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 거하라 (디모데후서 3:14~17)
03월 11일 (목)
그 안에 거하라 (디모데후서 3:14~17)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인간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책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1,600여년 동안 약 40여명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개성과 취미가 다르고, 문화적 수준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감동을 입고 기록하였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함이요, 죄인으로 하여금 믿고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요20:31). 성경은 생명을 다루는 책입니다. 죄인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영생문제는 천하를 다루는 문제보다 크고, 급하고 중대한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이 시대를 준비해야 할까요?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불확실한 시대를 준비해야합니다.
본문의 중요한 핵심은 14절의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세 가지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3장1-5과 13절의 말씀을 근거하여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14절에서 그러나 너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먼저 배우라고 하셨는데, 무엇을 배우라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진리이고 생명이고, 사람을 온전케 만드는 능력이고 근본이기 때문입니다(히4:12-13). 어느 시대나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사랑하는 자는 변화를 경험했을 뿐아니라, 놀라운 삶을 살아갔습니다.
다음은 확신해야 합니다. 성경 지식을 많이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경을 읽고 맥을 확실히 잡고 안 것에 대해서는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성경에는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맥을 잡지 못하고 읽으면 열번 스무 번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무엇을 확신해야할까요? 먼저는 ‘나는 죄인이다’라는 것이고, 다음은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확신입니다. 성경에 다른 것은 다 알아도 이것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성경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합니다. 반대로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이 두 가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성경을 읽었다면 성경의 중심을 바로 잡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거해야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사업을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정상을 유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은혜 받기도 어렵지만 그 은혜를 유지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명예를 얻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습니다. 욕심을 내어 없는 것 자꾸 달라하지 말고 있는 것 지키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읽는 모든 사람의 영혼에 영감을 끊임없이 불어넣어 주고 있습니다(16).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 누구에게로 가든지 구원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말씀에는 능력이 있어 말씀을 뜨겁게 사랑하고 복종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말씀에 붙들릴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열심히 배우고 확신하며 살아가십시다.
- 말씀에 대한 자세는 어떤지를 살피고, 말씀중심의 신앙을 위해 기도합시다. - 말씀을 듣고 배우고 실천함에 있어서 보완해야 할 점을 찾아보십시다. - 구원의 확신을 점검해 보시고, 다시 복음 앞에서 나를 살펴보십시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제부터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중심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말씀을 삶의 규범으로 삼아 순종하며 살게 하시고,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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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만 해도
“긍정적인 단어는 듣기만 해도 사람들에게 활기를 주고. 웃음을 주고, 넘치는 에너지를 준다. 반면 부정적인 단어는 떠올리기만 해도 사람들을 화가 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분위기를 어둡게 만든다.”
할 어반 저(著) 박정길 역(譯)《긍정적인 말의 힘》(웅진윙스, 3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할 어반은 사람들이 제일 듣고 싶은 말은 정중한, 공손한, 예의 바른, 친절한, 사려 깊은, 우아한, 점잖은 말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제일 듣기 싫은 네 종류의 말은, 욕,불쾌한 말 / 불평, 투덜거림, 칭얼거림 / 잔인하고 고통을 주는 말 / 무례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말은 말을 하는 자신과 듣는 사람의 몸 속에 마음 속에 들어갑니다. 그 리하여 사람을 희망적이고, 행복하고, 높은 에너지를 갖도록 만들기도 하고, 우울하고 못마땅하고 아프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은‘말’에 ‘치유하는 생명’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 라.” (잠15:4)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잠16:24)
이 두 구절에 나오는 ‘양약’과 ‘온순한’ 은 같은 히브리 단어로서 ‘마르페’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치료’란 의미의 ‘라파’ 입니다. ‘여호와 라파’, 곧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로 잘 알려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말’에 치료하는 힘을 불어 넣으셨습니 다. 이것이 말의 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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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5장 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베드로전서 5장 6절> Humble yourselves, therefore, under God's mighty hand, that he may lift you up in due time. <1 Peter 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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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본래 주어진 목적과 사명이 아닌 것에 정신을 팔게 만듭니다. 이는 첫 번째 시험이 우리에게 주는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마귀가 주는 시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 목적을 이해하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직장에 나가 일할 때, 자신이 그곳에서 일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행동해야 합니다. 딴짓을 하면 안 됩니다. -이규현의 견뎌낼 힘, 이겨낼 은혜] 중에서-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용하시고, 마귀는 교만한 자를 사용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사람입니다. 작은 유혹가운데 우리가 넘어지는 것은 목적을 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편법으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편법은 쉽게 살아가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성도입니다. |
03월 10일 (수)
다윗의 기도 (삼하 7:18-29) 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 전체의 내면적 변화고, 그것이 바탕이 되는 현실의 모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다윗의 기도는 우리에게 깊은 깨우침과 신앙의 참 자유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18절).
다윗은 그의 기도 첫 마디에서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비천한 자신을 날카롭게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놀라운 약속이 그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과분한 축복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 자세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그의 이 기도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에서 시작되었음을 거듭 확인할 수 있습니다(창 32:10, 시 8:5, 144:3).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20절). 다윗은 그 마음속에 차오르는 벅찬 감사를 도저히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깊은 감사의 마음을 말보다는 자신의 속마음까지도 다 헤아리고 계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속성에 호소하고 있습니다(시 139:1-4).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22절). 마치 과거 모세의 진술과도 같은 신앙고백입니다(출 15:11). 물론 다윗은 조상들로부터 늘 그런 표현을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구체적으로 체험한 하나님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우사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24절). 이것은 과거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시내산 언약의 회상입니다(출 19:5, 신 7:6, 14:2, 26:18). 그러나 과거에 대한 단순한 소환이 아니라 그보다 더 발전되고 더 진보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시내산 언약 당시는 이스라엘이 겨우 애굽에서 갓 구원 받은 백성에 불과 했으나 지금은 모든 주변의 대적들을 물리치고 이룩한 통일 국가이자 공의와 사랑으로 통치하는 진정한 신정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다윗의 기도에 대한 당신의 소감을 적어 보십시오. -19절의 <법>이란 히브리어 <토라>를 뜻합니다. <토라>에 관해 아는대로 적어보십시오. -당신도 22절 말씀을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까?
주님, 다윗은 진정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옳은지를 깊이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정직하게 온 마음을 바쳐 중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고, 놀라운 응답으로 그의 구하는 바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오늘 저희들로 하여금 새삼 다윗의 기도를 통해 참된 기도의 모습을 깨닫고 저희도 그렇게 기도하므로 복되게 하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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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뜻
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부지명 무이위군자야, 부지예 무이입야, 부지언 무이지인야)
《논어》의 ‘요왈편(堯曰篇)’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세상에 설 수 없고,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온전한 군자, 바른 리더는 이익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하늘의 명을 따 라 움직입니다. 더불어 함께 사는 예절을 압니다. 그리고 겸손하고 철 학이 있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천명을 알아야’ 한다는 구절을 보십시오.
성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묻는 것이고 아뢰는 것입니 다. 묻지 않는 것은 성격 탓이라기보다 일종의 교만입니다. 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도 교만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교만이 첫 번째 교만이요, 하나님께 묻지 않은 교만이 그 두 번째입니다. 마귀가 선악과를 먹으라는 유혹을 던졌을 때에 하나님께 진지하게 묻기만 했 어도 그런 죄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는 것을 기도라고 합니다. 묻지 않은 죄, 묻지 않은 교만은 운명을 좌우합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 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대상10: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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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4장 10절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10절> We always carry around in our body the death of Jesus,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revealed in our body. <2 Corinthians 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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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돌아보라 성경은 신자들에게 서로 돌아보라고 한다. 이는 충분히 관찰하고, 살피고, 발견하고, 이해한다는 뜻이다. 돌아본다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돕고 격려할 수 있는지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들이 신어야 하는 불편한 신들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라. 당신이 가망 없다고 여겼던 사람을 돌아보라. 문제를 헤치고 나아가며 사랑과 선행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 나라의 한 부분을 이루는 사람을 마음속에 그려보라 -사이먼 슈락의 [서로 서로] 중에서-
교회는 서로 돌아보는 사랑으로 건강합니다. 이 사랑이 이웃에게로 흘러가서 서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시대가 개인주의화 되었다고해도 어느 곳에든 사랑이 필요하고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작은 소자 하나를 발견하고 사랑하는 돌봄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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