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고려 궁중비사] 32. 賤한 身分, 貴한 觀象

鶴山 徐 仁 2007. 3. 25. 01:44
팔만대장경충헌의 권세를 물려받은 이는 처음에는 정사를 일신하고 민심을 얻을 생각으로 많은 노력을 했다.
 
우선 충헌이 권력을 이용해서 모아들인 값진 보물들을 모조리 왕에게 바쳤다. 왕이 기뻐했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그 이듬해엔 충헌이 수탈한 공사(公私)의 전민(田民=논밭과 奴婢)을 각각 주인을 찾아 돌려주었으며 충헌에게 아부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던 탐관오리들을 숙청했다.
 
이렇게 왕과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만큼 처음에는 허황한 관직 같은 것은 탐내지 않았다. 그러기에 고종 팔년, 왕이 그를 진양후(晋陽候)로 봉하려 하자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실권만으로 끝내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상례이고 최이도 그 상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얼마 아니 가서 참지정사, 이부상서, 판어사대사(判御史臺事) 등을 겸임함으로써 명실 공히 실력자가 되었다.
 
이 무렵 몽고에서 사신을 보내어 도호부(都護府) 성 밖에 이르렀다는 보고를 동북면 병마사로부터 받았다. 최이는 전부터 고려 조정이 몽고에게 지나치게 저자세로 대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까짓 것들, 왔으면 왔지 뭘 그리 떠드는가? 병마사가 적절히 대접해서 돌려보내도록 하오."
 
이렇게 명령했다. 뿐만 아니라, 북면 여러 곳에 성을 쌓고 몽고 침공에 대비하도록 했다.
 
이런 처사를 보자 강력히 반대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특히 지주사 김중구(金仲龜) 같은 사람은 "북면 여러 고을이 글안병의 침공으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지 않소? 그러니 그 백성들이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하도록 돌보아 주는 것이 위정자 된 도리이건만 아직 적의 침공도 있기 전에 성을 쌓고 백성을 징발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몽고측의 반감만 사서 벌집을 쑤시는 격이 될 것이며,  한편으로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더욱 괴롭히는 결과가 될 게 아니요?" 하고 통렬히 공격했다.
 
그러나 최이는 "쓸데없는 소리 마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처사요." 이렇게 말하며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최이의 권세는 날로 강력해 갔다. 고종 십이년 경부터는 모든 정사를 궁중에서 처리하지 않고 자기 사제에 정방(政房)을 두고 처결했다. 그러므로 백관은 모든 문서를 최이의 사제로 들고 와서 재가를 받았으며, 그럴 때 육품 이하의 미관(微官)은 당(堂)아래 꿇어 엎드려 우러러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마치 왕을 배알하는 격이었다.
 
최이는 그 권세를 이용해서 자기 자신의 영화만 누렸을 뿐 아니라, 국사에도 힘을 기울인 바가 적지 않았다.
 
크게 격구장을 만들고 격구를 장려함으로써 장정들로 하여금 호협한 기상을 기르게 했으며,  문중에 학자들을 모아 학문도 크게 장려했다. 그러나 몽고에 대한 강경책은 마침내 큰 화를 불러들이고야 말았다.
 
고종 십팔년 팔월 경부터 침공하기 시작한 몽고군은 그 해  십이월 경이 되자 서울 성문 밖까지 쳐들어 와 사문(四門)밖에 분둔(分屯)하고 갖은 위협을 다 가했다.
 
이 동안 고려측에서는 군력(軍力)으로 맞서보기도 하고 외교적 절충으로 달래보기도 했으나 별로 신통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자 그 이듬해 육월, 최이는 강화도(江華島)로 천도하여 끝까지 항전할 것을 주장했다.
 
여러 신하들은 속으로는 거기에 대해서 반대 할 뜻도 없지 않았으나, 최이의 권세에 위압되어 아무 말도 못했다. 
 
이때, 갑자기 방문을 박차고 뛰어든 사람이 있었다. 야별초지유(夜別秒指諭)로 있는 김세충(金世忠)이었다. 김세충은 좌우를 한 번 훑어보더니,  최이를 똑바로 쏘아보며 소리쳤다.
 
"송경(松京)으로 말할 것 같으면 태조대왕 때부터 이백  여년 동안이나 지켜오던 유서 깊은 왕도(王都)요. 성지는 견고하고, 병력과 군량도 충분한 것으로 아오. 그러니 상하가 힘을 합해 사수하면 사직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거늘 이곳을 버리고 어디로 천도하겠다는 거요?"
 
비분강개(悲憤慷慨)해서 외치는 김세충의 말을 다 듣고 나더니 최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도 왕도로서 부족한 점이 있어서 천도하자는 것이 아니요. 적군이 성안으로 쳐들어온다면 워낙 사납고 무지막지한 놈들이라 상감을 위해서 수많은 백성들이 비참하게 욕을 당하는 게 두려워서 미리 그런 화를 막자는 거요."
 
여기서 잠깐 말을 끊은 최이는 한 번 날카로운 눈초리를 김세충에게 보내더니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적군이 절대로 성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는 묘책이라도 있단 말이요?"
 
김세충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슨 확고한 대책이 있어서 그런 주장을 한 것이 아니었다. 한 나라의 국도를 함부로 옮기는데 대한 명분과 감정에 입각한 주장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대책이 있느냐고 따져 묻는 말에는 대답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김세충이 대답을 못하는 걸 보자, 최이의 태도는 갑자기 준렬해졌다.
 
"아무 대책도 없이 함부로 반대를 한다는 건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요. 삼가토록 하오!"
 
이렇게 꾸짖은 다음 곧 강화도로 천도할 것을 결정하고 왕에게 진언했다. 
 
그러나 왕도 역시 정든 송경을 떠나 낯선 강화도로 가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망설이고 있으려니까, 최이는 관리에게 녹을 실어다 주는 녹전차(祿轉車) 백여 대를 빼앗아 자기 가재를 싣고 강화도로 날랐다. 그리고는 서울 거리 거리에 방을 내붙였다.
 
ㅡ 기일까지 서울을 떠나지 않는 자는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니 명심하도록 하라.ㅡ
 
그러나 백성들 역시 정든 송경을 버리고 외딴섬으로 이사가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모두들 최이의 처사를 원망하며 차일피일(此日彼日)하고 있었지만 최이 자신이 먼저 이사를 하고, 군사를 보내어 강화에 궁궐을 짓게 한 다음, 왕을 독촉해서 마침내 강화로 옮겨가게 하니 백성들도 하는 수 없이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강화천도에 반대하던 왕도 자리가 잡히고 나자 천도의 공으로 최이를 진양후(晋陽候)로 봉했다. 이것은 왕이 진심으로 최이의 공을 가상히 여긴 것이 아니라, 그의 과감한 행동력과 강한 압력에 굴복한 증거일 것이다.
 
최이를 진양후로 봉하자 백관들은 모두 그 일을 축하하게  되었고 이렇게 되니 최이는 한층 더 위의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므로 출입할 때는 마치 왕과 다름없는 위풍을 떨쳤으며 좌우에는 용력있고 풍채 좋은 장정을 거느려 호위케 했다.
 
최이가 거느리는 장정 중에 가장 총애를 받던 사람은 김준(金俊)이란 젊은이였다. 김준은 김윤성(金允成)이란 사람의 아들이다.
 
윤성은 원래 천한 종이었는데 기회를 보아 자기 옛 주인을 배반하고 한창 세도를 부리던 최충헌의 종이 되었던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의 아들이었던 만치 김준의 사람됨도 고운 편은 아니었지만 겉에 나타나는 용모와 태도는 지극히 부드럽고 겸손했다. 뿐만 아니라 힘이 강하고 활을 잘 쏘았기 때문에 그의 주변에는 유협자제(遊俠子弟)들이 항상 모여들었다.
 
비록 종의 아들로 태어난 몸이었지만 김준은 어려서부터 남모르게  큰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므로 제물 같은 것은 조금도 탐내지 않고 있는 대로 친구들에게 베풀어 인심을 샀다.
 
그날도 유협자제들과 어울려 활쏘기와 음주로 날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 노승이 지나치다가 걸음을 멈추더니 김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본다.
 
"스님, 사람의 얼굴을 어째서 그렇게 유심히 들여다보시오?"
 
김준은 얼굴에 담뿍 미소를 띠우며 부드럽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노승은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김준의 얼굴을 응시할 뿐이었다.
 
"스님께서는 관상을 잘하시는 모양입니다 그려."
 
김준은 다시 말머리를 돌려 물어보았다.
 
"예, 관상을 좀 보기 하오만… 당신 같은 상을 보기는 생전 처음이요."
 
"제 상이 그렇게 흉합니까?"
 
이렇게 말하면서도 김준의 음성은 한층 부드러워질 뿐이었다.
 
"그런 것이 아니외다. 하도 귀한 상이기에 그러는 거죠."
 
"귀한 상이라구요? 내 얼굴이요?"
 
김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내 말을 못 믿으시는 모양이구료. 그야 나 자신도 지금 내 눈을 의심하고 있으니까요."
 
그때 김준의 곁에는 박송비(朴松庇), 송길유(宋吉儒)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둘이 다 하급관리이지만 야심만만한 젊은이들이다. 그 중에서도 송길유는 성미가 강박하고 잔인한 인간이었다. 노승이 김준의 상을 보고 의미심장한 말을 비치자 그만 발끈 성을 낸다.
 
"이 늙은이야! 할 말이 있으면 속 시원히 빨리 할 거지 뭘 그렇게 꾸물거리고 있는 게야?"
 
그러나 박송비는 송길유와 반대로 성격이 대단히 유하고 너그러운 인물이었다.
 
"그러지 말게.  모처럼 관상을 보아 주신다는 스님 보구 그게 무슨 말인가?"
 
이렇게 길유를 점잖게 나무란 다음 노승을 향해서 "스님, 우리 친구의 상이 그렇듯 귀한 상이라면 그 까닭을 일러 주실 수는 없을까요?" 공손히 허리까지 굽히며 물었다.
 
송길유의 말을 듣고 불쾌한 빛이 완연하던 노승도 박송비의 말을 듣자 노여움을 거두고 "세 분은 절친하신 사입니까?" 묻는다.
 
"비록 세상에 태어난 날은 다르오만 죽는 날은 한날 한시에 죽기로 맹세한 벗들이요."
 
"그러시다면 큰일 날 소리지만 내가 본대로 얘기해 두겠소.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훗날 나라의 정사를 한손에 잡을 대 인재시오. 십분 보중하도록 하시오."
 
노승은 말을 마치자 더 자세히 캐물으려고 하는 세 사람을 남겨 놓고 표표히 사라졌다.
 
세 사람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송길유가 김준의 어깨를 툭 치며 "자네가 국권을 잡게 된다?  그 늙은이 별 소릴 다 하는 군!" 하고 껄껄 웃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지. 사나이라는 건 때를 만나면 얼마나 귀하게 될는지 아무도 예측할 수는 없는 거야. 우리 태조대왕도 그러하셨고 가까운 예로 진양후의 어르신네도 그렇지 않았느냐 말야. 우리 김한량두 때만 만난다면 그분들에게 지지 않을 만한 자질이 넉넉하지."
 
"그야 이를 말이겠소. 두 친구는 으뜸가는 공신으로  최고의 벼슬을 내리도록 하겠소."
 
김준은 입을 크게 벌리고 호협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기댈 언덕이 있어야 힘을 쓰는 법이니 김한량의 뒤를 보아줄 든든한 세력이 있어야 할 텐데…"
 
박송비가 혼잣소리처럼 근심을 하니까 송길유는 새카만 두 눈을 빤짝빤짝하더니 말했다.
 
"염려 마오. 내 진양후댁에는 줄이 좀 닿으니 어떻게 손을 써 봄세. 진양후는 늘 신변을 보호할 장정을 구하고 있는 터인데 김한량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르신네가 진양후의 어르신네를 모신 일도 있고 하니 어느 모로 보나 적임자가 아니겠소?"
 
그 후 박송비와 송길유는 여러 가지로 손을 써서 김준을 최이의 수하로 들여보내는데 성공했으며 최이는 김준의 사람됨을 보자 곧 마음에 들어 전전승지(殿前承旨)를 삼고 항상 곁을 지키게 했던 것이다.
 
김준이 최이의 좌우를 떠나지 않게 되니 자연히 집안 어느 곳에나 수시로 출입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되니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접촉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심중에 딴 뜻을 품고 있던 김준은 누구에게나 공손하고 부드럽게 대했다. 그러므로 상하가 다 김준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으며 그중에서도 많은 여종들과 몇몇 첩들은 젊고 준수한 김준에게 은근한 추파를 보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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