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아직도 자기가 잘했다고 우긴다. 어이가 없다. 경제성장률이 이 정도면 괜찮다고 주장하지만, 누가 경제성장시키라고 노 대통령을 뽑아주었나? 중산층은 갈수록 붕괴되고, 집값 걱정, 사교육비 부담, 청년실업에 서민들 억장이 무너진다. 왜곡된 경제구조와 불공정한 경제질서를 개혁하리라던 기대도 저버렸고, 분배를 개선하리라던 예상도 어긋났다. 김대중 정부의 부정적 유산을 탓하지만 가계부채 500조원은 이 정부의 책임이 크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 탓에 개혁과 진보가 한통속으로 몰려 폄하되고 실패한 것으로 간주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개혁과 진보는 실패한 것이 아닐뿐더러 우리나라가 정말로 살기 좋은 나라, 선진적인 문화국이 되려면 반드시 추구해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개혁과 진보를 추구하다가 무능력으로 좌절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경제정책을 보면 처음부터 개혁과 진보를 저버리고, 기득권과의 타협과 구태의연한 관료중심 경제운영을 하며 재벌 의존형 성장정책을 펼쳤다. 정권 출범과 더불어 대두한 에스케이그룹의 분식회계 사건과 카드회사 채권문제는 경제현안을 통해서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절호의 기회였음에도 정부의 대응은 오히려 안정논리에 치우쳐 개혁을 실종시켰다. 개혁 후퇴의 적나라한 실상은 이른바 삼성공화국 시비를 낳은 금산법 개정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으며, 노동 개혁도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노무현 정부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진보적 분배정책을 추구한 적이 없다. 조세정책만 보더라도 참여정부 아래서 법인세·소득세·특별소비세 인하 등 고소득층에 압도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세금 인하가 이뤄졌으며, 거꾸로 서민들의 부담이 큰 유류세·주류세·담배세 등은 대폭 인상되었다. 재정지출 분야에서 복지지출이 약간 확대되기는 했지만 큰 변화는 아니었으며,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문제 등 보편적 복지기반 구축은 손도 대지 못하였다. 양극화를 정책 화두로 삼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말이 되어서야 비롯된 것이며, 그나마도 말의 성찬으로 끝나고 말았다. 마침내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농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면서 이것이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양극화의 핵심문제인 비정규직 급증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지속되었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의 임금격차도 계속 확대되었다. 비정규직 보호는 일자리 만들기 정책에 가려졌고, 그래서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서 마지막 보루라 불리는 최저임금제의 개선이나 비정규 보호정책은 계속 늦춰졌다.
노무현 정부는 사실상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경제정책을 추구했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개혁과 진보를 내세운 탓에 국민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었고, 정부의 정책 혼선도 잦았다. 이는 무게감이 없는 예스맨을 중용하는 인사정책과 더불어 ‘아마추어 정권’, ‘무능 정권’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땅의 개혁세력, 진보세력은 결코 무능하지 않고, 실패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선진화의 전제조건인 민주화를 이뤄냈을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 산업이나 영화 산업의 발전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개혁과 진보의 실패라 말하지 말라. 개혁·진보 세력의 실패가 있다면 잘못된 길을 걷는 노무현 정부를 준엄하게 비판하지 못한 데 있다. 제발 노무현 정부를 감싸고 열린우리당을 추스르는 것이 개혁·진보 세력의 연대를 가져올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국민의 엄정하고 현명한 심판은 이미 여러 번 내려지지 않았는가.
유종일/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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