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을 차지하라 신 2:16-25
04월 16일 (토)
그 땅을 차지하라 신 2:16-25
16. 모든 군인이 사망하여 백성 중에서 멸망한 후에
17.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8. 네가 오늘 모압 변경 아르를 지나리니 19.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20. (이곳도 르바임의 땅이라 하였나니 전에 르바임이 거기 거주하였음이요 암몬 족속은 그들을 삼숨밈이라 일컬었으며 21. 그 백성은 아낙 족속과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컸으나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 앞에서 그들을 멸하셨으므로 암몬 족속이 대신하여 그 땅에 거주하였으니 22. 마치 세일에 거주한 에서 자손 앞에 호리 사람을 멸하심과 같으니 그들이 호리 사람을 쫓아내고 대신하여 오늘까지 거기에 거주하였으며 23. 또 갑돌에서 나온 갑돌 사람이 가사까지 각 촌에 거주하는 아위 사람을 멸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거기에 거주하였느니라) 24. 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25.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모압과 암몬 자손들과는 다투거나 싸우지 말고 그들을 괴롭히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예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에서의 자손인 에돔 족속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은 다 친척이고 같은 혈육이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땅도 넘보지 말라고 당부하셨고 폐를 끼치는 일도 금하셨습니다.
그러나 헤스본 왕 시혼의 땅은 달랐습니다. <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다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자지하라>(24절). 원래는 헤스본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한 땅이 아닙니다. 그러나 헤스본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며 길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 손에 넘기시며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어떤 무례한 적들도 하나님이 그들을 우리 손에 붙이시면 우리를 당해낼 수 없고 하나님이 그 대적하는 자들의 땅을 우리에게 주사 차지하라 하시면 그게 곧 우리의 땅이 됩니다. 보십시오!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25절)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때로 힘들고 낙심되어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때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는 이렇게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오늘이라도 땅을 차지할 수 있고, 하나님이 우리의 대적을 우리 손에 붙이시면 아무리 강대한 자도 우리가 능히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천하 만민이 우리를 두려워하여 시비는커녕 그들이 도리어 우리로 말미암아 근심하게 되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부디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가슴에도 큰 용기와 확신과 하나님의 기운으로 가득 찬 사랑의 숨결을 허락하시길 빕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자리가 낙담이나 탄식이나 절망의 어둡고도 음습한 땅이 아니라 내일의 희망을 여는 헤스본 땅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천하 만민이 믿는 자들을 무서워하고 떨며 근심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이 이스라엘을 대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신은 때로 하나님이 당신을 돕고 편들고 계심을 체험하고 계십니까? 주님, 헤스본 왕 시혼은 무례했고, 이스라엘에 대해 대단히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냥 곱게 지나가겠다는 해도 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하나님이 그의 땅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보다 너그러운 마음, 관대한 마음을 주사 남을 도우며 양보하며 협조하며 더불어 살게 해주시옵소서. 시혼 왕은 자기 땅을 지키려다 오히려 잃고 말았습니다. 서로 나누며 격려하며 화평을 도모하며 사는 게 가장 아름다운 삶임을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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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뭐꼬?
경북 칠곡군의 까막눈 할머니들이 한글교실에서 한글을 배워서 시를
쓰고 시집을 냈습니다. 맞춤법에서 자유롭고, 사투리를 표준어로 바꿀 필요도 없는 나비들. 유수(流水) 같이 흘러간 날들, 늙음, 영감님에 대한 사랑과 서운함, 자식들에 대한 애탐과 사랑, 농사일의 고됨과 보람. 배우는 즐거움... 시가 뭐꼬? 시를 쓰지만 시같이 안 사는 사람이 있고, 시는 안 썼지만 시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장 신앙인처럼 보였지만,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못 박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자 같았으나 예수님의 큰 사 랑을 입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막16:9) “논에 들에 할 일도 많은데
공부시간이라고 일도 놓고 헛둥지둥 왔는데 시를 쓰라 하네 시가 뭐고 나는 시금치씨 배추씨만 아는데” 소화자 할머니의 시 「시가 뭐고」의 전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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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사상이 아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는 피이다.
헌신에는 속량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 속량이라는 말은 값을 주고 산 것을 말한다.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시기 위해 당신의 피를 흘리신 것이다. 돈으로 산 것이 아니다. 노동의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니다. 강압적으로, 말로 우리를 구하신 것이 아니다. 피를 흘리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사상이 아니다. 피를 흘려 구원하신 것이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의 심장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흐른다. 그들의 영혼 속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용솟음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자기 속에 살아 계시다고 말했다. : -박종태 목사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보고 우리들은 우리들의 참된 헌신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들이 희생하므로써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혹은 수고로운 짐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량이 없는 헌신은 공염불일 뿐입니다. 우리들도 우리들의 생명을 바쳐 주님 위해 살아야 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속량하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렇듯 고귀한 생명의 피를 흘려 우리를 구원하셨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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