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각) 과테말라 시티 외곽의 고속도로. 구름과 맞닿은 까마득한 높이에 독수리들이 떼를 이루며 날고 있었다. 한 교민은 "이곳 갱단은 사람을 죽인 뒤 독수리밥이 되도록 던진다"고 했다.
지난 13개월 동안 1만명의 교민이 사는 과테말라에서는 무려 8명이 살해당했다. 납치됐다 풀려난 사람만도 4명이다. 게다가 '한국인 납치 리스트'까지 발견됐다. 기자가 보기에 이곳 갱단들은 '한국인 사냥'을 하고 있었다.
기자는 이날 두 건의 살인사건 현장을 따라가 봤다. 사건이 난 공장들은 모두 고속도로 주변에 있었고, 도심만큼이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인의 상식에서는 납치나 살인사건이 일어날 수가 없는 곳이다. 한 교민은 "이 마을 갱단 조직원만 500명"이라며 "경찰이나 목격자들은 범인을 알아도 보복이 무서워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눈앞에 일어나는 살인사건에 주변 모든 사람들이 침묵해야 하는 '사회적 공포'에 더 소름이 돋았다. 지금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공포가 과테말라 교민들의 목을 죄고 있다.
부자들은 픽업트럭 뒤에 보디가드를 태우고 다녔다. 기자가 신기해하자 안내를 해준 교민이 픽업트럭 옆으로 차를 붙였다. 갑자기 보디가드들이 총을 꺼냈다. 급히 창문을 열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사진을 찍으려던 기자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 고속도로 주변에는 여전히 한인들이 운영하는 봉제공장이 많았다. 한 봉제업체 사장은 "중남미 봉제업은 모두 한국사람이 일으켰다"며 "여기서 쓰는 기계며 부품, 사람, 기술까지 모두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했다. 1980년대 우리나라의 봉제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었을 때, 이들은 중남미 시장을 개척했다. 삼성·LG가 중남미 시장을 휩쓸기 전에 한국인의 손기술이 중남미를 선점했다. 이제 치안이 불안해졌다고 이들에게 먹고살 대책도 없이 무작정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교민들도 타국(他國)에서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공포 상황에선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들을 언제까지 이대로 둘 것인가.
- 정치부·조의준 특파원 joyjun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