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하나님은 나의 깃발(출 17:8-16) 외 3

鶴山 徐 仁 2017. 12. 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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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4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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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하나님은 나의 깃발(출 17:8-16)

8.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15.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본문 해석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후에 많은 문제가 돌출되었습니다. 밤낮의 일교차가 심한 광야의 길을 가야하기에 

좋은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40년을, 남녀노소가 함께 최악의 조건에서 가야하는 기약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들의 삶은 날마다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길이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하는 길은 어려움도 많았던 만큼, 하나님의 은혜도 풍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며 전진하는 저들에게 뜻하지 않은 호전적인 아말렉 족속이 공격해 온 것입니다. 

그 전쟁에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로 아무런 전투력이 없었던 이스라엘이 이겼다는 것입니다. 이는‘여호와 닛시’의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전쟁의 경험과 군대 숫자로 이겼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가는 길도 광야 인생길입니다. 

뜻하지 않은 문제들이 돌출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 나가겠습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원망하고 불평하고, 뿌리 없는 나무처럼 감당하지 못하고 

흔들립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의 거친 바람이 불어오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고난을 승리를 위한 

기회로 삼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여호와 닛시’의 삶을 살아가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문제가 생길 때 모세처럼 기도의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9). 하나님 앞에 문제를 펼쳐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문제가 어떤 문제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물어야 합니다. 시간에 쫓기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 때문에 기도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절대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없습니다. 

또한, 모세처럼 믿음의 지팡이를 잡아야 합니다(9). 모세가 40년 동안 양치기로 있을 때 지녔던 지팡이지만, 하나님의 종이 된 다음에는 그 지팡이는 용도가 달라졌고, 지팡이의 힘과 격이 달라졌습니다. 똑같은 지팡이이지만 하나님의 의해서 능력의 지팡이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nb sp;인생의 경영과 사업의 경영도 내 것이라 주장하지 말고, 소유권을 하나님께로 이양한다면 예측 불허의 상황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어린아이가 자신이 가진 것을 주님께 드렸을 때 기적의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이 기적은 함께 동역함에 있었습니다(10-12). 지도자 모세의 손을 들고 기도했으며, 그의 곁에는 아론과 훌,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여 나가서 믿음으로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사실 이 승리는 여호수아와 군대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역사에 기록해서 길이길이 남기라고 명령하십니다(14).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겼다고 

여호수아에게 말하라고 명령합니다. 자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나의 삶에 승리하신 부분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승리하는 삶의 비결은 여호와는 나의 승리의 깃발이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결단과 적용
오늘의 기도
인문학 큐티더 보기
진짜 절망에서 벗어나는 길
인문학 나눔

풍경(風景)이 풍경(風景)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중략)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거장 김수영님의 시 「절망」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진짜 절망입니

다.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이 있다면 그것은 회개의 기적입니다.  

악한 영 마귀도 초자연적인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마귀가 절대 못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성령의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능력 있는 역사가 바로 회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라는 존칭을 받았던 다윗을 기억하십니까?

다윗은 결코 완벽한 의인의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작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도 회개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해 진 이유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먹으면서 동시에 세 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실재로 선악과를 따 먹은 죄,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은 죄,

심지어는 자신의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린 죄. 

이것이 우리들이 벗어야 할 죄의 본성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기적을 가장 크게 맛보는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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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23
고린도전서 15:10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 'If you can'?" said Jesus. "Everything is possible for him who believes."

도서 큐티더 보기
체벌

체벌을 고민하기 전에 먼저 아이가 왜 말을 듣지 않는지 들어주십시오.

 또 잘못을 거듭한다면 아이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이 나이에 비해 너무 어려운 것은 아닌지, 

자녀의 성격이나 능력 차이 때문에 생긴 결과는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성경적 훈계는 벌(Punishment)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수정(Correction)과 훈련(Discipline)이 성경적 개념의 훈계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기에 나의 잘못을 다스려주며 고쳐 주시는구나‘라고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훈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훈계하기 전에 먼저 부모인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화가 나서 매를 드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앞날을 위해 교육시키는 마음으로 훈계하십시오.

-이기복의 [자라는 중이니까 괜찮아] 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신뢰가 깨지게 되면 더더욱 정죄하는 자리까지 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체벌의 목적을 잘 알고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마음이기에 중요합니다. 성경적 훈계는 벌이 아니라 

수정과 훈련을 위한 목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서로를 향한 신뢰와 사랑을 확인함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기회를 우리의 혈기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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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2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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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거짓 고소(스 4:7-15)

7.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8.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왕에게 올려 예루살렘 백성을 고소한 그 글에
9.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 동료 디나 사람과 아바삿 사람과 다블래 사람과 아바새 사람과 아렉 사람과 바벨론 사람과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과
10. 기타 백성 곧 존귀한 오스납발이 사마리아 성과 강 서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과 함께 고한다 하였더라
11. 아닥사스다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 강 서편에 있는 신복들은
12.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우리의 곳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13.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14. 우리가 이제 궁의 소금을 먹는고로 왕의 수치 당함을 참아 보지못하여 보내어 왕에게 고하오니
15. 왕은 열조의 사기를 살피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열왕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찌라 이 성읍이 훼파됨도 이 까닭이니이다

본문 해석

성전 재건을 반대하는 자들이 뇌물 공세로 관료들을 매수하여 성전 재건 허가를 막더니 이제는 다시 아닥사스다 왕에게 직접 고소장을 띄우기까지 합니다.

<...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의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7절).

그러나 그 글의 내용은 다 거짓이었습니다. 그들은 왕을 기만했습니다. 그럼에도 아닥사스다 왕은 그 내용도 자세히 검토하지 않고 그 모든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여 전격 성전 건축을 중단시킨 것입니다. 대적들의 고소 내용은 유다인들의 성전 개건과 예루살렘 성벽 수축을 지금 당장 중단시키지 않으면 이들이 결국 바사 제국에 대해 반역을 일으켜 결국 각종 세금과 조공을 바치지 않고 나아가서는 바사 왕의 통치마저도 거역하게 될 것이라며 모함했습니다.

이런 모함과 거짓 고소로 인해 막 시작한 성전 재건이 다시 16년 동안이나 중단되어야 했습니다. 대적들이 거짓으로 고소하고, 관료들에게 뇌물을 주고 

왕에게 아부하며 방해했기 때문에 유다 백성들이 꼼짝없이 당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왕궁의 소금을 먹었으므로 왕이 수치 당함을 차마 보지 못하여 

사람을 보내어 왕에게 아뢰오니>(14절) <왕궁의 소금을 먹는다>는 말은 백성들이 왕의 은혜를 입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고대 사회에는 소금이 귀했기 때문에 그런 은유적 표현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그들의 거짓 충성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권력에 대한 아부는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곧 그 한계를 드러냅니다. 다시 말하면 원수들의 그런 악의적이고도 교활한 모함과 훼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 선한 사업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사탄의 방해공작과 시험으로 하나님의 전을 재건하는 일이 잠시 중단되거나 그로 인해 일정에 차질이 오고 심각한 지연이 발생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시련과 역경을 통해 성도들은 더욱 하나 되어 성숙하고 하나님께는 더욱 풍성한 영광을 바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역경을 만날 때 더욱 기도하게 되고 깨어 근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디 대 적자들이 나를 거짓으로 고소하고 내가 하는 선한 일을 

훼방할 때 더욱 뜨거운 열정과 믿음으로 성전 재건에 박차를 가하는 불굴의 성도들이 되시길 간절히 빕니다.

결단과 적용

-당시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이 성전 재건을 방해했던 여러 가지 방식들을 한번 말씀해 보십시오.

-에스라 시대의 대적자들과 현대 우리 사회의 안티 세력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이 성전 재건을 막기 위해 권력자에게 거짓으로 아부한 내용을 정리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 전의 사건이지만 현대 사회의 대적자들과도 크게 다를 게 없는 얘깁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저희를 거짓으로 고소하기도 하고 남을 매수하여 저희를 공격하기도 하고 권력에 아부하여 공권력으로 

저희의 선한 일을 훼방하며 막기도 합니다. 시대가 변했지만 대적자들의 공격 패턴은 예나 지금이나 꼭 같습니다. 

저희도 더욱 깨어있게 하시고 근신하며 기도하게 하사 선한 일을 하다 낙심하거나 하나님의 전을 재건하는 역사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성령으로 단속해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두 번 행복했던 여자
인문학 나눔

“영국에 있는 어떤 묘비명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 두 번 행복했던 

여자가 누워 있다.  그녀는 행복했고, 그리고 그것을 알았다.’ 

우린 두 번째를 못하고 있죠.  그리고 대신 추억을 더듬으며 행복해 합니다.”

 

박웅현 저(著) 「다시 책은 도끼다(북하우스, 114-11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행복은 두 가지가 충족 되어야 합니다.

첫째 실재 행복해야 하고,  둘째, 그 행복을 느끼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녀는 행복했고,  그리고 그 행복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두 번 행복했던 존재입니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두 말할 것 없이 가련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행복을 주셨건만 그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감사하지도 않는 사람 

또한 불쌍한 인생입니다. 시인(詩人)은 발견자입니다.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에 있는 바스러질 듯 연약한 것들,  

아무렇지도 않게 널부러져 있는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 시인입니다. 

신앙인은 모든 일상에서 감사의 고백을 하는 자들입니다.  

감사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인정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심지어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감사할 때 주님이 주신 행복이 보입니다.  감사할 때,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때,  두 번 아니, 천 번 행복한 존재가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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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4:12
고린도전서 15:10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So it is with you. Since you are eager to have spiritual gifts, try to excel in gifts that build up the church.

도서 큐티더 보기
영적 잠

영적 잠을 자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이렇게 내일을 포기해 버린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믿음의 결핍, 혹은 작은 믿음 때문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더 좋은 미래를 준비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 미래를 위하여 땀 흘려 일할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그냥 지금 당장 조금 더 자고, 조금 더 먹는 것 외에는 딱히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인생을 향한 경고가 무엇입니까? 결국 게으름, 

곧 나태함은 그가 좀 더 자고 싶은 편안함, 

좀 더 먹고 싶은 여유와 자유까지 빼앗아 갈 것입니다. 

-이동원의 [함께 걷는 천로역정] 중에서-

 

우리는 주님이 하신 말씀을 늘 기억합니다. 

세월을 아껴야 하는 이유를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적으로 깊은 잠이 들어,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하는 이유를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육신적 자유함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로 

우리를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내일은 하나님이 주셔야 누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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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방해꾼들(스 4:1-6)

1.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하신대로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하였으며
6.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저희가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니라

본문 해석

포로지에서 돌아온 이듬해 이월 꿈에도 그리던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 기초를 놓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대성통곡을 한 것도 잠깐, 

사마리아에 살던 사람들이 그 성전 재건을 방해하고 나섰습니다.<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4절).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일에는 반드시 이런 방해가 따릅니다. 사탄은 교묘하게 사람들을 충동질하고 부추겨 하나님의 

전 역사를 훼방합니다.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1절).

본문의 <대적>이란 <차레이>라는 히브리말로 해를 끼치기 위한 목적으로 접근해 오는 <원수>들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렇듯 선한 일에도 꼭 대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분명 선한 일인데도 낙심이 된다고 합니다. 포기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같이 이루어진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업에도 만만치 않은 대적자들이 나타난 걸 보십시오. 그들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을 고발하며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 선한 일을 막았습니다. <...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글을 올려 그들이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을 고발하니라>(5-6절). 그래서 결국 거의 16년 동안이나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그 대적자들의 방해는 단순히 성전 재건만을 방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한 일은 결코 중단될 수 없습니다. 성전은 반드시 건축되고야 맙니다. 오히려 성전 재건을 방해한 세력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성도들은 사탄의 방해 책동에 굴하거나 물러서면 안 되고 오히려 믿음으로 싸워 이겨야 합니다. 

성도들이 사탄의 훼방에 겁을 먹거나 위축되어 멈칫거리는 동안에는 성전 건축에 아무런 진전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대적 자들의 집요한 훼방과 악랄한 방해를 물리치고 반드시 승리하시길 기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선한 일을 하는데도 낙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전을 재건하는 일에 여러 대적자들이 나타나 방해하고 고발하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에스라 시대 사마리아 사람들은 왜 유다인들의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막고 훼방했을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 놀랍게도 하나님의 전을 재건하는 일에도, 기적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한 선한 일에도 대적자들이 나타나 방해하므로 심각한 낙심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다시 한 번 저희의 믿음을 가다듬습니다. 부디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거나 하던 선한 일을 멈추는 사례가 없도록 저희를 깊이 깨우쳐 주시옵소서.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고 하셨사오니 끝까지 견디며 이기며 선한 일에 열심을 다하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나의 욕망 타자의 욕망
인문학 나눔

“우리의 진짜 문제는 세상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끌려다니는 

자신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욕망을 먼저 버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 정말 내가 원하는 스스로의 욕망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주체의 욕망(Desire of Subject)’이라 합니다. 

지금껏 나를 가동시켰던 세상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Desire of Alterity)’입니다.”

 

권희린 저(著) 「인생독학(허밍버드, 21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문화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d Girard)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지닌 게 아니라 타자의 욕망을 모방하여 내면화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를  ‘모방욕망’ 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 또한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고 선언합니다.  

욕망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스스로 욕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외부에서 충동된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부모와 선생님처럼 내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무수한 타자의 조합이고 우리의 자아는 타자들의 욕망으로 조립된 자아일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타자와의 관계성은 필수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처럼 되고자 하기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의 상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주신 최고의 명품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려고 하는 것은 모조품으로 살려는 것과 같습니다. 

가장 나다운 삶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좇아 사는 삶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3:14)

그림 큐티더 보기
고린도전서 15:49
고린도전서 15:10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And just as we have borne the likeness of the earthly man, so shall we bear the likeness of the man from heaven.

도서 큐티더 보기
믿음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많다. 믿음으로 한걸음 걸었지만,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고, 믿음만 흔들리는 때가 있다. 

믿음으로 시작했는데 망하고, 믿음으로 지원했는데 떨어지고, 

믿음으로 뛰어들었는데 급류와 같은 모진 고난이 오고, 

남들이 안가는 길 믿음으로 걸었는데 상처만 받고, 그러나 기억하라. 

하나님이 상류에서 일하고 계신다. 엄청난 급류를 상류에서부터 막고 계신다. 

조금만 인내하라. 나와 주님이 일하시는 사이의 현실만 다 흘러가면 된다. 

비록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위에서부터 기적을 행하고 계신다. 

당장은 요단강이라는 현실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조금 후 마른 땅이 나온다.

-궁인의 [리액션] 중에서-

 

우리는 믿음을 이해할 때, 철저히 현실에서의 반응만 생각합니다. 

어쩌면 일어난 사건에만 집중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준비되어 있음을 놓치고 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향한 구원의 손길을 열어가시고 계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가 믿고 의지하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나갈 길을 준비하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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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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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기쁨의 함성(스 3:8-13)

8.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이른지 이년 이월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 온 자들이 역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게 하매
9. 이에 예수아와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전 공장을 감독하니라
10. 건축자가 여호와의 전 지대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11.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주는 지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전 지대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1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13. 백성의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느니라

본문 해석

꿈에도 그리던 유다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한 지 <이년 둘째 달에>(8절)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업에 착수합니다. 

<...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며>(8절).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10절).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훼파된 채로 방치되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재건하는 그들의 각오와 감격은 실로 남달랐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들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11-12절).얼마나 감격했으면 대성통곡까지 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을 허락하시고 예배당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해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전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복을 누리게 하시고, 또 말씀을 듣게 하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게 하십니다. 

또한 기도하며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게도 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성전과 관련해 너무나도 많은 감사와 찬양의 근거들이 있었습니다. 옛날 솔로몬 왕 때 건축한 아름다운 성전이 불타 없어졌으나 이제 다시금 하나님이 기회를 베푸사 그 성전을 재건할 수 있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했고, 

기적같이 무려 70년 만에 다시 고국으로 귀환하여 그 대역사에 참여하게 해주신 은혜에도 감사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이방인 왕 고레스를 감동시키지 않으셨다면 성전 재건은 불가능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뻐하며 함성을 올리며, 심지어는 대성통곡을 하며 감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늘 이런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길 진심으로 빕니 다.

결단과 적용

-당신은 이 시대 하나님의 전인 예배당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십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전을 위하고 재건하는 일에 헌신하신 적이 있습니까?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재건에 착수했을 때 왜 제사장, 레위 사람, 나이 많은 족장들이 <대성통곡>을 했을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 포로지에서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감격도 컸지만 불타고 무너진 하나님의 전을 복구하고 재건할 때의 기쁨과 감사는 그보다 더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큰 소리로 찬송했고, 기쁨으로 함성을 지르며 감사했습니다. 심지어는 대성통곡을 하며 감격했다고 합니다. 부디 오늘 저희들에게도

하나님의 전에 대한 이런 감사가 있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기도하는 예배당에 대한 보다 깊은 애정과 헌신의 마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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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의 끝은 끝장
인문학 나눔

“선물 포장지가 일 억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선물이 좋아야지.   

또 선물이 비싼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마음이 담겨야지.

체크카드가 금으로 만들어진 게 무슨 소용인가? 통장에 돈이 있어야지.

돈이 수백억 있은들 무슨 소용인가?  잘 쓸 줄을 알아야지.”

 

신영준 저(著) 「졸업선물(로크미디어, 8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속 빈 강정’  ‘빛 좋은 개살구’ 라는 말이 있습니다.  빛만 좋고 

맛이 없는 개살구보다는 빛은 좀 덜해도 맛좋은 참살구가 되어야 합니다. 

속 내용은 썩어 있는 데 포장지만 일 억이었던 사람들이 신약 성경에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입니다.  

주님은 이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였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23:27)

주님에 대한 참 사랑이 없으면서도 깊이 사랑하는 척 포장하는 인생!

포장을 넘어 치장을 하다가 화장을 합니다.  분장까지 합니다.  

그리곤 변장을 하다가 위장하고 환장까지 합니다. 그 마지막은 ‘끝장’입니다. 

포장 인생의 끝은 끝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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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6:9
고린도전서 15:10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Even though we speak like this, dear friends, we are confident of better things in your case--things that accompany sal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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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용서하기

용서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있을 때, 

혹은 나에게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일 때, 

분노는 더욱 커지고 용서의 길은 멀어집니다. 때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사과를 하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너는 말 한마디로 짐을 벗으려고 하느냐?’는 생각에 속이 뒤틀립니다. 

때로는 상처가 너무 크기에 용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용서는 어렵습니다. 

불가능해 보입니다. 용서하기가 싫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앙심과 증오와 원한을 통해 내가 벌하고 있는 사람은 정작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나의 원한과 증오심으로써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음을 아십니까?

-김영봉의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 중에서-

 

우리는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최고의 승리자는 관계의 승리자입니다. 

하지만 관계속에서 작고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상처를 관리하는 법을 알아야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처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게 와서, 결국 상처를 해결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내 자신이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상처가 상처를 주는 것은 원망과 증오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 자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