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드라마 중독증

鶴山 徐 仁 2007. 2. 1. 10:53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것은 국민참여 경선이다. '16부작 주말드라마'로 불리며 전국적인 화제가 됐던 국민참여 경선은 침몰해 가던 여권을 사지(死地)에서 구해 낸 2002년 최고의 '대박 상품'이었다. 선두를 달리던 이인제를 향해 저돌적인 펀치를 날리는 노무현의 역전극에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날이 가고 횟수가 더할수록 관객은 불어났다.

하이라이트는 광주 경선. '호남의 심장'인 광주는 DJ 직계도, 여론조사 1위 후보도 외면했다. 대신 역발상의 승부사 노무현을 선택했다.

두 번째의 노풍 드라마는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방영됐다. 지지율 3위의 노무현이 2위의 정몽준과 단일화에 합의하면서 긴장도는 절정에 달했다. 드라마보다 훨씬 극적인 현실의 짜릿함을 맛본 관객들은 더욱 열광했다. 노무현은 그 힘으로 식상한 '대세론' 연속극을 1년째 끌고 가던 이회창을 무너뜨리고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역전 드라마는 그 5년 전에도 있었다. DJT(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 드라마다. 노풍만큼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파괴력이 있었다.

두 번이나 극적 반전에 성공한 여권에 드라마는 '신앙'이 된 듯하다. 여권은 지금 세 번째 드라마를 꿈꾸고 있다.

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선거 구도는 바뀔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2002년) 이맘때 지지율 5% 아래 있던 제가 후보가 됐다. 그 뒤 (지지율이) 바닥까지 갔다가 올라왔다 회복된 게 10월 말이다…. 드라마죠"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신당파의 탈당을 만류하면서 "대통령의 당적 정리가 (신당의) 조건이라면 내가 당을 나가는 것이 좋은 일 아니겠느냐. 당을 나가 달라면 나가겠다"고 말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격이다.

드라마의 향수에 빠져 3탄의 방영을 목 빼고 기다리기는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다. 창당 주역이 "희망이 없다"며 탈당하고, 남은 사람들은 "대통합의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화답한다. 경쟁 상대인 한나라당 소속 손학규를 주연배우로 스카우트하자는 주장은 나온 지 오래다.

열성 지지자들 역시 "지금은 바닥이지만 결정적 순간에 누가 나와도 나오겠지"라거나 "선거가 지금 구도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드라마를 고대한다. 이쯤 되면 집단 드라마 중독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열과 갈등, 혼란과 진통은 한순간의 극적 반전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아니 더욱 극적인 반전을 만들기 위한 소품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물론 드라마 자체를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권이 제작 중인 드라마에는 본질적이고 중대한 부분이 빠져 있다. 국민적 환호와 열광 속에 출범한 정권이 5년 만에 왜 이렇게 지리멸렬한 상황에 내몰렸는지에 대한 반성과 고민이 없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가져오는 부정적 측면을 알면서도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판을 뒤흔들어 버릴 '마지막 한 방'에 신경 쓰느라 과연 누가 대통령감이냐, 그의 국가관과 철학.정책은 무엇이냐를 검증하는 데 관심이 없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심지어 "후보를 미리 선출하면 흠집만 나게 되고 신선도가 떨어질 게 뻔하지 않으냐"며 대선에 임박해 10~11월께 후보를 뽑자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권에 눈이 멀어도 보통 먼 게 아니다.

지도자를 잘못 선택해 퇴락과 빈곤의 나락에 굴러 떨어진 나라의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다. 굳이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을 것도 없지만 말이다.

이정민/중앙일보 정치부문 차장 jm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