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큐티 모음

鶴山 徐 仁 2015. 1. 30. 16:23



우리의 작은 것이 마중물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는 모든 것들은 주님이 주신 것이고, 원래부터 주님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것을 조금 나눠 달라고 하시는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의 작은 것들을 통해 주님의 부요함을 선물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작은 것이 마중물이 되어 주님의 축복을 퍼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마중물이란 땅속에 깊이 내려가 있는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펌프에 붓는 물입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 드렸던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가 마중물입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에게 대접했던 마지막 밀가루 한 줌이 마중물입니다.
-서정오의 [목마른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중에서-

우리는 큰 것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작은 것을 드리고, 적은 것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어떤 사람에게는 전부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마중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전부를 드렸습니다. 작은 것을 드리는 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드리는 훈련이 있어야 내 인생과 비전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작은 것도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때, 세상 모든 것이 다 귀함을 깨닫고 소자에게도 기쁨으로 냉수 한 그릇을 대할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작은 것을 귀하고 보는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시편 20: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May he give you the desire of your heart and make all your plans succeed.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율법과 은혜의 관계 - 출애굽기 20:1-2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우선순위란 무엇을 먼저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가에 관한 리더의 자기 판단입니다. 현대인들은 매우 복잡한 사회관계와 인간관계 가운데 살고 있다. 예전에는 동창회 정도만 잘 나가도 자기관리와 인간관계 모두 ‘커버’할 수 있으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토요일만 되면 가야할 모임이 서너 개씩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것은 선택해야하고 어느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리더’로서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삶의 우선순위를 매겨야 할까요?
신앙인의 삶의 우선순위는 당연히 말씀입니다. 특히 십계명은 구원받은 성도가 우선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명증하게 제시한 말씀입니다. 십계명을 통해 우선순위를 생각해봅시다. 십계명은 그리스도인들이 감사와 결단과 순종의 마음으로 지키고 준행해야할 하나님의 말씀이며 계명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율법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는데 왜 율법을 지켜야할까요? 십계명을 지키는 것은 은혜의 길을 포기하고 다시 율법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닌가요? 아닙니다.
보통 ‘율법’은 무익하고 ‘은혜’만이 성도의 신앙생활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성경 어디에도 이런 해괴한 말과 사상은 없습니다. 바울이 선언한대로 율법 자체는 선하고 의롭고 거룩한 것입니다(롬7:12). 문제는 그것을 ‘자기 의’의 도구로 삼으려는 인간의 완악하고 교만하고 죄악 된 마음입니다. 십계명은 ‘율법’의 형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십계명을 지킨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율법 그 자체는 인간을 구원하는 힘은 없으며, 구원은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율법 전체와 십계명이 무익하거나 폐해진 것은 아닙니다(마5:17, 롬7:12). 십계명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가 감사와 결단으로 순종해야하는 ‘계명’(commandment)입니다.
십계명은 “너는 이렇게 하라”는 어떤 고압적인 명령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구속해낸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선택과 구원은 그들이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신4:37). 율법 다음에 은혜가 오는 것이 아니라, 은혜 다음에 “너는 하라”는 율법과 계명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순서를 뒤집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 역시 넓은 의미에서 은혜의 한 방편임에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이 바르게 살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신8:1).

[적용]
-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성경적으로 정리해 봅시다.
- 나는 지금 삶의 우선순위를 정함에 있어서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나요?
- 나는 어떤 일로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는지 점검하고 하루의 우선순위를 적어봅시다.

[기도]
구원의 하나님, 무조건적인 선택의 은혜를 입고 구원받은 자로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갈 수 있도록 더욱 굳센 믿음 주시옵소서. 그리고 지혜로운 시간의 청지기로 우선순위에 따라 중요한 일을 감당하며 살 수 있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믿음의 모험


믿음의 모험을 하는 인생은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하는 인생이다. 수치와 두려움이 끊임없이 우리의 발목을 잡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수치와 두려움을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믿음의 모험을 하는 인생이다. 우리는 그렇게 전능자 안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십자가 앞에 서면 과거의 수치와 아픔과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길갈에 서서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안종혁의 [인생, 거룩한 모험에 던져라]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실 때, 이미 은혜의 모험을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주의 길을 갈 것을 믿는 은혜의 모험입니다. 우리 역시 지금 믿음의 모험, 은혜의 모험을 합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가는 인생입니다.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은혜의 옷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우리 인생을 세웁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돌아가지 않고, 관통하는 인생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믿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빌립보서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불안을 극복하라 - 열왕기하 6:14-17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현대인들 가운데 안정제를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만큼 현실과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은 불안해할까요? 미래를 알지 못하니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와 그의 사환의 이야기입니다. 아람 왕은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로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성을 에워쌌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사환이 성을 포위한 군사들을 보고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현실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사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을 에워싼 아랍 군사보다 더 많은 천군천사가 성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불신의 눈으로 보지 않아야 합니다.(15)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성도라면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보지 않아야 합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은 육신의 눈은 밝았지만, 영적인 눈은 소경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환처럼 육신의 눈으로만 보는 사람은 이성만 가지고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항상 사람의 판단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판단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인간적인 판단이 뛰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영적인 눈이 떠져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17) 아랍 군대가 완전 포위를 했지만, 엘리사 선지자가 평안했던 것은 하나님의 군대인 불 말과 불 병거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환은 문제를 보고 두려워했지만 선지자는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평안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절박한 상황에 있을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산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붙들고 계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20)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믿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 주십니다. 믿음의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안되는 것을 억지로 내가 해결하려 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슥4:6) 기도하는 한사람은 대단합니다. 가정을 위해 진실한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기도의 사람이 된다면, 그 한 사람 때문에, 가정이 안정되고 교회가 부흥하며 나라가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혼자 결정해 나가야 할 일들로 인하여 힘들고 지칠 때, 또는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 할 때마다 어떻게 해결 해 나가려 하십니까?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항상 기도하고 믿음의 눈으로 보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곁에서 항상 도움주시며 격려해 주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살면 승리하는 살을 살아갈 것입니다.

[적용]
- 좋은 환경에서도 불안과 두려움으로 힘들어 합니까?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 나의 믿음을 점검하고, 믿음의 성숙을 위해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십시오.
- 실제적으로 얼마나 기도생활에 집중하나요? 내 기도하는 시간을 작정해 봅시다.

[기도]
승리의 주 하나님, 험한 세상을 살아가며 불안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보고 믿음으로 맡기어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거룩한 성령님 기름부어 주셔서 다스림 받기를 원합니다. 강한 믿음, 역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부유한 사회


라오디게아의 교만은 전염성이 있어 그리스도인들은 그 몹쓸 병에 걸렸다. 자랑의 영이 교회로 스며들어 독을 뿜어댔고, 교인들은 은근히 뻐기며 자기만족에 빠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직설적으로 그들의 속을 들추어내셔야만 했고, 그래서 그분은 말을 빙빙 돌리지 않으셨다. 그들은 자기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눈멀고 벌거벗은 거지로 표현하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했고 과연 황제의 보조금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다.
-존 스토트의 [내가 사랑하는 교회에게] 중에서-

신앙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하나님을 겸손하게 찾는 것입니다. 자신을 자랑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고, 그분의 사랑으로 새로워지는 우리입니다. 지혜로운 인생의 건축자는 나의 자랑을 내려놓고 주님을 바라봅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시편 33: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For the word of the LORD is right and true; he is faithful in all he does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감사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 렘 30:18-24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
19.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
20. 그의 자손은 예전과 같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그를 압박하는 모든 사람은 내가 다 벌하리라
21. 그 영도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요 그 통치자도 그들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리니 그가 내게 가까이 오리라 참으로 담대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이 올 자가 누구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2.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3. ○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 위에서 회오리칠 것이라
24. 여호와의 진노는 그의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돌이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생각해 보십시오.포로로 먼 나라에 끌려갔던 사람들이 70년이 지나 다시 고국으로 귀환하여 폐허가 된 옛 성읍을 복원하고 거기서 예전처럼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된다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할까요? 도처에서 감사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밝은 모습으로 성전에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되돌아 갈 것입니다. 우리의 나날이 이렇듯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따라서 감사와 즐거움은 커녕 날마다 우울한 표정,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우리들에게 오늘 이 말씀은 대단히 소망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귀하게 하리라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19절).
사람이 존귀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힘이나 다른 어떤 인간적인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하나님이 높이시고 비천해지지 않게 하셔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신 26:18-19).
이런 찬양도 있습니다.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 모든 환난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 놀라지 말라 네 손 잡아 주리라 /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여호와가 높이시므로 그야말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존귀한 존재가 되시길 빕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22절).
유다는 여호와의 백성 여호와는 유다의 하나님, 이게 바로 전통적인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계약관계입니다. 일찍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체결한 계약관계의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과 맺은 사랑의 계약, 구원의 계약도 마찬가집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주, 우리는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그 계약은 어떤 경우에도 무효화되거나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게 또한 우리의 구원의 확신이고 사랑의 절대적인 신념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끓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롬 8:35, 38-39).
흔들리지 마십시오.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주님과 맺은 우리의 이 계약을 파기할 수 없습니다. 피로 맺은 주님과의 관계가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임을 확신하셔서 더욱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소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책임전가


인류의 문제, 타락의 결과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지상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는데, 남자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책임을 지는 자리가 남자의 자리입니다. 여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은 아직 거듭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아내가 잘못했던 애들이 잘못했던 집안의 가장 마지막 책임자는 남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책임을 전가하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셔서 그 죄의 책임을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새롭게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송태근의 [네가 어디 있느냐] 중에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통해 시작된 타락은 책임전가입니다. 죄에 대해 철저한 인정이 없이, 잘못을 덮으려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의 잘못도 책임전가입니다. 책임져야 할 일도, 책임져야 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한 영혼을 향하여 책임지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책임전가가 아닌 책임수용을 할 때 생명이 생명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마태복음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Jesus turned and saw her. "Take heart, daughter," he said, "your faith has healed you." And the woman was healed from that moment.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고칠 수 없는 상처 - 렘 30:12-17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13. 네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이 없고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
14.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많기 때문에 나는 네 원수가 당할 고난을 네가 받게 하며 잔인한 징계를 내렸도다
15. 너는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 네 고통이 심하도다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허다하므로 내가 이 일을 너에게 행하였느니라
16. 그러므로 너를 먹는 모든 자는 잡아먹힐 것이며 네 모든 대적은 사로잡혀 갈 것이고 너에게서 탈취해 간 자는 탈취를 당할 것이며 너에게서 노략질한 모든 자는 노략물이 되리라
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매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
<...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12절).
포로로 끌려간 유다인들의 처지는 사람의 힘으로는 고치거나 바로 잡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하고 참담했습니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거늘 그것을 짜고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 1:5-6).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
<네 송사를 치리할 재판관이 없고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13절).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에는 약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입니다. 그 어떤 명의라 해도 적절한 처방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상처가 갈수록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치명적이고 무서운 것이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입니다. 따라서 최선은 징계를 당하지 않고 심판을 겪지 않는 삶입니다. 그럼에도 유다는 결국 약도 처방도 없는 하나님의 호된 징계를 샀습니다.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많기 때문에 나는 네 원수가 당할 고난을 네가 받게 하며 잔인한 징계를 내렸도다>(14절).
맞습니다. 잔인한 징계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공의롭기에 잔인합니다. 그래서 무섭고 처방이 없습니다. 올해는 결코 이런 하나님의 징계를 자초하지 맙시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이끄시고 다루시는 방식을 깊이 이해합시다.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11절).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맹목적이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관대하지 않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새 살이 돋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며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주리라>(17절).
그렇습니다. 아무리 중한 병일지라도 하나님이 치료를 담당하시면 그 환자는 안전하고 또 반드시 치유됩니다. 현대의 치명적인 각종 암이나 지금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에볼라 같은 급성 전염병도 능히 고쳐 낫게 하십니다. 심한 피부병을 앓다 진물이 걷히고 각질이 생기고 딱지가 떨어지면 마치 아기 피부와도 같은 보드라운 새 살이 돋아납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그뿐 아닙니다. 여호와가 나를 고쳐주시면 내 마음도 영혼도 더욱 성숙해집니다. 아픈 만큼 자란다는 말이 맞습니다. 다른 아픈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새삼 건강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도 배우게 됩니다. 부디 올해는 고치시는 주님이 당신의 육신과 마음과 영혼을 온전케 하사 새 살이 돋아나는 아름다운 축복을 누리게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십자가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가르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곧 우리가 볼 수는 있으되 그 누구도 대신 질 수는 없는 십자가라는 점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에게 죄의 용서와 하나님과의 평화를 가져온다. 그의 고통은 우리를 구속하며, 우리의 고통은 이미 성취된 승리에 동참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삶은 여전히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온다.
-마이클 호튼의 [약함의 자리] 중에서-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아픔입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부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고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자유함속에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처럼 걸어가야 합니다. 십자가외에 세상을 이길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십자가가 고통인줄 알면서 우리는 의연하게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욥기 33:4>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The Spirit of God has made me; the breath of the Almighty gives me life.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책에 기록하라 - 렘 30:1-11
1.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무서워 떠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6.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어찌하여 모든 남자가 해산하는 여자 같이 손을 자기 허리에 대고 모든 얼굴이 겁에 질려 새파래졌는가
7.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8.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 버리며 네 포박을 끊으리니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으리라
9.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
1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나의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먼 곳으로부터 구원하고 네 자손을 잡혀가 있는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누릴 것이며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11.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그럴지라도 너만은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
30장부터 33장까지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이 책망과 경고였다면 여기서는 귀환에 관한 약속과 유다의 회복을 다짐하는 예언인데 이것을 하나님이 <책에 기록하라>(2절)고 하셨습니다. 왜요? 이 말씀이 곧 장래 세대를 위한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70년 뒤에 이뤄질 미래적 사건이기 때문에 기록해 두고 자주 확인해 보며 고난 중에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것이고, 또 그렇게 정확히 기록해 둠으로써 훗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체험하며 더욱 믿음에 견고히 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메시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약속이자 희망의 선포입니다.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3절).

앗수르에게 망한 북왕국 이스라엘도, 이제 막 바벨론에 패망한 남왕국 유다도 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 아닙니까? 비록 범죄하여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돼 적국에 사로잡혀 갔을지언정 훗날 반드시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징계하시고 징벌하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치유하시고 회복하시고 다시 귀환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마치 해산하는 여자처럼 고통을 당하여 얼굴이 온통 새파래질 만큼 경악스러운 변을 당할지라도 결국은 하나님이 그 환난으로부터 당신의 백성, 당신의 자녀들을 구하여 내신다는 말씀입니다. 혹독한 시련으로 산모의 고통과도 같은 아픔을 겪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그러나 <그 날>이 이르면 반드시 다시 구하여 냄을 얻을 것입니다.

네 포악을 끊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 버리며 네 포박을 끊으리니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으리라>(8절).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게 베푸시는 긍휼의 절정이자 완성은 그들이 다시금 자유롭게 그들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포로가 되어 이방인을 섬기지도, 포박을 당하며 멍에를 져야할 필요도 없도록 하나님이 그들을 자유롭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
사실 우리도 과거에는 다 죄의 멍에를 매고 세상과 마귀의 포로가 되어 전혀 자유인으로 살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사 더 이상 포로로, 노예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참된 자유인으로 살게 하신 겁니다. 문제는 우리가 참으로 자유한가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 누구의, 그 어떤 것의 노예도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비굴하거나 비겁하지 않고 당당한 자유인의 기상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주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는데 너희는 왜 종된 상태로 다시 돌아가려느냐며 준엄하게 책망합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을 비굴하게 만드는 모순과 분열을 겪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추상적인 인간에게 한 것도, 노예에게 준 명령도 아닙니다. 아니,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안에 있는 주체적 인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말씀이 아니라 아들된 자의 이해에 호소하는 아버지의 육성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부디 새해에는 언제나 참된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과거는 미래로 가는 에너지원


과거에 대한 우리의 감사가 부분적으로 그치면,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도 결코 온전할 수 없다. 없었으면 좋았을 일들, 다르게 풀리기를 바란 관계들,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 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싶은 실수들 때문에 원망이 남아 있는 한, 우리 마음 한 부분은 여전히 고립되어 새로운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과거 전체를 되찾는다는 것은 더 이상 좋은 일만 기억하고 궂은일은 잊는 것이 아니라 내 과거를 마음이 계속 변화될 기회로 대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변화되면 과거를 즐거이 기억할 수 있다. 과거 전체가 우리를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원이 된다.
-헨리 나우웬의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중에서-

사람들은 과거에 매여서 미래로 나가지 못합니다. 과거가 있기에 미래가 있습니다. 내 삶의 존재는 과거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과거의 아픔과 상처, 실패와 실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그것이 회복이며, 자유입니다. 과거는 우리를 과거에 매어놓지 않습니다. 다만 과거에 우리가 매여서 사는 것입니다. 과거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믿음도 온전해집니다. 과거는 내 인생의 한 부분이었기에, 남겨진 미래를 잘 가꾸면 아름다운 전체가 됩니다. 복음은 과거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부터 내 인생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신명기 7:1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그와 같이 행하실 것이요
You saw with your own eyes the great trials, the miraculous signs and wonders, the mighty hand and outstretched arm, with which the LORD your God brought you out. The LORD your God will do the same to all the peoples you now fear.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벧엘의 하나님 - 창세기 31장 11~20절
11.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15.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17.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태우고
18. 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19.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20.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야곱이 라반과 그 아들의 시기를 눈치 채고 아내에게 함께 도망할 것을 권유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이 진퇴양란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신 것은 바로 ‘벧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13절에 보면,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창세기 28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이 형, 이삭의 협박에 두렵고 앞길이 막막해서 밧단아람으로 도망칠 때, 바로 꿈속에서 사다리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만나주셨던 바로 그 장소가 벧엘입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하나님께 이렇게 서원했습니다.

20-22절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서원을 기억하셨고, 오늘 어려움의 순간에 그에게 나타나셔서 과거에 야곱이 서원했던 것을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밧단아람을 떠나서 고향땅으로 돌아가서 에서를 만날 용기를 주셨습니다. 야곱의 아내도 역시 야곱의 뜻을 따라서 함께 떠나기로 다짐합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라반이 두 딸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게 됩니다. 두 딸의 돈도 다 빼앗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서 레아와 라헬도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서원해놓고서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기억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신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야곱은 잊어버렸지만,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서 하나님께 반응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에 의해서 우리에게 응답하십니다.

오늘, 하나님께 서원했던 일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지키면서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실수하지 않고, 평안으로 살아가는 비밀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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