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스크랩] 불보(佛寶)를 지키려는 간절한 마음 / 남산 기암골

鶴山 徐 仁 2005. 12. 5. 02:15

포석정에서 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지마왕릉이라 전해지는 고분이 송림속에 아늑히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방향을 동쪽으로 꺽어서 오르면 에쁜 오솔길이 나타나고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에 과수원이 보인다.

<전지마왕릉>

과수원을 왼편으로 끼고 산길을 오르면 길이 1m가 넘는 거대한 자연석으로 ㄴ자 형으로 쌓은 축대가 나타나는데 여기가 기암골 제1절터이다.

이곳은 일명 장구터(將棋)라고 부르는 곳으로 신선들이 바둑을 두며 놀았다는 전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장구터 1>

기암골에는 모두 세곳의 절터가 있는데, 편의상 아랫쪽 부터 장구터1, 장구터2, 장구터3절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구터 2절터는 제1절터에서 약3~4백m 상류에 있는데 아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잡초로 우거져 있다.

<장구터 2>

제2절터에서 다시 3백여m 정도 오르면 가운데가 무너진 거대한 석축이 나타나는데,

여기가 제3절터이다.

봄을 맞아 구넫군데 분홍빛 진달래와 노랑의 생강나무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다.

돌축대 위로 오르면 최근(2003)에 복원한 아담한 삼층석탑 하나가 답사객을 반긴다.

<장구터 3>

<장구터 3 오른쪽 축대>

본래 이 절터에는 두기의 답이 있었지만 동탑은 남은 부재가 많아 복원하였지만 서탑은 끝내 복원하지 못하고 기단석 일부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답사객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남산에서 평지가 아닌 산지 가람중에는 유일하게 쌍탑가람이었던 이 절터가 동서탑이 함께 복원되었다면 또 하나의 귀중한 유적이 되었을텐데...

<장구터 3절터 전경>

석탑의 조성시기는 대체로 9세기로 추정된다.

동탑주변에는 긴 장대석으로 탑구(塔區)를 설치하고, 하층기단에는 양우주와 1개의 탱주를 상층기단에는 양우주를 표현하였다.

옥개받침은 3단으로 이루어졌으며, 특히 1층몸돌에는 사각형의 문비를 조각하고 그 안에 자물쇠와 두개의 문고리를 조각하였다.

<기암골 삼층석탑>

자물쇠와 문고리 조각은 경주지역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것인데, 가까운 포항의 보경사 오층석탑이나 멀리 충북 영동의 영국사 삼층석탑에서도 볼 수 있어 경주의 이런한 문화가 지방으로 전파된 것으로 파악된다.

탑 속에 모셔진 불보인 부처님의 사리를 수호하려는 깊은 마음이 견고한 자물쇠로 나타난 것일까?

<1층몸돌의 자물쇠문양>

탑의 남쪽은 계곡인데 소나무 한 그루가 언제인가 탑 앞으로 쓰러져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다시 오솔길을 따라 산길을 오른다.

이제부터 산길이 험해지면서 온통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이따금 뒤를 돌아다보면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기린내(서천)가 보이고 건너편 멀리 선도산과 벽도산이 우뚝 서 있다.

<바둑바위로 오르는 등산로에서 내려다본 늠비봉 석탑>

이제 바윗길이 끝나고 황금대에서 올라오는 능선길과 만난다.

바둑바위쪽으로 걸으며 왼편 아래쪽을 내려다 보면 멀리 토함산이 바라다 보이고 늠비봉 능선위에는 최근 복원한 5층석탑이 아련히 내려다 보인다.

<바둑바위>

가쁜 숨을 내쉬며 정상에 오르면 넓고 평평한 바위가 나타난다. 여기가 바둑바위다.

동경잡기에 의하면 '바둑바위는 금오산에 있다. 바둑판 모양으로 깍은 돌이다'(棋岩在 金鰲山 刻石如棋狀) '이곳은 신라 때 신선들이 모여서 바둑을 두면서 놀던 곳이다'(傳新羅時 仙人局戱處)라 하였다.

이 계곡의 이름이 기암골인 것도 바로 이 바위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출처 : 불국사초등학교21회 동기생모임
글쓴이 : 최광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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