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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약자 외면하는 진보의 위선 ‘노란봉투법’

鶴山 徐 仁 2022. 9. 8. 15:33

[시론] 약자 외면하는 진보의 위선 ‘노란봉투법’

 

윤희숙 전 국회의원


입력 2022.09.08 03:00

 

올가을 입법전쟁의 예상 격전지가 여럿이다. 그중 무엇으로도 합리화되지 않는 싸움이자, 어떻게든 사수해야 하는 고지가 바로 ‘노란봉투법’이다. 노란봉투법은 폭력·파괴만 아니면 불법 파업이라도 손실에 대한 책임을 면책시켜야 한다는, 즉 ‘입법으로 불법을 보호’하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이다.

 

요즘은 국가가 불법 파업 관련 형사처벌을 자제하는 추세이니 금번 대우조선 사태에서 봤듯, 근로자들이 불법 파업을 강행할 때 마음에 걸리는 건 손배소로 신용불량자가 될 위험뿐이다. 그러니 이를 면해준다는 것은 파업의 무법지대 선언과 같다. 현재 국회의원 60여 명이 6개 발의안에 이름을 올렸고, 거대 야당은 역점 민생 법안으로 이를 지정해 놓았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법이 없다니,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참으로 특이하긴 하다.

 

그런데 우려되는 것은 이를 근로자와 경영계 간 갈등으로만 단순화하는 접근이다. 불법 파업의 비인간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속성은 기업 재산권이나 생산 활동 유지를 훌쩍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내용을 정확히 알리고 지지를 이끌어내야 하는 입법 전쟁에서 핵심은 ‘약자를 위한 정의로운 입법’이라는 프레임이 얼마나 허위인지를 폭로하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파업 원칙은 ‘쟁의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일하고자 하는 근로자의 근로할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이다. 파업 근로자도 시장의 약자지만, 파업에 불참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근로자 역시 약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업을 하더라도 주요 생산 시설을 점거해 업무를 마비시키는 행위, 일하고자 하는 근로자를 막거나 협박하는 행위가 용인돼서는 안 된다. 이런 행위가 모든 나라에서 불법으로 엄히 다스려지고 손배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모든 근로자가 다 귀하기 때문이며, 불법을 행하려거든 그에 따르는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우조선 하청 근로자의 열악한 근로 조건은 무능한 경영이든, 다단계 하청이든, 구조적 요인을 살펴 개선할 일이다. 그러나 손실을 모두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것은 불법을 부추겨 다른 근로자의 일할 권리를 탄압하겠다는 것이니, 이를 어찌 근로자를 위한 법이라 할까. 요즘 반미자주 투쟁을 당당히 내건 민노총의 행태를 보면, 약자를 위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 불법 정치파업을 일삼는 민노총에 백지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 이 법의 진의라는 게 뻔히 보인다.

 

파업의 합법성 요건이 너무 까다로워 아예 불법을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방어논리 역시 결정적 순간에는 약자 편이 아니라 우리 편을 드는 우리나라 진보 진영의 고질적 병증일 뿐이다. 2014년 쌍용차 파업 근로자에게 성금을 모아 보낸 노란봉투 캠페인 때 당시 문재인 의원은 ‘손배와 가압류는 노동3권을 무력화시키기에, 노란봉투법을 꼭 관철시키겠다’는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이었던 동안 거대 여당과 정부가 노란봉투법 통과를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합법성 요건이 별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보다 근로자에게 불리하다는 조항들을 ILO협약 비준으로 개정했을 때에도 파업 합법성 요건 완화는 언급조차 없었다. 설사 요건이 과하다 해도 불법을 없던 일로 칠 게 아니라 요건을 고쳐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은 상생의 노사관계를 향한 지난한 과정이었다. 건강한 관계의 기본은 노사 갈등이 있을 때 각자의 주장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며, 법을 지키는 것은 그 책임의 최소한이다. 그 최소한을 없애버리겠다는 입법자들이라면 30년간 쌓은 공든 탑을 부숴버리려는 철거 깡패와 무엇이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