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木手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않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은 누구인가?
시인.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1929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그해 조선일보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영문과에 유학했다. 34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잡지 《여성》 편집을 맡았으며 시 《정주성(定州城)》 등을 발표했다. 36년 33편의 시가 실린 시집 《사슴》을 자비로 100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면서 순수 서정시인으로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 등으로 재직하다 만주로 가 방랑생활을 했으며 광복 후 고향 정주로 돌아갔다가 북한 체제에 남게 됐다.
북한에서는 번역과 동화시 창작에 주력하다 숙청당한 뒤 63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나중에 그가 95년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향의식(失鄕意識)을 한국 고유의 가락에 실어 노래한 향토색 짙은 서정시로 30년대 한국문단에서 활동했으며, 유일한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다. 80년대 들어와 백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의 작품을 모은 《백석시전집(1987)》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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