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10.12」 | |
대통령의
애국심을 의심해야 하는 개탄스러운 상황 "노무현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을 연결시켜 보면 그 진의가 주한미군철수에 있음을 짐작케 한다" 상상하기 싫지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대통령이 ‘간첩’일 수 있을까? 있어서는 안 되며 있을 수도 없으며 더구나 증명은 더더욱 불가능한 이러한 상상을 하게 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단순히 상상이 아니라 구체적 심증이 간다면 이는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니다. 우리들의 운명이 바로 한 두 사람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심을 하는 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1950년에 북한의 김일성 괴뢰 집단이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남침을 하였을 때 한국군은 초기에 와해되었고 북괴군은 불과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였다. 아무리 장비가 허술하고 전쟁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3일만에 서울을 빼앗기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 배후에 의혹이 있다. 대한민국 군번 1번인 이형근 장군의 회고록에는 6.25전쟁 당시의 10대불가사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전쟁 직전 이해할 수 없는 일 열 가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새벽에 전쟁이 터지는데 육군본부 간부들이 모두 새벽까지 장교구락부 완공 기념 파티로 술을 마시고 취했다는 것, 전쟁 발발 2주전에 전후방 부대가 교체되고 지휘관이 모두 교체되어 지형이나 부대원에 대해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 내일 새벽에 전쟁이 터지는데 그 때까지 유지되던 경계태세를 풀고 전후방 장병 절반을 휴가를 내 보낸 사실 등 전쟁 직전에 발생한 이해하기 힘든 열 가지를 거론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전쟁에 참가한 전쟁영웅의 회고에 의하면 전쟁 직전 5만분의 1 작전지도를 육본에서 모두 회수해 갔으며 박격포나 트럭 등 중장비의 3분의 1은 수리를 이유로 병기창에 입고 시켰다는 등 군 상층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형근 장군은 10대 불가사의를 거론하면서 육본 지휘부에 간첩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고 또 심증이 가는 사람이 있으나 직접 이름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언젠가는 이들의 정체가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적혀있다. 그런데 그가 지목하는 인물이 당시의 국방장관과 참모총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금은 우리가 국방장관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을 의심해야 할 상황을 맞게 되었다. 우리 민족과 대한민국의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좀 무능하긴 해도 애국심에 대해서 크게 의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친북반미주의자로 알려진 몇 명을 중용하긴하였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는 일본 전국시대의 한 지방의 영주에게나 어울리는 투쟁력을 갖추고는 있었지만 국가를 경영할 지혜와 비전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한국의 정치 상황이 지역문제와 이념문제와 학생운동 문제가 겹쳐 있어 극히 조심스럽고 민감한 문제라 거론하기가 쉽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남북접촉이 극히 제한되어있던 시절이라, 측근이 불법으로 북한으로 잠입하거나 공개적으로 월북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과거 친북 단체의 수장을 맡기도 하였고 측근이 북한에서 자금을 받아와 간첩혐의로 재판을 받기도 하였다. 모두 북한과의 어떤 접촉을 시도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사건들이다. 그런데 대통령 되고부터 추진한 정책은 더욱 더 우리들의 의심을 강화시키는 것들이다. 그는 북한의 노선을 충실하게 따르고 한국의 어린 학생들을 김일성 김정일의 전위대로 만들기 위해 광분하는 전교조와 노동자 농민을 조직하여 북한의 노선에 따라 공산혁명을 목표로 하는 민노총을 합법화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친북시민단체에게 국고로 활동비를 제공하였다. 그는 더 노골적으로 햇볕정책이란 이름으로 북한에 엄청난 액수의 현금과 현물을 제공하였으며 6.15평양방문을 위해서는 김정일에게 뇌물까지 바쳤다. 그리고 노벨상을 타기 위해 경의선 연결이니 하며 남북관계를 이용하였다. 6.15남북회담을 위해서 그는 김정일을 식견있는 지도자라고 거짓말까지 하였으며, 평양을 다녀오면서 이제 전쟁은 없다느니 김정일이 주한미군을 인정하였다느니 하면서 허언을 하였다. 결정적으로 그는 6.25가 통일시도라는 발언을 하였다. 요즘 강정구가 한 발언과 동일하다. 그리고 북한의 핵문제가 터졌을 때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원칙을 제시하여 미국의 발목을 잡았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이나 발언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서 기대하기 힘든 비애국적이며 사실상 반역적인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6.15 이후에는 남북왕래가 비교적 자유로워져 굳이 측근을 북한에 비밀리에 또는 불법적으로 파견할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반미정서를 앞세워 선거운동을 하였고 또 당선되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당선자 신분으로 계룡대를 방문하였을 때 자주국방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 당시에도 당선자의 이 ‘자주’라는 말이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과는 심하게 차이가 나며 이 자주라는 말이 미국으로부터의 ‘자주’, 즉 미국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후 대통령은 ‘동북아 균형자’론을 언급하면서 다시 한미동맹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냈으며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그렇지 않아도 위태위태한 한미동맹을 더더욱 위태롭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폭풍전야와도 같은 정적을 느끼게 된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에서 ‘평화체제’문제가 정식의제로 거론되도록 허용한데 이어 지난 국군의 날 행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하였다. 평화체제의 정착은 한 마디로 남북이 갈라져 따로 살자는 말이다. 차라리 따로 살림을 차리면 좋겠지만 국제경쟁력이 없는 북한의 군사독재정권을 한국민이 뼈빠지게 일해서 먹여살리겠다는 발상이다. 물론 평화체제는 현 정전체제의 종식을 의미하며 그것은 유엔군사령부의 해체와 한미동맹의 실질적 해체를 의미한다. 당연히 주한미군은 철수하게 될 것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을 연결시켜 보면 그 진의가 주한미군철수에 있음을 짐작케 한다. 한미동맹의 해체와 주한미군의 철수는 북한의 오랜 대남전략이며 민노총이나 강정구 같은 친북이적단체나 반역자들이 그 동안 주장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이들의 대변인이 된 것인가 하고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김대중 대통령부터 시작된 일관된 친북반역정책의 결과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의 군사독재자에게 현금을 제공하여 독재정치를 유지할 수 있게 지원하였으며 북한군의 장비현대화를 지원하였다. 이적행위의 대표적 예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 독재자의 오랜 숙원이던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분위기 조성을 거의 다 끝낸 상태다. 국민은 마치 뱀 앞의 개구리처럼 무엇엔가 홀려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곧 죽음을 앞두고도 상황파악을 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뱀에게 잡아먹히는 꼴이다. 한 일본 언론인은 곧 남북연방제가 실시되면 김정일이 통일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통일대통령이란 말은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였을 때 처음 나온 말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에게 통일대통령이 되라는 말이 나와도 침묵하는 것은 그것이 그의 뜻이기 때문이리라. 갑자기 휴전선에 ‘통일대통령’이란 구호가 나붙을 때 우리는 모두 어리둥절하였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을 통일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본격적으로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발걸음을 시작한 느낌이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아직 ‘설마’하면서 뱀 앞의 개구리처럼 정신이 홀려 있을 때 어느 순간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아니면 우리 모두 후회해도 소용없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갑자기 빠지게 될 것이다. 정창인 (독립신문 주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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