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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역사 왜곡에 여념없는 한국 左派

鶴山 徐 仁 2005. 8. 20. 01:55
[해외칼럼]역사 왜곡에 여념없는 한국 左派
written by. 김필재
[原題]Interpreting North Korean history

 필자는 최근 한국의 젊은 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했다는 역사책을 본적이 있다. 주로 북한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역사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은 1946년 북한이 실시한 급진적 성향의 토지 개혁을 동시대 남한의 그것과 비교해 그 개혁성을 찬양(dedicate)하는데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물론 이것(북한의 토지개혁)은 사실이다.

 소련 주도로 이뤄진 북한의 토지개혁

 실제로 1948~1950년까지 한국 정부는 지주들의 반발로 제대로 된 토지개혁을 실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이 설명해 놓은 북한의 토지개혁을 보고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는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북한의 토지 개혁이 철저히 구(舊) 소련 정권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
김일성은 당시 소련 장교들이 만들어 놓은 토지개혁 문서에 단지 서명을 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북한 지도부는 이를 아무런 여과 없이 공포했을 뿐이다. 이는 북한의 토지개혁과 관련해 기밀 해제된 소련의 공식문서에서 확인된 사실로 이미 수년 전 한국에서도 출판됐다. 그러나 교과서를 집필한 학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며 이를 책에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 교과서의 집필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지난 해 말부터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한 서양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 젊은 교수가 최근 그와 그의 학생들에게 1950년 소련 정부는 김일성의 전쟁 계획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모스크바는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한 사실에 대해 매우 놀랐었다는 내용을 수업에서 가르쳤다고 한다. 이 젊은 교수의 말대로라면 한국전쟁은 외부의 간섭 없이 북한이 일으킨 전쟁으로 내전(civil war)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역사적 사실 否認하는 한국의 젊은 학자들

 여러 학자들의 노력으로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한국전쟁 관련 자료들이 대거 출판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한국전쟁의 내막이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다 알려지지는 않고 있다. 이들 자료들은 대개 영문으로 출판됐는데 학계에서 한국의 교수들은 아직까지 언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몇몇 중요한 문서들의 경우 한국어로 번역되어 여러 대학에서 교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젊은 교수들이 역사적 사실이 담겨있는 이 같은 문서들이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언론들은 그동안 전쟁기간 동안 벌어진 잔혹 행위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 소개해 왔다. 이에 대한 논의에 물꼬를 트게 된 계기가 바로 1940~1950년대까지 한국군이 벌인 공산당 숙청작업으로 대표적인 예가 '제주 4.3사건'이다. 이에 비해 공산주의자들과 북한군이 저지른 학살에 대해서는 매우 적은 양의 자료가 남아있을 뿐이며 이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1950년대의 한국 사회는 이상주의에 사로잡힌 수많은 공산주의자들과 이들을 쫓는 경찰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상주의에 기반을 둔 공산주의는 인간의 잔인함(cruelty)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공산주의의 극단적 순수성을 강조했던 캄보디아의 폴 포트(Pol Pot)와 그의 추종자들이다. 폴 포트는 1975년 정권 탈취 후 3년8개월 동안 무려 200만이 넘는 무고한 캄보디아 주민들을 학살했다. 사진은 '뚜올 슬렝' 감옥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유골이다.

 1946~1955년까지 존재했던 공산게릴라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상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상주의는 잔인함(cruelty)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공산주의의 극단적 순수성을 강조했던 캄보디아의 폴 포트(Pol Pot)와 그의 추종자들이다.

 左派, 과거 北에 대한 소련 영향력 왜곡·축소 시켜

 한국은 한때 강력한 반공주의에 중심지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진보'(progressive)라는 탈을 쓴 좌파(left-wing)가 한국의 대학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과거 북한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애써 축소시키려 들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배운 것이 사실인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기도 한다.

 이와 동시에 한국의 좌파들은 미국에 대한 비난에 열을 올리고 이다. 일례로 이들은 1950년대 미국이 생물학 병기를 사용했다는 등의 오래된 증언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미국을 비난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舊 소련의 문서에 의하면 이 같은 내용들이 모두 북한 당국이 퍼트린 증거 조작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이런 내용들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번역되어 출판된 사례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 1998년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냉전시대 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과거 소련과 중국이 1950년대 내내 미국이 세균과 화학병기를 한국전쟁에서 사용했다는 거짓 선전을 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당시 공개된 舊 소련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중국 측 관리들이 북한측에 이 같은 거짓 선전을 유포하라고 부추겼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미국은 한국戰에서 생화학 무기 사용하지 않아

 특히 문서에 의하면 당시 수많은 한국인들이 콜레라로 사망했는데, 중국은 이를 두고 미국의 생화학무기가 원인이라고 단정을 내렸다고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문서에는 당시 공산당원들이 이를 조작하기 위해 콜레라에 걸려 죽은 북한 사람들의 시체를 그대로 방치해 둠으로써 병원균을 일부러 퍼트렸다고 되어 있으며, 이후 25명의 美 공군 포로들에게 서명(sign)을 강요함으로써 전쟁기간 동안 미국이 생화학 무기를 살포한 것으로 조작했다.

 ▲ 1945~1950년까지의 북한은 소련의 ‘괴뢰정권’(puppet regime)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은 1948년 북한의 5․1절 기념식 장면으로 김일성과 스탈린의 사진 좌우에 소련 국기와 태극기가 함께 걸려있다. 태극기는 그 후 북한에서는 다시 볼 수 없게 된다.

 한편, 스티븐 엔디코트와 에드워드 헤거맨이 공저(共著)한 '미국과 생물무기: 초기 냉전시대와 한국전쟁의 비밀'에서 두 저자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과 캐나다 군이 세균에 감염된 곤충을 이용해 생물학전을 수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또 당시 대부분의 강대국들이 생물학전에 대비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책의 경우 기본적으로 과거 구 소련이 실시한 생물학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학자들은 생물학 무기의 사용과 관련해 반박할 수 있는 자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같은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 것인가? 이유는 학자들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distortion)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한국 좌파는 1960~1970년대를 거쳐 자신들을 악으로 규정했던 우파 성향의 군부 정치체제에 대항해 성장해 왔다. 그러나 한국의 군부 독재는 상당히 온건(mild)했으며, 한국의 경제를 매우 효율적으로 경영했다.

 한국의 정통성 말살에 여념 없는 左派 지식인들

 따라서 한국의 좌파는 군부 정치체제의 정통성을 흔들기 위해 한국이란 국가는 그 시초부터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었다고 말해왔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좌파는 한국 정부가 건국 초부터 친일파를 고용하고 미군에 협조했던 사람들로 채워졌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이 같은 주장은 늘 확대·과장되어 왔다.

 좌파의 이 같은 주장은 한발 더 나아가, 한국 정부는 부패하고 의존적이었던 데 비해 초기의 북한은 이와는 정 반대의 체제였다고 믿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들은 1950년대의 북한이 거의 모든 부문에 있어 소련의 애완(puppet)동물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극구 부인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사실은 그들의 사고체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언급하지도 않는다.

 현재 접할 수 있는 역사 문서를 피상적으로 살펴봐도 사실관계는 분명히 알 수 있다.  1945~1950년까지의 북한 체제는 완전히 소련의 영향 하에 있었다. 앞서 언급한 북한의 토지개혁을 추진한 사람들도 소련의 관리들이다. 1948년 북한 헌법을 편집하고 검토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요제프 스탈린 자신이었다. 북한 공산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체포한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소련 경찰이었다. 북한의 반체제 인사들이 강제로 끌려간 곳은 어디인가? 바로 소련의 시베리아였다.

 ▲ 빨치산들이 6.25 전쟁당시 인민재판을 통해 학살한 양민의 수는 13만여 명에 이른다. 사진은 퇴각하던 공산군에 의해 학살된 우익인사들의 시체이다.
 1945~1950년까지의 북한은 소련의 '괴뢰정권'

 북한 정부가 어떠한 행동을 실천에 옮기기 전에 반드시 모스크바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여러 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소련의 공산당 정치국은 북한 의회를 승인했으며 이들의 허락 하에 북한은 1948년 퍼레이드를 실시하기도 했다.

 1948년 남북한 정치 지도자들의 회동(會同)도 소련의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이를 두고 좌파 역사가들은 평양의 지도자들이 애국충정의 마음에서 우러나와 이뤄진 회동이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당시 북한 지도자들이 연설한 내용의 전문(全文)은 모두 소련 의회의 승인을 받아 이뤄진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일부 자료만으로 1945~1950년까지의 북한을 소련의 '괴뢰정권'(puppet regime)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보다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겠지만 현재와 같이 젊은 시절 반공주의에 대해 알레르기를 느꼈던 남한의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인식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모든 남한의 좌파 지식인들이 오늘날의 북한을 찬양하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당수의 좌파 지식인들은 혁명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북한에 대해 신비감을 가지고 있으며, 북한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은 부패하지 않은 국가라고 여기고 있다.

 左派 지식인들, 北이 순수성 유지한 국가라고 믿고있어

 만일 북한 정권이 붕괴되고 이들이 저지른 폭정이 명백한 사실로 입증됐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한국의 좌파지식인들은 이 사실에 대해 어떤 말을 하게 될까? 필자의 생각으로 대부분의 좌파 지식인들은 이 시기가 도래하면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어, 현재는 부인하거나 애써 공개하지 않았던 과거 소련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내세워 북한 정권을 비난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북한 정권의 폭정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을 것이며(적어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이를 부인하려 들것이다.) 한국의 모든 '진보' 성향의 지식인들은 38선 이북에 여전히 정권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는 체제가 있다고 믿으려 할 것이다.

출처: 홍콩 '아시아타임스' 인터넷 리뷰 8/18

필자: 안드레이 란코프
舊 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 종합대 조선어문학과 졸업(1986)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現 국민대학교 교수
저서 <북한현대정치사>,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 <북한의 위기>


번역·정리: 김필재 (코나스 객원기자)

2005-08-19 오전 11:33:1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