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키치미술의 대부 다카시 무라카미.
주로 뉴욕에서 생활하는 그는 도쿄에서
90분 거리에 히로폰 팩토리(Hiropon Factory)라는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활동하는 데에 40여명의 조수와 비즈니스 매니저까지 동반하고 다니는 그는 만화가로 시작하여 이제는 순수미술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다.
무라카미는 처음에 1970년대 말과 80년대의 전설적인 일본 만화가 요시노리
카나다(Yoshinori Kanada, "은하철도 999"의 작가)의 스타일을 닮고자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테크닉에 한계를 느낀 그는 테크닉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니혼가를 배우기로 마음 먹었다(니혼가는 전통적인 일본적 주제를 외곽선과 평평한 색을
강조하여 꼼꼼하게 그리는 그림을 말한다).
일본에서 애니메이터와 니혼가 아티스트는 모두 대체로 많은 돈을 버는 직업으로, 그의 형제인
유지 무라카미(Yuji Murakami)도 현재 잘 알려진 니혼가 아티스트이다.
팝 아티스트 앤디 와홀과 비슷하게 무라카미는
자신이 아티스트가 되고자 했던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나의 목적은 돈을 벌어서 전통적인 일본저택을 짓는
것이었다. 나의 부모는 큐슈출신으로 나는 도쿄에서 자랐으며, 택시운전수였던 아버지 밑에서 나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나는 그런
가난한 삶이 싫었다"고 한다.
동경예술대학(Tokyo National University of Fine Arts and Music)에서
니혼가를 공부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은 무라카미는 1989년, 뉴욕 여행 중에 제프 쿤스(Jeff Koons)의 에로틱한 조각 작품을 보고 현대
미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해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퍼포먼스.설치 아티스트들을 만났고, 몇 달 후에 그들과 함께
작업하기 위해서 브루클린으로 이주했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언제나 술을 마시며 너무나 자유롭게 살았다.
그들은 모두 40세가 넘은 사람들이었지만, 20대처럼 보였다. 일본에서 아티스트들은 35세가 넘으면 자켓에 넥타이를 맨, 진지하고 지루한
사람들이 된다"라고 자신의 예술이 변화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한다.
아티스트도 재미를 추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그는 자신이 배운 전통적인 니혼가 스타일을
버리고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꾀하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의 유머, 성인만화, 그리고 일본 전통회화와 판화가 뒤섞인 회화와 조각작품으로 그는 마침내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게 된다. 무엇보다 크게 달라진 것은, 그가 자기세계의 중요한 부분인 일본의 독특한 '오타쿠' 문화를 작품에 그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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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한 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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