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으로 원내대표와 법무 장관을 지낸 천정배 의원이 어제 탈당했다. 지난주 임종인 이계안 최재천 의원에 이은 네 번째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염동연 의원도 곧 탈당할 거라고 한다. 오늘 중앙위원회와 다음달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여차하면 탈당할 의원들도 수십명이 넘는다고 한다. 침몰 직전의 배에서 탈출하는 행렬을 보는 듯하다.
이들은 ‘중도개혁 또는 민주, 민생개혁 세력이 주축이 된 새 정당 건설’을 탈당의 변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명분이나 설득력이 없다. 이들이 주장하는 새 정당이 3년 전 개혁정치를 내걸고 출범한 현 열린우리당의 노선이나 정책과 무슨 차이가 있을지 명확하지 않다. 탈당해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과 힘을 합치거나 아니면 반대로 보수적인 한나라당으로 간다면 그래도 이념에 따른 정치권의 재분화로 차라리 이해할 만한 구석이라도 있다. 별 차이가 없는 정당을 새로 만들자고 당을 떠나거나 깨자는 것은 일종의 꼼수다.
사실 거창한 이유를 대는 게 우습다. 올 대선과 내년 총선에서 희망을 찾지 못해 이들이 떠나는 것을 국민들은 이미 다 안다. 하지만, 정당 선택의 자유에 앞서 정치인에게는 책임의식이 요구된다. 여당 의원이 공동운명체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이나 남은 상태에서 미래가 어둡다고 탈당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정치도의적으로 말이 안 된다. 단지 인기가 없다고 해서 정치적 동지들을 내몰거나 결별하는 풍토를 보면서 자라나는 후세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특히 천 의원은 여당 원내대표와 법무부 장관을 지내는 등 이 정권에서 핵심 구실을 했던 사람이다.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는 탈출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남들이 탈출하는 것을 돕고 최후까지 남아서 배와 운명을 같이하는 게 아름답다.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이나 외부의 개혁지향적인 세력과의 통합이나 자체적인 쇄신 노력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열린우리당의 변화와 반성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시급하다. 하지만, 급하다고 중구난방으로 ‘결단’하거나 행동을 앞세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당 구성원들의 총의를 바탕으로 정당하고 당당하게 이뤄져야 한다. 필요하면 당내에서 치열하게 논의하고 투쟁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정당이다.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한겨레신문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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