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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중에
단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기도한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기다리고 있으면, 오히려 믿음의 확신이 생기고 점점 더 강해지게 된다.
-앤드류 머레이의 ‘무릎기도’ 중에서-
더 빨리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시길 기도하곤 합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깊은 침묵 뿐. 그 고요함중에 낙심과 기대와 또 다른 희망이 교차합니다. 그리고 지금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같은지 비로소 생각하게 됩니다. 하루를 천년같이, 또 천년을 하루같이 보시는 주님. 가장 적절한 때를 아시며 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믿는 자의 소원을 미루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침묵은 결코 외면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고요한 중에 만나는 하나님의 위로야말로 곧 이를 승리의 증표임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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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가라하시면 |
우리의 상황이 멈추라고 이야기할 때에도 오늘의 날씨가 멈추라고 이야기 할 때에도 주님이 가라 하시면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늘 한 걸음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순종이 승리입니다. 녹색 불이 켜졌습니다. 달려가도 좋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1~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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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주원 현재 연극치료, 대안학교 교사 등 활동중 동덕여자 대학원 연극치료학과 재학중 유럽, 이집트, 쿠바, 멕시코 등 사진, 배낭여행 (2001~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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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석이여 - 시편 28:1-9 |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3.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옵소서 그들은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4.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행위가 악한 대로 갚으시며 그들의 손이 지은 대로 그들에게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그들에게 갚으소서 5.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 6.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8.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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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틴에는 바위가 많습니다. 다윗이 여기서 여호와를 “나의 반석”이라 한 것은 하나의 바위를 뜻한 것이 아니라 바위산을 가리킨 말이었습니다. 바위는 오랜 세월 제 자리를 지킵니다. 모진 풍상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든든하심 뿐 아니라 불변하심, 신실하심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비록 신실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늘 변함없이 당신의 언약을 이행하십니다. 언제나 든든한 바위산같이 그 자리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따라서 우리는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오직 반석되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손을 들고 주님을 자신의 반석으로 삼은 사람은 무엇이든 주께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1절). 이것은 가정일뿐 주님은 결코 부르짖는 자에게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은 절망감을 느끼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으라”(2절)는 말씀은 명심하셔야 합니다. 지성소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처소요, 손을 들라는 것은 하나님께 투항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백기를 들라는 말입니다. 기도의 가장 중요한 자세입니다. 기도란 하나님을 향해 항복하는 행위입니다. 손을 드십시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이 내 문제에 개입하십니다.
찬송함이여 주님을 반석으로 삼은 사람들의 두 번째 도리는 찬양입니다.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6절).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여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7절). 사랑이 영원하듯 찬양도 영원합니다. 믿음도, 소망도, 설교도, 기도도 천국에 가면 더 이상 필요없지만 찬양은 아닙니다. 천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찬양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찬양할 때 은혜와 축복을 베푸십니다. 찬양할 때 우리는 힘을 얻고, 근심과 걱정을 이기며, 소망을 느낍니다. 찬양에 인색한 사람은 훗날 천국 문화에 적응하기 힘듭니다. 지금도 천국에서는 앞서 간 성도들, 24장로들, 천군천사들이 찬양으로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찬양을 많이 하십시오. 진솔한 찬양, 고백적인 찬양, 기도하는 심정으로 가사를 음미하시며 영혼으로 찬양하십시오.
그들을 인도하소서 주님을 반석으로 삼고 사는 사람의 또 하나 중요한 책무는 바로 중보의 기도입니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9절). 다윗이 당하는 고통은 결코 그만의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전체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고통이요 시련에 다름 아닙니다. 따라서 올바른 기도는 결코 자기 폐쇄성에 갇히지 않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개인적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도”였습니다. 거기에는 “나”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우리”가 있을 뿐입니다. 원어상으로는 정확히 9번의 “우리”가 나옵니다. 기도는 이렇게 “개인기도”에서 “중보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중보기도가 많은 믿음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남을 위한 기도에 풍성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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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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