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참 아름다운 교회 (사도행전 13:1~12)

鶴山 徐 仁 2021. 3. 6. 13:33

참 아름다운 교회 (사도행전 13:1~12)

 

 

03월 06일 (토)

   

참 아름다운 교회 (사도행전 13:1~12)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흔히들 아름다움에 대한 보편적인 표현은 자연과 인간의 미적인 아름다움들로 주로 시각적인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겉으로 표현되지 않는 내적인 아름다움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아름답다 표현할 수 없을지라도 내적으로 어떠한 과정이 있었느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사람도 겉모습만 아름답기보다는 속마음이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겉모습은 꾸미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모습은 꾸미기가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의 화려함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입니다. 자연이 한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겪어왔는지가 중요한 것처럼, 한 인간으로써 일평생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어떻게 살아갔는지가 중요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교회가 되려면 그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방향설정을 바르게 하고 그대로 실천해 나아가야 합니다. 안디옥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의 모델인 것은 건물 때문도 아니며, 어떤 프로그램이나 구성원들의 사회적 수준 때문도 아닙니다.

 

안디옥교회는 이방 땅에 세워진 첫 교회로 좋은 일꾼들이 많은 교회입니다(1). 그 교회는 각기 개성이 다양한 지도자들이 함께 동역하고 있었습니다. 출신 지역과 배경이 다 다르지만 그들은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한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 결과, 주민들이 그 교인들을 일컬어 그리스도인이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간에 차이가 있는 존재들로 창조하셨습니다. 능력과 신장의 차이, 그리고 후천적인 학습과 소유와 비전의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차별로 나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유력한 사람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가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로 인하여 흩어졌던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그들을 모이게 하신 이는 성령이십니다. 그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모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충만한 교회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고 복음을 전했으며, 성령님께 순종하여 안수하고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2,4,9). 성령충만은 성령의 소욕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스리심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어떤 일을 할 때에는 우리 생각대로 하지 말고, 먼저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고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며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는 복음전파에 열정이 있었던 교회입니다(3). 그들은 하나님 나라와 복음사역을 위해 말씀따라 순종하여 선교사를 선택하고 금식하며 기도한 후 안수하여 파송합니다. 그렇게 파송 받은 두 사람이 전도하여 얻은 열매는 마술사가 소경이 되는 이적과 함께 총독 서기오 바울이 복음을 듣고 돌아오게 됩니다(8-12). 물량적인 면으로 보면 이 선교는 성공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한 영혼을 향한 사랑으로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열의를 가졌던 교회이기에 아름다운 교회인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교회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교회입니다.

 

주님은 이런 교회들을 사용하십니다. 성령충만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좋은 일꾼들로 영혼을 사랑함으로 복음의 열정에 사로잡힌 아름다운 사람들로 살아가십시다. 

 

 

- 안디옥교회가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점을 생각해 봅시다.

 

- 나는 성령의 인도와 말씀따라 살려고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움이 있는지요.

 

- 주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복음사역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고마우신 하나님, 그동안 시각적인 아름다움에만 치우쳐 살아왔습니다. 이젠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한 과정들을 더 중요시하는 가치관의 정립이 있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쓰심에 합당한 종으로 은혜주시고, 한 영혼에 대한 관심이 더하게 하시어 아름다운 공동체로 세워 주시옵소서.

 
   

사랑의 손으로 이웃을 품되 공의의 손과

 

 

 

주님의 사랑은 공의와 분리될 수 없다.

 

그분의 사랑은 곧 공의를 가능케 하는 능력이다.

 

사랑 없는 정의란 무자비한 폭력에 지나지 않고

 

정의가 상실된 사랑이란 무책임한 방치에 불과하기에,

 

주님께서는 정의를 가능케 하는 힘인 사랑의 손을,

 

사랑하게 하는 능력인 공의의 손을 동시에 갖고 계신다.

 

그분에겐 정의의 다른 모습이 사랑이오,

 

사랑의 다른 이름이 공의인 것이다.

 

-이재철 목사의‘다메섹으로’에서-

 

 

 

주님의 공의와 사랑의 손안에서 만이

 

우리의 옛 사람은 꺾어지고 거듭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손안에서 우리가 걷고 있는 다메섹 도상의

 

의미와 가치가 새로워집니다.

 

세상의 불의를 향해 정의의 손을 내밀되

 

반드시 사랑의 손이 함께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때에만 우리의 정의가 산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의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손으로 이웃을 품되 그 손은 언제나

 

진리인 공의의 손과 겹쳐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의 미명으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을 수 있고,

 

우리의 사랑이 상대를 타락시키는 마약이 아니라

 

참 생명의 묘약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