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알 숭배자들 척결 왕하 10:18-29
04월 26일 (화)
바알 숭배자들 척결 왕하 10:18-29
18.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19.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 20. 예후가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거룩히 열라 하매 드디어 공포되었더라 21. 예후가 온 이스라엘에 사람을 두루 보냈더니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진 자가 없이 다 이르렀고 무리가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매 바알의 신당 이쪽부터 저쪽까지 가득하였더라 22. 예후가 예복 맡은 자에게 이르되 예복을 내다가 바알을 섬기는 모든 자에게 주라 하매 그들에게로 예복을 가져온지라 23.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더불어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하고 24. 무리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예후가 팔십 명을 밖에 두며 이르되 내가 너희 손에 넘겨 주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리라 하니라 25. 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지휘관들이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지고 26. 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27.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28.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29.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19절).
예후는 이 계략으로 이스라엘에서 바알의 종교를 완전히 쓸어버리려는 대단하고도 극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예후가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지휘관들이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지고 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으르니라>(25-27절). 바알의 목상들을 불태우고 바알의 신당을 헐어 그 곳에 변소를 만들었다는 것은 바알에 대한 극도의 치욕 행위였습니다. 또한 우상 숭배자들의 바알에 대한 기억을 말살하려는 조치였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은 예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28-29절). 사실 예후의 종교개혁은 바알을 제거하고 바알 숭배자들을 척결하는 데만 국한된 부분적인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신 종교개혁에는 도달하지 못한 아쉽고 미흡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후 또한 우상 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을 선고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후의 경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① 누구나 악의 길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체험과 그의 사랑을 계속해서 잘 간직해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신앙도 계속 성숙시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은 우상 숭배로 멸망한 예후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② 개혁은 한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후처럼 부분적으로만 고치고 정치적 혹은 또 다른 이유로 보다 완전한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그 불완전한 부분으로 인해 다시 죄악의 길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 예후의 종교개혁을 간략히 평가해보십시오.
- 예후가 바알은 그토록 철저하게 진멸했으면서도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29절)에서는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 본문 27절 말씀에 대한 당신의 소감을 적어보십시오. 주님, 예후는 악과 싸웠으나 그것을 위해 또 다른 악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죄는 결코 죄로써 이길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바알은 물리쳤지만 금송아지는 계속 섬겼다는 성경의 지적이 예후의 종교개혁의 한계와 문제점을 그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디 철저한 하나님 경배가 우상 숭배를 대신하지 않는 한 누구나 그런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오늘 저희로 하여금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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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책은 읽을 때에만 책이다. 읽히지 않으면 활자가 찍힌 종이 더미일
따름이다. 하여 모든 책은 책장을넘겨 줄 손길을 갈망한다. 리베카 솔 닛은 우리가 책이라 부르는 물건은 진짜 책이 아니라 책의 가능성,악 보나 씨앗 같은 것이라고 한다. 책은 잠자는 왕자 혹은 공주다. 그 가 능태를 현실태로 바꿔 줄 이는 독자다. 독서는 그의 눈을 뜨게 하는 입 맞춤이다.” 박총 저(著) 《읽기의 말들》 (유유, 44쪽) 읽지 않은 책은 라면 받침대일 뿐이고, 읽지 않은 신문은 신문지일 뿐 입니다. “음악은 세 번 태어납니다 / 베토벤이 작곡했을 때 태어나고 / 번스타인이 지휘했을 때 태어나고 / 당신이 들을 때 태어납니다.” 모 음악 가전 회사 광고 공모전에서 수상한 카피 문구입니다. 음악은 청취자가 있을 때 음악으로 태어납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자의 독서가 있을 때 책이 책됩니다. “보르헤스는‘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하고, 움베르토 에코는 ‘가만히 글로 쓰인 텍스트는 독자에게 가 닿으면 폭 죽처럼 터져서 표현으로 피어난다.’고 멋들어지게 말한다.”(44쪽)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또한 성경을 읽고 은혜를 받을 성도들의 묵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에 먼지가 쌓여 갈 때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실 것입니다. 컴퓨터로 혹은 스마트폰으로 성경을 읽어도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읽거나 않 읽거나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읽고 은혜를 받을 때, 성경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레마)로 역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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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3
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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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주신 이유
우리는 하나님이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의 권능을 왜 선물로 주셨는지 질문해야 한다. 하나님이 성령의 기름을 가득 채워 주신 이유는 마가의 다락방 안으로 피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이 아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신 것도 아니다. 마가의 다라방을 나와 세상 속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힘을 주신 것이다.
-김기승의 [왜 교회일까?] 중에서- 오늘도 성령의 힘을 의지하여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무수히 많은 업무와 관계속에 성령님의 개입을 기대하며 그분께 매 순간을 맡겨 드려야 합니다. 오순절 성령 사건은 땅끝까지 나갈 힘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열심히 아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초를 교회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
04월 26일 (화)
바알 숭배자들 척결 왕하 10:18-29
18.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19.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 20. 예후가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거룩히 열라 하매 드디어 공포되었더라 21. 예후가 온 이스라엘에 사람을 두루 보냈더니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진 자가 없이 다 이르렀고 무리가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매 바알의 신당 이쪽부터 저쪽까지 가득하였더라 22. 예후가 예복 맡은 자에게 이르되 예복을 내다가 바알을 섬기는 모든 자에게 주라 하매 그들에게로 예복을 가져온지라 23.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더불어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하고 24. 무리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예후가 팔십 명을 밖에 두며 이르되 내가 너희 손에 넘겨 주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리라 하니라 25. 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지휘관들이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지고 26. 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27.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28.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29.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19절).
예후는 이 계략으로 이스라엘에서 바알의 종교를 완전히 쓸어버리려는 대단하고도 극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예후가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지휘관들이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지고 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으르니라>(25-27절). 바알의 목상들을 불태우고 바알의 신당을 헐어 그 곳에 변소를 만들었다는 것은 바알에 대한 극도의 치욕 행위였습니다. 또한 우상 숭배자들의 바알에 대한 기억을 말살하려는 조치였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은 예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28-29절). 사실 예후의 종교개혁은 바알을 제거하고 바알 숭배자들을 척결하는 데만 국한된 부분적인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신 종교개혁에는 도달하지 못한 아쉽고 미흡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후 또한 우상 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을 선고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후의 경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① 누구나 악의 길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체험과 그의 사랑을 계속해서 잘 간직해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신앙도 계속 성숙시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은 우상 숭배로 멸망한 예후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② 개혁은 한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후처럼 부분적으로만 고치고 정치적 혹은 또 다른 이유로 보다 완전한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그 불완전한 부분으로 인해 다시 죄악의 길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 예후의 종교개혁을 간략히 평가해보십시오.
- 예후가 바알은 그토록 철저하게 진멸했으면서도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29절)에서는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 본문 27절 말씀에 대한 당신의 소감을 적어보십시오. 주님, 예후는 악과 싸웠으나 그것을 위해 또 다른 악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죄는 결코 죄로써 이길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바알은 물리쳤지만 금송아지는 계속 섬겼다는 성경의 지적이 예후의 종교개혁의 한계와 문제점을 그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디 철저한 하나님 경배가 우상 숭배를 대신하지 않는 한 누구나 그런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오늘 저희로 하여금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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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책은 읽을 때에만 책이다. 읽히지 않으면 활자가 찍힌 종이 더미일
따름이다. 하여 모든 책은 책장을넘겨 줄 손길을 갈망한다. 리베카 솔 닛은 우리가 책이라 부르는 물건은 진짜 책이 아니라 책의 가능성,악 보나 씨앗 같은 것이라고 한다. 책은 잠자는 왕자 혹은 공주다. 그 가 능태를 현실태로 바꿔 줄 이는 독자다. 독서는 그의 눈을 뜨게 하는 입 맞춤이다.” 박총 저(著) 《읽기의 말들》 (유유, 44쪽) 읽지 않은 책은 라면 받침대일 뿐이고, 읽지 않은 신문은 신문지일 뿐 입니다. “음악은 세 번 태어납니다 / 베토벤이 작곡했을 때 태어나고 / 번스타인이 지휘했을 때 태어나고 / 당신이 들을 때 태어납니다.” 모 음악 가전 회사 광고 공모전에서 수상한 카피 문구입니다. 음악은 청취자가 있을 때 음악으로 태어납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자의 독서가 있을 때 책이 책됩니다. “보르헤스는‘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하고, 움베르토 에코는 ‘가만히 글로 쓰인 텍스트는 독자에게 가 닿으면 폭 죽처럼 터져서 표현으로 피어난다.’고 멋들어지게 말한다.”(44쪽)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또한 성경을 읽고 은혜를 받을 성도들의 묵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에 먼지가 쌓여 갈 때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실 것입니다. 컴퓨터로 혹은 스마트폰으로 성경을 읽어도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읽거나 않 읽거나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읽고 은혜를 받을 때, 성경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레마)로 역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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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3
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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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주신 이유
우리는 하나님이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의 권능을 왜 선물로 주셨는지 질문해야 한다. 하나님이 성령의 기름을 가득 채워 주신 이유는 마가의 다락방 안으로 피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이 아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신 것도 아니다. 마가의 다라방을 나와 세상 속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힘을 주신 것이다.
-김기승의 [왜 교회일까?] 중에서- 오늘도 성령의 힘을 의지하여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무수히 많은 업무와 관계속에 성령님의 개입을 기대하며 그분께 매 순간을 맡겨 드려야 합니다. 오순절 성령 사건은 땅끝까지 나갈 힘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열심히 아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초를 교회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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