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세미한 소리 왕상 19:9-14

鶴山 徐 仁 2022. 1. 12. 12:24

세미한 소리 왕상 19:9-14

 
 
01월 12일 (수)
   
세미한 소리 왕상 19:9-14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9절).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는 뜻의 히브리어 <마 렉카 포>는 <무엇이 너를 여기 있게 하였느냐>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이 엘리야의 실망과 좌절과 체념을 이미 다 아시고 그렇게 물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질문이 결국은 엘리야로 하여금 다시 자신을 냉정하게 성찰하게 한 도전이 되었습니다. 일종의 전환과 갱신의 계기가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란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11-12절).


이 사건은 엘리야의 삶에서 매주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자신의 본성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환상적인 방식으로도 계시하시지만, 세미한 소리처럼 소소한 방식으로도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우리도 작은 것들과 세상의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큰 소리, 큰 사건 같은 인간의 소음을 줄이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으로도 깨어지고 변화될 만큼 오랫동안 내 영혼을 잠잠하게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장엄하게 그러나 때로는 조용하게 섬세하게 역사하십니다. 때로는 문화를 바꾸시고 역사를 뒤엎기도 하시지만, 또 때로는 한 개인의 일상을 돌보시며 아주 조금씩 변화를 경험하게도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큰 것만, 놀라운 기적만 바라거나 기대해서는 안 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를 세심히 도우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지난 80년대 90년대에 강한 성령의 바람, 뜨거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늘 그런 강력한 역사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각각 다른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만이 전부인양 생각하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이야 말로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같은 방식으로 계시하시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본문 12절의 <세미한 소리>를 염두에 두시고 시편 119:105 말씀을 찾아 옮겨 적어보십시오.
-엘리야가 왜 <겉옷으로 얼굴을>(13절) 가렸을까요?
-10절과 14절에서 반복되는 엘리야의 고백에 대한 당신의 소감을 적어보십시오.
 
주님, 엘리야는 정말 여호와께 대한 <열심이 유별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많이 지쳤고, 두려움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극도로 나약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오나 하나님은 크고 강한 바람이나 지진, 혹은 불 가운데서 계시하시지 않고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저희도 이 사건이 주는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놓치지 않게 하사 세미한 중에 역사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바르게 듣고 또 제대로 응답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성공과 겸손
 
“만일 컴퓨터로 상징되는 IT 혁명이란 대변화가 없었다면 애플의 ‘스
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라는 거부이자 혁신가가 태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김용한 저(著) 《긍정의 즐거움》 (산솔미디어, 237쪽) 중에 나오는 구
절입니다.
어느 한 시기에 영웅이 몰려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대가 영웅을 만
들어 주는 경우가 많기에 그러합니다.  그 유명한 사업가 록 펠러, 앤
드루 카네기,  J.P.모건 등은 모두 1830년대에 출생했습니다. 그 시기에
미국에 철도가 건설되기 시작했고 월 스트리트가 태어났으며, 새로운
경제 규칙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들은 가장 적절한 시기에 태어나서 성
공자가 되었습니다.
1975년은 개인 컴퓨터 혁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입니다.  
이 혁명의 수혜자가 되려면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나 이십대 초반에 이른
사람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실제로 미국 정보통신 혁명을 이끈 거물인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에릭 슈미트 등은 1955년생입니다.
이들은 물론 뛰어난 재능과 성공을 향한 성실한 노력과 불굴의 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만들어준 기회’가 없었다면 결코 큰 성
공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성공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탐천지공(貪天之功)! “하늘의 공을 탐한다” 는 뜻입니다.
하늘의 공을 제 공인 양 하는 교만을 늘 조심하며 겸손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
라.”  (잠18:12)
   
야고보서 2장 10절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For whoever keeps the whole law and yet stumbles at just one point is guilty of breaking all of it.
James 2:10 [NIV]
   
기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필요한 도움을 얻어 우리에게 닥친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선하고 능력 많으신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께 시선을 돌린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를 놓고 기도한다. 걱정거리 탓에 깊은 불안을 느낄 때 우리는 진지하게 기도한다. 우리는 무릎을 꿇고 뜨겁고 성실하게 기도하고, 친구들에게 기도 제목을 알려 주고, 때때로 기도 모임을 통해 친구들과 소통한다.
-래리 크랩의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 중에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행합니다. 특별히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할 수 없을뿐만 아니라 기다림이 불가능합니다. 주께서 일하심에 대한 기대가 있을 때 기다림도 가능합니다. 우리의 사정이 주님앞에 들려지면 반드시 주께서 응답하신다는 신뢰, 그것이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