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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昌根
駐카자흐스탄대사 인터뷰-{자원외교의 대상국으로서 특수관계 맺어야} 석유수출 본격화되면 소비 폭증 駐카자흐스탄 한국대사 김창근(金昌根)씨는 {자원의 보고인 카자흐스탄 정부는 다행히 한국에 대해 특별한 친밀감을 보이고 있으므로 우리도 장기적인 자원확보 측면에서 이 나라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두 나라 사이의 연간 무역량은 2억 달러 수준입니다만 석유자원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면 사정이 달라질 것입니다} 金대사는 카자흐스탄의 세대수를 5백만으로 잡는다면 1세대당 1人 취업으로 계산했을 때 1가구당 수입이 月40∼50달러, 年 5백 달러 정도라고 했다. 그는 만약 석유수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면 年1백70억 달러의 외화 수입이 가능해지며 이는 1人당 年1천 달러, 1가구당 4천 달러가 되므로 소비가 크게 늘 것이라고 계산했다. 金대사는 이곳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정부가 지불을 보증한 사업인데도 돈을 떼일 위험에 직면하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돈을 받도록 할 정도로 맹렬히 뛰고 있어 호평을 받고 있었다. 金대사는 {카자흐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정신을 가르쳐 준다는 생각에서라도 가만있지 않는다}고 했다. {카자흐스탄 동북쪽 중국과의 국경지대에 가보면 과거에 러시아가 중국을 얼마나 경계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미사일기지, 군사도로, 각종 안테나들이 촘촘히 중국을 겨냥하고 있었지요. 지금은 미국이 카자흐스탄의 전략적 위치가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하여 이곳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몽골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미국은 몽골-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터키의 몽골 벨트에 깊숙이 개입하여, 끈끈한 경제·군사적 관계를 맺어 놓고 21세기에 도전해올 중국에 대하여 이 草原지대를 등 뒤의 비수로 삼으로 하고 있는 듯했다. 凰育岵막?중국과 앙숙인 월남(越南)과 미국과의 관계도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어 미국의 對中國포위 작전이 이미 개시된 느낌을 주고 있다. 金대사는 {카자흐스탄 정부는 또 같은 투르크系 민족관계여서 그런지 터키와 아주 친밀하다}면서 {2천명의 유학생이 터키에 가서 공부중이고 약 2백개의 터키 회사(주로 건설업)가 이 나라에서 활동중이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둘 다 강력한 대통령 리더십으로 정치를 안정시킨 바탕에서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점에선 같지만 경제정책에선 카자흐쪽이 보다 개방적이고 우즈베키스탄은 점진적인 점이 다르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은 朴正熙의 개발 모델을 상당히 참고하여 對러시아 자주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점에서도 親러시아 정책을 견지하는 카자흐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비교된다. 알마타의 고려인들은 {서울 올림픽 이후에 우리를 보는 이곳 사람들의 시선이 존경으로 바뀌었다}면서 {일종의 신분상승감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었다. 金昌根 대사도 이렇게 말했다.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에게 대사 신임장을 제정했더니 인사가 끝난 뒤 이 사람이 하는 말이 [한국 때문에 소련이 망했다]고 하는 거예요. 고르바초프가 남북한의 발전과장을 주시하다가 남한의 승리로 끝나는 걸 보고는 한국식을 따르려고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시작했다가 브레이크를 놓친 것이라고 설명합디다} 서울 올림픽이 동구공산권 붕괴의 한 계기가 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한국식 개발 모델은 지금 몽골,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舊소련권 나라의 집중적인 연구대상 또는 이상형이 되고 있다. 징기스칸은 軍馬로써 유라시아 大草原을 정복했다면 朴正熙는 경제개발의 금자탑으로써 몽골벨트 국가의 엘리트들을 고무시키고 있다. 朴正熙·서울 올림픽·대우 같은 단어들은 몽골-투르크語 문화권에서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단어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만52세인 金道根 이사(대우 알렘자동차 판매법인 사장)는 [(회사의)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몸]이란 말을 자주 했다. 金이사보다 두 살 아래인 鄭卓相 이사와 30代인 元유준 (주)大宇 알마타 지사장, 그리고 다른 5명의 大宇사원들(모두 30代)이 회식하는 자리에서 문득 기자의 뇌리에 떠오른 말은 {역시 한국인은 조국을 떠나야 위대해진다}였다. 개발年代엔 졸병그룹에 속했던 金, 鄭이사는 이제 50代가 되어 조국으로부터 3천km나 떨어진 이곳 알마타에서 [반항의 30代]와 함께 뛰면서 카자흐人들에게 땀의 교훈을 가르치고 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몽골벨트에 징기스칸 군대처럼 홀연히 나타났던 한국인들은 머지않아 북방 草原지대를 한민족의 새로운 활동무대로 확보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인터뷰-{우리는 이제 최악의 고비를 넘겼다} {폭탄은 아니지요} 기자는 5월 31일 오후 3시30분부터 40분간 대통령 집무실에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인터뷰를 가졌다. 3시부터 하기로 했으나 대통령과 독일외무장관의 회담이 길어졌다. 한국인과 구별이 안되는 얼굴이지만 키는 1m80cm 정도로 큰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탁자 앞에 앉아서 차분하게 다소 빠른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냉철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이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선물을 전달하자 {폭탄은 아니겠지요}라고 농담을 하면서 웃었다. 그 웃음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그동안 한국을 두 번 방문하셨는데 한국에 대한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1990년 10월에 첫번째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카자흐스탄이 신생독립국가였던 시절로서, 빠른 시기에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과학기술이 크게 발전한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때 盧泰愚 대통령이 아주 친절하게 충고를 해주신 것을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盧대통령은 젊은 人材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의 전문가들을 여러 명 초청해 주었습니다} ―오는 6월의 러시아 대통령선거에서 공산당 후보 주가노프가 집권하면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관계가 나빠질 것으로 우려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러시아가 과거로 돌아가는 후퇴는 불가능합니다. 70%의 국가 재산이 사유화되었습니다. 과거로 회귀하는 정책을 펴면 러시아 내부에서 반발이 일어날 겁니다} {정치안정이 우리의 최대성과} ―한국인인 방찬영 교수가 대통령에게 경제발전에 관한 자문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朴正熙 대통령에 대한 연구도 하신 걸로 아는데 어떤 교훈을 얻었습니까. {方교수는 초기에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최초의 경영대학원도 우리 나라에 만들어 주셨고 요사이도 자주 만나고 있으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카자흐의 발전에 있어서 정치적 안정은 필수적 요건입니다. 최근 10년간 舊 소련의 여러 지역에서 소란이 있었지만, 우리는 민족과 종교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 정부의 가장 큰 성과인 것입니다. 이는 카자흐 민족의 이기주의를 자제해간 결과인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은 30년 전의 것이므로 오늘의 단계에서 그대로 대비,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나라는 40여 개의 정당이 있고, 국민이 뽑은 국회도 있으며 정치적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됩니다} ―카자흐스탄에 진출한 외국기업측의 이야기를 들으면 대통령과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면서 나라를 발전시키려 하는데 중간의 행정 관리직群이 사회주의 시대의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불평하더군요. {그것이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의식개혁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수십 년간 개인 소유가 없고, 자본주의가 나쁘다는 소리만 듣고 살았으니 잘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우선 1단계로 시장 경제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놓았으니 시간은 걸리겠지만 중간관리층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대우전자 TV생산공장의 경우에 공장이 가동중인데도 전기를 끊어 큰 혼란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대우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전기료를 안내는 사람에게 전기를 끊다가 보니 그 옆에 있는 회사가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지요. 발전소를 금년중에 사유화시키면 책임감이 생겨 그런 일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경제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섰다} ―대통령께서는 [21세기의 전야]란 책도 쓰셨는데,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의 장래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우리나라는 대단히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과 소련 붕괴의 후유증을 동시에 극복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최악의 고비를 넘겼다고 봅니다. 1993년 우리가 독립적인 화폐를 도입한 이래 한때 2백50%이던 물가상승률을 작년엔 60%까지 낮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환율도 안정을 지속하고 있으며, 올해 ¼분기엔 물가상승률이 6%로 다시 떨어졌습니다. GNP 성장률도 올해부터 플러스로 전환했고, 내년부터는 국민생활 수준향상에 주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석유·비철금속·농산물·금·은 등 자원이 풍부하고 중국-카자흐스탄-이란 간의 철로 건설이 완성되면 한국과의 수송도 편해질 것입니다. 최근 중국에서 투르크메니스탄을 통해 이란의 반다르 아바스항(港)에 이르는 철도의 연결공사 준공식에 참석했습니다. 이런 모든 조건은 카자흐스탄의 상품 수출에 좋은 바탕이 될 것입니다. 작년에 벌써 10억 달러의 흑자를 보였고 올해에는 ¼분기에 이미 7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였습니다} ―한국기업이나 한국인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카자흐스탄은 대답하게 개방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외국인이 일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은행제도가 새로 만들어졌고, 평소 외국인이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익금을 외국으로 가져 나가는 것도 자유롭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서로가 이익이 되는 사업을 해주시길 바라고 한국이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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