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추억이 없으랴만 남달리 고생이 많으셨던 나의 어머니 역시 숱한 추억꺼리를 남기셨다. 그런 추억들 중에 날이
갈수록 잊혀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고교생 시절에 나는 별로 모범생이지를 못하였다. 공부도 하기가 싫고 산다는 것 자체가
지겹기만 하여 다 털어버리고 무전여행에 나섰다. 칫솔 하나를 윗주머니에 꽂은 채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의 시집
한권을 든 채로 발 가는데로 여행길에 올랐다. 그렇게 시작된 무전여행이 18개월간이나 이어졌다. 전남 소록도를 지나던 길에 공부하고픈
마음이 들어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여쭈었다.
“어머니 나 이제 맘 잡고 공부 할래요. 공부하려면 참고서가 있어야 하는데, 책값을
마련해 주세요.” 어머니는 반가와 하시며 “그래, 그럼 내일 책값을 마련해 줄게.” 하셨다. 다음날 이른 아침 책값을 마련하러 나가신
어머니는 밤 이슥해서야 돌아오셨다. 마련해 오신 책값을 네게 건내 주시고 어머니는 이내 잠자리에 드셨다. 그런데 밤늦도록 공부하고 내가 우연히
어머니 쪽을 보았더니 어머니께서 수건을 머리에 쓰시고 주무시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로 “어머니는 왜 수건을 쓰시고 주무시나?” 하는
생각으로 수건을 벗겨 드렸다. 그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머니 머리카락이 없는 맨머리였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왠 종일 책값을 마련하시려 이집 저집을 다니다가 끝내 마련치 못하시자 가발가계에 가셔서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팔아 책값을 마련하신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다짐하였다. “내 몸이 부서지더라도 악착같이 공부하여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려야지!” 하고 거듭
다짐하였다. 다음 날 나는 서점으로 가서 영어와 수학의 참고서를 사서는 각 권을 7번씩 읽었다. 그 실력이 기초가 되어 대학입학 할 때 수석으로
입학 할 수 있게 되고 장학금을 받게 되어 어머니 짐을 덜어드리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내가 이만큼이나마 사람구실 하며 지낼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공이 밑거름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