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대 대통령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목숨을 걸었던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목숨을 담보로 군사 쿠데타를 주도했다.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YS는 23일간 단식투쟁을 했고, DJ는 일본에서 납치되면서 죽을 위기를 넘겼다. DJ는 전두환 정권 시절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내각제하의 윤보선 전 대통령, 박 전 대통령의 유고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최규하 전 대통령은 경우가 다르다. 이들은 오히려 그 반대다. 그들은 5.16과 12.12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지 못했기에 중도하차해야 했다.
목숨을 걸어야 대통령이 될 수 있고 목숨을 아끼면 임기조차 마칠 수 없었던 상황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그만큼 우리 근대사가 격동의 시기였음을 말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 후보들에게 던져 주는 메시지는 있다. 생물학적 생명은 걸지 않더라도 칼날 위에 선 심정으로 매 순간 결단하고 온몸을 던져 도전하지 않으면 대통령에 당선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고건 전 총리도 그러지 못했기에 일찌감치 대선 대열에서 탈락했다. 어떤 개인이나 기업, 국가도 천년만년 1위일 수는 없다. 1위의 덫에 걸리기 때문이다. 도전하고 쫓아가야 할 대상이 보이지 않기에 점점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하고, 덩치가 커지면서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안주'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2위나 3위는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1위의 약점을 공략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흔들고, 합종연횡해 힘을 키우려 한다.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대선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2위는 낙선자에 불과하며,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된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는 1위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 노무현 후보에게 뒤집기당했다. 지금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1위의 함정에 가장 가까이 가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런 조짐이 좀 나타나는 듯도 하다. 노 대통령이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했을 때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즉각 '참 나쁜 대통령'이란 반응을 내놨지만, 이 전 시장은 몇 시간 뒤 공식 반응했다. 신중을 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보신 차원이었다면 1위의 함정에 한 발 들여놓은 것이다. "MB캠프는 벌써 인(人)의 장벽이 쳐졌다"는 말이 나돈 지도 꽤 오래됐다. 그러면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당헌당규에 대한 이중적 접근도 위험신호다. 후보 선출 시기는 당헌대로 하자면서도 경선 방식은 당헌을 바꾸기를 바란다면 일관성을 잃은 것이다. 우리 국민은 약자에게는 너그럽지만 강자의 이기심에는 엄격하다. 이 전 시장 지지자들은 요즘 '이명박 후보-손학규 책임총리-박근혜 당 대표'란 시나리오를 내놓는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정권교체를 이룰 수만 있다면 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될 경우 언제라도 돌아설지 모른다. 호남 지지율 1위, 가장 개혁성이 강한 후보 1위란 여론조사도 한편으로는 부담이다. 그의 성향은 진보가 아니며, 여권 후보가 가시화하면 호남의 지지는 언제라도 그를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 경기에서 1위는 양날의 칼이다. 오늘내일 당장 대선이 있다면 당선자는 이 전 시장이리라. 그러나 대선까지는 아직 320여 일이나 남았다. 당장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서 제기한 '검증'의 관문을 그럭저럭 넘겼다고 안도할 것도 없다. 검증이란 형식을 띤 공격은 갈 데까지 가게 돼 있다. "예선에서도 강하지만 본선에서는 더 강하다"는 인식을 심어 주지 못한다면 위험하다. 그가 '페이스 메이커'에 그칠지, 최종 승자가 될지는 1위의 함정을 어떻게 건너느냐에 달려 있다. 김두우/중앙일보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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