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어찌 평안이 있으랴 왕하 9:21-29

鶴山 徐 仁 2022. 4. 18. 15:28

어찌 평안이 있으랴 왕하 9:21-29

 
 
04월 18일 (월)
   
어찌 평안이 있으랴 왕하 9:21-29



21. 요람이 이르되 메우라 하매 그의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
23.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하니
24.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그가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진지라
25. 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2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제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이 밭에 던질지니라 하는지라
27.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28. 그의 신복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29.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21-22절).
요람과 아하시야가 예후를 맞은 것은 그에게서 전시상황을 듣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후와 요람이 굳이 <나봇의 토지>에서 상봉하게 된 것은 아합의 죗값을 심판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우연처럼 여겨지지만 실은 예언의 말씀에 대한 정확한 성취였습니다. 


<나봇의 토지>는 아합의 탐욕과 배교를 상징하는 곳 아닙니까? 
그런 곳에서 예후가 이세벨의 죄악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가 바로 아합이 지은 죄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고 또한 그녀의 악행에 대한 예후의 반란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아여 반역이로다>(23절).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히브리어 문장은 더 짧게 단 두 단어 <반역, 아하시야>로 되어 있습니다. 요담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하며 이렇게 자신의 사촌에게 다급한 경고를 외친 것입니다. 그러나 예후는 훈련된 군인이었습니다.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그가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진지라>(24절).
요람은 도망치며 예후에게 등을 보였고, 예후의 화살은 요람의 몸을 관통하여 심장을 뚫고 나왔습니다. 예후는 분명 아합에 대한 엘리야의 선고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당시 예후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음을 암시해줍니다. 
만약 예후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아합의 집을 진멸하시기 위해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그에 대한 기름부음을 명령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후가 왕이 되어 바알의 산당을 헐고 그곳에 화장실을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 예후를 칭찬하신 말씀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신복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묘실에 장사하니라>(28절).
비록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과 교제를 나눔으로 예후의 손에 죽임을 당하긴 했지만 그 역시 다른 유다 왕들과 같이 다윗 성에 있는 가족 묘실에 안장되었습니다. 역대하 22:9은 그가 그렇게 장사된 것은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 본문 23절의 요람의 경우와 열왕기상 22:34에 나오는 아합의 경우를 서로 비교해보십시오.
- <나봇의 토지>(21절)에 관해 간략히 적어보십시오.
- 본문 26절과 병행구절인 열왕기상 21:13 말씀을 대조해보십시오.
 
주님, 아합의 집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기름부음을 받은 예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아합의 아들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의 비참한 최후를 통해 아합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크신가 하는 점도 생각해봅니다. 
부디 이런 과거 이스라엘의 흑역사를 통해 이 시대 저희도 많은 것을 깨닫고 또 새롭게 결단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강한 인공지능
 
“강한 인공지능을 범용 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igence)
이라고도 한다. 이 개념에는 여러 가지 다른 상황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는 범용성 개념과 독립적으로 의지를 갖고 의사결정을 한다는
두 가지 개념이 섞여 있다. 쉽게 말하자면 생명체인 사람과 같이 생각
하고 행동하는 지능을 의미한다.”


김진형 저(著) 《AI최강수업》 (매일경제신문사, 56쪽) 중에 나오는 구
절입니다.  
강한 인공지능(Strong Artificial Inteligence)은 인간을 지능을 모방한
지능입니다.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생각, 감정, 예측 등이 가능하며
인간처럼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으로 ‘범용 인공지능 AGI’
이라고 부릅니다. 즉, 독립성이 있고,자아가 있고,정신이 있고, 자유
의지가 있는 인공지능입니다. 현재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불릴만한 수
준의 인공지능은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강한 인공지능의 모델이 인간의
뇌인데 아직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가 아직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
다. 즉, 강한 인공지능에 필요한 뇌과학적 요소들, 정신, 감정, 창의성,
자아에 대해 아직 뇌 과학적으로 이해를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점점 강한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와 실생활이 적용은 현실화 될
것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인공지능은 더욱 발전해서 인간의 지적능
력을 훨씬 능가하는 슈퍼인텔리전스(초지능)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초지능을 가진 강한 인공지능이 안전하게 운용된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이
노동을 책임지고 인류는 여가를 즐기며 행복을 추구하는 유토피아(?)가
열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인공 지능을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조건하에 가능합니다. 강한 지능을 가진 강한 존재가 인간의 통제 밖에
있다면 그야말로 재앙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하타)’ 의 근본 개념은  “올바른 방향(과녁)을 벗
어난 것” 입니다.  즉,  하나님께 부여받은 탁월한 능력으로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을  ‘죄’ 라고 합니다.
큰 능력으로 다른 방향으로 가면 가장 큰 비극이 됩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16:9)

   
잠언 1장 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but fools despise wisdom and discipline.
proverbs 1:7 [NIV]
   
참된 영성
참된 기독교 영성은 자아를 발견하거나 깨달음을 얻거나 심지어 삶에 새로운 차원을 더하려는 추구가 아니다. 천만의 말이다.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다. 이 추구를 시작하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추구할 능력을 주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가능하게 하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갈망하는 대상은 하나님이다. 어떤 능력이나 체험이나 초자연 세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된 하나님이시다.
-게리 토마스의 [뿌리 깊은 영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중에서-


참된 영성은 하나님이 아닌 것을 구하게 되면 우상을 섬기는 일이 되거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참된 영성은 정직이며, 정결함입니다. 세상이 거짓을 우리에게 강요할때에 하나님이 유일하신 분이심을 믿는 것은 더욱 귀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