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스크랩] 박정희와 이순신은 죽어서도 환영 받지 못했다!

鶴山 徐 仁 2005. 8. 31. 16:42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해전에서 전사 하였습니다. 장군께서는 전사 하시면서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전쟁(왜란 전체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적에게 아군의 정보를 흘리지 못하도록 조치 한 것입니다. 죽어서도 이후 전쟁의 승리를 걱정한 것입니다. 참으로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죽자, 조정에서는 끝까지 장군을 비하하구 물고 늘어지는 간신들이 많았습니다. 파당이 다르고 나보다 나아 보이는 인간은 무조건 까야 살아 남는다는 한국인의 나쁜 습관 한편(부분)을 보는 것입니다.

선조도 이순신 장군을 칭찬하고 높이고 싶었으나, 마음대로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00년의 세월이 흘러 정조때 이충무공 전서가 간행 되었습니다. 이 충무공 전서가 나중에 일제 군인들이 연구하였고, 박통 때 국제 해군 학회에 이순신 장군 소고 라는 논문을 일본 해군 장교가 발표 하였습니다. 이에 학회에 참가 했던 한국인 장교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재일교포 학자 증언).

보고를 받은 박통은 우리의 영웅을 일본놈이 먼저 발표해서야 체면이 서겠냐고 하면서, 현충사를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문화제 관리국 사무장인지 하는 사람이 세멘트로 만들었다고 비아냥 하던 모양인데, 그 당시에는 시멘트로 하는 것이 그래도 가장 가장 비싼 것이였을 것입니다. 시대가 흐러 요즘 학생들 당시에 쌀이 없어 밥 굶었다고 하니, 그럼 라면 먹지요? 하는 소리나 현충사 벽을 시멘트라고 박대통령을 까는 사람이나 뭐가 다른가요? 마찮가지 입니다.


요즘 일부 사람들이 무슨 목적인지 몰라도 어떡하던 모든 것을 박정희와 연결 시켜 까버리는 비판 정신 상태가 참 좋아 보입니다. 박정희를 그렇게 죽이도록 미운 이유가 뭘까요? 이들의 논리는 결국 자신들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식의 논리를 펴면서 한편으로는 유교의 명분 논리로 쓰잘된 없는 명분 타령에 불과 합니다. 한 마디로 자기 모순 도착증이지요.

이순신 장군께서도 살아 생전 졸나게 욕먹고 죽어서도 졸나게 욕먹고 100년 후 정조 시대에 겨우 이충무공 전서가 간행 되었지요. 죽어서도 우리의 영웅은 환영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토대로 본다면, 결국, 박정희도 졸나게 까이다가 시대가 100년 정도 흘러야 박정희도 좋게 평가 받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조선시대에 이순신 깐 놈이나, 현 시점에서 박정희 깐놈이나 그들의 성격은 아마도 똑 같을 것입니다. 나와 파당이 다르면 무조건 반대하거나 비하 해야 한다는 일종의 정신 병이지요. 그들은 한편으로 유교사상을 비판하면서 유교의 명분론으로 이순신이나 박정희를 까는 것입니다.

박정희가 이순신 장군을 민족의 영웅으로 세우니, 박정희가 치겨 세운 영웅은 국난을 극복한 민족의 영웅일지라도 무조건 반대해야 한다는 참으로 어쩌구니 없는 논리입니다.

과연, 이들의 명분론리가 어디까지 갈것인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후세에 글이 남도록 그들의 글을 보관하고 그들의 사진을 보관해서 정확히 기록하여 둡시다. 임란 후의 역적들의 행적이 작게 기록에 남아 우습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역적들의 주장을 확실히 복사하여 기록 해 두었다가 다른 말 못하도록 법원에 공증 해놓아야 합니다.

 

 

 


 
가져온 곳: [나노식품/나노푸드 (Nanofood)]  글쓴이: Truescience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