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아름다운 인생 작품(마 13:53~58 )

鶴山 徐 仁 2017. 9. 18. 13:12
9월 18일 (월)
아름다운 인생 작품(마 13:53~58 )
  
 

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살아가면서 이력서를 써야 할 때가 있고, 행정적으로 신상카드를 작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카드 안에는 직업란이 있지요.

예수님께서 만약 신상카드를 작성하셨다면 직업란에 무엇이라고 작성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자라나면서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 외에 나사렛이라는 지역을 별로 떠나본 적은 없으십니다.

나이 30세까지 아버지 요셉의 목수 일을 도와서 일하셨을 것으로 추측해 볼 때, 신상명세서에‘목수’라고 적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하시다 고향으로 돌아가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면서도
반응은 좋지 않았지요(55-56).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 쭉 성장했기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별것 아닌 것처럼 취급당하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원자를 보내시는 과정 속에서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세상에 우연이란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운데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목수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목수의 가정에서 30년 동안 생활하시는 과정을 통해 놀라운 영적인 비결을 깨닫게 하셨던 것입니다. 즉 쓸모없고 모난 인생들을 쓸모 있게 만들어주시기 위한 영적 비밀을 깨닫게 하심으로, 구원자로 쓰시기 위해서 목수의 가정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을 목적이 있어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을 다듬고 고치는 완전한 목수가 되십니다. 나의 인격과 삶의 구부러진 많은 부분이 있다면 그 분께 맡겨야합니다. 목수는 아무리 구부러진 나무도 다듬어 사용하기에 모든 목재의 가능성을 보고 적절하게 쓰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나의 모든 것을 보시면서 그 가운데서 가능성을 보십니다. 베드로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는 어부였으나 장차 너는 ‘게바’가 될 것이며, 지금까지는 고기 잡는 어부였지만, 장차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을 말씀하시며 그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마4:19). 우리는 미래를 너무 걱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만 목수의 눈에 발견되어 가능성만 인정되어진다면, 목수이신 주님께서 당신의 뜻에 맞도록 나를 다듬어 주실 것입니다. 목수는 목재의 가능성을 보고 계시듯이, 나를 향한 개인적인 목표를 하나님은 가지고 계십니다.
나의 인생을 참 목수이신 예수님께 맡긴다면, 나의 삶에 완벽하게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 모난 부분은 무엇인지 점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하십시오.
- 하나님께서 어떤 부분을 다듬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성격, 가치관, 육체 ...)
- 앞으로 계속 더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지 찾아봅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저를 이 땅에서 오늘을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주님께 내 인생을 믿음으로 맡기길 원합니다.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들을 다듬어 주셔서 아름답게 사용해 주옵소서. 주님의 뜻을 따라 순종함으로 이 시대에서 사명 다하게 하시옵소서

 
  
   
 

벌거벗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잘 고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의 증거입니다. 처음에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은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뒤로는 벌거벗은 몸을 부끄러워하며 나뭇잎으로 가렸습니다. 인간적인 비밀과 수치심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고 삽니다. 주님 앞에서까지 그러고 삽니다. 정직하고 솔직하게 우리의 추한 모습을 고백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런 고백이 공동체 가운데 있을 때 천국의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면 나의 약함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습니다.
-허운석의 [그리스도만 남을 때까지] 중에서-

 
   
 
  
 


우리의 회복은 감추는 것이 아니라 벌거벗음이 있어야 합니다.
수치스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다 드러내야 할 죄악이 그대로 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옷을 갈아입으려면 우리가 입고 있는 허례허식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에 대한 인정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로마서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Be joyful in hope, patient in affliction, faithful in prayer.

 
    
 
  
 FIM국제선교회 유해석 선교사
 5분칼럼(유해석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