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장 66절 - 72절
“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어떤 사본에는, '마침 닭이 울더라'가 있음)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주님의 一平生은 다 쓸쓸한 生活이었다.
寒夜는 일기가 酷寒이요 風雪이 급할 때에도 寒夜이나 외로운 나그네가 되어 쓸쓸하게 旅館寒燈에서 孤寂을 느끼며 지내는 밤도 역시 寒夜이요, 學窓生活에 외로이 書冊을 맞대고 깊은 밤을 보내는 것도 一種의 寒夜이다.
主의 一生은 亦然이나 主님이 당한 苦生을 생각하랴 !
荊冠에 매, 주먹, 침 밷음, 罪人에게 鞠問, 그 現場에 동정자가 뉘뇨?
惟獨 멀리 바라보고 있는 베드로뿐이다.
이는 太陽이 雲霧中에 잠깐 잠긴 것 같고 秋天明月이 一片雲에 잠간 가리운 것과 같도다.
1. 주의 目前에는 遠方에 베드로뿐이다.
그러나 베드로의 태도는 如何하냐?
2. 베드로의 태도를 바라보는 주의 심정은
怒이냐? 不平이냐? 同情이냐? 警告냐? 嫉視이냐?
3. 베드로는 無能 拙怯 할 뿐이다.
自己 先生을 알면서도, 無罪한 줄 알건만 왜 證明 못하느냐?
4. 어디서 어느 火를 쪼이느냐?
心情에 寒氣를 막지 못할 불은 쪼이지 말라.
팔레스타인의 4월의 밤이 추우면 얼마나 춥겠느냐? 이렇게 마음이 추워서 떨어 보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5. 입이 닳도록 주를 불렀는데 왜 주를 모른다고 하였느냐?
주는 보시고 마음을 아실 터인데 口로 성경찬미 외우면서 왜 不信者처럼하며 교회를 모른다고 하느냐? 될대로 되라고 放心하느냐? 放任 하느냐?
왜 나는 그 黨이 아니라고 하느냐?
結論
願聞鷄鳴聲而悔改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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