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아침

鶴山 徐 仁 2016. 7. 22. 20:29
7월 22일 (금)
아침 - 겔 46:9-15
   
 

9. 그러나 모든 정한 절기에 이 땅 백성이 나 여호와 앞에 나아올 때에는 북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하는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북문으로 나갈지라 들어온 문으로 도로 나가지 말고 그 몸이 앞으로 향한 대로 나갈지며
10. 군주가 무리 가운데에 있어서 그들이 들어올 때에 들어오고 그들이 나갈 때에 나갈지니라
11. 명절과 성회 때에 그 소제는 수송아지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 한 마리에도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12. 만일 군주가 자원하여 번제를 준비하거나 혹은 자원하여 감사제를 준비하여 나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그를 위하여 동쪽을 향한 문을 열고 그가 번제와 감사제를 안식일에 드림 같이 드리고 밖으로 나갈지며 나간 후에 문을 닫을지니라
13. 아침마다 일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한 마리를 번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리고
14. 또 아침마다 그것과 함께 드릴 소제를 갖추되 곧 밀가루 육분의 일 에바와 기름 삼분의 일 힌을 섞을 것이니 이는 영원한 규례로 삼아 항상 나 여호와께 드릴 소제라
15. 이같이 아침마다 그 어린 양과 밀가루와 기름을 준비하여 항상 드리는 번제물로 삼을지니라

 
   
   
 

<아침마다...>(13,14,15절) <번제와 소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초하루>도 그렇지만 <아침>도 첫 시간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초태생, 초실 등 그게 무엇이든 첫 번째 것은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이스라엘의 오랜 전통이자 율법이었습니다. 한 주간의 첫 날인 주일을 지키고, 새벽 제단을 쌓고, 소득의 첫 열매인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리는 행위에도 바로 이런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침 마다> 하나님께 번제와 소제를 드리듯 그렇게 첫 시간과 첫 열매를 성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복됩니다. 형식이 아니라 그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의 생애가 누구보다도 강건하게 하십니다. 실제 성경이 말씀하는 <아침>은 언제나 축복의 시간, 은혜의 시간, 기적의 시간이었습니다. 만나도 이른 아침에 내렸고, 홍해도, 요단도 다 아침에 갈라졌습니다. 여리고도 아침에 무너졌습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 5:3).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시 88:13).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 90:14).

부디 아침에 기도하고, 주일에 예배하고, 소득의 첫 열매를 성별하는 일에 소홀하거나 인색하지 마십시오. 유럽의 가톨릭 문화에는 장남은 사제로, 장녀는 수녀로 바치는 오랜 전통도 있었습니다. 자식도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념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바칠 줄 아는 결단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절실한 믿음의 기본이라 하겠습니다. 아침마다 하나님께 번제와 소제를 드리는 심정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고 주님의 성호를 찬양한다면 우리의 삶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은혜와 사랑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든 첫 번째 것에 대한 당신의 신앙적 견해를 말씀해 보십시오.
-당신에게는 <아침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한 간증이 있습니까?
-<아침>을 드리고 <주일>을 드린다는 것은 곧 그 날과 그 주간을 드린다는 뜻임을 알고 계십니까?

 
   
   
 

주님, 과거 이스라엘은 아침마다 번제를 드리고 소제를 드렸습니다. 아침은 하루의 첫 시간이요, 그렇게 하루의 첫 시간을 드리는 것은 곧 그 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는 사실을 뜻했기에 늘 이를 실천했습니다. 저희에게도 첫 번째 것을 성별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게 율법적인 형식이 되지 않도록 믿음으로 결단하게 하사 새벽에 기도하게 하시고 주일을 성수하며 소득의 첫 열매도 감사하는 믿음으로 기꺼이 드릴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이게 예수님과 함께 죽는 거구나

예수님은 이렇게 조롱하고, 욕하고, 모욕했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가만히 계셨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나 같으면 천군 천사들을 불러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간 뒤
그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고 증명하려 했을 것 같다.
증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들을 당장에 심판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당장 속은 시원했겠지만 결과는 어떠하겠는가?
사단의 승리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약로 목사의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는가’에서-

 
     
 
   
 


어떤 모욕과 비난, 조롱에도 끔쩍하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이게 예수님과 함께 죽는 거구나.
이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구나” 알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죽는 것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이고
누가 뭐라 하든, 억울하고 답답해도, 나를 증명하고 싶어도,
상관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왜? 나는 죽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만약 내가 죽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 몸은 그들의 말, 행동에 반응하게 되고 말 것이고
그러면 사단에게 지고 말 것입니다.

 
     
       
 

작은 위로

 

뜨거운 햇살아래
작은 위로
커다란 감사

 
       
 
   
  서울이태원교회 지성호 목사
  지혜의 삶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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