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북진...그 아쉬웠던 역사 [ 2 ]
맥아더의 경쟁유도
당시까지의 전세를 볼 때 낙동강교두보를 지켰던 미8군이 기존전선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는 서부전선을 담당하고, 별도로 넓어진 함경도 지역을 인천상륙작전을 통하여 한국전에 참전하였던 10군단이 담당하도록 한 것은 일견 타당한 측면도 있습니다.
[ 지형적인 여건으로 지휘부를 둘로 나눌 수도 있었으나
문제는 협조가 원활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
설령 지형적인 여건으로 지휘부를 나누었다 하더라도 작전협조만 제대로 이뤄지면 사실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그런데 작전협조보다는 경쟁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경쟁 상황은 누가 먼저 한만국경에 도달하는가하는 공명심에 사로잡혀 부대간의 협조보다는 각개적인 진격이 이루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한만국경에만 도달하면 그것으로 전쟁이 끝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
이러한 부대 간, 지휘라인간의 경쟁은 UN군 최고 지휘부의 의도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앞전에 설명한 것처럼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아 공격부대가 국경에 도달만하면 전쟁은 그것으로 종결 될 것으로 판단하였고 때문에 각개부대간의 경쟁은 전쟁을 조기에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였습니다.
[ 오로지 전진 뿐이었는데 이러한 종으로의 전진은 부대간 간격을 발생시켰습니다 ]
UN군 총 사령관 맥아더는 함경도지역을 담당할 부대로 인천상륙작전의 주역인 미10군단을 선정하였습니다. 10군단장 알몬드 Edward M Almond ( 1892 - 1979 ) 는 버지니아 군사학교를 졸업 후 1, 2차대전을 모두 섭렵한 경력을 가진 풍부한 경험의 지휘관 이었습니다.
[ 10군단장 Edward M. Almond ]
한국전 발발 당시 그는 도쿄에 위치한 미 극동사령부 사령관인 맥아더의 참모로 근무하며 인천상륙작전을 최 일선에서 지휘하여 성공시킴으로써 맥아더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대성공은 맥아더로 하여금 한반도 북부의 동해안에 재차 상륙작전을 실시하고자 하는 계획을 수립하게 만들었고 그 주역으로 10군단을 또 한번 지목하였습니다.
[ 알몬드(右) 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맥아더의 신임을 얻습니다 ]
맥아더는 동해안에 상륙하여 함경도지역으로 북진 할 10군단을 기존의 미8군과 분리하여 작전권을 행사하도록 조치합니다. 이전까지 워커 Walton H Walker ( 1889 - 1950 ) 가 지휘하는 미 8군은 UN군 총사령부로부터 작전권을 위양 받아 한국군을 포함한 모든 지상군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전사에 기록된 사실은 확인할 수 없지만, 워커가 맥아더의 이러한 지휘권 분리에 대해 기분 좋게 생각 할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 8군 사령관 Walton H. Walker ]
그러나 서부전선을 담당할 8군 사령관 워커나 별도의 지휘권에 의해서 10군단 작전을 행사할 알몬드 또한 맥아더의 카리스마에 감히 대꾸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습니다. 어쨌든 38선 이북의 한반도는 워커와 알몬드의 양두마차에 의해서 별도의 진격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맥아더는 이 둘을 경쟁시켜 전쟁을 조기에 종결하고자 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맥아더는 경쟁이라는 채찍을 최대한 이용하여 예하부대의 진격을 독려합니다 ]
그런데 맥아더가 알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한반도 북부를 동서로 나누어 진격작전을 펼쳤던 모습이 400 여 년 전에 있었던 임진왜란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어 흥미로운 구석이 있습니다.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지만 이야기를 400 년전 옛날로 잠시 돌려 보겠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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