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열심을 보라 왕하 10:12-17
04월 25일 (월)
나의 열심을 보라 왕하 10:12-17
12. 예후가 일어나서 사마리아로 가더니 도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에 이르러
13. 예후가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하는지라 14. 이르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이 명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15. 예후가 거기에서 떠나가다가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지라 그의 안부를 묻고 그에게 이르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르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으니 예후가 끌어 병거에 올리며 16.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17.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에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예후가 거기에서 떠나가다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지라 그의 안부를 묻고 그에게 이르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르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15절).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여호나답은 <요나답>과 동일한 인물로(렘 35:1-9), 레갑 족속의 족장이었습니다. 레갑 족속은 밭이나 과수원을 만들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는 대단히 엄격한 금욕주의자들이었을 뿐 아니라 선조들의 교훈을 따라 하나님의 명령을 잘 준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을 짓지 않고 천막 속에서 살았으며 여호와 신앙에 열심을 다했기 때문에 불순종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원래 레갑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에 들어간 갈렙의 후손(대상 2:42, 55)으로서 겐 족속의 일파입니다. 이들은 가나안에서 유다 남부에 정착했었으나 곧 농경생활을 멀리하고 오직 여호와 신앙에 철저했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이들을 몹시 칭찬했습니다. 그래서 예후는 여호나답으로부터 친구로서의 우정을 확인하고 자신의 혁명이 정당함을 인정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나답을 존경하고 따르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도 받고 또 나라의 모든 힘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16절). 예후가 여호나답에게 <나의 열심을 보라>고 한 것은 믿음이 깊은 여호나답과 협력하여 종교개혁을 이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신앙의 동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예후의 열심을 보며 <지금은 어떠한 때인가> <이런 때엔 무엇을 해야 가장 올바른가> 하는 문제 등도 생각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각기 제 나름의 때가 있는 법이고 시의적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때를 분별할 줄 아는 혜안을 얻는 것이 곧 지혜의 첩경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어서 시간의 겉모습만 볼 뿐 그 내면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읽어내는 능력이 언제나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실수를 거듭하고 또 다시 잘못이라는 덫에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 우상을 척결하는 예후의 개혁운동은 아직까지는 거침이 없습니다. - 본문 12절의 <양털 깎는 집>이란 어떤 곳이었을까요?
- 레갑은 겐 족속(대상 2:55)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옛 모세의 장인도 겐 사람이었음을 사사기 1:16에서 확인해보십시오. - 서로 <손을 잡는>(15절)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에스겔 17:18, 역대상 29:25에서 확인해보십시오. 주님, 예후는 열심을 품고 우상을 타파하고 우상 숭배자들을 척결했습니다.
강력한 지지를 기대한 여호나답을 만나서도 <나의 열심을 보라>고 할 만큼 종교개혁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인간 역사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의 비밀을 바르게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람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늘 겸허하게 자신을 살피며 진심으로 감사하는 성도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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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관리를 못해서 망한
개국 공신 이화 등이 상소하였다.
“지난해에 전하께서 양위를 하려 할 때, 온 나라 신민이 마음 아프게 생각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민무구 등은 기뻐하는 빛을 얼굴에 나타 냈으며,전하께서 복위하신 뒤에 이르러서도,온 나라 신민이 기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민무구 등은 도리어 슬프게 여겼습니다.” 《태종실록 14권》태종 7년 7월 10일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태종 이방원은 왕권 강화를 위하여 부인인 원경왕후의 민씨 집안을 견 제합니다. 이에 원경왕후의 동생인 민무구 민무질이 귀향을 가게 되고 죽음에까지 이릅니다. 이들이 참화를 겪게 되는 표면인 이유는 얼굴 관리 즉 표정 관리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태종이 정치적 이유로 아들 양녕 세자에게 왕위를 조기에 물려준다는 발표를 하였을 때, 이들은 기쁜 얼굴을 보였고, 태종이 다시 왕위 이양을 철회하자 싫은 기색을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개국 공신인 이화 등이 상소하며 문 제가 되었습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정치적 이유입니다. 그러나 얼굴은 마음의 초상화입니다. 우리 말에 ‘낯꽃이 곱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은 얼굴에 피는 낯꽃입니다. 얼굴 관리 표정 관리는 영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중요한 일입니다. 이미지 코칭 전문가 정연아는 《행복한 크리스천에겐 표정이 있다》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선한 크리스천의 이미지는 선한 얼굴에서 나온다. 선한 얼굴은 선한 주님의 영에서 나온다. 주님의 영은 온유하다. 온유한 표정이야 말로 크리스천의 모범적인 얼굴이다. 한 사람의 얼굴이 그 사람의 상징이듯 크리스천의 얼굴은 곧 ‘믿음의 깊이’를 대변한다.” 신앙의 깊이가 얼굴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얼굴이 하나님 미
소로 빛나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지니라 하라.” (민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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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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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
자기 의에서 나온 섬김은 인간의 노력을 통해 온다. 이것은 어떻게 섬길지를 게산하고 계획하는 데 막대한 힘을 소비한다. 자기의 의로 사람들을 돕는 데에는 사회학적인 도표와 조사가 계획된다. 그러나 진정한 섬김은 내부 깊은 곳에 계시는 거룩하신 분과의 관계에서 온다. 우리는 내부 깊은 곳에서 속삭이는 음성, 즉 신적 촉구에 의하여 심긴다. 힘이 소비되기는 하지만 그 힘은 육신의 격한 힘이 아니다.
-리처드 포스터의 [영적 훈련과 성장] 중에서- 섬김의 출발이 나의 노력이라면 우리는 쉽게 지칩니다. 그러면 내가 아니라 누가 하느냐고 따져 물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삶의 원천이며 힘이신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때야말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참된 섬김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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