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軍)을 부정(否定)하는 사회 (필자 : 방석순)
개인이나 나라나 세상 돌아가는 일을 모르고 제 때 준비하지 못하면 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거듭 죽어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에 걸친 참화를 겪은 후 서애(西崖) 유성룡(柳成龍은) “아! 임진년의 전쟁은 실로 참혹했다. 두 달이 채 못 되는 동안에 서울, 개성, 평양이 함락되고 팔도가 거의 모두 적에게 넘어갔다.”고 한탄하며 「징비록(懲毖錄)」을 남겼습니다.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조심하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둔한 후손들이 그 뜻을 지키지 못해 기어이 똑같은 외적에게 나라를 송두리째 뺏기는 굴욕을 당했으니 얼마나 원통한 일입니까. 올해가 경술국치(庚戌國恥)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8월 29일 국치일이 다가오면서 새삼 일본의 강제합병과 강제노역, 문화재 강탈을 비판하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정작 그런 수모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100년 전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우리가 정말 깨어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교육방송(EBS)의 한 유명 강사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군의 존재를 부정(否定)하는 발언을 해 말썽이 됐습니다. 그 강사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선 시도 때도 없이 군을 흔드는 발언이 끊이지 않습니다. 국방의 능력이나 효율은 뒷전이고 마치 제 쌈짓돈 풀어내듯 병역 감면으로 선심을 베풀어 표를 얻겠다는 정치꾼들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재임 중 “아까운 나이에 군대 가서 몇 년씩 썩는다”는 야비한 표현으로 군대를 비하해 공분을 산 적도 있었습니다.
정말 군대는 의미 없는 존재, 필요 없는 조직일까요? 군 복무로 얻던 가산점도 없어진 마당이니 병역의무가 사라진다면 누구보다 젊은 남성들이 환호할 겁니다. 천안함 같은 사고를 면할 테니 그들의 부모들도 좋아할 겁니다. 국방예산이 전체 예산의 10%나 된다는데 30조원에 달하는 큰돈으로 여기저기 선심을 쓴다면 수혜자들도 좋아하고 정부도 찬사를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군대를 해체하고 국방을 포기해 버렸을 때의 결과는 역사에서 보듯 참혹할 뿐입니다. 이런 논란을 벌이는 것조차 어이없고 기가 차는 일입니다.
일본 교토의 히가시야마(東山)에 이총(耳塚)이라는 기이한 무덤이 있습니다. 왜란 당시 왜병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우리 군사와 백성들의 귀와 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 가지고 가 묻어놓은 것입니다. 히데요시는 그 숫자에 따라 병사들의 공훈을 매겼다고 합니다. 우리에겐 너무나 치욕적이고 한이 서린 역사의 상징물입니다.
정절을 지키지 못한 여자, 서방질한 여자를 ‘화냥년’이라고 욕합니다. 그 어원은 ‘환향녀(還鄕女)’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임진왜란을 겪은 지 30여년, 나라를 지킬 힘을 갖추지 못한 조선은 또 다시 만주에서 일어난 청(淸)의 침략을 받았지요. 남한산성에서 버티던 인조가 마침내 삼전도에 나아가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했습니다. 그리고 소현세자를 비롯한 수많은 백성들이 인질로 끌려갔습니다.
나중 몸값을 치르고 속환(贖還)된 여인들은 순절(殉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고국 땅에 돌아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손가락질 받고 쫓겨났으며 자진(自盡)하기도 했습니다. 나라에서는 이들이 강물에 심신을 씻음으로써 회절(回節)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했지만 ‘환향녀’는 부정한 여인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힘이 없어 제 혈육을 지키지도 못한 못난 나라 백성들의 자조와 회한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 흐름을 모른 채 중국에 사대하는 것이 국가안보책의 전부였던 조선으로서는 특별히 장수도 군사도 기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전란이 발생하기라도 하면 고위관리와 사대부들은 제 자식 빼돌리기에 바빴습니다. 하급관리들 역시 가진 자의 자식들을 빼주며 재물 챙기기에 골몰했습니다. 결국 돈도 빽도 없는 무지렁이 백성들만 농장기보다 못한 창칼을 들고 섰다가 적의 위세에 놀라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습니다.
나라의 주인이라는 왕이 제 목숨 구하고자 도성을 버리고 백성도 버리고 변경까지 도망갔던 나라였습니다. 왕위조차 버리고 차라리 압록강을 건너 중국의 신하로 귀부(歸附)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던 나라였습니다.
징비록에 흥미롭고도 한심한 전장의 묘사가 있습니다.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이 상주에 내려왔으나 모아진 군사는 한 명도 없었다. 뒤늦게 농부 수백 명을 끌어 모아 진법(陣法)을 가르치고 있는데 백성 하나가 왜적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귀띔했다. 순변사 이일은 낭설로 군사들을 혼란케 했다 하여 오히려 그 백성을 처형하고 나중 수상한 자들이 출몰하고 인근 숲에 연기가 피어오르자 그제서야 군관을 시켜 사정을 알아보게 했다.
군관이 말에 걸터앉아 졸병 두 명에게 고삐를 잡히고 느릿느릿 가는데 다리 밑에 숨었던 왜병이 조총으로 쏘아 떨어뜨리고는 군관의 머리를 베어갔다. 아군은 이 광경에 넋이 나갔다. 잠시 후 왜군의 대병력이 조총을 쏘며 몰려오자 이일은 활을 쏘라고 명령했다. 화살은 겨우 수십 보 날아가다 떨어져 적을 맞추지 못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이일은 말을 돌려 달아났고 조선군의 대열은 허물어졌다. 왜병에 쫓기던 이일은 말도 버리고 옷도 벗어버리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알몸으로 도주했다. 탈출한 몇 사람 외에 모두가 적에게 살해당했다.
부끄러운 역사를 뒤로 하고 단군이 나라를 세운 이래 비록 반쪽이나마 이 땅의 백성들이 지금처럼 여유부리며 살아본 적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나라를 지키는 군은 멸시의 대상이고 기피의 대상입니다. 힘과 돈을 가진 자들이 앞서서 칭병이나 원정 출산으로 자식들의 병역 기피를 도모합니다. 속셈을 알 수 없는 자들이 걸핏하면 군을 폄하하고 몰아세웁니다. 건강한 군을 만들기 위한 개선, 개혁이야 당연한 과제겠지만 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국가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자들이 득세하는 나라는 망하기 십상입니다.
최근 미국 영주권을 가진 한 젊은이가 눈 수술을 받고 자진 입대해 화제가 됐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보람을 느끼면서 조국의 문화도 배울 수 있다는 매력에 군 복무를 선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 앞서 군 복무를 마친 형, 두 아들을 고국의 군에 입대시킨 아버지도 소개되었습니다. 그날 외국 영주권을 가진 29명의 젊은이들이 함께 입대했다고 합니다. 해마다 그런 젊은이들이 늘어가는 추세라니 놀랍습니다. 갈등과 대립, 혼란이 끊이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올바른 국가관과 의식을 가진 젊은이들이 있어 이 사회의 발전은 계속될 수 있는가 봅니다.
<필자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 퍼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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