I have overcome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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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절망의 밤은 결코 희망의 아침으로 바뀌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의 요청을 거절해서는 안 됩니다. 

예고 없이 갑작스레 다가온 요청이라 해도 거절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 예수를 거절해서는 안 됩니다. 불쑥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나게 된다고 해도 

예수를 거절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생은 예수와의 만남 없이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희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김건주의 [지금 당신의 인생엔 어떤 예수가 계십니까?] 중에서-

 

예수님은 빈 그물을 씻고 있는 그 자리에 찾아오셨습니다. 

밤을 새었지만 그에게 찾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더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요청하십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것은 직접적인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더 많은 괴로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레 다가온 요청을 기꺼이 응합니다.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집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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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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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성령충만한 사람들(사무엘상 16:11~13)

11.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본문 해석

믿었던 사람, 기대했던 사람에게 실망하면 괴롭고 힘듭니다. 사무엘은 사울 왕을 많이 믿고 기대했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보지 않았고, 그 때문에 슬퍼하였습니다(15:35). 

하나님도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음을 후회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될 것 같고 못살 것 같아도 하나님은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고 

생사화복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우리의 길과 하나님의 길은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연단이 길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명령을 내리시어 

이새의 집으로 가라는 것입니다(1).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다윗을 통해 보십시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7).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외모를 보며 기름을 부으려고 하였지만(6-7),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이새의 일곱 아들들을 재치고 말째 아들 다윗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쓰지 않으심에 대해 불만은 하면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 위해 준비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을 경외함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지,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는지, 생각이 건전한지를 보십니다. 

성실한 사람을 쓰십니다.(11) 다윗은 모든 일에 성실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부으러 왔을 때 다른 형들과는 다르게 다윗은 그 시간에도 아버지가 

맡겨 둔 양을 치며 자기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다윗처럼 맡겨진 일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 큰일도 맡겨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일은 성스러운 일이며, 크고 중요한 일들입니다. 기도하는 일, 

주방에서 섬기고 봉사하는 일, 어린아이들 돌보고 가르치는 일, 안내하고 교제하며 섬기는 일 모두가 설교만큼 중요한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사람을 쓰십니다(13). 드 디어 다윗은 불려왔고, 영문도 모르고 주의 종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날 이후로 다윗은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3). 여호와의 영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지혜의 영입니다. 성령 충만한 다윗은 그 뒤로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형통하였습니다. 아버지도 별로 생각했던 다윗, 

양치기 소년이 성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원수와 같은 자들을 다 용서하고 통일왕국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다윗이 성령 충만하니까 가능했습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120의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성령 충만하니까 기독교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성도는 성령 충만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살아야 합니다. 

결단과 적용
오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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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인문학 나눔

“고(故)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정세영 회장이 고려대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정주영 회장은 이렇게 위로의 말을 던졌다.

‘힘내라, 나도 고대로 늘 들어가는데 네가 못 들어가겠느냐?’

고려대 공사 때문에 고대를 자주 출입하던 정주영 회장이 동생을 위로하면서 던진 말입니다.”

 

최규상 황희진 공저(共著) 「긍정력 사전(작은씨앗, 29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초등학교졸업이 학력의 전부이고 무일푼이었던 정주영 전(前) 회장은 

맨 손으로 세계적인 그룹을 일구었습니다.  이런 기적을 만들어낸 

여러 비결이 있었지만 그 중의 하나가 정주영 회장 특유의 유머 감각 때문이었습니다.  

유머는 시시껄렁한 우스개 소리가 아닙니다.  유머는 꼬여있고 혼돈스러운 삶을 유쾌하게 보려는 저항입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신앙 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는 달리 

참 유머러스하고 쉽고 재미있는 땅의 언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아”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현대풍으로 바꾸면 “호박에 줄 친다고 수박되느냐?” 입니다.  

또한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소경된 인도자” 라는 구절을 보십시오. 

예수님 당시에 사용하던 아람어에 하루살이는 ‘갈마’(galma) 약대는 ‘감나’(gamla)로 발음 됩니다.  

이는 일종의 말 비틀기에 속한 유머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 에게,

 “진주를 돼지” 에게 주는 사람 등은 유머가 담긴 표현입니다.  

이런 유머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웃음을 주고,  그 교훈이 마음에 쏙 들어오게 합니다. 

예수님은 유머의 왕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만 유머와 아이러니를 복으로 주셨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듯이 건강한 웃음을 전파하는 사람이 좋습니다.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창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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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1:12
고린도전서 15:10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Restore to me the joy of your salvation and grant me a willing spirit, to susta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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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

야곱은 자신을 죽이려는 형 에서의 칼을 피해 

40년 동안 살았던 고향 브엘세바를 떠나 하루 만에 80km를 달려야 했습니다. 

장정 걸음으로 20시간, 달려서는 10시간이 넘는 거리죠. 

하루에 마라톤을 두 번 달린 거리가 브엘세바에서 벧엘까지의 거리인 것입니다. 

그가 그곳에 멈춰 선 것은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달려갈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력이 아니라 번아웃이라는 타력에 의해 멈춰 선 것이죠.

-최병락의 [부족함]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부족함이 크면 클수록 더 다가옵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지점에, 하나님은 은혜를 감추어 두었습니다. 

반드시 그곳까지 철저하게 무너지는 경험을 해야만 도달할 수 있고, 

완전히 나의 힘을 빼야만 주의 은혜가 보입니다. 

부족함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아닌 주님이 주인 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내 인생을 철저하게 맡기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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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 (월)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형통한 삶을 향하여(여호수아 1:1~8)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본문 해석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나의 자녀들의 미래는 어떨까? 사업은 잘될까? 결혼하면 잘 살 수 있을까? 

그래서 궁합이나 사주를 보고 점집을 찾고 예언 기도하는 곳을 서성거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다 헛수고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미래를 알지 못하도록 막아 놓으셨습니다. 왜냐면 미래를 몰라도 두려운데 알게 된다면 두려워서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그랬습니다. 모세가 죽고난후 하나님은 그에게 백성을 인도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는 모세의 시종으로 40년을 보냈기에 백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도 힘들었던 그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무거운 짐이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지금 백성들은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모세가 죽음으로 많이 절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함께할 것이니 ‘가라’고 명하시면서 형통한 삶의 비결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2-3). 

 먼저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향한 아름다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지금 나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또한 나의 사명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해야 합니다(5-9). 그 담대함의 근거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입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담대하라고 하시면서 너와 함께 하리라, 너를 떠나지 아니 하리라,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고 10번이 넘도록 반복하심을 봅니다. 우리 인간은 강해진 것 같다가도 약해지고, 할 수 있다 하다가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포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실제로 나와 함께 동행함을 믿는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7-8). 하나님의 말씀은 팍팍하고 그대로 살아가기 힘든 내용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형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렘29:11). 성경은 형통한 인생을 위한 매뉴얼입니다. 성경에는 형통한 삶을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의 인생스토리가 가득합니다. 

 형통한 삶을 향하여 가는 삶에는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움을 버리고 하나님과의 동행의식으로 담대해야 하며,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입니다. 그리하면 어디에서 무슨일을 하든지 평탄하고 형통한 길이 열려질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오늘의 기도
인문학 큐티더 보기
노예
인문학 나눔

“긴 인류의 역사는 증언한다.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은 노예에게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노예 중에 가장 바보 같고 한심스런 노예가 있다. 

자기가 노예인 줄을 모르는 노예와,  짓밟히고 무시당하면서도 

그 고통과 비참함을 모르는 노예들이다...”

 

조정래 저(著) 「허수아비춤(문학의 문학, 325-32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힘이 없을 때 노예가 됩니다.  전쟁에서 진 백성이거나,  돈이 없어 팔려 갈 때,  때로는 돈 때문에 스스로 노예를 자청합니다. 

그러나 가장 비참한 노예는 노예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자신이 노예인 줄도 모르게 무감각해졌을 때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노림수입니다.  마귀는 타락의 달콤한 맛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죄악의 습관을 심어 주고는 점점 중독이 되게 합니다.  

급기야는 자신이 죄악에 중독되었다는 사실 조차 모르게 만듭니다.  

또한 벗어날 마음도 기력도 없는 마비 상태에 이르게 합니다.  나병 환자들을 위해 

오랫동안 봉사 생활을 하다가 임종을 맞이한 한 목사님의 마지막 기도는, 

“주여,저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였습니다. 

손과 발이 무너져 내려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나병 환자들에게는 

고통을 아는 일이야말로 자신들에게 생명이 있음을 발견하는 감동일 것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아픔이 아니라, 그런 아픔을 느낄 수 없는 무감각입니다. 

마비된 마음에 대한 회복의 시작은  ‘발견’에서 부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죄에 노예가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곤 애통하게 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회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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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6:24
고린도전서 15:10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The LORD bless you and keep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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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에서 많은 글들을 

인간의 글이라고 해서 빼버리려고 한다. 

구약성경은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가져다가

 문서를 붙여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네 가지 문서가 있는데 조각조각을 붙여 만들었다고 하면서 

성경을 틀린 것도 많고 붙이다가 잘못 붙인 것도 있고 

다 인간의 글이고 믿을 거 뭐있냐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문서를 갖다 붙였던 어떻게 했던 간에 

성령의 역사로 만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말씀에 덧붙일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는 것이다.

-피영민 목사의 ‘초청과 경고와 열망’에서- 

 

말씀에 덧붙이거나 빼는 것은 무서운 행위입니다.

 성경은 말씀에 더하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 하시고

 말씀에 제하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엄숙한 경고임을 기억하십시오.

말씀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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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토)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돌아온 사람들(스 2:1-35)

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의 자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3. 바로스 자손이 이천 일백 칠십 이명이요
4. 스바댜 자손이 삼백 칠십 이명이요
5. 아라 자손이 칠백 칠십 오명이요
6. 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 팔백 십 이명이요
7. 엘람 자손이 일천 이백 오십 사명이요
8. 삿두 자손이 구백 사십 오명이요
9. 삭개 자손이 칠백 육십명이요
10. 바니 자손이 육백 사십 이명이요
11. 브배 자손이 육백 이십 삼명이요
12. 아스갓 자손이 일천 이백 이십 이명이요
13.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 육십 륙명이요
14. 비그왜 자손이 이천 오십 륙명이요
15. 아딘 자손이 사백 오십 사명이요
16.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 팔명이요
17. 베새 자손이 삼백 이십 삼명이요
18. 요라 자손이 일백 십 이명이요
19. 하숨 자손이 이백 이십 삼명이요
20. 깁발 자손이 구십 오명이요
21. 베들레헴 사람이 일백 이십 삼명이요
22. 느도바 사람이 오십 륙명이요
23. 아나돗 사람이 일백 이십 팔명이요
24. 아스마웻 자손이 사십 이명이요
25. 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자손이 칠백 사십 삼명이요
26. 라마와 게바 자손이 육백 이십 일명이요
27. 믹마스 사람이 일백 이십 이명이요
28. 벧엘과 아이 사람이 이백 이십 삼명이요
29. 느보 자손이 오십 이명이요
30. 막비스 자손이 일백 오십 륙명이요
31. 다른 엘람 자손이 일천 이백 오십 사명이요
32. 하림 자손이 삼백 이십명이요
33. 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이 칠백 이십 오명이요
34. 여리고 자손이 삼백 사십 오명이요
35. 스나아 자손이 삼천 육백 삼십명이었더라

본문 해석

사람마다 태어난 고향이 있고 다시 돌아갈 본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때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해외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아직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슬픈 역사입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된 지 70년 만에 고레스 왕의 조서가 내려졌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고레스 왕의 조서에 의해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유다 지역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수효가 비교적 자세히 나옵니다. 특히 35절까지는 지도자들과 일반 백성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70년 전 고향을 떠난 포로 

1세대들은 아마 대부분 그 타향, 타국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드물게 살아 돌아온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대개는 다 포로 2세대들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미 바벨론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고국 땅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특별하신 하나님의 섭리이자 동시에 각 개인의

아름다운 신앙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방황과 고통의 시간은 견디기 힘들고 비참하지만 다른 한편 그것은 또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이끌어주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꾸지 못하던 꿈도 꾸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우리는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뭔가를 준비하게 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내면에 대해 그만큼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언제나 성숙의 아픔을 치루지 않고 열매만 취하겠다는 철부지 아이로 남게 될 뿐입니다. 때로 포로가 되어 과거 이스라엘처럼 먼 나라로 끌려갔을 때 너무 불안해 하거나 오로지 그것을 불행이라고만 느끼지는 마십시오.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도저히 얻을 수 없고 체험할 수 없었던 삶의 기쁨을 통해 그게 다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닫고 기뻐하고 감사할 날이 온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슬픔과 분노의 껍질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근원이 주시는 진정한 힘을 깊숙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nbs p;계절, 한 때 우리의 방황과 포로됨이 훗날 

돌이켜 보면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시간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시며 늘 감사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결단과 적용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본향을 진심으로 사모하십니까?

-본문이 바벨론 귀환자들의 호구 조사를 이렇듯 자세하게 기록한 이유는 뭘까요?

-당신은 유다 백성이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70년이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실제 많은 포로 1세대가 그 포로지에서 죽었을 것이고, 그 포로지에서 태어난 2세들이 이제 유다로,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에 올랐을 것입니다. 오늘 저희들도 늘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언젠가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과거 

유다백성들이 감사하며 기뻐하며 귀환의 길에 올랐던 것처럼 저희도 그렇게 영원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돌아갈 아버지 품이 없어 

고민하거나 귀갓길을 두려워하는 불행한 영혼들이 결코 없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신문지 밥상
인문학 나눔

더러 신문지 깔고 밥 먹을 때가 있는데요 

어머니,  우리 어머니 꼭 밥상 펴라 말씀하시는데요 

저는 신문지가 무슨 밥상이냐며 궁시렁 궁시렁하는데요 

신문지를 신문지로 깔면 신문지 깔고 밥 먹고요 

신문지를 밥상으로 펴면 밥상차려 밥 먹는다고요 

따뜻한 말이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요 

따뜻한 마음이 세상까지 따뜻하게 한다고요 

어머니 또 한 말씀 가르쳐 주시는데요 

 

해방 후 소학교 2학년이 최종학력이신 

어머니,  우리 어머니의 말씀 철학... 

 

시인 정일근 님의 시(詩)  「신문지 밥상」 의 전문입니다.  

기독 메시지

해방후 소학교 2학년이 최종 학력이신 어머니는 시인의 큰 스승입니다.  

어머니는 신문지를 신문지로만 여기고 깔면 신문지를 깔고 밥을 먹는 궁핍한 세계가 열어지고,  

신문지를 밥상으로 여기고 펴면 밥상을 차려놓고 밥을 먹는 풍요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가르침입니다.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신문지를 깔아도 밥상이라고 말을 하는 것처럼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천국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들으십니다.  그리고 그 말대로 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축복의 통로는 믿음과 말입니다.

축복의 말, 감의 말을 통해서 신문지는 커다란 밥상으로 변하게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그림 큐티더 보기
베드로후서 3:10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But the day of the Lord will come like a thief. The heavens will disappear with a roar; the elements will be destroyed by fire, 

and the earth and everything in it will be laid bare.

도서 큐티더 보기
하나님의 사랑을 하십시오

결혼한 부부들이 정말 로맨틱한 사랑에 사로잡힌 기간은 

평균 2년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구름 위에 떠다니다가

 눈이 열리면서 상대방의 결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대가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짜증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보이지도 않았던 티끌 같은 것들이

 태산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결혼하고 며칠 지나고 나서 우리는 

‘아, 내가 정말 나와 다른 사람하고 결혼했구나’를 깨닫게 된다.

사랑해서 결혼한 건 맞는데, 어느 순간

 서로가 적군이 되어 싸우는 전쟁터가 된다.

 그러다 보면 한 때 ‘사랑에 빠졌던’ 감정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래야 찾을 수 없게 된다. 

 -이익환 목사의 ‘사랑을 기경하라’에서- 

 

흔히 남자들 보다 여자들이

사랑에 빠지는 감정이 영원하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이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요? 

학생이 사랑에 빠져 있다면 학점이 안 나옵니다.

 직장인이 사랑에 빠졌다면 실적이 안 나옵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한 때의 일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심리학자인 스캇 펙은 사랑에 빠지는 감정은

 사랑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단언합니다. 

그것은 그저 ‘생리적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생리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하십시오.

지금 배우자와 길고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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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귀환(스 1:5-11)

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6.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황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즐거이 드렸더라
7. 고레스왕이 또 여호와의 전 기명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당에 두었던 것이라
8. 바사 왕 고레스가 고지기 미드르닷을 명하여 그 그릇을 꺼내어 계수하여 유다 목백 세스바살에게 붙이니
9. 그 수효는 금반이 삼십이요 은반이 일천이요 칼이 이십 구요
10. 금대접이 삼십이요 그보다 차한 은대접이 사백 열이요 기타 기명이 일천이니
11. 금, 은기명의 도합이 오천 사백이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 때에 세스바살이 그 기명들을 다 가지고 왔더라

본문 해석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실제 하나님은 이 약속의 말씀대로 70년이 지나자 메대와 바사의 왕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귀환하게 하셨습니다. 

고향 땅인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게 하신 것입니다. 한 역사가는 <역사는 똑같은 원리에 의해 하나의 문명이 부흥하고 역시

똑같은 원리에 의해 하나의 문명이 몰락하는 반복의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역사를 통해 뭔가를 배울 때는 나라가 흥왕하지만 역사를 통해 지난날의 실수를 잊어버리거나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하면 그 나라는 곧 위기에 처하거나 무너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역사도 마찬가집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역사를 통해 꼭 배우고 절대 망각해서는 안 되는 교훈이란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언제나 그분께만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원칙과 엄연한 사실을 잘 기억하고 지킬 때 그들은 부흥했고, 그 역사적 교훈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는 어김없이 나라에 위기가 닥치며 환난이 그들을 덮쳤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경우는 하나님이 왜 그들을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사 

70년간의 긴 세월 동안 고통을 겪게 하셨을까요? 요약하면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하며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겔 36:16).

그러나 이제 때가 되어 메대와 바사의 왕 고레스를 통해 그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하나님의 성전까지도 재건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성전 그릇을 꺼내어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것이라>(7절).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당했던 모든 성물, 성전 기물들까지도 다 되찾게 해주셨습니다. 그것도 이방의 왕 고레스를 통해 그 모든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와 세계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필요하시면 무엇이든 다 이루시고, 누구든 다 동원하사 당신의 뜻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 다. 

또 하나님이 <감동시키시면>(1절) 이 세상 그 어떤 왕도 결코 하나님의 분부에 거역하지 못합니다. 부디 이 에스라서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인 역사를 

움직이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에 관해 좀 더 깊이 좀 더 뜨겁게 체험하시는 은혜가 있으시길 빕니다. 

결단과 적용

-고레스 왕에 관해 말씀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이스라엘의 역사를 예로 설명해 보십시오.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감동에 대해 말씀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저희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과 성취에 대해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정한 역사의 주인되심과 성령을 통한 감동에도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바칩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감동시키사 바사 왕 고레스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해방령뿐 아니라 

성전 기물까지 다 되돌려 주며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라고 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의 감동과 유다 백성의 귀환을 보며 오늘 저희들도 다시 한 번 큰 깨달음을 얻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버림으로 생기는 여백
인문학 나눔

“비움의 실천은  ‘버림’ 으로써 여백을 만드는 일이다.  버림이란 

말이 맞지만 너무 냉혹하게 들릴 수도 있다.  점잖게 ‘나눔’ 이라 

해도 좋다.  꽃이 비록 아름답지만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처녀가 설령 아름답지만 처녀를 버려야 옥동자(玉童子), 옥동녀(玉童女)

를 낳을 수 있다(중략).  성취(成就)의 청춘도 아름답지만 버림의 노년은 더욱 아름답다.  이것이 늙음의 미학이다.”

 

권상호 저(著) 「말 글 뜻 (푸른영토, 24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인생의 고통은 얻지 못해서가 아니라 버리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승리자는 많은 것을 얻은 자가 아니라, 의미 없는 것을 버린 자입니다.  

어리석은 새는 반짝이는 것은 무엇이든 주워 모으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주워온 쇳조각들로 둥지가 얼마나 불편해지는지는 생각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아무리 수려한 샹들리에로 방을 꾸며도 그 샹들리에 위에 쓰레기가 얹혀 있다면 쓰레기 집이 됩니다.

빛나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버려야 할 쓰레기를 걸치고 품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얻은 기쁨 보다 버리지 못한 고통이 더 큰 사람입니다.  

쓰레기가 가득한 사람은 여유가 없습니다.  쓰레기를 버리면 여백이 생깁니다.  

필요 없는 허영, 사치, 이생의 자랑을 버리면 그만큼 자유와 여백이 생깁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

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일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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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4:11
고린도전서 15:10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Dear friends, since God so loved us, we also ought to love one another.

도서 큐티더 보기
이 땅에서는 나그네요 순례자이다

순례자라는 말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을 말하지만 

 저 영원한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고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순례자라고 지칭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명절이 되면 우리가 고향을 찾듯이

 그들은 태어난 고향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온다. 

바로 예루살렘 성전은 그들의 마음의 고향이었다.

 적어도 유대의 남자라면 일 년에 세 차례씩 

그 험난한 길을 지나서 때로는 일주일에서 한 달씩 걸려서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러 온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악인의 장막에서 천 날을 거하는 것보다 주의 궁정에서

 하루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시편 84편) 

-이영무 목사의 ‘성공적인 순례를 위하여’에서-

 

성경에서 순례자라는 표현은 

 나그네, 외국인, 거류자라는 표현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갔던 믿음의 조상들도 자신을 가리켜서 

나그네라고 주로 표현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이, 다윗이, 나그네라면 

오늘 우리도 틀림없이 나그네인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찾는 사람들이나 

오늘 우리들이 육신의 고향을 찾는 마음이나 

영원한 하늘의 도성, 하늘의 고향을 찾는 

순례의 길과 동일한 마음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이곳에서부터 

영원한 하늘의 저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에

이 땅의 가치에만 머물 수 없는 사람들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 땅에서는 나그네요  순례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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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 (목)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여호와께서 도우신다(스 1:1-4)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4.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찌니라 하였더라

본문 해석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는 유다의 남은 자들이 바벨론 포로지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벽과 성전을 재건한다는 하나의 줄거리로 이루어져 있어서 

원래 히브리서 성경에는 이 두 책이 한 권으로 묶여져 있었습니다. 두 권으로 분리된 것은 중세인 1448년에 이뤄졌으며 에스더와 학개, 

스가랴도 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의 인물들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제사장이며 서기관이었던 대단히 경건하고 애국적인 사람이었습니다(겔 7:1-6). 그는 위대한 성경 연구자였고 또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8:21-23). 그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에스라서>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란 말씀이 많이 나타납니다(7:6,9, 28, 8:18,22,31).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그 하나님의 도우심(렘 25:11-12, 29:10-14)이 실제 어떻게 나타나고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두 번째 귀환과 관련이 있습니다. 

첫 번째 귀환은 주전 578년 스룹바벨에 의해, 두 번째 귀환은 주후 458년 에스라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에스라는 성전 재건뿐 아니라 영적, 도덕적 재건에도 최선을 다합니다. 반대와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 모든 일을 결행하는데 

그것은 성전과 선민의 재건이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의 특별한 정체성과 믿음을 재확인하는 데 대단히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3절). 

부디 본서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과 그 성취, 또 성전 재건과 경건생활의 회복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다 깊이 경험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결단과 적용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의 관계를 말씀해 보십시오.

-에스라 선지자에 관해 말씀해 보십시오.

-<예언과 성취>에 관해 당신의 견해를 말씀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주전 4백년 중반에 활동했던 에스라 선지자에 관해, 또 그가 주도한 성전 재건과 경건생활의 회복에 관해 묵상하며 기도하고자 합니다. 

저희에게도 에스라와 같은 순수한 열정, 말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성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에스라처럼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바라심과 기대 앞에서 결단하며 살아가도록 성령으로 역사해 주시옵소서. 

이 에스라서가 저희에게 무한한 은혜와 축복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꾸미는 사람 가꾸는 사람
인문학 나눔

“꾸미는 사람,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에 치중한다.  

그래서 얼굴에 반점(斑點)이 생기면, 그것을 제거하기보다는 분칠로 덮어 감춘다(중략).

가꾸는 사람, 그는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내면’에 집중한다.  

그래서 얼굴에 반점(斑點)이 생기면,  분칠보다 그 반점을 제거하는 선택을 한다.”

 

김겸섭 저(著) 「사랑이 위독하다(토기장이, 212쪽0」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꾸미는 사람이 있고, 가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꾸미는 사람은 외면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고,  가꾸는 사람은 내면에 중심을 두는 사람입니다.  

겉은 화려해도 속이 썩은 사람이 있습니다. 

머리채가 아름다웠던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내면을 선하게 가꾸지 못한 채  반역을 일으키고, 

결국 그 아름다운 머리채 때문에 나무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꾸밈만 있고,  가꿈이 없는 사람이 맞이하는 비극입니다.  

가인(佳人)의 얼굴이라 해도 나이가 들면 아무리 꾸며도 주름으로 덮힙니다.  

나이가들수록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을 가꾸며 살라는 주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4:16)

그림 큐티더 보기
로마서 12:2
고린도전서 15:10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도서 큐티더 보기
복음 초청, 복음 소명

옛날 시장에 뱀 장수들은

 애들은 가라 돈 없는 어른도 가라 했다.

.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했다

.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했다.(사55:6-7)

인간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스런 초청에 응답해야 마땅하다.

 이것이 복음 초청, 복음 소명이고 일반 소명이다.

하나님이 영생을 준비해 놓으시고 초청하시는데 

거절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큰 모독인 것이다

 -피영민 목사의 ‘초청과 경고와 열망’에서- 

 

 하나님의 특별 은혜가 없다면 사람들은

 구원에 목말라 하지도 않고 구원받기를 원하지도 않고

말씀을 듣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택하신 은혜가 있어야 

사람들은 목이 말라져서 복음을 듣게 되고 

구원을 원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마른 자는 오라 또 원하는 자도 오라 

듣는 자도 오라라고 할 때에 사람들은 

그 초청에 반응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시면

 이 복음을 듣게 되고 갈망이 일어나고 목마름을 느끼게 되고 

결국은 그리스도께 오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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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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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어디까지 감사할 수 있을까?(다니엘 6:1-10)

1.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 이십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함이었더라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6.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9. 이에 다리오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본문 해석

그리스도인은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까지 감사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은 다니엘에 대한 말씀입니다. 다니엘은 유다가 이스라엘이 멸망당하는 마지막 순간에 왕족과 지식이 뛰어난 사람들이 함께 끌려갈 때 함께 

끌려간 아이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누릴 것을 다 누리던 귀족들이 포로로 끌려가 사는 삶은 평탄치 않았습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우상에게 

드려진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풀무불에 던져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들을 풀무불에서 건지시고, 다니엘은 120명의 지방장관 중 

3명의 우두머리 중 하나로 뽑히게 됩니다. 노예인 히브리 출신의 다니엘이 그 자리에 오르자 다른 대신들이 그를 시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의 허물을 찾으려고 하지만 찾지 못하자 그의 신앙을 들먹여 거역할 수밖에 없는 일을 만듭니다. 그것은 왕이 아닌 다른 신에게 절하는 사람은 

사자굴에 넣는 법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이 조서에 도장을 찍습니다. 그 때 다니엘은 조서에 도장을 찍힌 것을 알고도 늘 하던 것과 같이 

다락방으로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오늘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기도의 내용입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감사합니다. 기도하면 죽을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선택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다니엘은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며, 그의 계획은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상황과 상관없이 여전히 변함없는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기 때문에 우리를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입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타협하며 악한 사람들 보다 더 악한 일들을 행하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더렵혀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디까지 감사해야 할까? 죽음의 순간까지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nb sp;죽음이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니엘이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은 다니엘을 통해 

모든 사람이 다니엘과 다니엘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절대로 비참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죽음이든 하나님 안에 거하면 그 죽음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사도행전의 스데반의 죽음은 절대 비참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을 본 바울이 온 열방을 위한 사도로 열매 맺는 영광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하나님의 열매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결코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감사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감사하기도 결단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감사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순간, 영광스러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 나의 삶 속에서 절대 감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것을 통해 맺어주실 하나님의 열매가 무엇일지 믿음으로 기도해 봅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다니엘처럼 죽음의 순간에도 감사를 결단할만한 믿음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이 일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열매를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오늘 다니엘처럼 죽음 앞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첫 인상 첫 5분
인문학 나눔

“긍정 커뮤니케이션 노하우를 몇 가지 소개합니다.

첫째,샌드위치 기법. 쓴소리를 하려면 앞뒤에 꼭 칭찬을 배치하세요.

둘째,예스 기법. 피해 갈 수 없이 “예” 가 나오는 질문을 두세 차례 

한 다음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예컨대 청소년 행사장에서 연설해야 

할 때는 이렇게 해보세요.

‘걸스데이 빨리 보고 싶죠? (예!)  제 연설 빨리 끝나면 좋겠죠? (예!) 

그럼 딱 5분만 이야기할 테니 집중할수 있겠죠? (예!)’”

 

정지환 저(著) 「30초 감사(북카라반, 18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설교와 강연에서의 서론,  세일즈에서의 어프로치(approach),  

맞선 볼 때의 첫 인상,  대인관계의 첫 5분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릅니다. 

첫 5분이 열리면 술술 풀리지만,  그렇지 못하면 내내 죽을 쑬 확률이 높습니다.  

첫 5분을 잡는 방법은 “축복의 말”입니다.  축복을 통해서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설득’ 에 관한 최고의 명저 중 하나인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의 「설득의 심리학」에서도,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먼저 많이 베풀라고 합니다.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많이 축복하고 베풀어서 상대방이 “이 사람에게 빚을 졌구나” 하는 마음이 들 때 설득이 된다는 것입니다.

샌드위치 대화 기법!  말의 앞 뒤에 항상 칭찬을 하면은 최고의 서론 최고의 결론이 됩니다. 

바울 사도의 서신서를 보면 항상 복을 빌어주는 서론으로 시작하고 복을 빌어주는 결론을 말을 맺습니다.  

우리들이 본 받아야 할 대화 기법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엡1:1,2)

그림 큐티더 보기
시편 34:8
고린도전서 15:10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blessed is the man who takes refuge in him.

도서 큐티더 보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거부이면서도 생전에 단 한 푼의 적선을 해본 일이 없는

 아랍의 억만장자가 유서를 남겼다.

유가족 대표가 유서를 뜯어서 읽었다.

“내가 죽으면 묘를 쓰지 말고 알몸으로 넓은 사막에 묻고

 밖으로 두 손 내 보이도록 하라. 

“사람은 본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영원한 내 것은 없다. 나는 이 많은 재산을 모으기까지 

온갖 고생을 다 했지만 단 한 푼의 돈을 가지고 갈 수가 없구나.

 남으로부터 얻어진 것은 그들에게 되돌아가야 한다. 

내 전 재산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내 가족이라도 놀고먹을 수는 없다.

 한 푼도 남기지 말고 나누어 주되 

내가 죽은 날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시행하라.”

 -배의신 목사의 ‘상급을 준비합시다’에서-

 

 늦게라도 깨닫게 된다면 큰 은혜이며 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렇게 깨닫는 행복을 주셨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이,

 이제 이 깨달은 것을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이왕이면 열심과 정성으로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는 

복된 생애가 되시도록 노력하십시오.

 별처럼 빛나는 영광의 상급을 받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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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화)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위로의 하나님(고후 1:3~7 )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본문 해석

김난도 교수의 책‘아프니까 청춘이다’가 100만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이는 극심한 취업난과 진로 문제로 씨름하는 젊은이들의 입장과 마음을 

잘 헤아리고 적절한 위로와 격려를 제공한데 있습니다. 위로는 청년세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적 향상을 위해 고생하는 어린 자녀들에게도, 

그들의 교육비를 충당하느라 밤낮으로 뛰고 있는 부모들에게도, 특별한 준비도 없이 노후를 맞이한 어른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왜 인생에게는 위로가 필요할까요? 우리는 살아가며 자신의 선택으로 모든 결과는 결정되었지만, 결과가 좋지 못할 때 아파하고 힘들어 합니다. 

위로는“몸이나 마음의 괴로움이나 슬픔을 좋은 말과 행동으로 따뜻하게 달래주어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사전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후 약 1년 정도의 세월이 지나고 다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의 첫머리에서 특별히‘위로’라는 말을 10번이나 사용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진실과 충성을 다해 헌신한 사람입니다. 이런 수많은 고난가운데서도 끝까지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동역자들의 위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고린도교회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고난과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4). 성도에게 있어서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은 고난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인하여 자신이 받는 환난이 너무 중하기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9). 

그러나 그는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 낼 수 있는 분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뿐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를 믿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일수록 더 큰 좌절과 낙심과 슬픔과 절망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나그네 인생 여정에서 개인적인 여러 가지 문제들, 가정의 문제, 직장의 문제로 주님을 섬기는데 지쳐 있 습니까? 

그래도 성도는 하나님만 의뢰해야 합니다. 절대 자신의 힘을 지식을 과신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실망만 클 뿐입니다. 

또한 물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을 빨리 버려야 합니다. 성도는 오고 오는 모든 세대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뢰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시46:1). 이것이 고난이 주는 유익입니다.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베풀 수 있는 것은 기도로 돕는 것입니다(11).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는 분이 있다면 큰 도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깨지기 쉬운 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한 마디 말과 사랑에도 위로받지만, 

한 마디 말과 눈치에도 상처받는 게 인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위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깊은 상처와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고, 근본적으로 어루만져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위로의 영이십니다. 

결단과 적용
오늘의 기도
인문학 큐티더 보기
모든 이에게서 사랑 받고자 하는 욕심
인문학 나눔

“모든 이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은 거룩할 것이나 모든 이에게서 사

랑 받고자 하는 마음은 욕심이나 아둔함에서 비롯된다. 전지전능하지 

않은 우리는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배제할 수밖에 없다. 배제해야 집중할 

수 있고,집중해야 비로소 어떤 색깔이 생기기 시작한다.”

 

김하나 저(著)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김영사, 1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너무 둥글둥글하여 자기가 없는 사람이 있고, 너무 모가 나서 자기만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각형 사람이 좋습니다. 원만하지만 자기 세계도 뚜렷한 사람 말입니다. 

둥글둥글 “모든 사람에게 다 사랑 받고 싶다?” 참 좋은 소망입니다. 

이 꿈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사랑 받으려면 내가 없어져야 합니다. 

그저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맞춰 주려고 내 자신과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여기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둘은 날 싫어하고, 여섯은 관심이 없고, 둘은 나를 좋아합니다 

우리 모두는 죄성이 가득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갈등이 없는 완벽한 관계? 

트라우마가 한 조각도 없는 청명한 삶은 비현실적인 꿈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죄 많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살았기에 그러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그러한데,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은 안개 같은 꿈이자, 또 하나의 교만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5장 9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15:19)

 

그렇습니다. 진리 안에서 살려면, 미움 받을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멧집을 길러야 합니다. 가능하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그러했듯이 진리를 위하여 의를 위하여 

‘미움 받을 용기’를 가지십시오. 멧집을 기르십시오. 자유하십시오. 

그림 큐티더 보기
에베소서 3:20
고린도전서 15:1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Now to him who is able to do immeasurably more than all we ask or

imagine, according to his power that is at work within us,

도서 큐티더 보기
전도자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된다

세상의 지식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만이 

우리를 구원할 줄로 믿는다.

우린 십자가의 구원의 지식 구원의 진리를 붙들어야 한다.

 예수님이 70인을 전도하러 보내시고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으며 병든 자를 고치며 

이렇게 보고하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야. 그걸 가지고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 된 것으로 기뻐하라.’ 

전도자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된다. 

또 우리를 통해서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천국에 기록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기뻐해야 한다. 

 -이영무 목사의 ‘별과 같이 빛나는 인생’에서-

 

하늘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될 수 있다면 

또 우리가 궁창에 빛나는 별처럼 빛나는 

인생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전에 독립투사들은 세 가지 각오를 하지 않으면 

독립투사가 되지 말라고 했다합니다. 

첫째 총에 맞아 죽을 각오, 둘째, 굶어죽을 각오,

 세 번째는 얼어 죽을 각오 이 세 가지 각오입니다.  

우리가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복음 증거 하다가 때로는 핍박도 받고 

부끄러움도 당한다면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능력이 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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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월)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구원을 향한 여정(빌립보서 2:12~16)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본문 해석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믿음이 생기고, 이 믿음은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기독교의 구원이란 인간이 스스로 점진적인 고행이나 수도를 통해 얻는 종교적인 해탈이 아니라, 주 예수를 믿는 즉시 천국의 백성이 되어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한 강도는‘강도’로서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한 것입니다(눅23:43). 여기서 구원은 즉각적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어떤 착하고 합당한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의 또 다른 차원을 말하는데, 그것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구원의 질적인(quality) 측면을 말하는 것입니다(12). 구원은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천국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삶의 전 과정인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의 삶을 종종 마라톤 경주로 비유했습니다(딤후4:7). 마라톤은 속도와 호흡을 조절하며 몇 시간을 달리는 장기전입니다. 

이처럼 이미 구원받은 성도는 선물로 받은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 늘 믿음의 선한 마라톤을 하는 영적 달리기 선수입니다(16). 

두려움과 떨림은 공포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 있다는 경건한 자각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자는 그의 의로우심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려움이야말로 참된 경건과 영성의 기초입니다. 독일의 본회퍼 목사는“값싼 은혜”를 말합니다. 

즉 믿으면 구원을 얻으므로 계속 멋대로 살다가 적당한 시기에 회개하고 교회에 가면 구원을 받는 것 아니냐는 식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주는 은혜는 결코 이처럼 값싼 것이 아니라, 구원은 주님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구원은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날을 기억하라는 요구는 대단히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는 것인데, 우리가 부르심을 받는 그 날 비로소 완성되는 것인데, 무슨 구원 받은 날을 정확히 기억하라는 것인가? 

물론 우리는 예수를  영접해서 눈물 콧물 흘리며 통회하고 회개했던 날은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이라는 긴 과정의 

한 부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억할 것은 믿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주님이 부르실 그 날까지 천성을 향해 하루하루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구원의 완성을 이루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어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가도록 소원을 갖게 하시고 행하게 하십니다(13). 

구원 받은 자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순종함으로 아름다운 구원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오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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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
인문학 나눔

“항상 예의바르게 행동하지만 

과장하지 않고 자연스런 분위기를 지닌 사람, 

재치 있지만 요란하지 않은 사람, 

솔직하지만 교묘하게 꾸며서 말하지 않는 사람, 

농담을 오래 해도 질리지 않고 남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사람,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남에게 미루지 않는 사람, 

들은 말을 경솔하게 퍼뜨리지 않고 침묵할 줄 아는 사람, 

존재 자체로 평화를 전하는 사람, 

자신의 장점과 재능을 자랑하거나 교만하게 굴지 않고 

감사하게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남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기에 

자신의 유익이나 이기심은 슬쩍 안으로 감출 줄 아는 사람...” 

 

이해인 저(著),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샘터, 140-14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예의 있으나 무겁지 않은 사람,

유머 있으나 가볍지 않은 사람,

열정 있으나 절제할 줄 아는 사람,

정의감 있으나 화평을 이루는 사람,

분별하나 판단하지는 않는 사람, 

세상과 어울리나 세상 악에 동화되지 않는 사람,

소유의 기쁨보다 체험 성취의 기쁨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

체험 성취의 기쁨보다 존재의 기쁨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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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6:17
고린도전서 15:10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라.

You have declared this day that the LORD is your God and that you will walk in his ways, 

that you will keep his decrees, commands and laws, and that you will obey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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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적

감사의 적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다. 뭐든지 삐딱하면 좋게 보일 리가 없지 않은가!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대화할 때 매우 빠르게 말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평균 1분당 150-200개 정도의 단어를 말하지만, 

자기 자신과 속으로 대화할 때는 1분당 1300개 정도의 단어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10배정도 빠르게 많이 말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셀프 톡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과 대화할 때 어떤 대화를 많이 할까? 

이것에 대해서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긍정적인 말보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궁인의 [리액션] 중에서-

 

우리의 내면에 일어나는 상상은 엄청납니다. 

그 상상은 홀로 하는 대화로 연결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생각과 마음으로 이미 범죄 하였습니다. 

우리의 내면적 대화가 얼마나 많은 염려와 근심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안에 있는 생각이 우리의 인생을 지배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말로 나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의 거룩한 생각과 마음으로 채우는 일이 숙제입니다. 

더욱 더 감사하는 삶을 위해 나 자신안에 일어나는 대화를 점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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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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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단 3:8-18)

8.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9. 그들이 느부갓네살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10. 왕이여 왕이 명령을 내리사 무릇 사람마다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리어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
11.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도를 다스리게 하신 자이어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13. 느부갓네살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 오라 명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 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본문 해석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17-18절).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이 고백은 귀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붙잡혀 온 이들 세 청년은 <이제라도 너희가 ...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겠다>고 회유하고 협박하는 왕 앞에서 이렇듯 담대하고도 당돌하게 답했습니다. 

이들의 그런 단호하고도 과감한 언사는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신앙의 비장함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어떤 위기와 시련 가운데서도 

반드시 구하시고 건져내시리라는 전능하신 하나님 신앙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라>(사 43:2).

그런데 이들이 더욱 위대했던 것은 설령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절대 금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죽더라도 끝까지 하나님 신앙의 정절을 지키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각오며 결단입니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얼마나 순교적입니까? 어떤 상황, 어떤 최악의 조건 가운데서도 기어이 구원받겠다는 믿음은 위대합니다. 

그러나 그런 최악의 상황 가운데서 구원을 받지 못할지라도 그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정절을 지키겠다는 

사람이야말로 더욱 위대합니다. 툭하면 변절하고 허무하게 세상과 타협하고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 듯 그렇게도 

쉽게 신앙 양심을 배신하는 이 시대 믿는 자들에게 오늘 이 다니엘의 세 친구의 고백과 결단과 선택은 충격적인 깨달음과 깊은 각성과 

회개를 촉구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귀감으로 늘 당신을 위협하고 금 신상 경배를 강요하는 세상을 이기십시오. 

결단과 적용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금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고 한 세 청년의 고백이 곧 당신의 신앙이 되길 빕니다. 

-최대한 신앙 양심을 지키려는 쪽과 쉽게 세상과 타협하며 신앙 양심을 저버리는 쪽, 당신은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삶과 신앙에서 당신이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생각할수록 오늘 본문은 놀랍고 경이롭습니다. 끝까지 거부하면 당장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질 운명임에도 

세 청년은 흔들리지 않았고 갈등하지 않았습니다. <왕이여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왕에게 대답할 필요조차 없나이다>하며 단호했고 

비장했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이들에게서 큰 도전을 받게 하사 타협을 미덕으로 삼지 않고 항상 믿음의 순수성과 정절을 지키며 

살도록 성령으로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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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낙하산
인문학 나눔

“도무지 낙하산 불량률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중략).  마침내 낙하산 

공장 사장님은 고민 끝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내일부터 본인이 만든 낙하산을 본인이 직접 메고 뛰어내리는 불량률 

테스트를 실시한다!’ 고 선언한 것입니다(중략).  

그 순간부터 낙하산 불량률은 제로가 되었습니다...”

 

유영만 저(著)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위너스북, 35,3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인터넷에서 이름을 숨긴 익명성 뒤에 숨어서 온갖 악한 말을 하는 악플러들이 있습니다.  

익명성이라는 망토를 입으면 우리 속에 꿈틀대는 악마의 본성이 가중되어 나옵니다.  

소설가 이외수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양아치가 익명성이라는 망토를 뒤집어쓴다고 슈퍼맨으로 둔갑하지는 않는다.”

죄를 짓는 순간에는 누구나 무신론자(無神論者)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내가 한 일과 내가 한 말을 모두 지켜 보시면서 카운트하고 계신다고 믿으면,  

쉽게 죄를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잠시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여기면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을 숨기고 내가 한 말, 내가 행했던 일들은 결국 결산을 받게 됩니다.

내가 만든 낙하산은 결국 내가 짊어지고 뛰어내리게 됩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전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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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26
고린도전서 15:10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As the body without the spirit is dead, so faith without deeds is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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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입니까? 넓은 길입니까?

전도자의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전도자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안돼요.

 나를 죽이지 않으면 전도할 수 없어요.

 가족 전도 하려면 내 간 쓸개 다 빼놔야 해요.

전도하다보면 내 인격이 훌륭해질 수밖에 없어.

 왜 내가 겸손해지지 않으면 전도가 되지 않거든.

 내가 낮아지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이게 중요해요. 

그래서 예수님 말씀에 세상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넓은 길이 있고, 좁은 길이 있다. 넓은 길은 평탄하다.

그러나 그 길은 멸망에 이르는 길이고

 좁은 길 그 길은 가기가 어렵지만 천국에 이르는 길이에요

 좁은 길이십니까? 넓은 길이십니까? 

-이영무 목사의 ‘별과 같이 빛나는 인생’에서-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을 넓은 길로 가고 싶다고

   전도 집회도 자주하지 않고 

주일날만 와서 예배드리고 점심 맛있게 먹고

 오후 예배 안 드리고 싹 가면 딱 좋다고 합니다.

 주일을 빠지면 좀 찜찜하지만  

주일 예배 드리고 나면 죄의식도 없기에

 새벽기도 수요예배 구역예배 안 나와도 

마음이 괜찮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영혼들을 만날 때마다 복음 증거자가 되고

좀 더 제자의 삶을 살려고 하신다면 좁은 길로 가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길은 

결코 넓은 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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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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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느부갓네살의 하나님 찬양 (단 3:27-30)

27.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찌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본문 해석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 속에서 살아나온 기적 이상의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금 신상을 만들어 세우고 거기에 절하라고 강요하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런 믿기 어려운 고백까지 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양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28절). 어디 그 뿐입니까? 이 세상 그 누구도 하나님을 조롱하거나 모독하지 못하도록 

조서를 보내어 왕명으로 못을 박았습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기를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29절). 

이방인 바벨론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가장 위대한 신이요 다른 신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능하신 신이심을 시인했을 뿐 아니라 만천하에 

선포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의 조치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왕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30절). 

이게 진정한 승리며 믿음의 진정한 반전 아니겠습니까. 이것이야 말로 적국이요 포로지인 바벨론에서 히브리 청년들이 

오직 믿음 하나로 부른 통쾌한 개가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전 4:8-9)고 했습니다. 

부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 사도 바울의 주님이 당신의 삶과 생애에도 함께 하사 망하지 않고 버린바 되지 않고 

도리어 적국의 왕은 굴복시키는 반전의 은혜와 승리로 충만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결단과 적용

-느부갓네살 왕의 하나님 찬양과 고백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28절).

-느부갓네살 왕이 전국에 내린 조서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29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오고 오는 세대에 귀감이 되어 마땅한 이유를 다시 한번 말씀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놀랍고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금 신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히브리 세 청년을 풀무불에 던졌던 바벨론 왕이 도리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 세상 그 누구도 감히 하나님을 모욕하지 못하도록 

조서까지 내리며 하나님이야말로 가장 위대하시고 가장 전능하시다고 고백했습니다. 불태워 죽이려던 히브리 세 청년에게 더 많은 권력과 

더 높은 지위까지 허락했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믿음의 진정한 승리가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를 깊이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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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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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가다가 이름 모를 꽃 한 송이를 만났지

쉬운 표정으로 물었네 이름이 뭐냐고.

꽃은 한참 머뭇거리더니 그냥 꽃이라고 불러 주세요.

제 이름이 꽃이니까요. 웃고 있었다. 꽃이...

 

원로시인 황금찬의 시 「꽃」입니다

기독 메시지

산 길을 가다가 꽃을 만난 노(老) 시인은 묻습니다.“네 이름이 뭐니?” 

이름이 있던 없든, 어떤 이름이어도 상관없는 ‘쉬운 표정’으로. 

꽃도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쉬운 표정’으로 답합니다. “그냥 꽃이라고 

불러주세요.” 진달래 일 수도, 장미 일 수도 있는데, 그냥 꽃으로 불리워도 상관없다고 합니다. 

쉬운 표정, 쉬운 말을 하며 사는 쉬운 존재가 고수입니다. 

참 공부 깊은 공부를 한 사람은 지적 허영을 버리게 되어 오히려 글이 쉬워집니다.

‘단편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안톤 체호프는 작가로서 가장 행복했을 때를, 

어느 열일곱 살 소녀로부터 편지를 받았을 때라고 했습니다. 

그 편지엔 “저는 선생님의 글 읽으며 한 번도 사전을 찾아본 적이 없어요.“ 라고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진정한 고수는 가까이 하기 쉬운 사람이고, 쉬운 말을 합니다.

바리새인은 가까이 하기 어려운 존재들이었습니다. 분리 주의, 

귀족 주의에 사로잡혀 자신들은 천한 것들과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까지도 가까이 올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쉬운 말씀을 하셨고, 낮고 헐한 손을 쉽게 잡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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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2
고린도전서 15:10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Surely God is my salvation; I will trust and not be afraid.

The LORD, the LORD, is my strength and my song; he has become my sal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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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사람을 바라는 이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도 더 나은 사람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이상의 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을 추구할수록 덜 주시거나 아예 주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천국에 갈 때까지는 말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이 세상 삶의 안락을 위해 살아왔는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행복해지려는 희망에 매달려왔습니다.

 마치 이 세상이 우리가 거주할 유일한 세계인 것처럼 말입니다.

-래리 크랩의 [네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려라] 중에서-

 

매일 우리는 세상적으로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마치 세상에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것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은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지만 주님으로 채워지지 않은 것은 다 무너집니다. 

오직 은혜와 평강은 사랑과 진리를 행할 때 주십니다. 

나는 버리지 않고 주님께 세상적인 정욕은 달라시면 주님은 침묵하십니다. 

오직 주님의 뜻대로 소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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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풀무불 속의 네 사람(단 3:19-26)

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낯빛을 변하고 명하여 이르되 그 풀무를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칠배나 뜨겁게 하라하고
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을 명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지라 하니
21. 이 사람들을 고의와 속옷과 겉옷과 별다른 옷을 입은채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질 때에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가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채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떨어졌더라
24. 때에 느부갓네살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25.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26.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

본문 해석

마침내 왕이 <분이 가득하여>(19절) 명령하되 풀무불을 평소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한 후  히브리 청년 셋을 그 불 가운데 던지라고 명했습니다.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22-23절).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의 눈 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철도 순식간에 녹여버릴 수 있는 용광로 속에서 당장 죽거나 타 없어지는 

커녕 세 사람, 아니 네 사람이 불속을 거닐고 있는 게 아닙니까?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급히 모사를 불러 확인에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24절).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 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25절).

그렇습니다. 느부갓네살의 말대로 네 번째 사람처럼 보인 분은 하나님의 아들 주님이셨습니다. 주님이 불속을 거니시며 그들을 지키시고 

격려하고 계셨던 겁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건져 내시리라>(17절)고 믿었던 그들의 확신 

그대로 주님이 그들을 건져주신 겁니다. 그렇습니다. 칠 배나 더 뜨거운 혹독한 풀무불 시련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의 믿음이 문제입니다. 

풀무불 속에서도 우리를 능히 건지시리라는 믿음, 죽음 속에서도 찾아 오사 능히 우리를 구원하시리라는 확신이 가혹한 시험을 이기고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합니다. 보십시오!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26절). 

세상에서 이보다 더 장엄하고 통쾌한 승리가 또 어디 있습니까? 부디 당신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믿음의 후예로 사시기 바랍니다.

결단과 적용

-풀무불 앞에서도 이렇듯 담대한 세 청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자신에게 이런 가혹한 시험이 닥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풀무불 속에서 살아나오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모습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구체적으로 한번 연상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주님은 어디든 오시고 나타나셔서 저희를 지키시고 구하십니다. 불속에서도, 물 속에서도 저희를 구원하십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 사실을 잘 알았고 또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왕의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갔고, 마침내는 놀라운 반전을 통해 풀무불 속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정말 털끝 하나도 상하지 않고 무사히 생환했습니다. 

부디 저희들도 이 세 청년의 믿음과 용기와 결단을 배우게 해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인문학 나눔

“우리의 기술은 카누에서 갤리선과 증기선을 거쳐 우주왕복선으로 발전해왔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중략).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유발 하라리 저(著) 조현욱 역(譯) 「사피엔스 (김영사, 58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힘을 가진 자가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모른다면,  

힘을 가진 자가 악마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처럼 무서운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머리카락 한 올을 칼날 위에 올려놓고 입으로 불면 두 갈래가 난다는 

취모지검(吹毛之劍)을 가지고 정신없이 칼춤을 추는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는 대개 “힘을 달라” 고 기도합니다.  

힘이 없는 것이 인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일면 맞습니다.  

그러나 사실 힘을 어디다 쓸지 모르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최초의 남아공 흑인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힘이 너무 많은 데 있다!”

인류는 인공지능 로봇까지 만들어 내며 유발 하라리 교수의 표현대로  

‘호모 데우스(神)’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힘을 어디에 써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더욱 위험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합니다.  시계보다는 나침반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무한한 힘을 가지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  변함없는 진리는 ‘예수님’입니다. 

그림 큐티더 보기
신명기 11:14
고린도전서 15:10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then I will send rain on your land in its season, both autumn and spring rains, so that you may gather in your grain, new wine and oil.

도서 큐티더 보기
전도자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된다

 

세상의 지식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만이 

우리를 구원할 줄로 믿는다.

우린 십자가의 구원의 지식 구원의 진리를 붙들어야 한다.

 예수님이 70인을 전도하러 보내시고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으며 병든 자를 고치며 

이렇게 보고하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야. 그걸 가지고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 된 것으로 기뻐하라.’ 

전도자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된다. 

또 우리를 통해서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천국에 기록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기뻐해야 한다. 

 -이영무 목사의 ‘별과 같이 빛나는 인생’에서-

 

하늘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될 수 있다면 

또 우리가 궁창에 빛나는 별처럼 빛나는 

인생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전에 독립투사들은 세 가지 각오를 하지 않으면 

독립투사가 되지 말라고 했다합니다. 

첫째 총에 맞아 죽을 각오, 둘째, 굶어죽을 각오,

 세 번째는 얼어 죽을 각오 이 세 가지 각오입니다.  

우리가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복음 증거 하다가 때로는 핍박도 받고 

부끄러움도 당한다면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능력이 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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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8일 (수)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예수님, 간절하게 당신을 보기 원합니다(눅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본문 해석

여러분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제일 만나고 싶은 분이 주님이 아니라면 그 시간들은 얼마나 헛된 시간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을 ‘만날 만할 때’ 찾지 않으면 후회할 날이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변했다면 

나도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이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삭개오 이야기입니다.

여리고는 그 당시에 사해에서부터 올라오는 물품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가는 물품들이 거래되는 요충지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세금이 가장 많이 걷히는 곳이 가이사랴, 가버나움, 여리고였습니다. 거기에서 세금을 걷는 사람은 

당연히 부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금의 종류는 정말 많았습니다. 인두세, 토지세, 소득세 뿐 만 아니라 마차에 바퀴별로 세금을 부과하고, 

갑자기 물건을 검사하여 물건대로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곳에 세리장이 삭개오였습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예수님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데 자신의 신분이 있어서 

당당하게 예수님께는 나아가지 못하고 예수님이 오신다는 거리에 나간 겁니다. 오늘 말씀 3절에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인지 ‘보고자 하였다’라고 기록하지만 헬라어에서는 이것을 ‘갈망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고자 갈망해서 나무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납니다. 

누가 주님을 만납니까? 주님을 만나기를 갈망하는 사람이 주님을 만납니다. 애타게 찾는 사람이 만납니다. 한번 만났다고 만족하지 마십시오. 

정말 주님을 만난 사람은 더 주님을 만나기를 갈망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거저 얻으면 감사한 줄을 모르는 법입니다. 보모에게 와서 감격하며 자신을 낳아 준 것을 감사하는 자식을 많지 않습니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거저 주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치룬 대가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컴플렉스를 사람 앞에 드러내야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손가락질  하는 것을 알면서도 모든 사람이 다 보이도록 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니까 삭개오가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자신의 수치심이 드러나는 것, 사람들이 세리장이라고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이 있지만 너무나 주님을 보고 싶으니까 그런 것들은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만나기를 열망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그것을 뿌리치고 

주님을 만나는 자리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 신앙생활은 하지만 주님과의 만남을 기대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신앙의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 나의 콤플렉스 때문에, 사람의 시선 때문에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결단하기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삭개오처럼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건 주님을 만나는 기쁨 때문에 그 모든 대가를 기쁘게 지불할 수 있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나에게 용기를 주시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인문학 큐티더 보기
을돌이와 을순이
인문학 나눔

“갑순이는 누구에게 시집갔을까?  을돌이에게 갔겠지.  

갑돌이는 을순이에게 갔겠지.  그래, 평생 갑으로 산 그들은 

남은 평생도 자신에게 고분고분할 을이 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았지만 눈딱 감고 시집가고 장가갔을 것이다.  

첫날 밤엔 울었지만 다음날 아침부터는 웃었을 것이다.  

사랑으로 사는 것보다 갑으로 사는 게 더 좋았으니까. 

그래서 행복했을까?  물론 행복했을 것이다.  한번 갑질에 중독되면, 

한번 이기심의 포로가 되면 평생 그것이 행복이라 믿고 사니까.”

 

정철 저(著) 「꼰대 김철수(허밍버드, 22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대중 민요 ‘갑돌이와 갑순이’에 얽힌 유머입니다.  서로 갑으로만 살

았던 이 둘은 먼저 사랑한다고 하면 손해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끝까지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갑돌이는 ‘을순이’에게 장가가고,  

갑순이는 ‘을돌이’에게 시집갔다고 합니다.  사랑보다는 고분고분할 ‘을’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집 장가가서 첫 날 밤은 울었지만 다음날부터는 웃었다는 유머입니다. 

최승호 님의 시  「오징어 부부」 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등켜 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릇이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갑질은 폭력에 가깝습니다. 

참 사랑을 하면 힘을 뺍니다.  마치 을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머니와 딸이 다투면 대부분 어머니가 을이 되어 집니다.  

그 이유는 딸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보다 어머니가 딸을 더 사랑하기에 그러합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초라한 마굿간에서 아기 예수님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참 사랑하시기에 힘을 빼고 마치 을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참 사랑을 하면 갑질을 벗고 갑옷도 벗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막10:43)

그림 큐티더 보기
요한1서 4:19
고린도전서 15:10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We love because he first loved us.

도서 큐티더 보기
그 믿음이 자라고 견고케 하신다

‘미쁘다’는 말(피스토스)은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굳게 하신다’는 말은 믿음의 견고함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주로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이 자라고 견고케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시작과 성장과 견고함은 

다 신실하신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서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빌 1:6).

 -정인량 목사의 ‘주의 재림을 소망하는 자의 신앙’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지키실 뿐만 아니라, 

악에 빠지지 않게 지키십니다.

 구주이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죄악에 빠지도록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잠시 연약에 떨어질지라도 주께서는 

즉시 우리를 일깨우셔서 연약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그 연약에서 떠나게 하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

[믿음의 시작자요 완성자]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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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7일 (화)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성령충만한 사람들(삼상 16:11~13)

11.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본문 해석

믿었던 사람, 기대했던 사람에게 실망하면 괴롭고 힘듭니다. 사무엘은 사울 왕을 많이 믿고 기대했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보지 않았고, 그 때문에 슬퍼하였습니다(15:35). 

하나님도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음을 후회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될 것 같고 못살 것 같아도 하나님은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고 생사화복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우리의 길과 하나님의 길은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연단이 길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명령을 내리시어 이새의 집으로 가라는 것입니다(1).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다윗을 통해 보십시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7).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외모를 보며 기름을 부으려고 하였지만(6-7),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이새의 일곱 아들들을 재치고 말째 아들 다윗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쓰지 않으심에 대해 불만은 하면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 위해 준비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을 경외함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지,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는지, 생각이 건전한지를 보십니다. 

성실한 사람을 쓰십니다.(11) 다윗은 모든 일에 성실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부으러 왔을 때 다른 형들과는 다르게 다윗은 

그 시간에도 아버지가 맡겨 둔 양을 치며 자기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다윗처럼 맡겨진 일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 큰일도 맡겨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일은 성스러운 일이며, 

크고 중요한 일들입니다. 기도하는 일, 주방에서 섬기고 봉사하는 일, 어린아이들 돌보고 가르치는 일, 안내하고 교제하며 섬기는 일 

모두가 설교만큼 중요한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사람을 쓰십니다( 13). 드디어 다윗은 불려왔고, 

영문도 모르고 주의 종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날 이후로 다윗은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3). 여호와의 영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지혜의 영입니다. 

성령 충만한 다윗은 그 뒤로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형통하였습니다. 아버지도 별로 생각했던 다윗, 양치기 소년이 성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원수와 같은 자들을 다 용서하고 통일왕국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다윗이 성령 충만하니까 가능했습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120의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성령 충만하니까 기독교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성도는 성령 충만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살아야 합니다. 

결단과 적용
오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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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소설이 아닙니다
인문학 나눔

“기사가 소설과 다른 점은 픽션이냐, 논픽션이냐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수필과 다른 점은 객관과 주관의 차이입니다.  객관을 밑바탕에 

깔기 위해선 사실fart에 대한 접근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사람과의 접촉은 없이, 그저 맨눈으로 휘휘 둘러보면서 자신이 느낀 감상이나 

떠오른 생각들만으로 기사를 채우면 그 글이 아무리 유려하더라도 기사로서의 가치는 없습니다.”

 

권태호 기자 저(著) 「느리고 불편하고 심심한 나라(페이퍼로드, 9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신문 기사에 사실(fact, 팩트)이 부족하다면 소설이 될 것입니다. 

사실, 즉 팩트는 현상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다림줄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만으로는 감동이 없습니다.  사실만을 늘어 놓을 때, 결핍과 차가움을 느낍니다.  

삶은 결국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과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깊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은 ‘사실’ 의 오랜 누적으로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그 사랑이 느껴질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이 느껴질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사랑과 믿음이 진짜 있는 가를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3:18)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17)

그렇습니다. “행함”이라는  ‘사실’ 이 있을 때,  그 사랑과 믿음의 진정성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팩트와 현장과 만남도 없이 생각으로만 써내려간 신문 기사 같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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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3:13
고린도전서 15:10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And now these three remain: faith, hope and lov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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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고는 먹지 말라

 

그리스도인의 노동윤리는 일하지 않고는 먹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안에 노동운동하는 이들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인을 탓하기 전에   

합당하게 일하였는가 하는데 대하여

일말의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물론 노동의 바른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과도한 댓가 즉 일하지 않고 혜택만을 누리려고 하는 

노동운동은 결코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한 이후 땀을 흘려 일하게 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일이든지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영적인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정인량 목사의 ‘주의 재림을 소망하는 자의 신앙’에서-

 

무슨 일이나 죄 아닌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먹고 사는 것이 떳떳한 일입니다.

  일하는 자체가 행복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게으르면 안 됩니다.

 게으른 자는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교회안에 특히 영적 지도자라 자처하는 자들 가운데

 일안하면서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습니다.

 기생충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불로소득을 취하는 자들 소위 영적 브로커들은 

그 행위를 버리고 땀 흘려 일할 때 부끄럽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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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6일 (월)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형통한 삶을 향하여 (수1:1~8 )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본문 해석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나의 자녀들의 미래는 어떨까? 사업은 잘될까? 결혼하면 잘 살 수 있을까? 

그래서 궁합이나 사주를 보고 점집을 찾고 예언 기도하는 곳을 서성거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다 헛수고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미래를 알지 못하도록 막아 놓으셨습니다. 왜냐면 미래를 몰라도 두려운데 알게 된다면 두려워서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그랬습니다. 모세가 죽고난후 하나님은 그에게 백성을 인도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는 모세의 시종으로 40년을 보냈기에 백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도 힘들었던 그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무거운 짐이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지금 백성들은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모세가 죽음으로 많이 절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함께할 것이니 ‘가라’고 명하시면서 형통한 삶의 비결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2-3). 

  먼저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향한 아름다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지금 나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또한 나의 사명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해야 합니다(5-9). 그 담대함의 근거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입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담대하라고 하시면서 너와 함께 하리라, 너를 떠나지 아니 하리라,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고 10번이 넘도록 반복하심을 봅니다. 

우리 인간은 강해진 것 같다가도 약해지고, 할 수 있다 하다가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포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실제로 나와 함께 동행함을 믿는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7-8). 하나님의 말씀은 팍팍하고 그대로 살아가기 힘든 내용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형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렘29:11). 성경은 형통한 인생을 위한 매뉴얼입니다. 

성경에는 형통한 삶을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의 인생스토리가 가득합니다. 

  형통한 삶을 향하여 가는 삶에는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 움을 버리고 

하나님과의 동행의식으로 담대해야 하며,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입니다. 그리하면 어디에서 무슨일을 하든지 평탄하고 형통한 길이 열려질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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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나눔

“당신의 손이 길을 만지니 누워 있는 길이 일어서는 길이 되네

당신이 슬픔을 만지니 머뭇대는 슬픔의 살이 달리는 기쁨이 되네

아, 당신이 죽음을 만지니 천지에 일어서는 뿌리들의 뼈”

                  

강은교 님의 시 「당신의 손」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손은 우리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신성한 대변자입니다. 

명저 「침묵」의 저자인 일본의 엔도 슈사꾸는 「엔도 슈사쿠의 인생론」 에서 참 신비한 손의 체험담을 말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는 옆방의 폐암 환자가 밤새도록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간호사에게 묻습니다. 

“환자가 극심한 고통으로 시달릴 때, 무엇을 합니까?”

이에 간호사는 간단한 대답을 합니다.

“우린 그저 환자의 손을 꼭 잡아 줍니다.  한동안 그러고 있으면 통

증이 차차로 가시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교대로 손을 잡아 주지요.”

그 말을 듣고 그는 코웃음을 쳤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년쯤 후에 엔도 슈사꾸는 중병에 걸려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고통 때문에 견딜 수 없었습니다.  

진통제를 달라고 소리쳤지만 중독을 염려한 의사는 거절했고,  

그는 짐승처럼 신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간호사가 침대 곁에 앉아 그의 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지옥 같던 아픔이 조금씩 가시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손을 얹어 기도하시거나 손을 잡아 주시며 기적을 일으키시는 장면을 읽게 됩니다.  

예수님의 손은 곧 예수님의 마음이었고, 그의 사랑이었습니다.  손이 닿으면 마음까지 닿아집니다. 

사랑과 기도의 손은 하나님 마음을 실행하는 대행자입니다.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마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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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10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But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and his grace to me was not without effect. 

No, I worked harder than all of them—yet not I, but the grace of God that was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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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지만 죽은 제물처럼 되어라

주님은 인간의 구성이 영혼과 육체, 

두 가지로 말씀하셨다. 

주님 오실 때까지 흠 없이 보전해야 할 것은 

바로 영혼과 육체이다. 라는 말씀이다. 

육이 흠 없는 삶을 살려면 헌신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곧 거룩한 삶이다. 

로마서 12:1절에 너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를 드리라고 했다.

 산제사가 무엇인가? 

제사는 동물을 죽여서 바치는 것인데

 너희가 살아 있지만 죽은 제물처럼 되어라! 

  이 말씀이다. 이것이 거룩이다.

-윤희주 목사의 ‘바울의 소원’에서-

 

내 몸의 고집과 주장을 버리고 습관을 버리고 

오직 주님 말씀에 전적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흠 없는 마음이 되려면

두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 역시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결국 성도의 거룩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과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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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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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여호와께 성결(슥 14:16-21)

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 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18.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 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19.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20.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21.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취하여 그 가운데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본문 해석

<그 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20절).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21절). 

구약과 신약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성결>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구약에서는 율법과 규례를 통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획했고, 신약에서는 마음의 성결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이미 지금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와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 사이에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동시에 경험하며 삽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다스리심을 

경험하며 느끼지만 동시에 죄와 악한 세력들의 음모와 공격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큰 기쁨과 평안도 맛보지만 

동시에 현실과 이 세상이 주는 절망과 좌절도 당하며 삽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 순간도 영적인 긴장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되듯 나의 모든 것과 삶 전부가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한 것에 거룩하지 못한 것이 들어와 전부를 부패하게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 하리라>(21절). 

성결이란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 땅에서 천국의 거룩함을 미리 맛보는 성도들만의 고유한 특권입니다. 

세상 사람들, 이방 족속들은 절대 성결할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며 거룩을 연습하며 장차 거룩한 나라인 천국에 갈 

성도들만이 성결을 알며 성결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며 성결을 결단하며 성결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 갈 수가 있습니다. 

스가랴서가 이렇게 <성결>을 말씀하며 마무리된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심장 합니다.

여호와의 전에 이방사람들이 다시 있지 않듯이 천국에는 성결하지 않은 사람, 거룩하지 못한 사람은 다시 서지 못합니다. 

그 나라는 거룩한 나라 성결한 세계기 때문입니다. 

결단과 적용

-믿는 자들이 반드시 <성결>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천국은 어째서 <거룩한 나라>일까요?

-우리가 <여호와께 성결>하기 위해 평소 어떤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 여호와의 <그 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는 모든 것이 성결해야 하고 성결하신 하나님을 닮아 모든 이들의 삶이 거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뒤섞여 있어서 성결하게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지만 언젠가는 저희도 다 주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성결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결의 영이신 성령으로 역사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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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노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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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노여워해야 할 일에 대해서 당연히 노여워해야 할 사람에게 

적당하게,  적절한 때에,  적당한 시간 동안 노여워하는 사람은 칭찬받는다.  

이러한 사람이 온화한 사람이요,  그의 온화함은 칭찬을 받는다.  

즉,  온화한 사람은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순리에 따라 옳은 태도로 노여워해야 할 일에 적당한 시간 동안만 노여워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저(著),  홍석영 편(編), 「니코마코스 윤리학(도서출판 풀빛, 76-7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마5:44)이 불가능하면,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을 실천해 봅니다.

그것도 어려우면, 노여워해야 할 일에 대해 노여워해야 할 사람에게,

적당한 강도로,  적당한 시간만큼만 노여워해도 대단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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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18
고린도전서 15:10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She said, "May your servant find favor in your eyes." Then she went

her way and ate something, and her face was no longer down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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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 두지 말라

예수님은 당신의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내어주셨다. 

그런데 왜 내가 그 하나님, 

그 예수님을 신뢰치 못하고 짠 분으로 대해야 하나?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마침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영육간에 풍성함을 주실 것이다.

다만 이를 믿고 오늘 말씀에 순종하시라.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계속 많이 하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사시라.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여러분을 귀히 보실 것이며.

 기뻐하실 것이다.  

그리곤 큰 은혜의 장중에 뿌리 내리게 하실 줄 믿는다! 

-작자 미상의 글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에서-

 

하나님께 정말 복 받은 이들은 

물질의 축복을 왕창 받은 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로 베풀고 나누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는 이가 정말 복 받은 이입니다. 

그는 성경대로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할 것입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 두지 맙시다. 

도리어 그것들을 우리에게 

적당하게 베푸시는 풍성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둡시다.

그러기에 그 하나님을 확실히 믿는다는 증표로 

 나누어주고, 베풀고, 너그럽게 한 세상 살다 가십시오.

 그러면 놀라운 복, 정말 하나님께서 주고 싶으셨던 

그 진복(眞福)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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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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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피차 칠 것이라(슥 14:12-15)

12.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 살이 썩으며 그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 혀가 입속에서 썩을 것이요
13.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들로 크게 요란케 하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
14.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리니 이 때에 사면에 있는 열국의 보화 곧 금 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질 것이요
15. 또 말과 노새와 약대와 나귀와 그 진에 있는 모든 육축에게 미칠 재앙도 그 재앙과 같으리라

본문 해석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12절). 전에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괴롭히던 이방 족속들에 대한 하나님의 참혹한 재앙의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도성과 그의 택하신 백성을 대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혹은 예루살렘을 상대로 

그 마음을 완악하게 한 개인이나 족속치고 형통한 자는 없었습니다. 그가 누구든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모욕한 자를 벌하십니다. 

하나님을 모욕한 것으로 간주하사 예루살렘 대신 원수를 갚아주십니다.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라고 하신 것은 그들의 하나님 모욕과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저주를 응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로 하여금 서로 물고 뜯고 싸우며 자멸하게 하십니다. 

<...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13절). 

하나님의 백성이나 교회를 훼방하고 공격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자중지란을 일으키사 스스로 멸망하게 하십니다. 

모든 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동료에게 칼을 겨누게 하십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원수들에게 가해질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은 사람뿐 아니라 가축에게도 미친다고 합니다. <또 말과 노새와 낙타와 나귀와 그 진에 있는 모든 가축에게 미칠 재앙도 

그 재앙과 같으리라>(15절). 옛날 하나님이 애굽에 여러 재앙을 내리실 때도 그랬습니다. 

다른 피조물들은 다 인간의 죄 때문에 함께 재앙을 당하고 고통을 겪습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21-22).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그 피조물들을 다 해방시키사 우리와 함께 하나님 자녀들의 영광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하나님이 왜 예루살렘을 친 이방 족속들에게 재앙을 내리실까요?

-하나님이 왜 <그들의 혀가 입 속에서 썩게>(12절) 하실까요? 

-하나님이 왜 예루살렘을 친 이방 족속들의 <말과 노새와 낙타와 나귀>(15절)까지 재앙을 당케하실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 하나님은 언제나 택하신 백성과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훼방하거나 공격하는 것을 곧 하나님에 대한 도발로 간주하십니다. 

그래서 <그 날>이 이르면 그들을 반드시 응징하시되 <그들의 살이 썩고 눈동자가 썩고 혀가 입 속에서 썩게>(12절) 하신다고 했습니다. 

애꿎은 피조물들까지도 다 심판하사 재앙을 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다른 피조물들의 관리를 

다 인간에게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부디 저희들 자연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모두가 해방과 자유에 이를 

여호와의 <그 날>을 대망하며 살아가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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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인문학 나눔

“매는 아이를 권위 아래서 자라도록 훈련시킨다.  불순종의 결과가 있

다는 사실은 곧 순종의 중요성을 가르쳐준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권위 아래 두셨고, 그 권위 구조는 축복이라는 것을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배운다.”

 

테드 트립 저(著) 조경애 조남민 공역(共譯) 「마음을 다루면 자녀의 

미래가 달라진다(디모데, 18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어느 사람이 양파를 100개 훔치다 발각되었습니다. 

재판관이 말했습니다.  “벌로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하시오.  앉은 자리

에서 훔친 양파 100개를 먹던가 매 100대를 맞던가 10만원을 내시오.”

그는 돈이 아까왔습니다.  매는 아플 것 같았습니다. 공짜로 양파 100개를 

먹으면 간단하게 끝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양파 100개를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1

0개 가량을 먹고 났을 때 속에서 불이 났습니다. 

도저히 못 먹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도 돈 내기는 아까왔습니다. 

그래서 매를 맞겠다고 하였습니다.  20여대를 맞고 났을 때 매 맞은 자리에 피가 흘렀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하는 수 없이 돈 10만원을 냈습니다... 

처음부터 10만원을 냈으면 이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냈습니다.

불순종이 꼭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끝없이 생명의 길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교만한 인간은, 자신이 옳다며 불순종합니다. 

불순종은 고생 길입니다.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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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4:6
고린도전서 15:10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Let your conversation be always full of grace, seasoned with salt,

so that you may know how to answer every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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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지 말아야 할 것

한동안 나는 현대 기독교가 제시하는 회심의 개념이 너무 협소하다고 말했다. 

첫 번째 못이 박히는 것-예수님께 삶을 의뢰하는 선택-은 강조하면서도 마지막 못-예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내가 사명을 감당하는-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시작을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진정한 초점은 큰 그림에 두어야 한다. 이 그림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끝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놓쳐서는 안 된다.

-고든 맥도날드의 [영적 성장의 길] 중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것만 믿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내가 삶속에 못 박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달리신 것만 인정합니다. 

물론 그것조차도 가슴 깊이에서 울리는 고백인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시작은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인정하였지만 마지막 내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는 버린다면 

그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삶입니다. 

마지막 그 십자가도 주님이 대신 지어주시기에 믿고 질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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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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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동해로, 서해로(슥 14:6-11)

6.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7.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10. 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편 림몬까지 미칠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11. 사람이 그 가운데 거하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안연히 서리로다

본문 해석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7절).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날과 섭리의 날은 언제나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아니하며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는 주님의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의의 해가 떠올랐으므로 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직 천국이 실현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밝은 낮도 아닙니다. 개별 성도들도 그렇습니다. 어둠이 아니고 주 안에서 빛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여전히 많은 죄와 허물이 있기에 온전한 낮도 아닙니다. 교회와 관련된 하나님의 섭리들도 역시 그렇습니다. 

현실 교회는 극단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고 언제나 그 둘이 서로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런 사정을 다 아시고 그의 뜻과 계획에 따라 모든 것을 적절히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가 결론입니다. 원수들에게는 해가 대낮에 지지만 예루살렘에는 해가 밤에 뜹니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도 빛이 일어납니다(시 112:4).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모든 소망이 다 끊어져서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을 때도 구원이 옵니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8절). 

모든 강이 바다를 향하여 흐르듯 예루살렘에서 솟아난 생수도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입니다. 

복음은 그렇게 생수가 흐르듯 동쪽으로도 서쪽으로도 흘러 세계의 모든 곳으로 퍼지게 될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사 11:9).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는 것은 복음을 위한 사역은 사시사철 계속 되어야 한다는 뜻에 다름 아닙니다(행 20:18). 

부디 주님의 생수가 동해로 서해로, 여름에도 겨울에도 멀리멀리 쉬지 않고 흘러가는 역사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왜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8절) 날까요?

-본문 7절과 신약 요한계시록 21:23 말씀을 비교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7절)이란 어떤 날일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 복음은 마치 예루살렘에서 솟아나는 생수처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흘러갑니다. 

동해로 서해로, 여름에도 겨울에도 전파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복음이 흘러간 곳에는 <어두워 갈 때도 빛이> 있습니다. 

<저주가 있지 아니하고 평안히 서는> 은혜가 있습니다. 부디 저희들 복음이 흘러가는 일에 헌신하게 하시고 복음의 빛을 전하고 

증거하는 일에 헌신하도록 격려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모두가 평안히 서므로 주님 허락하시는 축복을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저주시(詛呪詩)를 허락하신 이유
인문학 나눔

“풀어버려! 이 한마디가 분열과 갈등을 창조의 빛으로 바꿀 것입니다.”

 

이어령 저(著) 「길을 묻다(시공미디어, 20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구약 성경의 시편 중에 참 의외의  ‘저주시(詛呪詩)’ 가 있습니다.

대표적 저주시인 시편 109편을 보십시오.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

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그에게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 자도 없게 하시며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시109:9-13)

이쯤 되면 정말 심한 저주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끔찍한 저주의 시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니요.  

하나님께서 저주시를 허락하신 의도가 있습니다. 

이런 저주를 원수 같은 사람이나 미운 이웃에게 퍼붓지 말고,  하나님께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퍼부을 때에 원수와 복수의 악순환이 계속 

됩니다.  하나님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갈 때에 근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심한 욕설 같은 기도를 하였지만 실재 원수였던 

사울 앞에서는 존중함으로 대했습니다.  그의 옷자락 하나를 베고도 괴로워했습니다. 

저주 할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여 푸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서 원수같은 사람에게는 지옥 같은 저주를 

퍼붓는다면,  자신 또한 고통의 굴레 속에 뒹굴게 됩니다.  

그림 큐티더 보기
시편 116:12
고린도전서 15:10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How can I repay the LORD for all his goodness to me?

도서 큐티더 보기
인정하기

하나님께서는 깨진 질그릇들을 사용하셨다.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교인들에게 아무런 노력도 할 필요 없이 생긴 그대로 살라고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스스로에 대해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변화를 시작하는 열쇠가 된다는 의미일 뿐이다. 

아내와 나는 자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음을 인정한 

그날이 곧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한 날이기도 했다"라고 이야기 한다.

-피터 스카지로· 웨렌 버드의 [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 중에서-

 

하나님은 깨진 우리를 부르시고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온전함과 완벽함이 하나님이 택함을 입는 조건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 성고하고, 

더 완전해진 후에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인정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사용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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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1일 (수)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피곤할 때 기도하고, 분주할 때 예배하고, 힘들 때 찬양하라(삼상 7:5~12)

5.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하여
8.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본문 해석

현대의 사람들은 모두 바쁩니다. 어른들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까지도 모두 바쁩니다. 

그래서 바쁜 삶 속에서 무언가 정리가 필요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예배의 시간, 기도의 시간을 내려놓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일이나 가정의 일들을 내려놓으면 티가 나지만, 신앙생활은 티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눈이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나하나씩 내려놓을 때 무너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무 신앙생활을 내려놔서 이제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 조차 잃어버렸는데 괜찮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신앙을 돌아봅시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빼앗겼던 언약궤를 다시 찾은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이방 민족에 빼앗겼던 언약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을 때, 사무엘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이게 하고 

금식하게 하며 하나님을 찾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은커녕 오히려 이 소식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옵니다. 

아마 사무엘은 이 사살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예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무엘은 금식하며 하나님을 찾기로 선언합니다. 왜 그랬을까? 사무엘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군사가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패했고, 아무리 적고 힘이 없는 군대일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승리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전쟁을 앞에 둔 그 순간에 기도하는 것을 택한 것입니다. 

 언약궤를 다시 보내주신 그 시점에 사무엘은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군대가 아니라, 

하나님이 왜 우리를 가나안 땅에 보내셨는지를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고, 내가 지금 여기 서 있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회복해야 

이 전쟁이 승리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전쟁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아무리 많은 것이 

채워진다 하더라도 지금 내가 여기 있는 의미와 목적, 하나님이 왜 나를 부르셨는지의 해답을 잃어버리 면 인생은 한순간에 허무함으로 

무너질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게하기 위함임을 기억하고 

전쟁을 앞에 두고도 예배와 기도를 선택합니다. 우리가 피곤할수록 기도의 자리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분주할수록 예배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삶의 우선순위가 정해져야 우리에게 오는 축복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채로 받은 복은 복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거부하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신앙을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시간을 빼앗기지 맙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세워가는 가장 중요한 근원이라는 믿음을 삶을 통해 선언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 최근에 바쁜 삶 때문에 소흘하게 되었던 신앙생활이 있습니까?

 - 지금 내가 회복해야 하는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를 묵상하고 결단합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그 동안 피곤해서 기도하지 못하고, 분주해서 예배하지 못하고, 힘들어서 찬양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반대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니까 피곤하고, 예배하지 못하니까 분주해지며, 

찬양하지 못하니까 힘든 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루의 삶에 정말 필요한 영의 양식을 포기하지 않는 하루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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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 하나님의 꿈
인문학 나눔

“내가 글을 쓰게 된 동기는 항상 나를 괴롭혀 오던 문제,  즉 지독히도 

손재주가 없다는 문제에 있었다(중략).  엄지손가락에 관절이 하나 밖에 없다.  

상부관절(손톱쪽에서 먼 쪽 관절)이 있긴 하지만 형태 뿐이다. 

우리 형제는 그 관절을 구부리지 못한다.  해서 나는 만들기를 지지리도 못했다.  

연필과 펜은 능숙하게 쓸 수 있었고(중략) 그 때문에 나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C.S.루이스 저(著) 강유나 역(譯)「예기치 못한 기쁨(홍성사, 2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C.S.루이스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의 기독교 변증학자입니다.  

특히 1, 2차 세계대전 이후 무신론이 팽배했던 유럽사회에서 그의 저

술을 통해 많은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기독교 저술가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루이스가 그의 꿈처럼 배나 집 엔진 따위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저 멋진 배나 집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저술을 하게 되면서 수많은 

영혼을 하나님께 이끌었습니다.  그가 바라는 꿈이 깨지면서 주님이 바라시는 큰 꿈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꿈이 그다지   ‘나쁜 일’  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나쁜 꿈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꿈’ 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나의 꿈에 도취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꿈을 못 볼 수 있습니다.

나의 꿈이 깨어지는 것은 더 큰 하나님의 꿈을 위함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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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21
고린도전서 15:10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Whoever has my commands and obeys them, he is the one who loves me.

He who loves me will be loved by my Father, and I too will love him and show myself 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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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이동시키라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 중심으로 살았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성막 안에는 의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을 위한 의자는 그곳에 없었다. 왜 그럴까? 성막은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달라졌다. 주님께 집중해야 하는 그곳에 나의 의자를 만들고 자기 삶의 넋두리를 늘어놓더니, 

심지어는 자신이 성막을 차지하고 주인처럼 살아간다. 나 중심적 신앙이 된 것이다.

내가 행복해야 주님도 행복하고, 내가 평안해야 주님도 평안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잘나가야 주님도 영광을 받게 되고, 

내가 가진 것이 많아야 주님도 능력을 인정받는 이상한 논리 속에 신앙생활을 한다.

-궁인의 [리액션] 중에서-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주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내 삶을 움직이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이제 나는 주님으로만 살겠다는 것입니다. 

‘내 삶에 중심에는 내가 앉아 있는지, 주님이 앉아 계신지?’를 물어봐야 합니다. 

내가 앉아서 주님을 움직이려고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내가 주인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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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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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하나님은 나의 깃발 (출 17:8-16 )

8.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15.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본문 해석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후에 많은 문제가 돌출되었습니다. 

밤낮의 일교차가 심한 광야의 길을 가야하기에 좋은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40년을, 남녀노소가 함께 최악의 조건에서 가야하는 기약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들의 삶은 날마다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길이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하는 길은 어려움도 많았던 만큼, 하나님의 은혜도 풍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며 전진하는 저들에게 뜻하지 않은 호전적인 아말렉 족속이 공격해 온 것입니다. 

그 전쟁에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로 아무런 전투력이 없었던 이스라엘이 이겼다는 것입니다. 

이는‘여호와 닛시’의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전쟁의 경험과 군대 숫자로 이겼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가는 길도 광야 인생길입니다. 

뜻하지 않은 문제들이 돌출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 나가겠습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원망하고 불평하고, 

뿌리 없는 나무처럼 감당하지 못하고 흔들립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의 거친 바람이 불어오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고난을 승리를 위한 기회로 삼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여호와 닛시’의 삶을 살아가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문제가 생길 때 모세처럼 기도의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9). 하나님 앞에 문제를 펼쳐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문제가 어떤 문제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물어야 합니다. 시간에 쫓기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 때문에 기도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절대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없습니다. 또한, 모세처럼 믿음의 지팡이를 잡아야 합니다(9). 

모세가 40년 동안 양치기로 있을 때 지녔던 지팡이지만, 하나님의 종이 된 다음에는 그 지팡이는 용도가 달라졌고, 

지팡이의 힘과 격이 달라졌습니다. 똑같은 지팡이이지만 하나님의 의해서 능력의 지팡이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nbs p;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경영과 사업의 경영도 내 것이라 주장하지 말고, 

소유권을 하나님께로 이양한다면 예측 불허의 상황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어린아이가 자신이 가진 것을 주님께 드렸을 때 기적의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이 기적은 함께 동역함에 있었습니다(10-12). 지도자 모세의 손을 들고 기도했으며, 

그의 곁에는 아론과 훌,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여 

나가서 믿음으로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사실 이 승리는 여호수아와 군대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역사에 기록해서 길이길이 남기라고 명령하십니다(14).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겼다고 여호수아에게 말하라고 명령합니다. 

자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나의 삶에 승리하신 부분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승리하는 삶의 비결은 여호와는 나의 승리의 깃발이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결단과 적용

- 나의 인생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믿음이 있는지 확인해 봅시다. 

- 바쁜 일상에서도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은 갖기 위한 계획을 세워봅시다. 

- 이미 주신 은혜를 따라 믿음의 사람들과의 동역하기 위해 결단하십시다. 

오늘의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자격은 없지만 조건 없이 선택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가는 길에 동행하시고, 필요한 것들로 채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기도함으로 좋은 동역자들과 사역함으로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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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나를 바꾸고 싶을 때
인문학 나눔

“자극과 반응은 순환한다.  이 순환관계가 긍정적이고 생산적일 때 

우리는 그 관계를 발전적인 관계라고 규정한다(중략).  

자극과 반응의 순환관계가 우리 삶의 총체적인 과정이고, 

그것은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행복이라든가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핵심요소인 것이다.”

 

안성헌 저(著) 「미치도록 나를 바꾸고 싶을 때(북포스, 1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자극이 필요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미치도록 

나를 바꾸고 싶을 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해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정말로 자신을 바꾸고 싶다면 ‘자극’과 ‘반응’ 이라는 두 단어를 가슴에 새기고 있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자극’과 ‘반응’의 끝없는 순환이 무기력증에 빠진 나를 바꾸는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자극이 필수입니다.  사람은 원초적으로 게을러서 자극이 없다면 움직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방 바닥에 뒹굴고 있는 사람을 바꾸려면 방을 뜨겁게 하거나 

걷어 차거나 하는 자극이 있어야 움직입니다.  

그런데 자극이 왔을 때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이것이 바로 반응입니다.  

자극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가?  이것이 자기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끝없이 자극 받고 있습니다.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영혼의 자극이요,  삶의 방향과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힘에 대한 자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강한 자극은 없습니다.  그 말씀에 ‘아멘’ 하며 실천하는 것이 바로  ‘반응’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합쳐 질 때 비로소 신앙이라고 합니다.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느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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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2:27
고린도전서 15:10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But you remain the same, and your years will never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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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하면 닮게 되어 있다

성경에 교회 안에 가르쳐도 믿지 않고 

순종치 않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과의 교제가 없도록 하라고 했다.

신앙과 사상이 전염되기 때문에 경계한 것이다. 

교제하면 닮게 되어 있다. 

노는데 빠져 있는 사람과 교제하면 자신도 모르게 말씀을 믿지 않고 

순종치 않는 사람과 교제하면 

말씀을 의심하게 되고 세속화되기 때문이다.

교제를 끊으라는 것은 진리에 떠난 삶이 잘못임을 깨닫고 

자신의 삶이 부끄럽게 여겨져 돌아오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그 사람을 망하게 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잘못에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다. 

-윤희주 목사의 ‘규모 있게 행하라’에서 -

 

교제를 하지 말라는 것은 그 사람을 왕따 시키고

원수같이 여기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과 친해지거나 닮지 않으려 경계하는 중에도

계속해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의 잘못을 권면해 주고 

충고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 권면을 원수에게 하듯 하지 말고 

형제에게 하듯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무적으로, 혹은 가르치듯 하지 말고

사랑을 가지고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형제는 하나님께서 사랑할 대상으로 

우리에게 주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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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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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더 좋은 삶으로의 변화 (사 54:1-5 )

1.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찌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찌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
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4.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본문 해석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인생은 끝없는 도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수많은 도전의 연속입니다. 아기들은 걸음마, 

학생들은 진학, 청년들은 취업과 결혼, 은퇴도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을 향한 시작일 뿐입니다.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지만, 

그 중에 가장 큰 도전은 신앙생활입니다.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그분의 영광을 위해, 

나를 통해 행하실 놀라운 일들을 바라보며 도전해야 합니다. 지금의 형편만 보고 낙심하지 말고 

더 좋은 삶으로의 변화를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우선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변화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옛날 방식 그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고,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새로운 시도 자체를 거부합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용기를 가지고 한걸음 내디딜 때 변화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택했고, 불렀으며, 내가 너와 함께 하며,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도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80세에 부르셨고, 함께 하셨으며,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일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큰 민족을 이루어 동서사방 바라보는 모든 땅을 그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르셨고, 나와 함께 하신 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은 암울한 현실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래의 회복과 번영과 부흥을 예고하고 있습니다(1). 

그러나 현실은 잉태와 출산을 못하는 약하고 힘없는 홀로된 여인 같았지만 그들에게 노래하라고 합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은 훼파되었으며 백성들은 포로로 흩어져 방황하며, 

힘도 능력도 없는 그들에게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3). 

낙심과 절망에서 일어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도전하라는 이 메시지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갈 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될 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더 좋은 삶으로의 변화를 위해 우리가 할 것은 무엇입니까? 먼저 , 장막터를 넓히고 휘장을 널리 펴야 합니다(2). 

장막터가 좁으면  여유가 없어 양보보다는 팍팍하거나 조급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고후6:13). 

솔로몬처럼 하나님께서 은혜로 넓은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왕상4:29-30). 

마음은 우리의 삶의 그릇과 같아서 마음의 크기가 넓혀질 때 풍성한 은혜와 온갖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또한 휘장을 널리 펴고 줄을 길게 하고, 말뚝을 견고히 해야 합니다. 줄을 길게 하라는 것은 넓은 땅에 텐트를 넓게 폈다면, 

그 텐트를 견고히 유지하기 위해 줄을 길게 하고, 믿음으로 말뚝을 견고히 박고, 팽팽하게 당겨 묶을 때 튼튼하고 안전하게 됩니다. 

이 줄은 기도의 줄로 아무리 넓은 터에 휘장을 넓게 펼쳤어도 이를 지속적으로 지탱하는 힘은 기도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지난날의 수치를 다 회복시키고 변화를 주시겠다고 하시며, 이제부터는 내가 네 남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4-5).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온 땅에 참 하나님이신 그 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이 나와 함께하신다면 무슨 일을 만나든지 형통하며 새 일, 새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과 함께 더 좋은 삶으로의 변화를 시도하십시오. 

결단과 적용

- 나는 신앙인으로 삶의 변화를 위해 어떻게 도전하고 있습니까? 

- 나의 인생에 있어서 어느 부분이 부실한지 점검해보고 다시 정리하세요. 

- 기도의 줄을 당기고, 믿음의 말뚝을 견고히 하고 살기를 결단합시다.  

오늘의 기도

온 땅에 충만하신 하나님, 우리의 형편을 잘 아시고 약속의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도전하는 인생이 되기 원합니다. 새로운 일들을 행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에 이런 은혜와 변화의 은혜를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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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의 크기가 고난을 이기게 합니다
인문학 나눔

“산이 높아야 골도 깊은 법이다. 이상이 높으면 생각도 깊어야 한다. 

얕은 생각으로 높은 이상만 추구하면 결국 분에 넘치는 허영으로 전락

하고 만다.  얻고자 하는 것이 크면 그것을 담을 그릇도 커야 하겠지. 

깊은 연못에는 잉어가 살고 깊은 마음에는 호걸이 산다.” 

 

이외수 저(著)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해냄, 32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어떤 낚시꾼이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낚시꾼은 오른손에 낚싯대를 들고 

왼손에는 25센티미터 짜리 자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기를 

잡을 때마다 왼손에 들고 있던 자로 물고기 길이를 재보았습니다. 

고기가 자의 길이보다 크면 버리고 작으면 그릇에 담았습니다. 

이를지켜보던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 묻자 낚시꾼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집 프라이팬은 지름이 25센티미터입니다.  프라이팬보다 더 큰 것은 먹을 수 없어서요.”

낚시꾼은 25센티미터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제자 하나가 매사가 불만이었습니다.  

스승은 어느 날, 제자에게 소금 한 줌을 가지고 와서 한 컵의 물에 풀어 마시게 하고는 묻습니다.  

“맛이 어떠냐?”  제자가 대답합니다.  “짭니다 ”

이번에 스승은 제자를 호수로 데리고 갔습니다.  

소금 한 줌을 호수에 풀게 하고 호수 물을 한 컵 떠서 마시게 했습니다.

“소금 맛이 느껴지느냐?” “아니요!...”

소금을  ‘고난’ 이라고 합시다.  인생의 문제는 소금의 양이 아니라 

용량의 문제입니다.  소금 없애는 싸움이 아니라 용량의 싸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없애 주시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의 그릇을 고난보다 크게 하셔서 고난을 이기게 하십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민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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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3:8
고린도전서 15:10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For now we really live, since you are standing firm in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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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탄사를 외치며 사는 삶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것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어떻게 살다가 가든지

절대로 실패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모든 삶은 성공자의 삶, 승리자의 삶이다. 

지금은 사업이 좀 부진해도,

지금은 좀 건강이 힘들어도 또 진로 문제가 답답해도, 

내 존재의 중요성을 안다면 주저앉거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남과 비교하여 열등감에 빠지고.

자존감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비교할 수 없는 창조의 작품이라는

분명한 의식을 지니면 우리는 기죽을 필요가 없다. 

 -안두익 목사의 ‘진정 감탄사가 있는 삶’에서-

 

감탄사를 잃어버린 신앙인은 더 이상 신앙인이 아닙니다.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린 신앙은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감격이 남아 있는 한 

우리의 입술에는 감탄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매일 매순간은 아닐지라도, 삶 속에서 감탄하며 사십시오. 

남들처럼 부자는 아닐지라도, 건강하지 못해도,

출세하지 못했어도, 얼굴이 잘 생기진 못했어도,

오늘의 내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늘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늘 감탄사를 외치며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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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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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더러움을 씻는 샘 (슥 13:1-6)

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3. 사람이 오히려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 예언할 때에 칼로 찌르리라
4.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이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5.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
6. 혹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본문 해석

<그 날>(1절)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인 열국이 패망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 날>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도리어 축복의 날이요 사죄의 날이요 회복의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죄와 더러움을 씻을 수 있는 샘을 여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절). 죄는 세상 그 어디에서도 해결할 수 없고 씻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법과 재판은 완전치도 못하지만 현상적이고 피상적인 부분만 문제 삼을 뿐 양심과 영혼의 더러움은 전혀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2-3). 

찬송가 258장 <샘물과 같은 보혈>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 저 도적 회개하고서 보혈에 씻었네 /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 죄 씻기 원하네 죄 씻기 원하네 /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주님의 보혈로 모든 죄와 허물과 더러움을 깨끗이 씻으십시오. 전신을 목욕한 자도 먼지 많은 세상에 나가 살면 다시 손발이 더러워집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요 13:9-10). 샘물은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롭게 솟아나는 물입니다. 주님의 보혈도 골고다의 십자가로부터 마지막 재림 때까지 

끊임없이 솟아나 우리의 죄와 모든 더러움을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먼저 간 성도들과 천사들은 다 거룩한 모습으로, 

모든 더러움이 다 씻긴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천국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계 15:6).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 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계 19:8).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계 19:14).

결단과 적용

-우리가 왜 반드시 <죄와 더러움>을 보혈의 샘에서 씻어야 할까요?

-천국의 성도들, 천사들, 천군들은 왜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있을까요?

-찬송가 258장을 한 번 불러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이 세상에는 샘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목욕탕, 사우나장, 찜질방도 많아 누구나 쉽게 씻고 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샘으로는 저희의 죄와 영혼의 더러움을 씻어내지는 못합니다. 반드시 주님의 보혈에 씻어야 정결케 됩니다. 

부디 저희로 하여금 십자가 아래로 나아가게 하사 샘물 같은 보혈에 저희의 모든 허물을 씻게 해주시옵소서. 

앞서간 성도들은 천국에서 다 세마포 옷을 입고 있음을 기억하게 하사 늘 손발을 씻듯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안은 당신’이 ‘안긴 당신’을 만듭니다
인문학 나눔

“포옹을 통해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따뜻하게 안겨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지요.  

당연히 두 사람이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을

 ‘안은 당신’ 이 다른 사람에게  ‘안긴 당신’을 만든 것입니다.

 위로하는 당신이 위로받는 당신을 만든 거지요.”

 

김용규 저(著) 「철학 까페에서 시 읽기(웅진 지식하우스, 238쪽)」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하고 자살을 하려고 강가로 나갔는데,  

그곳에서 입시에 실패하고 자살하려는 소년을 만났습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자녀로 두고 있는 그는 소년을 위로하고 권면해서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고 나니 왠지 자신도 그 정도 일로 절망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소년을 위로하면서 자신도 위로를 받은 겁니다.  

이웃을 안을 때,  이웃에게 안기는 나를 만들게 됩니다. 

내가 먼저 주고 위로를 할 때 오히려 위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찢어지게 가난한 사르밧 과부를 그렇게 치유하셨습니다.  

누가 보아도 도움을 받고 살아가야할 존재인 사르밧 과부에게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냅니다.  

그리고 생명줄 같이 남은 음식을 엘리야에게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순종한 사르밧 과부는 끊기지 않는 공급을 받습니다.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왕상17:15,16)

 

하나님이 사르밧 과부의 아픈 마음과 고달픈 삶을 치유하신 방법이

“주고 포옹하는 삶”입니다.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불쌍한 자아를, 

나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의 자아로 바꾸신 것입니다. 

그림 큐티더 보기
시편 17:8
고린도전서 15:10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Keep me as the apple of your eye; hide me in the shadow of your wings

도서 큐티더 보기
현숙한 여인, 지혜로운 여인

성경에 현숙한 여인, 지혜로운 여인들이 많이 있다.  

 룻은 남편이 죽은 후 그 가정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며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공대 했다.  

그 효성이 칭송을 받았고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다.

그 오벳이 다윗왕의 할아버지이다. 

룻은 그 가정을 다시 세웠다 

요게벳은 지혜로운 여인으로  모세를 낳았을 때 

석 달을 숨긴 후 더 숨길 수 없게 되자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는 곳에 아기를 버려서 

그 공주의 양자가 되게 하였다.

요게벳은 모세의 유모가 되어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을 바르게 가르쳐 믿게 하였다.  

그는 훌륭한 어머니이고 여인이었다.  

-김찬종 목사의 ‘현숙한 여인’에서-

 

현숙'이란 "어질고 정숙하다"라는 말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오랫동안 태문이 열리지 않았지만

서원하며 부르짖어 아기를 낳아 서원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려 훌륭한 선지자로 만들었습니다. 

브리스길라는  남편 아굴라를 신앙으로 도와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내조를 하였습니다. 

안나는 결혼하여 7년간 남편과 살다가 과부된 지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그녀에게 장수의 복을 주셨습니다.

구주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뵐 수 있는 복도 주셨습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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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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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여호와의 날(슥 14:1-5)

1.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2.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
3.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이왕 전쟁 날에 싸운것 같이 하시리라
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5.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찌라 너희가 그의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

본문 해석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네 가운데에서 나누이리라>(1절). 

에스겔서가 전하는 <여호와의 날>은 또 이렇습니다. <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구름의 날일 것이요 

여러 나라들의 때이리로다>(30:3) 이사야서는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13:6).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욜 2:1-2).

여호와의 날이란 종말론적으로는 심판의 날이지만 역사의 과정에서는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리시는 날입니다. 

역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시는 날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날>은 양면을 가집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요 통곡의 날이요 죽음의 날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기쁨의 날이요 해방의 날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날은 어떻게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까요?

<회개하라>고 합니다. 죄악의 길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함을 회복하라고 합니다. 

요엘 선지자는 형식적으로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당하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2절). 

여호와의 날은 이토록 무서운 날이므로 진심어린 회개를 통해 그 날이 심판의 날, 통곡의 날, 캄캄한 흑암의 날이 아니라 축복의 날, 

은혜의 날, 구원의 날이 되게 하라는 게 선지자의 간절한 당부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부디 무시무시한 <여호와의 날>이 임해도 <모든 거룩한 자들은 주와 함께 하리라>(5절)하신 말씀에서 큰 희망의 빛을 보시기 바랍니다.

결단과 적용

-당신이 이해하는 <여호와의 날>은 어떤 것입니까?

-<여호와의 날>이 심판이나 통곡의 날이 아니라 승리와 구원의 날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엘서 2장이 말씀하는 <여호와의 날>을 설명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여호와의 날>은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해방의 날, 

승리의 날이지만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하는 이들에게는 심판의 날, 흑암의 날, 죽음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게 하사 여호와의 날이 축복의 날, 기쁨의 날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여호와의 날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가지고 더욱 종말론적 삶을 살므로 언제 그 날이 온다 해도 두려움 없이 맞을 수 있도록 예비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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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인가? 제자인가?
인문학 나눔

“예수님의 제자로 자처하는 사람은 널려 있지만 예수님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돌아보고 나서도 자신 있게 제자라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제자가 아니라면 뭘까?  그들은 그냥  ‘펜’ 이다. 

(중략) 펜은 관람석에 앉아 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사람이다. 

펜은 선수가 사인한 운동 셔츠를 벽에 걸어 두고 자동차 뒤에 갖가지 

범퍼스티커를 붙인다.  하지만 정작 경기에 나서지 않는다.  경기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거나 공을 차지는 않는다.  선수들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고 최근 기록을 줄줄이 꿰고 있지만 선수들을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고함을 지르며 응원은 하지만 경기를 위해 희생을 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응원하는 침이 자꾸만 패하면 그렇게 좋아하던 마음도 조금씩 식어가고,  

심지어는 다른 팀으로 옮겨 가기도 한다. 펜은 어디까지나 펜일 뿐이다.”

 

카일 아이들먼 저(著) 정성묵 역(譯) 「펜인가, 제자인가(두란노, 28,29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희생과 값지불은 하지 않으려는 반쪽 짜리 믿음, 

주님이 떡 줄 때는 열광하고 주님 때문에 고난이 오면 외면하는 사람,   

신앙 생활이 아닌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해 아는 사람,

예수님을 그저 여러 애인 중의 하나로 여기는 사람,

예수님을 가슴과 마음이 아닌 교양과 형식으로 만난 사람,

그러면서도 예수님 말이 나오면 눈물을 펑펑 흘리며 

최고의 신앙인인양 포장하는 사람.

나는 예수님의 펜인가 제자인가?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요6:6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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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5:14
고린도전서 15:10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This is the confidence we have in approaching

God: that if we ask anything according to his will, he hears us.

도서 큐티더 보기
손을 깨끗이, 두 마음을 버리는 것

 

신부가 신랑을 향하여

자신이 깨끗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랑만 사랑하고 딴 마음을 품지 않을 때만 할 수 있다.

신랑 되신 주님께 신부된 우리들이 일편단심 

정절을 바친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만 사랑하고 전적 의지할 때만 가능한 고백이다.

다른 것 다 즐기고 의지하면서

눈감고 기도할 때만 주님을 진정으로 의지한다? 사랑한다? 

이런 자를 주님은 받아들이시지 않는다.

어디 투자해서 돈 좀 벌었다 싶고, 자기만족이 충족되면 

기분에 흥이 넘쳐 하나님을 향해 사랑합니다. 의지합니다.

라고 고백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온전한 거룩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다.  

-윤희주 목사의 ‘바울의 소원’에서-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이 말씀은 특별히 말세에 사는 우리들에게 더 중요한 말씀입니다.

말세는 물질만능시대이기에 그렇습니다. 

금송아지가 이 땅을 지배하기에 그렇습니다.

이럴 때 절개 있는 일편단심의 신앙만이 

온전한 거룩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방법, 두 가지를 절대 잊지 마십시오. 

손을 깨끗이, 두 마음을 버리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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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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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은 같은 연단 금 같은 시험(슥 13:7-9)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8.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9.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본문 해석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7절). 

하나님은 때로 이렇게 당신의 백성들을 치십니다. 가혹하게 목자를 치사 모든 양들을 흩어지게도 하십니다. 

보통은 그들이 불순종했을 때, 죄를 지었을 때 치시므로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도 하시지만 

때로는 그들의 허물이나 잘못과는 상관없이 혹독한 시련이나 환난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흔히 우리는 당황하고 답답해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그런 자극과 연단이 

우리의 근신과 적당한 긴장과 영혼의 정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고난 때문에 시련 때문에 교회가 망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더 순수해지고 더 거룩해지고 깨어 기도하는 교회로 새로워졌을 뿐입니다.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8절). 

환난과 박해와 시련으로 삼분의 이가 다 떠나고 흩어져도 삼분의 일은 끝까지 남아 주님의 이름을 더 뜨겁게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믿는 자들이나 교회에 주시는 시련과 환난은 <은 같은 연단이고 금 같은 시험>(9절)입니다. 

은이나 금은 연단할수록 더욱 순도가 높아집니다. 불같은 시련을 가하시면 가할수록 불순물은 타 없어지고 더욱 정제되어 순결해집니다.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고난으로 환난으로 연단하시는 것도 바로 이점을 기대해섭니다. 

순도 높은 정금으로 거듭나게 하시기 위해 때로 은 같이 금 같이 시험하신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불같은 시련을 

원망이나 불평이 아닌 감사와 순종으로 감수하며 기도로 이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게 결국은 다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정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순도 99%의 정금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이기 때문입니다. 혹 지금 혹독한 시련 중에 계시다면 꼭 그렇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지금 나를 더욱 값진 존재로 거듭나게 하시기&nb sp;위해 연단하고 계신 중이라고 확신하시며 도리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분명 오래지 않아 더욱 투명해진 자신의 영성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결단과 적용

-신약 야고보서 1:2은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믿는 자들의 시련과 환난이 <은 같은 연단이고 금 같은 시험>이란 말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독한 시련을 통해 자신의 영혼이 더욱 순수해지는 체험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하나님은 저희를 위하시고 사랑하시므로 저희가 더욱 깨어있기를 바라십니다.

 나태하거나 잠에 떨어져 영성이 무디고 탁한 자로 남지 않고 언제나 근신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때로 불같은 시련을 주사 저희를 은 같이 금 같이 연단하신다고 했사오니 부디 이 말씀을 깊이 깨달아 감사하며 

시험을 견디고 환난을 이기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시련과 시험이 결국은  저희에게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됨을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같이 기도했는데 차이가 나는 이유
인문학 나눔

“감사만이 꽃길입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걸어가는 향기 나는 길입니다.

감사만이 보석입니다.

슬프고 힘들 때도 감사할 수 있으면

삶은 어느 순간 보석으로 빛납니다.

감사만이 기도입니다.

기도 한 줄 외우지 못해도 그저 고맙다 고맙다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날 삶 자체가 기도의 강으로 흘러 

가만히 눈물 흘리는 자신을 보며 감동하게 됩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감사 예천」입니다. 

기독 메시지

세계적인 신앙 명저 「기도」의 작가 오 할레스비의 간증입니다.  

그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 두 명의 성도를 오랫동안 관찰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같은 시간,  같은 열정으로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들을 지켜 보았는데 한 사람은 늘 평안하고 기쁨이 넘쳐나고, 

다른 한 사람은 늘 걱정하고 슬픔에 젖어 있었다고 합니다. 

“거의 같은 시간 같은 열정으로 기도했는데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오 할레스비는 그 이유를 깊이 묵상해 보니 바로 기도의 질(質)의 차이였음을 알았습니다. 

한 사람은 계속 이것이 부족하니 이것을 달라는 기도를 하였고, 

한 사람은 기도의 내용 중 70% 이상이 감사의 기도였다는 겁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린 사람은 그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넘쳐났던 것입니다. 

고든 맥도날드(G. McDnald) 목사님은 영혼에도 질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영혼의 질을  “영성” 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리고는 좋은 영성, 

영혼의 질이 좋은 사람일수록 감사하는 삶을 산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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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5:14
고린도전서 15:10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This is the confidence we have in approaching

God: that if we ask anything according to his will, he hears us.

도서 큐티더 보기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기부

몇 해 전, 한국 기부 문화의 이정표가 됐던 ‘김밥 할머니’ 

39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김밥 행상을 하며 번 돈으로

조금씩 땅을 사 둔 것이 50억의 큰 재산이 되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이 재산을 외아들에게 상속하지 않고

충남대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그렇게 고생해서 벌은 것, 자기가 움켜쥘 것 같은데, 

외아들에게 줄 것 같은데, 대학에 기증해 버렸다.

이 놀라운 일로 인해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기부는 

주로 할머니들 중심으로 이어졌다.

73살의 박일분 할머니 등등, 고생 고생해서 일생 모은 것을

어려운 이들과 필요한 곳에 나누어준 아름다운 이들이 있다.

-양의섭 목사의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에서-

 

평생 삯바느질로 모은 12억원을 

서울대 병원에 기증한 90살의 이순옥 할머니, 

옷장사로 모은 10억원을 역시 서울대 병원에 내놓은

74살의 김선용 할머니, 양로원에 살며 5억원을 

평창고등학교에 기증한 85살의 손성찬 할아버지,

적십자사에 10억원 상당의 건물을 기증한 문복남 할아버지,

이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어쨌거나 세상에서도 그러한데, 

‘선을 행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라’고 까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성도들에게 있어서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여러분의 재산, 선한 사업에 쓰고 나누어주십시오. 

지금 힘들다면 세상 떠날 때 그렇게 유언하고 떠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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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 (수)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당신에게 아둘람 굴은 어디입니까(사무엘상 22:1-5, 시 142편)

[사무엘상 22장 1-5절]
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
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로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이 다윗의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시편 142편]
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2.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
3.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나의 행하는 길에 저희가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4. 내 우편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5.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6.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
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

본문 해석

인생을 살면서 내가 가장 원했던 일들이 이루어졌을 때, 오히려 그 일로 인해 가장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다윗은 이스라엘에 혜성처럼 나타나서 골리앗을 물리치며 한 순간에 이스라엘의 영웅이 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사울이 그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자 그때부터 도망자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계속 쫒아 와서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가게 된 곳이 아둘람 굴입니다.

아둘람 굴은 석회암으로 된 동굴인데,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오늘 시편 142편 그 곳에서 다윗이 고백한 시편입니다. 

눈을 감고 아둘람 굴을 생각하며 이 시편 142편을 읽으면 참 은혜가 됩니다. 

그런데 이 곳에 다윗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환난 당한 자들, 빚진 자들, 마음이 원통한 자들 400명이 다윗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후에 다윗왕의 모든 날 동안 함께 하게 됩니다. 다윗은 진정으로 자신과 함께 할 사람들을 그곳에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아둘람 굴이 있습니까? 인생에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서 마지막 달려가는 자리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여러분을 위해 일하시고 준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그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평생의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오히려 실패이며 고난의 자리인 그곳이 하나님의 새롭게 일하시는 곳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고통과 위기가 하나님의 손에 잡히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와 가능성이 됩니다.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인데 이 ‘미드바르’는 말씀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다바르’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을 듣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광야, 아둘람 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며, 

그곳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찬양하기로 그의 마음을 확정합니다. 

 실패가 실패로 끝나지 않도록 우리도 아둘람 굴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 어둠 속 빛이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nbs p;

결단과 적용

- 나에게 허락하신 아둘람 굴, 절망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자리가 어디인지 생각해 봅시다. 

-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 보며, 다윗처럼 오히려 더 좋은 것을 채워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내가 생각하기 이 곳은 정말 나에게 절망의 자리이며 실패의 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곳에서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봅니다. 절망의 자리를 영광의 자리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나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부부싸움에 대한 성경적 근거?
인문학 나눔

“사랑은 ‘분별 있게’주고, 마찬가지로 분별 있게 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분별 있게 칭찬하고, 분별 있게 비판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과 더불어 분별 있게 논쟁하고, 싸우고,

맞서고, 몰아대고, 밀고 당기는 것이다...”

 

스캇 펙 저(著), 최미향 역(譯)「아직도 가야 할 길(율리시즈, 15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기에 ‘돕는 배필’을 창조하셨습니다.  

‘돕는 배필’ 은 우리말 성경의 다른 번역본에 ‘거들짝’(공동번역),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새번역) 등으로 번역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은 남성 중심적으로 곡해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즉, 여성(아내)는 남성(남편)을 돕는 존재로서 오직(?) 순종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본래 의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돕는 배필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에제르 크네그도’ 입니다.

‘에제르’는  ‘돕는 자’ 라는 뜻입니다. 

‘크네그도’는  ‘이와 반대되는’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적용하면 ‘돕는 배필’ 이란  ‘돕는 반대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스르며 돕는 자’ 라는 뜻입니다. 

아내는 남편에 대하여  ‘돕는 반대자’ 이기 때문에 때로는 찬성하고 

때로는 반대도 하며 가정의 조화를 이루어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과 더불어 분별 있게 논쟁하고,밀고 당기는 배필.  

이것이  ‘돕는 배필’ 의 본래 의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8)

그림 큐티더 보기
마태복음 5:10
고린도전서 1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Blessed are those who are persecuted because of righteousness,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도서 큐티더 보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얼마 전 파키스탄에서 차량 폭탄테러로 70명이 죽었다. 

테러범들이 교회 안에서 예배 중인 자들을 죽이려고

차량에 폭탄을 싣고 교회 안에서 폭발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자들에게 기뻐하세요. 계속 기도하세요.

그래도 감사하세요.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이라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옥에 가두든지, 지옥으로 데려가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은 계속 침묵하고 계신데 그런 상황에서도 감사해야 할까?

 -안두익 목사의 ‘감사의 샘물이 흘러넘쳐야’에서- 

  

이런 상황에 감사할 자신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감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병들었을 때 명의를 만나면 기쁘고 힘이 나며 

인생의 갈 길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안심이 됩니다. 

내가 마음의 상처로 지쳐있을 때 

조용히 손 내밀어 주는 친구가 있어도 힘이 납니다. 

환란 중에도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문을 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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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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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주님, 감사합니다(시 103:1-5)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본문 해석

행복은 감사의 나무에 맺히는 열매입니다. 누구든지 감사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은 소유의 넉넉함으로 행복이라는 열매를 거두려고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감사의 나무를 얼마나 잘 키웠는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특별한 사람들만이 아닌 누구라도 감사만 할 수 있다면 행복을 영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우리가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충분히 감사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여건과 조건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왜 감사하지 못합니까? 그것은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 누리는 것은 놀라울 정도이지만, 

그러한 것들에 감사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감사거리를 찾는 사람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장점을 찾아내고, 

생활은 낮게 보고, 사건은 너무 크게 보지 않고 작게 볼 수 있어야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감사가 풍성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다스리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다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고

선한 목자이신 그분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감사의 샘이 있습니다. 마을의 샘 근원이 마르면 

모든 마을 사람들이 고통 받듯, 감사의 샘에서 물이 더 이상 솟아나지 않고 마른다면 인생도 고통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마음에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마귀가 그를 시험하지 못합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에서 감사의 씨앗을 쪼아 먹고 불평과 불만의 가라지를 뿌립니다. 

오직 감사의 나무를 잘 키워온 사람만이 행복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먼저, 믿음의 사람들은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해야 합니다(1-2). 

다윗은 감사의 사람으로 그의 감사는 전부의 감사입니다. 본문은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반복하고 있는데, 

이는 여호와를 찬양하고 높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일반적인 은혜로 지내온 것에 대해 감사하자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모든 은택을 잊지 않고 감사함으로 드리는 찬송이 다윗의 감사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도하시며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베풀어 주신 모든 은택을 잊지 말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영육간의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3-4). 

조금 차원 높은 감사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면목없이 살았음에도 참아주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또한 영육간의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는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죄인이며 부족한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분의 인자와 긍휼로서 속량하시고 치료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한다면 반드시 감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보다 더 높은 차원의 감사가 있습니다(5). 그것은 어렵고 힘들어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해 주심을 확신하고 드리는 감사입니다. 

지금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깊은 고난에 빠져있는 나의 형편에서도 앞으로 나를 통해서 행하실 하나님의 일들을 바라보며,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하는 것입니다(합3:17-18). 그 분이 나의 앞길을 아시고, 이끄시고 인도하실 줄 믿고 드리는 믿음의 감사입니다. 

이러한 감사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실 것입니다(5).

결단과 적용

- 감사의 나무를 키워 행복이라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결단하십시다.

- 고난 중에서도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삶이 되도록 주님의 도움을 간구하십시다.

- 오늘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서 적용 가능한 구체적인 실천 목록을 작성해 봅시다.

오늘의 기도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삶이 주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감사하지 못한 점을 용서하시고, 이제부터 주님 바라보고 믿음으로 차원 있는 감사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더 저의 마음을 가난하고 청결케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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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
인문학 나눔

“귀족들의 여우사냥에 대한 파스칼의 관찰을 살펴보면 우리는 충격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귀족들은 자신들의 허영을 표현하려고 여우사냥을 즐겼습니다.  

당연히 얼마 되지 않아 프랑스에는 여우가 거의 전멸하는 상황이 찾아왔지요.  

그러나 귀족들은 그 이후에도 여우사냥을 계속했습니다.  

가난한 농민의 아이들을 잡아서 들판에 풀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우사냥이란 명목으로 그 불쌍한 아이들을 직접 사냥했지요.”

 

강신주 저(著) 「상처 받지 않을 권리( 13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여자는 허세를 부리는 남자를 경계하고, 남자는 허영심에 빠진 여자를 경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의 본 모습을 넘어서 자기를 크게 포장하여 과시하고 싶은 욕구, 이것이 허영입니다.  

허영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것으로,  남들 앞에 크게 높아지려는 인간의 죄성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생명이 넘치는 기쁜 삶을 살기 위하여 허영을 버리라고 편지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2:3)

여기서 ‘허영’ 을 영어 번역으로 보면  ‘베인 글로리!(vain-glory)’ 라고 되어 있습니다.  

‘글로리(glory)’ 란 말은 ‘영광’ 이라는 의미이고, ‘베인 (vain)’ 은 ‘비어 있다’ 는 뜻입니다.  

‘속이 비어 있는 영광’ 그것이 바로 허영입니다.  

허영은 헛된 것, 바람 같이 없어지는 것의 상징입니다.  

허영이 무서운 것은 자신 뿐 아니라 이웃의 삶까지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나만이 보일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허영에 사로잡혀 하나님이 지어주신 원본(原本)이 아니라,  

가짜 복사본(複寫本)으로 살아가려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 이 모습 이대로 영광 받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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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9
고린도전서 15:10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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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낙타는 매일 주인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면 주인은 낙타에게 적당한 짐을 실어 준다. 

주인이 욕심을 부려서 낙타에게 너무 많은 짐을 실어 주는 일은 없다.

그러면 얼마 가지 못해서 쓰러져 죽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만큼의 짐을 감당할 수 있는지 아신다. 

그래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짐만을 실어 주신다. 

성경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짐을 지워 주실 때는 우리가 넉넉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인생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든지 우리가 감당할 수 있기에 주시는 것이다.

-궁인의 [리액션] 중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은 행복합니다. 

내 삶에 얹어주시는 짐은 나만이 홀로 지고 가는 짐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감당할 만한 짐이라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주님은 짐으로 인해 우리를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그 짐은 항상 대신 지어주시는 짐이었습니다. 

인생의 모든 짐을 대신 지시고 계시는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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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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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두 얼굴
인문학 나눔

“결혼에 대한 잘못된 신화 가운데 하나는 결혼하면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이다.  

실제로 외로워서, 옆구리가 허전해서,  혼자 밥 먹기 지겨워서 결혼했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결혼은 오히려 더 깊은 외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  

외로워서 결혼한 사람들일수록 혼자일 때의 허전함과는 차원이 다른 외로움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최광현 저(著) 「가족의 두 얼굴(부키, 2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잠자리에서 다른 꿈을 꾼다는 의미입니다.  

혼자 있을 때보다 둘이 함께 있으면서 서로 딴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더 외로운 법입니다.

가족이 되었다고 저절로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외롭지 말라고 가족을 주셨는데,  가족 안에서 더 외로울 수도 있습니다.  

가장 친밀한 타자(他者)인 가족이 가장 큰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관계가 아름다울 때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졌을 땐  “그 여자” 라고 하였습니다.  죄에 빠지면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 

되고,  상대방의 목을 조입니다.  

따라서 서로 ‘거룩’을 추구하면 ‘행복’이 따라 옵니다.

거룩이란, 죄에서 떠나 하나님 앞에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가족이 거룩을 추구하면 사랑은 더욱 아름다워 지고, 행복이 따라 옵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고전13:6)

그림 큐티더 보기
마태복음 5:8
고린도전서 15:10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will see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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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조건 없는 사랑

행복한 인생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깨닫고 받아들여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도,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도 비극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비극은, 

사랑을 넘치도록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억울해하고 슬퍼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믿든 안 믿든, 

하나님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실 만큼 우리 인생을 사랑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서정오의 [목마른 인생] 중에서-

 

우리 삶의 넉넉함은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할 때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받는 것으로가 아니라 내가 먼저 나눌 수 있는 사랑도 포함됩니다. 

똑같은 사랑을 받아도 부족한 사람은 불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차별 없이 똑같은 사랑을 우리에게 흘려보내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 가운데 살아가면 그보다 행복한 인생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부족한 사랑으로 실망하셨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찾아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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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일 (토)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간구하는 심령(슥 12:7-14)

7.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거민의 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8.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거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9.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열국을 그 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본문 해석

본문에는 <애통>(사파드)과 <통곡>(마라르)이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됩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10절).

<애통>은 11절과 12절에도 계속됩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주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애통함이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이란 곧 내가 주님을 <찌른> 사건입니다. 내 죄로 인해 주님이 십자가에 찔림을 당하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은 다 십자가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애통해 하며 통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심령도 하나님이 은총을 부어 주실 때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허락하셔야 비로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생각하며 <애통>하고 <통곡>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내 죄로 인해 십자가에 찔리신 주님을 향해 울며 회개한 경험이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심령>(1,10절)은 <영>으로 번역하고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즉 하나님이 성령을 주사 나로 하여금 은총을 빌고 애통하는 

회개의 마음을 주시도록 구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은 우리 믿는 자의 필수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고 간구하는 심령으로 애통해하므로 죄 용서함을 체험합니다.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12-13절). 

맞습니다. 애통하며 회개하는 일은 다 따로 해야만 합니다. 각자가 해야 합니다. 회개는 누구도 내 대신할 수 없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죄를 애통하며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부디 각자에게 베푸시는 <간구하는 심령>의 은총으로 

자신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통회하는 축 복이 함께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믿는 자에게 반드시 <애통>과 <통곡>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회개의 <애통함>조차 내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각 족속과 그 아내들이 애통하되 각각 <따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 저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그래서 애통하며 통곡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조차도, 그런 결단조차도 주님이 은총을 베푸셔야 가능한 것임을 깊이 깨닫습니다. 

그리고 회개란 누가 대신 해줄 수 없고 오직 각자가 따로따로 주님 앞에 나아가 통회해야 하는 것임도 깨닫습니다. 

부디 저희에게 <간구하는 심령>을 허락하사 애통하며 회개하는 일에 결코 인색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물병 꽃병 꿀병
인문학 나눔

“마음은 빈 상자와 같다.  보석을 담으면 보석 상자가 되고,  쓰레기

를 담으면 쓰레기 상자가 된다.  병(甁)에 물을 담으면  ‘물병’, 

꽃을 담으면 ‘꽃병’, 꿀을 담으면 ‘꿀병’이 된다.  통(桶)에 물을 

담으면 ‘물통’, 똥을 담으면 ‘똥통’,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된다.  

그릇(器)에 밥을 담으면 ‘밥그릇’, 국을 담으면  

‘국그릇’, 김치를 담으면 ‘김치그릇’이 된다.”

 

임상국 저(著) 나부터 작은 것부터 지금부터 (행복에너지, 4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병(甁)이나 통(桶)이나 그릇(器)은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좋은 

쓰임이 될 수도 있고,  허드렛일에 쓰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도 그릇과 같습니다. 

사람은 그 마음 그릇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위대한 인생과 

천박한 인생으로 나뉘어 집니다.  마음의 그릇에 보배를 담으면 보배 인생이 됩니다.  

반면에 짐승의 생각을 담으면 짐승 인생이 되고 짐승 취급을 받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마음 그릇에 하나님의 말씀과 꿈을 많이 담아 둔 사람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과 꿈이 있는 사람은 얼굴이 해같이 빛납니다.  

반면 그 마음에 쓰레기가 가득한 사람은 얼굴도 인생도 쓰레기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이 성령의 그릇으로 변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딤전4:5)

 

날마다 신실한 기도와 말씀을 쌓으면 어느덧 우리 마음은 깨끗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꿈을 담는 그릇이 되어 갑니다

그림 큐티더 보기
마태복음 5:7
고린도전서 15:10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will be shown mercy.

도서 큐티더 보기
나의 위치

열정과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첫 번째 단계는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께 나아가면 그분은 우리를 가까이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약속된 것입니다. 

그 이상 무엇을 원할 수 있겠습니까? 특히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앞에 놓인 두 갈래 길과 

우리 안에 있는 두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삶의 축복과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 

더 좋은 소망의 즐거움 둘 다에 끌리게 됩니다.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찾아보십시오. 

-래리 크랩의 [네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려라] 중에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향해서 걸어가는 존재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 안에 있는 열정과 비전이 합당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됩니다. 

하나님과 세상에서 축복받는 삶을 소망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세상에서 나의 위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 걸음이 주님께 붙들려 있는 위치인지를 점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