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의 혁명 왕하 9:11-20
04월 13일 (수)
예후의 혁명 왕하 9:11-20
11. 예후가 나와서 그의 주인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그에게 묻되 평안하냐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냐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가 말한 것을 알리라 하더라
12. 무리가 이르되 당치 아니한 말이라 청하건대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 하니 대답하되 그가 이리 이리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 하는지라 13.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14.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아람의 왕 하사엘과 맞서서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15. 아람의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부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알리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16.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 왕이 거기에 누워 있었음이라 유다의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17. 이스르엘 망대에 파수꾼 하나가 서 있더니 예후의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하니 요람이 이르되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어 맞이하여 평안하냐 묻게 하라 하는지라 18.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하니라 파수꾼이 전하여 이르되 사자가 그들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19. 다시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었더니 그들에게 가서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를 따르라 하더라 20. 파수꾼이 또 전하여 이르되 그도 그들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가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하니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13절).
<겉옷>은 권위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군대 장관들이 이 같은 행위를 했다는 것은 평소 그들이 예후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마음이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심지어 그들이 선지자 생도를 <미친 자>(11절)라고 경멸했음에도 선뜻 그의 말을 받아들여 예후에 대해 <왕이라> 한 것은 바로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신 왕에게 경의를 표하는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선왕인 요람이 살아 있고, 여전히 왕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예후의 그런 행위는 사실상 요람과 오므리와 아합 가문에 대한 반역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예후로서는 아직 모든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람의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부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생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알리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15절). 예후가 왕으로서 첫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독단적인 처사를 하는 대신 부하들의 의사를 최대한 고려하여 신중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예후로서는 또한 지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길르앗 라못에서 일어난 일을 왕에게 먼저 보고하기 전에 자신이 이스르엘에 도착하기 위해 <병거를 타고>(16절) 급히 달려갔다고 합니다. 요람은 아직 상처가 다 회복되지 않아 자리에 누워있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성격이나 정서처럼 행동합니다. 예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씀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가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20절). 예후는 정력적인 사람이며 신속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병거를 <미친 듯 몰았다>고 합니다. 군인으로서 용기 있고 원기 왕성하며 민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늘 누군가를 죽이고 억누르며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익숙했던 사람이 그와는 다른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솔로몬도 자칫 포악한 군주가 될 수도 있을 뻔했던 기로에서 현군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었습니다. 냉혹하기 짝이 없던 존재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생각하게 됐고 또 그것을 그의 통치관의 기초로 삼은 사람이었습니다. - 11절에 등장하는 <미친 자>라는 말은 무슨 뜻이며, 예레미야 29:26 말씀을 참고하여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를 말씀해보십시오.
- 나팔을 부는 일(13절)은 왕의 즉위식에 행해졌던 공식적인 의식이었습니다. 사무엘하 15:10, 열왕기상 1:39 등에서도 확인해보십시오. - 옛 이스라엘 지도에서 <이스르엘>(10, 15, 16, 17)을 찾아보십시오. 주님, 하나님이 예후를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사 아합의 아들 요람 왕을 제거하고 이어 아합의 사위 아하시야와 이세벨까지 응징하게 하심으로 아합 가문을 완전히 심판하셨습니다.
부디 저희로 하여금 예후를 통한 아합 왕조의 멸망을 보며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
|
소를 키우려면 외양간이 더러워진다
“북유럽의 흰담비는 털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흰담비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털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사냥꾼들은 흰 담비의 이러한 속성을 이용해 흰 담비를 잡는다고 한다. 즉 흰담비가 사는 굴 입구에 숯검정을 칠해 놓고 숲 속에서 놀고 있는 흰담비를 굴 쪽으로 모이게 한다. 굴 입구에 다다른 흰담비는 자신의 흰털을 더럽 히지 않으려고 굴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 때 흰담비는 사냥꾼의 표적이 되어 죽게 된다.” 강재환 편저(編著) 《예화포커스II》 (두루마리, 246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소를 키우면 외양간은 어쩔수 없이 더러워집니다. 외양간의 목적은 깨 끗함이 아니라 소를 키우는 것입니다. 깨끗한 외양간이 좋은 외양간이 아닙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으면 깨끗하지만 소를 키우면 더러워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소를 많이 키워내는 외양간이 좋은 외양간입니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잠14:4) 아가씨가 아줌마 집에 와서 “집이 왜 그리 더러워?”하면 안 됩니다. 아이를 키우면 집안이 난장판이 됩니다. 산다는 것은 더러움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흰담비는 자신의 털이 검정 숯덩이로 더럽혀지느니 차라리 사냥꾼에게 잡히고 맙니다. 잡혀 죽느니 더러운 털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는 이야기는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Life is real” 유명한 롱펠로의 시입니다. 삶은 리얼합니다. 추상적
이지가 않습니다. 쓰리고 아픈 것이 많은 real 리얼 그 자체입니다. 사 람을 사랑하는 것도, 직장 생활도, 목회도, 산다는 것 자체가 리얼하고 치열합니다. 더럽혀져도 주님의 은혜로 먼지를 털고 다시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 |
|
에스겔 1장 5절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and in the fire was what looked like four living creatures. In appearance their form was that of a man, Ezekiel 1:5 [NIV] |
|
천국을 삽시다. 천국을 누립시다
은과 금이 없어서 행복하지 못하다라고 생각하는
여러분들의 생각 또한 옳지 않습니다. 은과 금이 생기게 되면 그때 행복할 것이며 은과 금이 풍족하게 되면 내 삶이 천국과 같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을 사십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에 들어가십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을 누리십시다. 기쁘게 사십시다. 사랑하며 사십시다. 감사하며 사십시다 모든 염려와 근심을 주께 맡기며 평안하게 사십시다. 찬송하며 사십시다. -김동호 목사의 ‘열린 천국도 안 들어가는 사람들’에서-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열려졌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인정하고 영접하고, 그의 말씀으로, 그의 정신으로, 그의 영으로 길을 삼고 법을 삼고 지식을 삼아 살아간다면 은과 금이 풍족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그대로 천국이 될 것이기에 기쁘게 살고 사랑하며 살수 있고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
'Faith - Hy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들과 다투지 말라 신 2:1-15 (0) | 2022.04.15 |
---|---|
홍해 길로 신 1:38-46 (0) | 2022.04.14 |
예후가 왕이 되다 왕하 9:1-10 (0) | 2022.04.12 |
하사엘과 더불어 왕하 8:25-29 (0) | 2022.04.11 |
찬송가 색소폰 연주 (0) | 2022.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