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왕상 18:41-46
01월 10일 (월)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왕상 18:41-46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빗소리가 있나이다>(41절).
야합도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 간의 갈멜산 대결을 현장에서 지켜본 모양입니다. 이제 <먹고 마시라>는 것은 <더 이상 근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가뭄의 원인이었던 우상 숭배자들, 우상의 선지자들을 다 처단했으므로 곧 가뭄의 고통이 해소될 테니 이제 가서 먹고 마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엘리야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보십시오. 아직 기도도 하기 전인데 엘리야는 이미 <큰 빗소리를>를 듣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한 그대로 엘리야는 이미 믿음으로 <큰 빗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바다 쪽을 바라보라 …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42-43절). 오늘 우리로서는 감히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기도 자세입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 무릎 꿇고 엎드려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넣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위대한 선지자요 위대한 기도의 사람인 엘리야가 이토록 간절한 자세, 처절한 모습으로 기도했다면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떻게 기도하는 게 옳을까요? 기도하는 자세뿐 아닙니다. 사환에게 <바다 쪽을 바라보되 일곱 번까지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부르짖겠다는 뜻입니다. 기어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내겠다는 결의의 다짐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란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어야 옳을 뿐 아니라 응답을 받기까지, 일곱 번까지라도 구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엘리야 선지자의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응답하시리라는 믿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시니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45-46절). 대략 22.4km의 거리를 엘리야가 아합 왕의 마차 앞에서 달렸다고 합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거친 길을 마차보다 더 빨리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감격해서, 여호와의 능력이 임해서 그렇게 빗속을 미친 듯이 달린 것입니다. -엘리야의 믿음, 엘리야의 기도에 관한 당신의 소감을 간략히 적어 보십시오.
-옛 이스라엘 지도에서 <이스르엘>(45절)을 확인해보십시오. -새해 당신의 기도 생활의 다짐을 적어보십시오. 주님, 전설적인 기도의 사람 엘리야의 기도하는 모습과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엘리야는 이미 기도하기도 전에 기도 응답을 확신하고 먼저 큰 빗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또 무릎 꿇고, 그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넣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믿음대로, 그의 기도대로 마침내는 큰 비가 쏟아졌고 그 빗속을 뚫고 아합의 마차 앞에서 20km가 넘는 길을 달렸다고 했습니다. 부디 저희도 엘리야에게서 기도하는 법, 감사하는 법을 배우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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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대로 살아라
“지금껏 나는 면도기를 들고 항상 수염이 난 방향의 반대쪽으로 깎아
왔었다(생략).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생전 처음 면도날을 수염이 난 방향을 따라서 결대로 밀어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수염은 마치 익숙한 주부들이 사과껍질을 나이프로 정교하게 깎듯 부드럽게 깎여나가는 것이 아닌가.” 최인호 외 34인 공저(共著) 《뭉클》 열림원, 220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나무, 돌 뿐 아니라 사람의 피부에도 결이 있습니다. 결대로 대패질을 하면 매끄럽고 평탄하게 표면이 마감이 됩니다. 결을 역으로 거슬러 대 패를 먹이면 거친 부분들이 소름 돋듯이 일어나게 됩니다. 면도를 할 때도 그러합니다. 탁구나 테니스 혹은 야구에서 배트로 공을 칠 때도 회전 방향의 결을 따라 칩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튕겨 나갑니다. 돌을 다룰 때도 힘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설픈 초보는 망치 부터 집어 듭니다. 그러나 노련한 석공은 돌의 결을 먼저 봅니다. 결대로 치면 돌이 멋지게 갈라집니다. 사물과 역사에도 삶에도 결이 있습니다. 결을 읽고 결대로 살면 자연스 럽고 기쁘고 활기차고 승리하는 인생이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것이 결대로 사는 인생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전도 선교 구제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각자의 은사와 영역에서 전도 선교 교제의 삶을 살 때, 그것이 결대로 사는 것이고 승리하는 인생이 됩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막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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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5장 2절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Resentment kills a fool, and envy slays the simple. Job 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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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초대 그리스도교의 확산은 예배가 외부인들에게 매력적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집사는 문에 서서 사람을 청하여 들어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초대 그리스도교의 예배는 외부인들을 모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이 때의 예배는 모인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의 일을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사람으로 훈련받는 것이었습니다. 외부인들에게 매력적이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예배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자신이었습니다.
-알랜 크라이더의 [초대교회에 길을 묻다] 중에서- 본래의 교회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한 시대입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시대에 본질이 더욱 귀합니다. 초대교회의 정신을 생각해보면 숫적 성장을 목적으로 교회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질을 지켜내기에 부흥이 자연스럽게 왔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삶이 복음으로 살아내는 일이 관심이었던 그들의 삶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에 대한 정답이 우리의 삶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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