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미래를 향한 도전 외 1

鶴山 徐 仁 2016. 8. 8. 11:06
8월 8일 (월)
미래를 향한 도전 - 창세기 12:1-4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라고 했는데, 다행스러운 것은 그 사이에 C(choice)가 있다는 것입니다. B로 시작해서 D로 끝나고 만다면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며 어떤 경우는 선택을 강요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선택에는 희생이 요구됩니다. 선택의 결과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응답했는가를 통하여 나를 살펴보십시다. 아브람은“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게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부르심 앞에서 순종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설정된 상황에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들이 있었을 것이고, 가족과 친척들과의 인간관계를 뒤로하고 75세에 소명에 응답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무리였을 것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11:8), 이 말은 선택하고 결단하여 행동화하기까지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고 확실하다면 순종하기 쉬운데,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큰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낫선 지방으로 이사를 가는 것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누구와의 만남도 불확실하다면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을 향한 소명 앞에서 하나님의 인격을 신뢰하고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4). 길을 떠난다는 것은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의 인격에 맡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나침반과 같습니다. 나침반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항해하는 선박이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파도를 무시하고 나아가면 등대가 보이고 소원의 항구로 나아갈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때론 이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경험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우라도 말씀하신 그분을 믿고 순종할 때에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의 귀한 믿음이며, 새로운 세계를 향한 도전입니다. 물론 이 믿음조차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선물입니다(엡2:8-9). 하나님은 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2-3). 이 약속의 축복은 부르심앞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결단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택하여 그와 그 가정을 통하여 거룩한 민족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됩니다. 믿음은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형이나 로봇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 기회를 주신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나를 부르신 분은 인간이 아니라,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명 앞에서 바른 결단과 선택을 통하여 미래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결국 그는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죽음으로 향하는 인생을 믿음으로 바르게 선택함으로 이를 통해 복된 삶의 향하여 도전함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었습니다.

 
   
   
 

-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부르심(달란트와 은사)을 받았는지 생각해 봅시다.
- 그 소명 앞에 바르게 선택함으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응하셨는지 지금의 나를 돌아보십시다.
-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면서 나의 약점은 무엇인지 관찰해 보고, 바른 믿음에 서도록 기도하십시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 불신과 탐욕으로 주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어리석게 살아가는 저를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주님만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옵소서. 그리고 말씀앞에 다시 서서 희생하고 순종함으로 새로운 신앙의 세계를 향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엄마

지혜로운 엄마는 자녀를 위한 기도 시간을 정한다. 일주일에 하루 자녀를 위해 기도의 날을 정하는 현명한 엄마도 있다. 자녀를 위한 기도 시간과 기도 날을 정하고 기도하라. 자녀를 주시고 맡기신 주님을 찬양하는 기도부터 시작하라. 특별히 자녀로 인한 감사를 스무 가지 정도 써보고 일일이 감사의 제사를 드리라. 기도하는 엄마는 강하다. 자녀를 하나님 뜻대로 키울 수 있다. 말씀을 따라 교육할 수 있다. 욕심을 내려놓고 이타적으로 살도록 양육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이끄신다면 세상 끝으로도 보낼 수 있다.
-박현숙의 [하나님 아이로 키워라] 중에서-

 
     
 
   
 


자녀의 인생을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이 사실을 아는 부모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음으로 자기가 아이의 인생을 움직이고 조정하지 않습니다. 자녀 교육도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때를 조정하려고 하기에, 사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사가 아니라 자녀를 위협하거나 무시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녀를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지, 소유물로 여겨 내 마음대로 조종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비상하라

 

위로 위로 하늘향해 비상하다
약속이 있는 곳, 소망이 있는 곳 그곳을 향해.

 
       
 
   
  신일교회 배석찬 목사
  그대의 창에 불은 꺼지고
   
   



8월 6일 (토)
여호와 삼마 - 겔 48:23-35
   
 

23. 그 나머지 모든 지파는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베냐민의 몫이요
24. 베냐민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시므온의 몫이요
25. 시므온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잇사갈의 몫이요
26. 잇사갈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스불론의 몫이요
27. 스불론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갓의 몫이며
28. 갓 경계선 다음으로 남쪽 경계선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바가데스 샘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29. 이것은 너희가 제비 뽑아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누어 주어 기업이 되게 할 땅이요 또 이것들은 그들의 몫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0. 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쪽의 너비가 사천오백 척이라
31. 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쪽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32. 동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 문이요 하나는 단 문이며
33. 남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 문이요 하나는 스불론 문이며
34. 서쪽도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갓 문이요 하나는 아셀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 문이며
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35절).

에스겔이 아직은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된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장차 <여호와 삼마>라는 이름을 갖게 될 것이라 예언하며 에스겔서를 모두 마칩니다. <여호와 삼마>란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는 뜻입니다. 죄악으로 인해 여호와의 영광이 떠난 것으로 보였던 예루살렘에 이제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 백성, 그 성읍 가운데 영원토록 함께하신다는 예언인데 실제 이 약속이 임마누엘이신 주님의 성육신을 통해 온전히 성취(요 1:14) 되잖습니까? 그러므로 <여호와 삼마>는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의 <임마누엘>과도 같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삼마>시고, <임마누엘>이십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심령에도, 가정에도, 교회에도, 사회에도, 민족 공동체 안에도 함께 계셔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고, 거기에만 우리의 진정한 생명과 희망이 있습니다. 여호와가 내 삶 속에도, 내 생애 가운데도 함께 계시사 내 인생이 <여호와 삼마>로 복되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시인 도종환은 <당신은 거기 계십니다>란 시에서 <여호와 삼마>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당신은 거기 계십니다 / 장미의 문을 지나 당신은 거기 계십니다 / 우리가 처음 당신을 만난 것은 / 절망의 골짜기를 헤매일 때였습니다 / 어둠 건너편에서 당신은 환하게 계시었습니다 / 상처 입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쓰러져 고개를 들었을 때 / 우리의 머리 바로 위에서 함께 울고 계시는 / 당신의 눈물을 만났습니다 ... >

항상 <거기에 계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여호와 삼마>의 은총이 늘 당신과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여호와 삼마>야 말로 에스겔서의 결론이자 에스겔 선지자의 최후의 예언이요 메시지임을 함께 기뻐하며 감사합시다.

 
   
   
 

-<여호와 삼마>와 <임마누엘>의 뜻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십시오.
-당신에게는 <여호와 삼마>에 관련된 간증이 있으십니까?
-에스겔 전체 48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이 있다면?

 
   
   
 

주님, 하나님은 어디든 항상 <거기에 계시는> <여호와 삼마>십니다. 저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십니다. 그래서 저희는 외롭지 않고, 고아가 아니고,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큰 확신으로, 생생한 체험으로, 늘 감사하며 기뻐하며 승리하는 저희들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동안 묵상한 에스겔서의 말씀이 저희의 영성과 경건생활에 큰 깨달음과 참된 양식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이기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에 나 중심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다른 사람을 그 사람을 위해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은혜의 공급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모든 사랑의 능력은 나의 것이 아니라 전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단순히 동정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마음과 물질 그리고 계속 할 수 있는 힘을 다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이런 사랑은 고갈되는 법이 없습니다.
-김서택의 [가장 위대한 계명] 중에서-

 
     
 
   
 


인간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죄를 짓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본성 때문에 사랑이 미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을 노래하고 외쳐도 부족한 사랑이며, 수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 사랑을 알게 되면, 사랑은 사랑을 낳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이 사랑하려고 하면 힘이 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심판 날에 담대하게 서길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타향의 꽃

 

우리 동네에서 흔하게 보던
그리 특별한 것 없던 그 꽃을
지구의 남반구인 이 먼 땅 아프리카에서 만났다.
여전히 고우며, 여전히 부끄러운 듯 살짝 고개숙인 너의 모습이 그리도 반갑다

 
       
 
   
  신일교회 배석찬 목사
  마음의 지성소에 주님을 모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