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김계원 비서실장 18년만에 입을 열다

鶴山 徐 仁 2006. 1. 24. 11:15
"김재규는 사형장으로 끌려 나가다 내가 수감된 방을 한참 바라보았다"

▲ 김계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10·26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을 지켜본 유일한 생존자, 김계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8년 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월간조선 2월호와의 인터뷰에서 “김재규가 대통령 시해나 쿠데타 계획이 있었다면 저에게 귀뜸 정도는 했을 거라고 믿는다”라며 “김재규와 저는 정말 가까운 사이였다. 심지어 여자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이야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1960년 육군대학 총장으로 부임할 당시 부총장이던 김재규가 자동차 추락 사고를 당했는데, 그때 중상을 입은 그를 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구한 이후 가까워졌다”고 설명했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10·26은 궁정동 만찬석상에서 박 대통령과 차지철 전 청와대 경호실장에게 혼이 난 김재규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이라는 게 김 전 실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재규가 그날 뭔가 달랐다면, 그 자리에 권총을 가져왔을 것”이라며 “식당 2층 자신의 사무실에 얼마든지 총을 숨겨 놓을 수 있었을텐데 뭐하러 허덕거리며 옆집에 갔을까요? 처음에는 계획이 없었다고 봐요”라고 말했다. 김재규는 당시 만찬장을 빠져나와 50m 떨어진 인근 본관 2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책장 선반 뒤에서 권총을 꺼내 바지 속에 감추고 다시 돌아왔다. 김 전 실장은 “쿠데타를 할만한 군 병력은 오히려 차지철이 보유하고 있었다”며 “전두환 장군도 차지철의 심복이었고, (차지철이) 하나회다 뭐다 뒷돈을 대주었다. 김재규는 쿠데타할 능력이 없었다”고도 말했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쯤 김재규가 쏜 총탄은 차지철의 오른쪽 팔목을 꿰뚫었고, 차지철은 실내 화장실로 달아났다. 이어 김재규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 대통령을 겨냥해 총을 쏘았다. 이에 대해 김 전 실장은 “김재규가 차지철을 쏜 순간, ‘이제 나는 죽었다. 이러나 저러나 차지철을 죽였으니 용서 못 받을 것이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이날 김재규의 권총이 고장나 불발이 된 것과 관련, 그는 “제가 김재규의 손을 쳤기 때문”이라며 “그 권총은 예민해서 나뭇잎 하나라도 걸리면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10·26 당시 내 말을 믿지 않아 진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박 대통령께서 비스듬히 쓰러지셨는데 저는 식탁 밑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했다”면서 “10·26 일주일 전쯤인가, 박 대통령이 제가 보는 데서 실연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식사 중에 박 대통령이 ‘김 실장, 급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라며 테이블 밑에 누워 나를 쳐다보셨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김 전 실장은 김재규에 협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10월 29일 구속됐고, 12월 20일 계엄 보통 군법회의에서 김재규 등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 죄명은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 중요임무 종사 미수죄였다. 그러나 며칠 뒤 사형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982년 5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는 1980년 5월 24일 새벽에 형장으로 끌려가는 김재규의 마지막 모습도 목격했다고 한다. 그는 “김재규가 천천히 사형장을 향해 걸어가다가 제 방 쪽을 한참 바라봤다”며 “복도가 어두워 표정은 못 봤지만 제 방 위치를 아니까 천천히 걸으며 이 쪽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수감 당시 김재규를 따로 본 적은 없지만 고문받는 소리는 들었다”고 전했다.

※ 이 기사 전문은 현재 판매중인 월간조선 2월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김재은 기자 2ruth@chosun.com
입력 : 2006.01.22 03:03 47' / 수정 : 2006.01.22 15:16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