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아직도 소망이 있다 스 10:1-4

鶴山 徐 仁 2022. 1. 13. 10:00

아직도 소망이 있다 스 10:1-4

 
 
01월 13일 (목)
   
아직도 소망이 있다 스 10:1-4


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2.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3.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4.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며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며...>(1절).


에스라가 <엎드려 울었다>는 것은 극도의 슬픔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몸을 던지듯 납작하게 엎드리는 행동을 가리키고, 어떤 비극적인 사실로 인해 <통곡>하고 <애곡>하는 행위를 뜻합니다(창 23:2, 삼상 1:10). 에스라는 사실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죄임에도 그게 마치 자신의 죄인 양 괴로워하고 통회하며 자복했습니다. 이처럼 에스라는 현실 문제의 해결책을 자기가 제시하기에 앞서 백성들로부터의 자발적인 결단이 나타나도록 유도하는 지혜를 보여줍니다. 보십시오. 에스라의 울며 기도하는 모습에 <많은 백성이 통곡>하며 그 앞에 모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리 악한 죄를 범하고, 이방의 여자를 아내로 맞으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백성이라고 해도 기도하고, 통곡하며 자복하는 한에는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2절).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하는 복음송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어떤 경우에도,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지라도 기도하고 회개할 마음이 있는 한, 또 한 그걸 실천하고자 하는 한은 절대 소망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그게 아무리 치명적인 죄라할지라도 절대 나의 진전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자신감에 넘쳐나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낙심하지 맙시다. 
지은 죄로 인해 생명의 기운을 스스로 꺾지 맙시다. 기도하며 회개하며 오히려 주님의 더 큰 소망을 기리는 결단을 가집시다. 그러면 세상도 더는 우리를 낙망에 빠뜨리거나 타락시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우리를 주저앉히거나 진로를 가로막지 못할 것입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긍휼과 신령한 소망으로 충만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에스라가 기도한 <성전 앞>(1절)이란 <성전 뜰>을 뜻합니다. 왜 그는 성전 뜰에 엎드려 울며 기도했을까요?
-당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한 가장 큰 죄는 무엇이었습니까(2절)?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다>(2절)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주님, 그렇습니다. 기도할 수 있고, 회개하고 자복할 수 있는 한 누구든 그에게는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그게 어떤 죄든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또 한 번의 기회를 베푸사 새 출발할 수 있는 긍휼을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백성들의 죄를 마치 자신의 죄인 양 아파하며 울며 자복했습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도 거기에 감복하여 함께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오늘 저희도 이 점을 배우고 꼭 본받게 하사 새해에는 함부로 자신에게 좌절하고 절망할 게 아니라 에스라와 이스라엘처럼 기도하고 통회하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그래서 다시금 소망을 품는 복된 성도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래서 뭐?
 
“주상성자 시몬은 390년에 태어난 사람인데, 그는 처음에 70센티미터의
높이 기등에서 수도를 시작하였고 그 후에 12미터, 33미터. 40미터로 그
기둥의 높이가 올라갔습니다. 그 위에서 무려 35년간 수도를 하며 살
았고 그 기둥 위에서 죽었습니다.”


신우인 저(著) 《예수의 첫수업》 (포이에마, 89쪽) 중에 나오는 구
절입니다.
‘주상(柱上) 성자’로 알려진 시몬은 교회사에 참 기이한 인물입니다.
그는 처음에 70센티미터 높이의 기둥에 올라가 수도를 시작했고, 그 후
40미터 기둥까지 올라갔고 그 위에서 무려 35년간 수도를 하며 살았고,
기둥 위에서 죽었습니다. 그동안 그를 만나러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
지만, 어머니일지라도 여자가 기둥에 가까이 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
습니다. 죽은 후 그는 고행 성자로 추앙 받았고, 그 자리엔 교회가 세
워졌습니다. 그는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산 것일까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멋진 인생은 “하나님이 쓰시는 인생”입니다.
디모데 후서에 보면 하나님이 쓰시는 명품 인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
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
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딤후2:20,21)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서는 금그릇이냐 은그릇이냐 나무냐 질그릇이냐가 중요
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쓸 수 있는 그릇, 주인이 쓰는 그릇이 명품 그
릇입니다.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있던 그를 주님이 어떻게 쓰실까요?  
주님이 편히 쓰실 수 있는 사람. 온전한 순종을 하는 사람을 주님은 찾
으십니다.
   
야고보서 2장 15절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because judgment without mercy will be shown to anyone who has not been merciful. Mercy triumphs over judgment!
James 2:15 [NIV]
   
성령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기독교의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는지를 보여주는 수단이지 하나님을 조종하거나 심지어 협박해서 어떻게든 내 뜻을 이루려는 수단이 아니다.
-이재기의 [사도행전에서 리더십을 배우다] 중에서-


우리 인간의 한계는 자기의 뜻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주의 일하심을 드러내는 것이 되지 않기에 변질됩니다. 주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시작이 기도입니다. 나의 뜻만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내 믿음대로 된다는 것이 자칫 내 뜻대로 다 들어주신다는 식이 되면 우상 숭배를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