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고려 궁중비사] 35. 武力의 末路

鶴山 徐 仁 2007. 3. 25. 01:48
팔만대장경 최의(宜)가 집권하게 되자 나이도 어리고 성품도 그다지 현명하지 못했으므로 어질고 유능한 부하들을 멀리하고 유능(柳能), 최양백(崔良伯) 등 간사한 무리들만 가까이 했다.
 
특히 최이는 김준을 꺼리었다. 부친 때부터 그의 심복이 되어 권력을 잡고 있던 김준이므로 자기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일을 오히려 지휘하는 경향이 있어서 최의에게는 누구보다도 귀찮은 존재였다.
 
최의가 차츰 자기를 멀리 하자 김준이 그 태도에 불평을 품게 된 것은 응당 있을 법한 일이었다.
 
이때 김준의 심복 송길유는 수로방호별감(水路防護別監)으로 경상도에 가 있었다. 워낙 욕심이 많고 잔인한 송길유는 백성들의 토지와 재물을 함부로 빼앗았으며 거기 항거하는 자가 있으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치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그가 백성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가한 혹형의 방법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참으로 끔찍한 방법이었다. 
 
두 손의 엄지 손가락을 묶어서 천장에 매달아 놓는다. 그런 다음 두 발의 엄지 발가락도 역시 묶어서 거기 큰 돌을 매달고 그 발 밑에는 숯불을 활활 피워 놓는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견디기 어려운 혹형인데 다시 장정 두 사람을 양 옆에 세워 차례로 쉴 새 없이 볼기를 치게 한다.
 
이런 형벌을 받으면 처음에는 억울하게 재산을 빼앗긴데 항거하던 백성들도 고통을 못이겨 그 재산을 자진해서 기부하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백성들이 무리를 지어 항거할 때에는 모조리 잡아다가 밧줄로 목을 묶어 연결시킨 다음 물 속에 던져 버린다. 한참 있으면 물에 빠진 사람들은 허우적거리다가 거의 죽게 된다.  그러면 다시 꺼내어 숨을 돌리게 한  다음 또 물속에 집어 넣는다.
 
이와 같은 잔악한 처사가 마침내 안찰사 송언상(按察使 宋彦庠)에게 발각되었다. 송언상은 즉시 그 사실을 도병마사에게 보고하고 도병마사는 다시 조정에 상주했다.
 
"에이,  바보 같은 놈!"
 
이런 사실을 최의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알게 된 김준은 입맛을 다시며 화를 냈다.
 
그러나 송길유로 말할 것 같으면 생사를 같이 하기로 맹세한 심복일 뿐 아리나 송길유의 악행이 최의의 귀에 들어가 벌을 받게 된다면 자기의 정치적인 세력에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김준은 전부터 가깝게 지내던 대사성 유경(大司成 柳璥)을 불러 의논했다.
 
"그렇다면 이 보고를 뭉개버릴 수밖에 없죠."
 
이렇게 돼서 송길유의 죄상은 일단 은폐해 버렸지만, 김준을 실각시키려는 유능, 최양백 등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즉시 이 일을 최의에게 고해 바쳤다.
 
"뭐라구? 김준이가 잔악무도한 죄인을 감싸고 내게 알리는 것까지 막게 한다?"
 
최의는 노발대발했다. 즉시 송길유를 추자도(楸子島)로 귀양 보내는 한편 김준 등을 불러 "네가 아무리 우리 선친의 총애를 받던 몸이라 하더라도 분수를 알아야지. 내가 알아야 할 극악무도한 죄인의 죄상까지 은폐하려 들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앞으로 내 앞에 얼씬거리지도 말라!"
 
이렇게 면박을 주었다. 이쯤되니 김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제놈이 뭐가 잘났다고 저렇게 깝죽대는 거야. 나만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국사는 김약선의 손에서 좌우될 것이고, 제놈의 신세는 한낱 종의 자식으로 형편없이 됐을 텐데 나를 푸대접 한다?  어디 두고 보자!'
 
벼르고 있는 참인데 신의군도령 박희실(神義軍都領 朴希實)과 지유낭장 이연소(指諭郎將 李延紹) 등이 은밀히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한다.
 
"아무래도 그 최의라는 놈을 없애버려야겠소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어떤 화가 미칠는지 알 수 없구료."
 
그들의 말을 듣자 김준도 자기 생각을 탁 털어 놓았다.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진지는 오래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일이 급하니 거사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겁니다."
 
이리하여 사월 팔일 관등날 저녁에 거사하기로 작정을 했다.
 
김준에게는 대재(大材)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대재의 아내는 바로 김준의 정적인 최양백의 딸이었다. 그러므로 김준이 거사를 한다면 필연적으로 장인이 되는 최양백도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대재는 차마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최양백에게 밀계를 누설했다.
 
"우리 일이 성공하면 장인 어른도 큰 화를 입을 테니 일찌감치 우리편을 들도록 하십시오."
 
최양백은 워낙 능란한 사람이라 대재의 말을 듣자 시침 뚝 따고 "일이 그렇게 됐다면 물론 그 편을 들어야지. 나는 원래  자네와의 관계로 보나 자네 어르신네 편에 가담할 사람이었지만 유능이란 자에게 말려들어가서 몸을 빼지 못하고 있던 참이니 이 기회에 내 태도를 명백히 하겠네."
 
이런 말로 대재를 구슬려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즉시 대재의 처인 자기 딸을 불렀다.
 
"너는 아무래도 대재와 이혼을 해야겠다."
 
대재의 처는 무슨 영문인 줄 알 수 없어서 부친의 다음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
 
"대재는 날더러 자기 편을 들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실권을 쥐고  있는 건 최공이고 또 이때까지의 인연으로 보아도 최공을 돕는 게 여러 가지로 유리하단 말야. 그러니 이제부턴 김준의 집안과 아주 손을 끊겠단 말이다."
 
최양백은 다시 사람을 시켜 유능을  불러왔다. 그리고 김준이 난을 일으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내 전부터 그럴 것으로 짐작은 했지만 기어코 일을 저지르는 군."
 
유능은 입맛을 다신다.
 
"그 자들의 난을 막으려면 우리가 먼저 손을 써야 하지 않겠소?"
 
최양백이 말하니까 유능은 "그야 그렇지만 벌써 이렇게 날이 저물었으니 어쩌겠소. 우선 야별초지유 한종궤(夜別抄指諭 韓宗軌)에게 글을 보내서 날이 밝는 대로 군졸을 거느리고 김준을 치도록 지시합시다. 그래도 아마 늦지 않을 거요."
 
두 사람은 이렇게 의논하고 최의에게 그 뜻을 알렸더니 최의도 두 사람의 계교대로 할 것에 응낙했다.
 
최양백 등의 계교를 대재의 처는 낱낱이 다 엿듣고 있었다. 먼젓번엔 부친의 목숨이 위태로운 걸 염려해서 비밀을 누설했는데 부친이 이런 태도를 취하니 어찌하면 좋을는지 알 수 없었다. 몰래 친정을 빠져나와 시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남편에게 사태가 변한 것을 알려 주었다.
 
"간사한 늙은이 같으니!"
 
대재는 급히 김준에게로 달려가서 이 일을 알렸다.
 
"그렇다면 오늘밤으로 거사할 수밖에 없구나."
 
김준은 곧 집안에 있던 장졸들을 거느리고 신의군으로 달려가서 박희실과 이연소를 만났다.
 
"비밀이 누설됐으니 한시도 지체할 수 없소."
 
이 말을 듣자 박희실과 이연소도 급히 서둘지 않을 수 없었다. 급히 자기네들에게 소속한 장졸들을 소집하는 한편 지유 서균한(指諭  徐均漢) 등을 불러 삼별초(三別抄)를 사청(射廳)에 모이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보내어 "영공(令公)께서 돌아가셨다."고 외치게 했다.
 
영공이란 곧 최의를 말하는 것이다.
 
최의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서울거리는 어수선해졌으며 김준의 심복은 말할 것도 없고 이때까지 어느편으로 가담할까 망설이고 있던 자들까지 모두 다 김준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정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잡기에는 김준의 신분이 너무나 미약했다. 김준 자신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큰일을 하자면 지도자가 필요하오. 대신의 자리에 있으면서 신망이 두터운 분을 추대합시다."
 
그리하여 추밀원사 최온(崔穩)을 추대하여 지도자로 삼았다. 그리고는 군졸들을 이끌고 최의의 집으로 향했다. 그날밤은 마침 안개가 심해서 최의의 집을 지키는 군졸들은 김준의 군사가 겹겹이 집을 에워싸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첫닭이 울 무렵, 김준의 명령이 떨어졌다. 김준의 군졸들은 일제히 최의의 집 벽을 헐고 안으로 들어갔다. 뜻하지 않은 기습에 최의의 군졸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왕좌왕하다가 혹은 참살되고 혹은 도망하여 최의는 마침내 김준 도당의 손에 죽고 말았다.
 
이것으로 최씨 일문이 사대를 누린 육십여 년 동안의 영화는 끝나고 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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