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파주② 대학자들의 발자취를 더듬다

鶴山 徐 仁 2006. 7. 3. 14:33



(연합르페르)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 청백리의 표상인 황희 정승. 어린 시절 교과서와 위인전에서나 만나볼 수 있었던 역사 속 인물들의 흔적을 이곳에서 대면할 수 있었다. 쓸쓸하고 적막한 분위기의자운서원(紫雲書院)과 임진강 물줄기가 굽이도는 화석정(花石亭), 철조망 너머 북쪽에서 기러기라도 날아와 앉을 듯한 반구정(伴鷗亭)에서는 나른한 평온함이 여객의 마음에 휴식을 전해주었다.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 대동법(大同法), 사창(社倉), 성학집요(聖學輯要), 격몽요결(擊蒙要訣) 등등.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무던히도 외웠던 것들이다. 뜻도 모른 채 시험에 나온다는 이유로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머리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그 때의 역사공부는 그렇게 무의미한 기억의 단편이었다.

자운서원(紫雲書院)을 찾아가며 이런 예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실상 율곡 이이에 대한 기억이나 지식은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강릉이 고향이며 신사임당이 어머니였다는 사실 외에는.

더위를 씻어줄 듯 푸른 들이 펼쳐진 시골 풍경을 즐기며 도착한 자운서원. 주차장은 이미 자동차로 가득 들어차 빈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 자운서원 안쪽으로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을 보니 바로 옆 연수원에 온 이들의 차량인가 보다.

10년도 더 이전에 이곳을 한차례 찾아왔던 기억을 끄집어내 보았다. 보수공사가 형체를 바꿔놓았는지 생전 처음 온 것처럼 도무지 옛날의 모습과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같은 장소에 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서원을 방문했었던 것 같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잘 닦인 아스팔트길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율곡기념관이 나타났다. 율곡과 신사임당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문화재해설자원봉사자 아주머니가 살갑게 맞아준다. 조금 전 이곳을 방문한 중학생들이 혼을 쏙 빼놓고 갔다며 이마의 구슬땀을 닦아냈다.

대학자의 풍모가 묻어나는 이이, 여류예술가이자 현모양처의 대표인 신사임당이 입구 양쪽 벽에 걸린 그림 속에서 현대인들을 맞이한다. 오른쪽 진열장에 전시된 작은 병풍은 신사임당의 '풀벌레 그림 병풍(초충도)'. 새 오천 원권 지폐에 등장한 '수박'과 맨드라미' 그림이 이 안에 담겨 있다. 다른 진열장에는 이전 오천 원권에서 보았던 율곡의 용벼루가 놓여 있다. 이 벼루는 조선 정조가 유품을 가져오게 하여 친히 글을 짓고 쓴 것을 새겨 놓은 것이다. 이밖에도 신사임당이 일곱 남매에게 유산을 분배해준 기록과 율곡의 누이인 이매창의 포도그림, 비단자수도 진품을 모조한 것이지만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율곡기념관을 나와 작은 연못을 지나 오른쪽으로 이이와 신사임당의 묘가 들어서있고, 왼쪽으로는 자운서원으로 향하는 길이 마련되어 있다. 계단을 따라 오르자 고요한 적막 속에서 날듯이 추녀 끝을 세운 서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자운서원'이라는 현판이 옛 선현의 체취를 조금 흩뿌려주고 있었다. 자운서원 옆으로 꿩 한 마리가 노닐더니 발자국 소리에 놀랐는지 꽁지가 빠져라 담을 넘어가 사라진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탓에 꿩들이 자기들의 놀이터인양 날아와 노닐다 가는 모양이었다.

문산 방향으로 독서동삼거리를 지나 화석정(花石亭)으로 향했다. 화석정은 율곡이 어린 시절 학문을 익혔던 곳으로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여생을 이곳에서 제자들과 보내며 시와 학문을 논했다고 한다. 지금도 화석정 뒤로는 임진강 푸른 물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그러나 바로 밑에 도로로 자동차가 끊임없이 지나는 탓에 학문을 닦았던 곳이라는 조용한 분위기는 만끽할 수 없었다.

37번 국도를 타고 서쪽으로 향해갔다. 자유로로 접어들어 임진각관광지 방향으로 나가자 반구정이란 푯말이 나타난다. 황희 정승의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유적지 잔디밭에는 노란색 병아리 옷을 입은 유치원 어린이들이 여름소풍을 나와 있다. 매년 음력 2월 10일에 탄신제를 지낸다는 방촌영당을 지나 반구정으로 향했다. 반구정에 올라서니 임진강이 눈앞에 펼쳐진다.

오른쪽으로는 멀리 '자유의 다리'도 볼 수 있다. 반구정 바로 아래로는 소총을 둔 군인들이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정자에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구슬땀을 씻어준다. 책 한권 읽고 나서 낮잠이라도 자면 좋을 듯하다. 방촌 황희 정승이 왜 이곳에서 갈매기를 벗 삼아 여생을 보냈는지 알 것도 같다. 청백리의 표상인 황희 정승이 지내기엔 조금 호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운서원 찾아가는 길

문산읍에서 문산역방향으로 가다 310번 국도를 따라 법원읍 방향으로 간다. 법원소방파출소와 법원초교를 지나면 들판 뒤로 나타난다. ☎ 031-958-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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