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말 신 2:26-37
04월 21일 (목)
평화의 말 신 2:26-37
26. 내가 그데못 광야에서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평화의 말로 이르기를
27. 나를 네 땅으로 통과하게 하라 내가 큰길로만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라 28. 너는 돈을 받고 양식을 팔아 내가 먹게 하고 돈을 받고 물을 주어 내가 마시게 하라 나는 걸어서 지날 뿐인즉 29. 세일에 거주하는 에서 자손과 아르에 거주하는 모압 사람이 내게 행한 것 같이 하라 그리하면 내가 요단을 건너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르리라 하였으나 30.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가 통과하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넘기시려고 그의 성품을 완강하게 하셨고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31.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이제 시혼과 그의 땅을 네게 넘기노니 너는 이제부터 그의 땅을 차지하여 기업으로 삼으라 하시더니 32. 시혼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야하스에서 싸울 때에 33.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우리에게 넘기시매 우리가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모든 백성을 쳤고 34. 그 때에 우리가 그의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그의 각 성읍을 그 남녀와 유아와 함께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진멸하였고 35. 다만 그 가축과 성읍에서 탈취한 것은 우리의 소유로 삼았으며 36.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모든 땅을 우리에게 넘겨주심으로 아르논 골짜기 가장자리에 있는 아로엘과 골짜기 가운데에 있는 성읍으로부터 길르앗까지 우리가 모든 높은 성읍을 점령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나 37. 오직 암몬 족속의 땅 얍복 강 가와 산지에 있는 성읍들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가기를 금하신 모든 곳은 네가 가까이 하지 못하였느니라 모세가 그데못 광야에서 사자를 보내 헤스본(아모리) 왕 시혼에게 <평화의 말>을 전했습니다. 헤스본 땅을 통과하여 가나안으로 가게 해주면 오직 큰 길로만 가고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 일체 약탈하는 일 없이 양식과 물을 사서 먹고 마시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지나온 세일산 에돔 족속과 암몬 사람, 이르레에 사는 룻 자손 모압 자손들에게 행한 것 같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조용히 통과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불신자들과 가능한 한 화평해야 합니다. 평화의 말로 대화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투거나 대립하며 갈등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도 그렇게 평화의 말로 그들과 협상하고자 시도했는데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가 통과하기를 허락하지 아니하고 ... 도리어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싸웠다>(30, 32절)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내가 이제 시혼과 그의 땅을 네게 넘기노니 너는 이제부터 그의 땅을 차지하여 기업으로 삼으라 ... 그때에 우리가 그의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그의 각 성읍을 그 남녀와 유아와 함께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진멸하였다>(31, 34절)고 합니다. <평화의 말>을 거절했던 헤스본 왕 시혼이 지불한 대가는 너무도 크고 참혹했습니다. 땅도 성읍도 백성도 짐승도 다 잃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평화의 합창을 불러야 합니다. 쉼 없이 평화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평화의 촛불을 켜고 전쟁의 바람이 부는 광야에서 목숨을 걸고라도 평화의 말을 시도하며 원수됨의 벽을 허무신 평화의 주님을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의 평화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또한 <평화의 말>을 차버린 헤스본 왕 시혼처럼 전쟁의 잿더미 위에 앉아 통곡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헤스본 왕 시혼의 멸망이 역설적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평화에 관한 귀한 깨우침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본문이 말씀하는 <평화의 말>(26절)이란 어떤 말을 뜻하는 것일까요?
-<진멸>(34절)이란 히브리어 <하람>으로 그 의미는 <어미와 새끼를 동시에 죽이다>는 뜻입니다. 헤스본에 대한 하나님의 이런 심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평소 <평화의 말>을 하는 피스 메이커입니까? 혹은 늘 불화를 조장하는 트러블 메이커입니까? 주님, 시혼 황은 결국 이스라엘이 건넨 <평화의 말>을 걷어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헤스본의 시혼 왕에게 공의로우신 심판을 내리사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그 남녀와 심지어는 유아들까지도 남김없이 진멸하게 하셨고, 가축과 모든 소유를 탈취하게 하셨습니다. 주님, 지금 저희 나라도 평화가 생존의 절대 요건입니다. 분단된 남북이 부단히 <평화의 말>을 건네게 하사 헤스본처럼 망하지 않고 남북이 함께 사는, 화해하고 통일을 이루는 복된 역사를 만들어 가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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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대할 때 적절한 거리
“‘사람을 대할 때는 불을 대하듯이 하라.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
도로 떨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 디오게네스의 명언으로,사람 사이의 관계는 너무 가까이 다가가도 상 처를 안겨주게 되고 너무 멀리 떨어져도 친해지기 힘들다는 의미.” 한수운 저(著) 《결정적 한마디가 삶의 철학이 된다》 (아이템하우스, 5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미국의 존 오트버그(John ortberg) 목사님은 그의 저서 《우리는 만나면 힘이 됩니다》에서 흥미로운 선언을 하였습니다. “인간은 고슴도치 같다!” 거의 모든 동물은 떼를 지어서 이동합니다. 그러나 고슴도치는 혼자 다 닙니다. 고독을 즐겨서가 아닙니다. 고슴도치도 외로움을 타는 계절이 다가오면 다른 고슴도치에게 접근합니다. 그때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합니다. 몸에 돋힌 수많은 가시로 상대방을 찌르기도 하고, 자신도 상대방의 가시에 찔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서로 만나면 상처를 주는 존재. 우리 인간은 정말 고슴도치 같습니다. 고슴도치가 서로의 가시가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듯이 인간관 계에도 필요한 거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서로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자 양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좋은 거리가 있어야 바람이 지나갑니다.
바람이 지나야 썩지 않고 늘 신선한 법. 마구 대하지 않고, 마구 말하지 않는 이 적절한 거리. 이 거리가 바로 “예의”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고전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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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장 32절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For the waywardness of the simple will kill them, and the complacency of fools will destroy them; proverbs 1:32 [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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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시작
로마의 황제숭배 강요로 극도의 혼란과 어려움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도 유대인들로부터 오는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 믿음의 공동체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하지만 고난 앞에서 교회들의 민낯도 드러났다. 스스로 부유하게 여기는 교만한 모습을 보이는 교회가 있었다. 미적지근한 믿음의 문제를 드러내는 교회도 있었다. 힘이 빠져서 주저앉아 있거나 아예 믿음이 죽어 있던 교회들도 있었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으로 진리를 혼란스러워하는 교회들도 있었다.
-조경철의 [신약성서가 한눈에 보인다] 중에서- 교회는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예수를 지켜내기 위해 그들의 고백은 굴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목숨까지는 내어 놓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렇지 않은 교회의 모습도 존재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에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것 같지만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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