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월 03일 (금)
성도들이 나라를 얻다 (다니엘 7:15-22) 15.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머리 속의 환상이 나를 번민하게 한지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18절). 그렇습니다. 훗날 성도들은 다 나라를 얻습니다. <... 그 앞에서 모셔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10절). 성도들도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심판은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심판이 아니라 상급의 심판입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앞에 책을 펴놓고 거기에 낱낱이 기록된 대로 가장 공정한 심판을 통해 내 삶의 내용과 희생과 헌신과 성화에 따라 나라가 배분됩니다. 그게 바로 성도들이 천국에서 누릴 영화입니다.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눅 19:16-17). 구원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 천국에 가서 누릴 영화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지만, 천국의 상급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 각자가 힘껏 노력해야 합니다. 구원은 주체가 하나님이시지만 성화는 우리 자신이 그 주체입니다. 받은 달란트나 므나로 각자가 열심히 장사하여 힘껏 남겨야 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2-15).
부디 불타지 않을 공적으로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할 나라를> 상속하십시오. 그게 바로 당신의 영원한 행복을 보장하는 천국의 상급입니다.
-구원에는 차이가 없으나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에는 열 고을 권세, 다섯 고을 권세(눅 19장)처럼 엄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천국의 상급은 과연 무엇이 결정될까요? -<공적이 불타면 ...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5)고 한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천국은 평준화의 세계가 아니라 행한 대로 상급을 받는 차등의 세계라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 저희가 훗날 천국 가서 지극히 높으신, 그리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하나님께 받아 누릴 나라는 영원하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입니다. 부디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할 뿐 아니라 천국에 가서 누릴 상급을 위해서도 열심히 뛰고 희생하는 저희들 되게 해 주시옵소서. 누구도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은 부끄러운 구원이 아니라 큰 상급으로 많은 영화를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도록 각별히 축복해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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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99퍼센트
“‘21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는 미국의 건축가 버크민스터 풀러 Buckminster Fuller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라는 존재의 99퍼센트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고 냄새도 맡을 수 없고 잡을 수도 없다(중략).’ 그럼에도 우리는 99퍼센트가 아니라 1퍼센트에 집착한다. 형태가 있는 1퍼센트에 온갖 에너지를 집중한다. 당신이 보여줄 수 있는 건 창대하 다는 것을 잊지 마라. 당신에 대해 보여지는 것이 미약할 뿐이다.”
제리 살츠 저(著) 조미라 역(譯) 《예술가가 되는 법》 (처음북스, 12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 이상으로 고귀한 존재입니다. 꽃처럼 기죽지 말고 자신의 꽃을 피우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비전 속에 태어난 하나님의 소중한 꽃입니다. 이른 꽃도 있고 늦게 피는 꽃도 있으니 아직 꽃을 못 피웠다고 기죽지 마십시오. 쓰러져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넘어지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넘 어졌다가도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나는 존재입니다. 다시 일어서 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영원한 것’을 배우는 존재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 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잠24:16)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누군가의 버팀목입니다. 내가 주었던 사랑, 내가 흘렸던 땀과 눈물로 누군가는 삶을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 이상으로 존귀하고 멋지고 희망스러운 존재들입니다. 남들이 뭐라하든 하나님이 보시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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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If your brother sins against you, go and show him his fault, just between the two of you. If he listens to you, you have won your brother over.(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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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걸음 대한민국의 교회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대형 교회와 대형 교회가 되고 싶어 하는 교회입니다. 모두 최고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작으면 스스로를 삼류로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성도의 숫자가 적고 건물이 작아서 3등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몰라도, 교회와 성도와 목회자들이 삼류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거지도 일류로 살아갈 수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보배롭고 존귀한 자녀들이 일류로 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삼류 갈릴리에서 일류로 사셨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최병락의 [부족함] 중에서-
마지막 시대의 문제는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세상적인 기준과 가치관으로 판단합니다. 그것에 올무가 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교회와 성도의 모습을 직시해야 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주님의 은혜임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주님이 자녀 삼으심으로 인하여 최고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고백은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살아갈 때 인생의 참 의미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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