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고려 궁중비사] 36. 崔氏政權 그 以後

鶴山 徐 仁 2007. 4. 1. 19:52
팔만대장경 최의를 죽인 김준 등은 곧 궁궐로 들어가서 나라의 실권을 왕에게 돌려주었다.
 
때는 고종 사십오년 삼월이었으니, 왕은 등극한지 실로 사십오년 만에 친히 정사를 돌보게 된 셈이다.  그러므로 왕은 크게 기뻐하여 김준을 장군으로 삼고 위사공신(衛社功臣)의 호를 하사했다.
 
이로부터 김준의 권세는 나날이 뿌리를 박기 시작했다. 곧 이어 우부승선(右副承宣)으로 승진했고, 그 이듬해 육월, 왕이 유경의 집에 갔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二十四대 원종(元宗)이 즉위하자 추밀원부사를 거쳐 참지정사가 되었다. 그리고 원종 오년에는 시중(侍中)이 되고 다시 해양후(海陽侯)로 봉해졌으니 지난날 최충헌이 누리던 관작과 비슷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김준은 그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변 초에는 자기 가문이 한미한 때문도있고 해서 민심을 무마하느라고 정권을 왕께 바쳤지만, 이제 그 지위가 신하로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자 차츰 왕을 누르고 국권을 자기 한손에 장악하려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원종 구년, 몽고에서 사신을 보내어 김준 부자와 아우 충(沖)을 입조시키라는 명령을 내린 일이 있었다. 김준은 비록 최씨에게서 정권을 탈취했지만 대몽고 정책만은 최씨 일문을 닮아 강경책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몽고에  입조해서 굽실거리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런 참인데 이때 장군 차송우(車松佑)가 곁에 있다가 권한다.
 
"몽고에 입조하시어 고생을 하시느니 차라리 사신의 목을 베고 몽고와 관계를 끊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김준의 마음에 꼭 맞는 말이었다.
 
이때, 원종은 오랜 강화도 생활을 청산하고 개성으로 환도해 있었으나 김준은 강화도로 다시 천도하는 한이 있더라도 몽고와 맞서 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김준은 즉시 왕을 뵙고 그 뜻을 상주했으나 몽고와의 관계가 험악해질 것을 원치 않는 왕은 이를 허락치 않았다.
 
김준은 하는 수 없이 물러나와 다시 차송우와 의논해 보았다.
 
"상감께서 굳이 허락치 않으시니 어찌하면 좋을까?"
 
그러니까 차송우는 음성을 낮추어 "왕손은 상감 한분 뿐이 아니외다. 왕손들이 얼마라도 있으니 갈면 그만 아닙니까?"
 
그 말을  듣자 김준은 마침내 왕을 없애고 몽고와 대항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래서 우선 몽고의 사신을 죽일 생각으로 도병마녹사 엄수안(都兵馬錄事 嚴守安)을 시켜 자기 아우 충에게 이 일을 전하도록 했다. 충은 마침 병으로 자기 집에 누워 있었다. 수안은 충을 찾아가자 김준의 뜻을 전한 다음, 그 일이 옳지  못함을 극력 강조했다. 
 
원래 엄수안의 사람됨을 존중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이 사리에 어긋남이 없으므로 곧 김준에게로 달려가서 이번 계교의 부당성을 말하고 중단하도록 충고했다.
 
김준에겐 충이 오른팔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므로 아우가 강경히 반대하는데 일을 강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계획은 일단 중단했지만 몽고에 입조하는 일만은 끝내 이행하지 않았다.
 
이 일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쳐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처음에는 김준의 공로를 가상히 여기던 왕이었지만 그 권세가 날로 강성해 가는 것을 보자 두려움을 품기 시작하던 참이었는데 이제 왕을 해칠 생각까지 가졌다고 하니 그를 미워하지 않을리 없었다. 기회만 있으면 김준을 없애버려야 하겠다고 근신들에게 비쳤다.
 
왕의 의향도 김준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김준은 적어도 겉으로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누가 나를 건드린단 말야? 지난날 국권을 한손에 쥐고 위세를 부리던 최의도 내 손에 죽었구,  또 최의의 재산을 풀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 일까지 있는데 내 비록 네거리에 나가 누워 있더라도 나를 해칠 사람은 없을 거야."
 
집안 사람들이 신변의 호위를 강화하라는 말을 할 것 같으면 김준은 이렇게 호언장담하기가 일쑤였다. 그리고는 더욱 위세를 보일 생각으로 자기 집을 크게 개축했는데 그때 이웃에 있는 민가를 모조리 헐어버리고 집터를 넓혔다. 집의 높이가 수십 척이 되었으며 마당의 넓이는 백보나 되었다. 그러나 그의 첩 안심은 오히려 그 규모를 비웃었다.
 
"겨우 넓힌다는 게 백보예요? 대장부가 어찌 그리 안목이 적으실까?"
 
그 말에 김준은 낯을 붉히고 아무  말도 못했다. 이 하찮은 일화는 그런대로 김준의 성격을 잘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로서는 굉장히 넓혔다는 마당이 겨우 백보 밖에 안 되었다는 것은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자란 때문도 있을 것이고 또 겉으로는 호방한 척하면서도 의외로 소심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왕을 폐하려고 거사하려다가 물러앉았던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후에 큰 화를 초래했는지도 모른다.
 
김준의 수하에 임연(林衍)이란 사람이 있었다. 용모가 괴상하여 두 눈은 벌의 눈같이 튀어나오고 음성은 이리의 목소리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몸이 가볍고 힘이 강하여 거꾸로 서서 두 손으로 땅을 짚고 기어가기를 두 발로 가듯했다고 한다.
 
그가 대정(隊正)으로 있을 때의 일이었다. 임효후(林孝侯)란 자가 임연의 처와 밀통을 했다.  임연은 이일을 알자 크게 노했다.
 
"네놈이 그런다면 내게도 생각이 있다."
 
임연은 임효후의 아내를 유인하고 관계를 했다. 말하자면 임효후에게 복수를 한 셈이었다.  그러나 임효후는 자기 허물은 젖혀놓고 임연의 처사만 괘씸하다하여 유사(有司)에게 고해 바쳤다. 그래서 임연이 죄를 받게 될 때 김준이 이일을 알았다.
 
"음, 그 사람 힘도 강하고 재주도 쓸 만한데 함부로 벌을 주긴 아까운 걸!"
 
그리고는 여러 가지로 힘을 써서 임연의 죄를 사하게 하고 오히려 벼슬을 올려 낭장(郎將)을 삼았다.
 
임연은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그 후부터 김준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의 명령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김준이 최의를 죽일 때엔 가장 앞장서서 활약을 했으며 그공으로 추밀원 부사가 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후 우연히 임연은 김준의 아들과 토지관계로 다투게 되었다.
 
"아니, 그 놈이 지난날의 은혜는 잊고 사소한 밭 한뙈기를 가지고 내 아들과 다툰단 말야?  내가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 지경이니 내가 죽은 다음엔 그놈이 얼마나 행패를 할까?  그런 놈은 앞으론 우리 집에 얼씬도 못하게 해라."
 
이 말이 임연의 귀에 들어갔다.
 
"큰일을 한다는 양반이 그렇게 공사를 분별하지 못한다면 어쩐담!  자기 아들 귀한 줄만 알고 자기를 도와 생사를 아까지 않던 부하를 소홀이 한다면 나도 생각이 있지."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임연의 처가 종을 때려죽인 일이 있었다. 그 당시로서는 그다지 문제 삼을 일이 못되었지만 임연을 미워하게 된 김준은 펄펄 뛰었다.
 
"남편이란 놈이 그 지경이니 여편네라는 것도 그 꼴이지. 그런 악독한 계집은 멀리 귀양이라도 보내서 혼 좀 내줘야겠다."
 
이 말이 또 임연의 귀에 들어갔다. 임연은 더욱 김준을 원망하게 되었다.
 
"어디 두고 보자. 네가 먼저 죽나 내가 먼저 죽나 두고 보란 말야."
 
이렇게 벼르고 있는데 하루는 강윤소(康允紹)라는 낭장이 찾아왔다. 강윤소는 원래 신안공(新安公)의 종이었는데 몽고말에 능통하고 간사한 꾀를  잘 부린 때문에 원종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윤소는 항상 왕을 가까이 모시고 있었으므로 왕이 김준을 미워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 손으로 김준이란 놈을 없애버린다면 상감께선 나를 더욱 총애하실거구 그 공으로 어떤 권세라도 누릴 수 있을 텐데.'
 
늘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일을 일으키자니 자기에게는 김준을 제거할 만한 힘이 없다. 자기보다 훨씬 권세 있는 자를 업고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물색하던 끝에 지난날 김준의 총애를 받았다가 틈이 벌어진 임연을 지목하고 찾아온 것이다.  여러 가지 잡담 끝에 강윤소는 슬며시 말을 꺼냈다.
 
"요즈음 부사께선 해양후와 사이가 좋지 못하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요."
 
그 말에 임연은 묵묵히 대답이 없었다. 강윤소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눈치를 재빠르게 알아차린 강윤소는 바싹 다가앉으며 말했다.
 
"실은 그 소문을 상감께서도 듣게 되셨답니다."
 
"상감께서?"
 
"예, 그리고 이건 입 밖에 내선 안 될 말씀이지만 상감 말씀이 임부사 같은 사람이 어째서 극악무도한 자를 내버려 두고 있나 하시던데요."
 
임연의 두 눈은 빛났다.
 
"그럼 상감께서도 김준이를 미워하고 계시단 말이요?"
 
"미워하시다 뿐이겠소? 그 자를 제거하는 용사가 있다면 일등공신을 삼겠다고 늘 말씀하시는 터이지요."
 
"음 그래? 그렇다면 내게도 생각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강낭장, 다시 한 번 상감의 뜻을 확인해 오시오."
 
임연이 이렇게 말하자 강윤소는 즉시 입궐하여 왕에게 임연의 뜻을 전했다.
 
"임부사가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충신이라 할 수 있다."
 
왕은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강윤소는 다시 왕의 뜻을 임연에게 전했다. 그러나 신중한 임연은 강윤소의 말만으로 거사하기엔 어딘지 불안스러웠다. 그래서 전부터 안면이 있는 환관 최은(崔殷)과 김경(金鏡) 등을 시켜 다시 왕에게 상주하도록 했다.
 
최은과 김경의 말을 들은 왕은 다시 "진실로 김준을 죽일 수는 있다면 그보다 더 다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말을 했다. 
 
그 말을 전해 듣자 임연은 마침내 최후의 결심을 했다. 그는 큰 꼬챙이를 많이 만들어 궤짝 속에 넣고 미리 궁중에 감춰 둔 다음 김준이 궁중에 입궐할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왕은 몽고의 사신을 대접한단 핑계로 김준을  궁중에 불렀다. 그러나 김준 일당은 신변에 위험을 느꼈던지 입궐하지 않았다.
 
"김준의 무리가 입궐하지 않는 걸 보니 일이 누설된 것이나 아닐까?"
 
왕은 몹시 근심한 나머지 밤잠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것을 보자 김경이 왕에게 아뢰었다.
 
"비밀이 누설됐다면 더욱 일을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급히 의논할 일이 있으니 입궐하라고 상감께서 직접 분부를 내리십시오."
 
이리하여 왕은 정식으로 김준을 부르도록 하고 그 명을 김경이 전했다.
 
이때까지도 김준은 신변에 위험을 막연히 느꼈을 뿐이고 임연 등의 계교를 알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왕의 분부를 전해 듣자 급히 궁중으로 달려갔다. 그래도 만일의 경우를 염려해서 아우 충과 몇몇 종자를 거느리고 들어갔다.
 
김준이 입궐하자 미리 임연의 명령을 받고 있던 최은이 좋은 말로 유인하여 편전 앞에 이르렀다. 
 
이때였다. 그 곳에 숨어 있던 임연과 그 부하들이 일제히 쇠꼬챙이를 들고 달려들어 김준을 찔렀다.
 
김준도 원래 녹록치 않은 장수였으나 불의의 습격을 받고 비틀거렸다. 이것을 보자 임연이 칼을 뽑고 달려든다.
 
"아니 네놈이 감히 애비라고 부르는 나를 해치려 하느냐?"
 
김준은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임연은 조소를 띠우고 "나를 살려 줄 때는 부친도 될 수 있지만 당신이 나를  죽이려 하니 원수가 될 수밖에 없지 않소." 이렇게 내뱉듯 말하고 한칼로 김준의 목을 베었다. 
 
그러자 김준의  아우 김충이 달려 왔으나 역시 형과 같은 운명이 되고 말았다.
 
이때 김준의 종자들은 궁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김준 형제가  피살되었다는 말을 듣자 궁중에 들어가 원수를 갚겠다고 문을 두드렸다. 이 소리를 듣자 김자정(金子挺)이란 환관이 달려가서 소리쳐 꾸짖었다.
 
"조용히들 못할까? 상감의 분부를 받잡고 김준 형제를 주살했거늘 너희들이 이제 궁중에 들어가서 무슨 짓을 하려느냐?"
 
이 말에 김준의 종자들은 기가 죽어 슬금슬금 물러가 버렸다.
 
김준 형제를 죽인 임연은 즉시 야별초(夜別抄)를 보내어 김준의 아들과 그 무리들을 모조리 죽여버렸으니 자기 상전을 죽이고 득세한 김준도 역시 상전과 같은 최후를 마친 셈이다.
 
김준이 죽게 되자 이번에는 임연이 득세하게 되었다. 임연은 처음 김준을 죽일 때 명분이 정권을 왕에게 돌리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그가 득세하자 그 야망은 김준이나 최씨 일문과 다를바가 없었다. 마침내 녹록치 않은 왕을 폐하고 안경공 창(安慶公 昶)을 세워 새왕으로 삼았다. 자기 마음대로 정사를 주무르기 위해서였다.
 
때마침 세자는 몽고에 가 있다가 귀국하였는데 사바부(娑婆府)에 이르러 임연이 함부로 왕을 폐립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다시 몽고로 돌아갔다.
 
세자의 호소를 듣자 몽고 조정에서는 사신을 보내어 함부로 왕을 폐립한 사실을 크게 꾸짖었다. 그리고 전왕을 복위시키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렇게 되니 임연도 압력에 눌려 안경공을 폐하고 전왕을 복위시켰다. 그 후 몽고에서는 임연의 죄를 문책할 뜻으로 그를 불렀으나 그는 가지 않고 자기 아들 유간(惟幹)을 대신 보내어 변명을 하게 했다. 
 
그러나 몽고 천자는 이미 세자의 호소를 들은 바도 있고하여 유간의 말을 믿지 않고 목을 졸라 죽인 다음 다시 임연을 불렀다.
 
임연은 마침내 몽고 조정의 압력을 제거할 길이 없음을 깨닫고 야별초를 각도에 보내어 백성들을 독려하고 몽고와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지나친 심려 끝에 울화병이 나서 원종 십이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임연이 죽자 그의 아들 유무(惟茂)가 그 뜻을 계승하여 끝까지 몽고에 항거하려 했다. 그러나 몽고에 갔던 세자도 돌아오고 왕과 세자의 신변을 몽고병이 호위하게끔 되었으니 임유무는 완전히 고립된 셈이었다. 그러한 터에 매부되는 홍문계(洪文系) 등에게 잡히어 버렸으므로 임씨의 세력은 완전히 꺾이어 버렸다.
 
이와 같이 되어 왕을 누르는 신하의 세력이 없어졌으나 그 대신 고려 조정에 압력을 가하고 정사를 간섭하게 된 것은 몽고의 세력이었다. 고려는 이제 떳떳한 독립국이라기보다도 몽고의 한 제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