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소원을 내가 이루리라 (삼상 20:1-11)
10월 22일 (목)
네 소원을 내가 이루리라 (삼상 20:1-11) 1.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1절). 다윗은 사울의 광기와 비열함, 증오를 겪는 와중에도 요나단과의 우정을 통해 결코 흔치 않은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다윗에게 마음이 끌린 요나단은 정말 제 목숨을 아끼듯 다윗을 아꼈고 주의 이름을 걸고 언약까지 맺으며 당대 뿐 아니라 서로의 자손들에게까지도 증인이 되게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으로서는 다윗과의 그 우정에 큰 대가를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 사울로부터의 미움, 왕이 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미래 희생, 그럼에도 그는 그런 아픔이 다윗과의 언약을 무효화시키진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를 승리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환경이 아니라 우리가 맺은 언약입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은 실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그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신념을 굳게 다져주는 일입니다. 시간을 바치며 그 깊은 속을 찬찬히 들여다봄으로써 가장 그 사람다운 면모를 알아보고, 인정과 격려를 통해 그 모든 걸 굳게 지켜주는 일, 다윗에게 요나단은 분명 그런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요나단이 되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은 요나단이 없었다면 자신의 소명을 포기하고 다시 목동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고, 복수의 칼날만 갈며 때를 노리는 아주 위험한 인물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또 그렇게 해서 다윗도 결국은 사울과 같은 존재가 되어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렇듯 자신의 인생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가하면 우리는 내 자신이 누군가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생각하지 못합니다. 다윗에게는 인생의 어느 한 중요한 지점에 위대한 요나단이 있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당신은 다윗입니까? 요나단입니까? 아니면 사울입니까? -요나단이 왜 다윗에게 <들로 가자>(11절)고 제안했을까요? -다윗이 요나단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말을 옮겨 보십시오(8절).
주님, 아버지 사울과는 달리 요나단은 사심이 없었고 맹목적인 편견이나 그릇된 전제가 없었습니다. 그는 실로 다윗을 사랑했고 아버지 사울 왕의 일방적인 시기와 증오심을 극도로 경계하며 끝까지 다윗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 내가 그것을 다 이루리라>(4절)는 말은 요나단의 진심이었습니다. 요나단의 사람됨과 사랑과 신의를 오늘 저희도 꼭 배우고 실제 삶속에서 실천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
|
마블 시리즈의 영웅들
“마블시리즈 중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 맨, 아이언맨 등의 ‘맨류’ 들은 대개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영웅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어요 (중략). 이들은 서사시의 영웅처럼 시련을 겪고 공동체로부터 배척을 받았다가,끝내는 인류를 구해내는 패턴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어요.”
박현경 저(著) 《10대에게 권하는 영문학》 (글담출판, 245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 맨, 아이언맨 등 마블시리즈 영웅들은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소외와 고독, 오해와 수난을 겪고, 실수도 하고 약점도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힘을 발휘하여 인류의 평화에 기여합니다. 그런데 마블의 영웅들은 대서사시 《일리아드》의 주인공 아킬레스,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 《아이네이스》의 아이네이스 등과 비슷 합니다. 마블 영웅들의 원류가 고대 서사시의 영웅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상태에서 고난을 이기고 임무를 완수하여 평화를 이룬 한 영웅으로 반신(demi-god)적인 존재들입니다. 마블 시 리즈는 인문 고전의 서사시가 오늘날에도 통용되고 힛트를 칠 수 있다는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 북을 창시한 마크 주크버그 등이 인문학에서 통찰력을 얻었던 것처럼 인문학은 현실적으로도 큰 유익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문학은 존 재와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과 고민을 하게 합니다. 그런 정답을 주지는 못합니다. 정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은 온 세상 만물의 본질인 하 나님을 보여 줍니다. 죄 용서의 길과 영원한 삶에 대해 말해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영웅들의 삶을 보여 줍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5:39) |
|
마태복음 5:3-4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NIV) |
|
교회 모으는 형태의 교회는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성공 가능성 있는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는 아주 적은 비용을 가지고 도시들에 더 빠르게 퍼져 나갈 수 있다. 나는 우리가 이 세상에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길 원한다면 반드시 교회 형태의 기준을 낮추고 제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의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믿는다. -닐 콜의 [파도를 타는 교회] 중에서-
교회가 어떤 형태와 양식으로 존재하는가는 너무 중요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상황 속에서 교회는 본질을 제외하고는 발 빠른 상황대처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더 이상 건물의 크기나 성도의 숫자에 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교회의 문턱은 낮아지고, 주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수준은 높여야 합니다. 본질만이 남습니다. |
사울의 예언 (삼상 19:18-24)
10월 21일 (수)
사울의 예언 (삼상 19:18-24) 18.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
다윗이 사울을 피해 라마로 가서 사무엘 선지자와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라마는 사무엘 선지자의 고향이자 그의 사역의 중심지였습니다(1:1, 7:17). 당시 다윗이 사울을 피해 사무엘 선지자를 찾아간 것은 사울의 살해 음모로부터 자신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서 였고, 또 앞으로의 자신의 행보와 처신에 대해 사무엘의 자문을 얻기 위해서 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19절). 다윗이 아내 미갈의 도움으로 기브아의 집을 탈출한 후 사울은 곧 군사들에게 그의 도피처를 탐색하도록 명령했을 것이고, 어쩌면 많은 현상금까지도 걸었을지 모릅니다. 아무튼 다윗의 도피처는 발각됐고 그 사실이 즉각 사울에게 보고되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20절). 여기 나오는 <선지자 무리>란 당대 최고 권위의 선지자였던 사무엘에게 영적인 지도와 훈련을 받기 위해 모였던 젊은 선지 생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사울의 명을 받고 다윗을 체포하러 갔던 전령들이 사무엘과 그 선지자 무리의 신령한 예언 행위와 뜨거운 영적 분위기에 휩싸이고, 또 하나님의 영의 강권적인 역사로 더는 자제할 수 없어 선지자들처럼 예언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미래의 일들을 선포하는 선지자적 예언(나비)이라기보다는 묵시적 황홀경에 빠져 영적인 노래를 불렀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사울이 보낸 세 번째 전령들까지도 다 그렇게 영적 황홀경에 빠지자 결국은 사울이 직접 나섭니다. 그러나 사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사울은 더 심했습니다.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견디지 못해 <... 사무엘 앞에서 예언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24절)고 했습니다.
-<나욧>(18절)이란 지명이 아니라 시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사울이 옷을 벗은 사건에 대해(24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속담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24절)란 무슨 뜻으로 쓰였을까요?
주님, 다윗을 붙잡기 위해 라마를 찾아갔던 전령들도, 심지어는 사울 왕 자신도 사무엘 선지 학교의 영적인 분위기에 압도되어 전혀 예기치 못한 예언까지 했다고 합니다. 사울 왕은 마치 감전되듯 성령에 사로잡혀 예언을 하고 온 몸이 뜨거워 옷까지 벗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성령이 역사하시면 나를 잡으러 온 군사도 예언을 하고, 왕도 황홀경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성령의 역사를 통해 새로워지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를 바르게 예언할 수 있는 은사도 허락해 주시옵소서. |
|
오프라 윈프리의 세 가지 성공 비결
“첫 번째로 뽑는 성공의 토대로 오프라 윈프리는 늘 어린 시절의 ‘독서’를 강조했다. 그리고 보잘 것없는 가난한 흑인 소녀였던 자신의 작은 재능을 믿어주고 격려해 준 여러 선생님의 ‘칭찬’ 이 자신의 삶을 강력히 이끌었다고 고백한다(중략). 또 다른 오프라의 성공 비결은 의 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눔’에 있는 것 같다. 기부 천사로서의 그 녀의 선행은 따뜻한 카리스마(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발휘했고 그런 특 별한 이미지는 대중에게 질시와 미움을 걷어낼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일린 쿠퍼 저(著) 《오프라 윈프리》 (나무처럼, 17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흑인이었다. 사생아였다. 가난했다. 뚱뚱했다. 미혼모였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이 말은 과거를 들추며 오프라를 비판할 때 그녀가 하는 말입니다. 그녀의 토크쇼는 세계에 1억 4천만 명 이상의 고정 시청자를 갖고 있 습니다. 그녀의 토크쇼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가 하면 그 토크쇼에서 어느 책 한권을 소개하면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입니다. 오프라 위프리는 토크쇼 뿐 아니라, 배우,모델,성우 등 여러 가지 일을 멋지게 해냈습니다. 그녀는 10억 달러의 재산을 소유하게 된 억만 장자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돈을 자기의 과거처럼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많이 사용했습니다. 2006년 한 해에만 600억 원을 사회에 기부하여 자선금 기부왕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1997년 설립한 엔젤 네트 워크를 통해 왕성한 자선활동을 하고, 해비타트운동으로 무주택자들을 위하여 집을 짓고,‘세계에서 가장 큰 돼지 저금통’을 운영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오프라 윈프리를 만들어 준 세 가지 축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자신이 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독서’와 ‘나눔’입니다. 이웃이 해 준 것이 있습니다. ‘칭찬’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 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눅6:38) |
|
베드로전서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If you are insulted because of the name of Christ, you are blessed, for the Spirit of glory and of God rests on you.(NIV) |
|
관심 격려하는 교회들은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에너지가 바닥나고 지쳐서 낙오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미리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격려한다. 그들의 존재가 당연하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격려하는 교회들은 그들이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섬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제럴드 L. 싯처의 [차이를 넘어선 사랑] 중에서-
격려는 미리 상대방의 사정을 아는 것입니다.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미리 호응하는 것이 격려입니다. 한 영혼의 고갈을 미리 막아주고, 그래서 미리 짐을 대신 지는 공동체가 격려하는 공동체입니다. 나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어려움까지도 대신 지는 것이 격려하는 공동체입니다. |
'Faith - Hy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는 죽어야 할 자 (삼상 20:24-34) (0) | 2020.10.24 |
---|---|
여호와의 인자 (삼상 20:12-23) (0) | 2020.10.23 |
하나님은 나의 요새요 방패 (삼상 19:8-17) (0) | 2020.10.20 |
다윗을 사랑한 요나단 (삼상 19:1-7) (0) | 2020.10.19 |
다윗과 함께 계심 (삼상 18:22-30) (0) | 2020.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