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좋은 공동체란 어떤 모습일까요?(요한복음 17장 21-26절)

鶴山 徐 仁 2020. 7. 8. 10:39

07월 08일 (수)

   

좋은 공동체란 어떤 모습일까요?(요한복음 17장 21-26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런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가정이나 교회에 갔을 때,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어떤 가정이나 교회는 따뜻한 인상을 받고, 어떤 곳은 딱히 나에게 불쾌하게 대한 것도 아닌데 불편하고 빨리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경험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모임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그 모임의 모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는 성공했다 하더라도 가족 구성원이 서로 온전한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말씀은 제자들을 향한 고별설교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하나 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아무리 많은 사명을 감당하더라고 하나 되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구성원들이 각각 신앙으로 세상을 이기고 신앙의 길에서 성공한다고 해서 교회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 구성원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개개인이 성공하더라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도하는 일이 없다면 모두가 행복하게 되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들은 전혀 예수님의 마음과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언제부터 능력 있게 사역을 감당하기 시작했습니까? 사도행전 2장에 그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떡을 떼고 함께하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하나 된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가면서 그들이 주님의 사역을 잘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 되기 시작하니까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온 유럽에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 되게 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신앙에서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이 마지막으로 떠나시면서 부탁하고 원하셨던 것은, 서로 하나 되어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루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개인적은 은혜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하나 됨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까지 이르기를 소원합니다.

 

- 개인적인 문제나 기도제목은 열심을 구하면서 가정이나 교회, 나에게 허락하신 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한 열심을 내지 못한 것들을 기억해 보고 회개합시다.

- 오늘 생각나는 낙심해 있는 공동체 구성원이 있다면 그에게 따뜻한 말이란 전화, 문자를 보내봅시다. 성령님이 이끄시는 가장 중요한 일을 주저하지 맙시다.

 

주님!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길은 내가 은혜를 받고 그 은혜로 회복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주님이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에게 원하셨던 것은 ‘하나 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방관하고 있었던 가정과 교회의 문제를 놓고 이제 기도하며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겠습니다. 믿음을 주셔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소속감과 독특함

 

“무리 짓기를 통해 어떤 집단에 소속될 때 오는 안정감과 만족감을 추

구하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서 창의성을 발휘하여 더 독특한 나다움을

찾고 만들어 내려는 사람의 심리”

 

유니타스브랜드 편집부 저(著) 《브랜딩 임계 지식 사전》

(MORAVIANUNITAS, 319족)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사람은 어느 공동체에 소속이 되어야 안정감을 얻습니다. 그러나 동

시에 그 공동체 속에서도 자신의 개성이 빛나기를 바랍니다.

공동체와의 동화(同化),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반짝거리는

존재감. 이 둘이 조화를 이룰 때 행복합니다.

자기중심이 있으면서도 이웃과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쉽게 홀리면서도 이웃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너무 둥글둥글하여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이 있고, 너무 모가 나서

자기 생각만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각형 사람이 좋습니다. 원

만하지만 자기 세계도 뚜렷한 사람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의와 상념에만 집중한 사람들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과 중심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이웃을 향해 한없이 열린 마음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도 그러하였

습니다.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어 그

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조화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

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전9:22)

   

야고보서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My dear brothers, take note of this:

Everyone should be quick to listen,

slow to speak and slow to become angry,(NIV)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나는 강해진다

우리는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벧전 4:11에 보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우리가 활동하며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 때문이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살고 있음을 고백하시라.

이런 고백을 하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내가 내 힘으로 산다고 말하는 사람은

큰일을 당해봐야 이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병을 앓고 난 사람은 확실히 겸손해진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살고 있다는 고백을 할 때

하나님 앞에서 나는 무한히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정판수 목사의 ‘하갈아 두려워 말라’에서-

 

우리는 연약한 토기그릇과 같습니다.

때리면 잘 부셔지는 질그릇입니다.

한없이 약한 그릇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나는 강해집니다.

뽀빠이가 시금치만 먹으며 강해지듯이 우리는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사단의 궤계를 능히 이기는

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나에게 전신갑주를 입혀주시면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어떤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07월 07일 (화)

   

성공적인 삶을 위하여 (예레이먀 29:11-14)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입술로 말하고 고백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입술을 통해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는 능력이 있기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사용하는 언어가 다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대화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성공적인 삶을 위해 몇 가지 집중해야 될 내용이 있습니다.

먼저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지만 하나님도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본문 11절에도‘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되든지 별로 상관하지 아니하는 분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나를 귀하게 생각하시고 하나님은 내 삶에 대한 아름다운 계획들을 가지고 계시며 내가 잘되고 형통하고 하나님 안에 강건하기를 바라시며 나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내가 확신해야 합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이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믿어야 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마음과 생각을 잘 다스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나의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성공적인 삶을 위한 중요한 점은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는 그냥 부르시는 것이 절대 없습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어서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자신이 이루기 원하는 명확한 그림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누가 물어보면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목표가 분명한 것입니다. 다음 단계는 불타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내해야하고 정성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은 재능과 실력에 차이보다는 열정에 차이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생각을 품고,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열정과 소원이 내게 있어도 기도가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13-14절의 말씀처럼 삶의 모든 문제들은 하나님 앞에서 안 되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영광을 위해 나에게 그런 생각을 주시고, 그 일을 열정적으로 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한다면 놀랍고 위대한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이런 삶을 살아 멋지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종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내가 사용하는 언어 중에 부정적인 언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적어 봅시다.

- 나의 삶의 목적은 분명한지요? 다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으십시다.

- 열정의 회복을 위해 구하고,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기도하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 그동안 믿음의 사람으로 불신앙적인 말들을 사용하며 살아 왔습니다. 이런 허물을 용서하옵소서. 이제 나를 향한 주님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목적을 향해 열정을 불태우며 성령 충만함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5cm 될래? 120cm 될래?

 

“비단 잉어의 일종으로 알려진 ‘코이’라는 물고기가 있다(중략).

놀라운 것은,이 물고기는 키우는 그릇의 크기에 따라 자라나는 크기가

달라진다. 작은 어항에서 키우면 5~8cm 크기까지 밖에 자라지 못하지

만,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두면 15~25cm까지 자란다. 또한

넓은 강물에 방류하면 9 ~120cm까지도 자란다고 한다.”

 

변성우 저(著) 《내 인생의 빅픽처를 그려라》 (타래, 285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코이’는 보는 각도에 따라 아름다움이 다르다는 신비한 물고기로,

주로 일본인들이 많이 기르는 관상잉어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환경에

따라 크기의 차이를 보입니다. 분명 동일한 어종인데 5cm에서 120cm

까지 자그마치 24배의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같은 물고기라도 어항

에서 자라면 피라미가 되지만 강물에서는 대어가 되는 현상을 두고

‘코이의 법칙’ 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코이’와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크기의 어항

에서 살아갑니다. 제일 작은 어항 속에 사는 사람은 자신 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어항의 크기가 삶의 크기가 되고, 삶의 크기는 존재의 크

기가 됩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

리스도인의 어항의 크기는 우주보다도 큽니다. 그리스도인은 우주로도

담을 수 없는 큰 존재감 큰 행복으로 살 수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

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

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10:28,29)

   

골로새서 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Bear with each other and forgive whatever grievances

you may have against one another.

Forgive as the Lord forgave you.(NIV)

   

부족함

부족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곳입니다.

약하지 않다면 그리스도가 도와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습니다.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듯,

약한 것을 자랑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최병락의 [부족함] 중에서-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고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또한 가난한 심령위에 임할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칫 주님을 믿는 것이 강한 용사가 되어,

더 이상 인간적으로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는 가장 마지막 궁지에 몰린 당신의 삶에 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